인지의 즐거움 375

인지의 즐거움022 - 해남 이진성 우물과 정조대왕 정화수

인지의 즐거움022 해남 이진성 우물과 정조대왕 정화수 김희태 ○ 역사기록 해남 북평면 이진리 이진성(梨津城) 안에 있는 우물. 옛 부터 주민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정조임금과 관련이 있는 우물이라는 것. 찾아 보니 정조대왕 왕명으로 편찬(1795년, 정조 19) 한 이순신장군의 문집 에 실린 에 이진(梨津)에 머문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으로 인해 “이진성”, “이진성 우물”, “정조대왕 우물”로 연결되면서 전해 왔던 것 같다. 이진에 머문 것은 1597년 8월 20일 도착해 24일 출발하니 3박 4일간. 계속 배에 머물다가 8월 23일 하루만 뭍으로 내려와 유숙한다는 기록이다. 그런데 그 며칠동안 이순신 장군은 곽란(癨亂, 일종의 급성 위장병)이 일어나 기동하기 불가능할 정도..

인지의 즐거움 2016.04.24

인지의 즐거움021 - 80년전 월남사를 찾은 사람들 - 1938년 사진을 통한 역사현장 읽기

인지의 즐거움 021 80년전 강진 월남사터를 찾은 사람들 -1938년 사진을 통한 역사현장 읽기- 김희태 1938년 4월에 찍은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 강진 월남사지, 한가지 기록을 더 소개한다. 1930년대 사진자료이다. 아마도 월남사터 유적 사진으로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자료에 들 것이다. 이 ..

인지의 즐거움 2016.04.23

인지의 즐거움020 - 1611년, 월남사 다다르니 법당엔 불화, 마당엔 우뚝한 탑

인지의 즐거움 020 1611년, 월남사 법당엔 불화 마당엔 우뚝한 탑 김희태 고려 청자 요지 학술대회와 월남사 답사, 그리고 기록찾기 "월남사 법등(법등)은 언제까지 이어졌을까? 일찍 폐사되었다고 하지만 불당마저 없지는 않았을텐데. ...." 2012년 2월 17일. 세계유산 현장에서 항상 자상한 가..

인지의 즐거움 2016.04.23

인지의 즐거움019 - 조선후기(1892~1894) 전라병영의 줄당기기, 삭전(索戰)

인지의 즐거움 019 조선후기(182~1894) 전라병영의 줄당기기, 삭전(索戰) -줄당기기 역사자료2- 김희태 강진과 바로 이웃한 장흥의 보름 줄다리기(고싸움 줄당기기)는 예전부터 잘 알려 져 있었다. 장흥군과 문화원에서 학술조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에 관련 연구자들과 연결을 해주면서 기록을 찾아 보게 되었다. 1917년 목포신보사에 간행한 에 실린 장흥 줄다리기(“綱引き”) 사진은 줄다리기 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1910~1920년대에 줄다리기 현장을 보고 지은 한시도 2수를 확인해 연구진에게 제공하였다. 하나는 1918년으로 연대가 확인되는데 소천 이인근(小川 李寅根, 1883~1949)의 문집에 있는 “무오년 정월에 백형의 삭전운에 차운하다[戊午正月次白兄索戰韻]”라..

인지의 즐거움 2016.04.22

인지의 즐거움017 - 천관산 구룡봉을 찾은 사람들, 2008

인지의 즐거움017 (20080301) 천관산 구룡봉을 찾은 사람들, 2008 김희태 천관산의 '大佛'명문과 '梵字' 기록 천관산 탑산사에서 정상 환희대쪽을 향해 오르다 보면 아육왕탑에서 300m 지점의 구룡봉에 많은 암각문이 있다. 이곳 암각문은 주로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성명과 연대 등을 기록한 것이다.( 참조) 구룡봉 입구에서부터 일련 번호를 부여하여 암각문을 표기하고 해당인물의 인적사항이 찾아 지는 경우는 간략히 해설해 둔다. 구룡봉 암각문은 탑산사 큰 절 도성스님의 제보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80127(일)과 20080201(금), 20080329(토) 현지 확인하여 촬영과 판독을 하였다. 두 번째 답사는 아들 민균(고1)도 동행하였다. 탑산사 오르는 길에 있는 석굴암 옆 바위 상단에 ..

인지의 즐거움 2016.04.13

인지의 즐거움016 - 방호 김희조(1680~1752)의 시(詩) '임계탄(壬癸歎)'

인지의즐거움 016 (20070801) 방호 김희조(1680~1752)의 시(詩) 임계탄(壬癸歎), 2007 김희태 “자네가 소개한 자료 가운데 청태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자로 어떻게 쓰는 글자인가?” “푸를 청(靑)자, 이끼태(苔)자를 썼던데, 왜 그러나.” “청태전에 대한 기록을 찾고 있는데, 청태란 표기가 있어서 기대하고 연락한 걸세” “그래, 나도 청태전의 기록을 찾아 봄세.” 더위가 시작할 무렵 2007년 6월 어느 날, 서울에서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도 짬짬히 고향의 향토문화에 대한 글을 열정적으로 써 나가고 있는 친구의 전화였다. 차에 대한 자료와 기록을 찾다가 연락한 거란다. 발음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두 단어, 하나는 해산물로서 반찬으로 사용하는 청태(靑苔)이고, 다른 하나는 기호 약용 음..

인지의 즐거움 201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