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391

인지의 즐거움392 - 삼굴과 석탑의 성산, 봉산이자 국제를 지낸 역사문화명산, 금골산

인지의 즐거움392 삼굴과 석탑의 성산, 봉산이자 국제를 지낸 역사문화명산, 금골산 김희태 진도 금골산(金骨山, 해발 202.2m)은 개골산(皆骨山)이라는 다른 이름이 말해주듯 산 전체가 기암 절벽으로 형성돼 "진도의 금강"이라고 불리우는 명산이다. 금골산에는 세개의 굴[三窟]이 있고 오층석탑(보물[제 529호])과 산 중턱의 굴에 조선시대의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제110호])이 음각되어 있으며 해언사(해원사)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산림 관리와 연계되는 봉산(封山) 지역이었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초기(1502년) 이주(李胄)가 지은 『금골산록(金骨山錄)』과 같은 기록유산이 있고,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서도 진도의 대표적 명산으로 기록하고 있는 역사문화 명..

인지의 즐거움 2025.03.11

인지의 즐거움391 - 우뚝솟은 봉우리 오르니 풍진세상 멀어지려 하네, 강진 합장암[合掌庵址]

인지의 즐거움391 우뚝솟은 봉우리 오르니풍진세상 멀어지려 하네, 강진 합장암[合掌庵址] 김희태 합장암(合掌庵)은 강진군 도암면 석문산 중턱에 합장하고 있는 모습의 바위에서 유래된다. 멀리 강진만을 바라볼 수 있고 도암뜰, 덕룡산 소석문이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처럼 경관이 뛰어나 ‘다산12경’, '도암10경'에 든다. 백련사 소속 암자라고 전해진다. 합장암은 백광훈(1537~1582), 김수항(1629~1689)과 김창협(1651~1708)·김창흡(1653~1722) 부자, 윤이후(1636~1699), 정약용(1762~1836), 이시헌(1803~1860), 오한규, 윤정기(1814~1879) 등 문인들이 찾았던 명승지이다. 다산 정약용은 제자들과 들러 「합장암에서 노닐며[游合掌巖]」 라는 시를 남긴..

인지의 즐거움 2025.03.06

인지의 즐거움390 - 담양의 무형유산 집대성, 전통공연예술 5종목, 전통공예기술 9종목

인지의 즐거움390 담양의 무형유산 집대성, 전통공연예술 5종목, 전통공예기술 9종목 김희태 담양문화원(원장 강성남)에서 『담양의 무형유산』(367쪽)을 펴냈다. 강성남원장이 총괄하였고 감수는 나경수 전남대 명예교수, 집필은 이경엽 목포대 교수가 전통공연예술편, 김희태가 총설과 전통공예기술편을 맡았다. 농경 전통지식과 구전전통, 생활관습, 민간신앙, 전통놀이는 지정된 무형유산은 아직 없지만 담양 유산에 대해 심진숙담양학연구소장이 정리하였다. 사진은 김정한작가가 참여하였다. 장은설 문화원사무국장이 기획하였다.담양문화원에서는 2월 19일 무형유산 보유자(담양무형유산보존회)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책자 증정과 함께 오찬을 하면서 무형유산 보전 전승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였다. 담양의 지정 무형유산..

인지의 즐거움 2025.03.03

인지의 즐거움388 - 금성일기, 1364년~1489년, 1510년~1708년 기록 1923년 소실

인지의 즐거움388 금성일기, 1364년~1489년, 1510년~1708년 기록 1923년 소실 김희태 『금성일기』 해제 차례(* 이번호 소개)1358년~1481년 나주목사와 판관, 관인의 행적 기록1424년 고쳐 기록하고 1489년 다시 개수 후대 나주 방문 관인들의 추가 기록, 1710년 이후 중수*원래 1364년~1489년, 1510년~1708년 기록은 소실, 일본에 소재 1747년 『승정원일기』 개수에 참고한 나주의 『호장일기』조선시대 기록이나 자료를 통해서 본 『금성일기』58인의 나주 목사, 46인의 나주목 판관의 행적*인명, 관직, 지역 등을 종합적으로 연계해 활용되기를 원래의 『금성일기』에는 언제까지 기록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알아 보자. 자료를 통해서 보면 『금성일기』 는 1364년(고려..

인지의 즐거움 2025.03.03

인지의 즐거움387 - 금성일기, 1424년과 1489년 개수, 현전본은 1710년 이후 중수

인지의 즐거움387 금성일기, 1424년과 1489년 개수, 현전본은 1710년 이후 중수 김희태 『금성일기』 해제 차례(* 이번호 소개)1358년~1481년 나주목사와 판관, 관인의 행적 기록*1424년 고쳐 기록하고 1489년 다시 개수 *후대 나주 방문 관인들의 추가 기록, 1710년 이후 중수원래 1364년~1489년, 1510년~1708년 기록, 일본에 소재 1747년 『승정원일기』 개수에 참고한 나주의 『호장일기』조선시대 기록이나 자료를 통해서 본 『금성일기』58인의 나주 목사, 46인의 나주목 판관의 행적인명, 관직, 지역 등을 종합적으로 연계해 활용되기를 『금성일기』 는 나주에 부임했던 여러 관원들을 시기별로 정리한 것이다. 고려시기부터 전승되던 자료를 1422년(세종 4) 관찰사 하연..

인지의 즐거움 2025.03.03

인지의 즐거움386 - 금성일기, 1358년~1481년 나주목사 58인, 판관 46인과 나주 찾은 관인의 행적 기록

인지의 즐거움386 금성일기, 1358년~1481년 나주목사 58인, 판관 46인과 나주 찾은 관인의 행적 기록 김희태 나주문화원(원장 윤여정)에서 『역주 금성일기(譯註 錦城日記)』-선조들의 대기록-(420쪽)을 간행하였는데, 해제(解題) 글을 쓰게 되었다. 여러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번에도 떨치지 못하고 말았다. 『금성일기』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더 검토가 필요하지만, 해제에 실은 글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해제 글은 각주가 달린 형식의 글이었는데 이를 풀어서 올린다. 이번에 낸  『역주 금성일기』 는 윤여정원장이 기존 자료를 모았고 김희태와 김종순(전 나주시청 학예연구관), 이수경(지역유산연구원장)이 대교와 역주 증보를 하였다. 김희태가 해제를 집필하였고 이미지 자료도 확인하였다.  『금성..

인지의 즐거움 2025.03.02

인지의 즐거움385 - 오남 김한섭과 경회 김영근, 강진 정수사 강회

인지의 즐거움385 오남 김한섭선생과 경회 김영근선생, 강진 정수사 강회 김희태 근대기의 학자 경회 김영근(景晦 金永根, 1865~1934)선생은 강진는 정수사를 여러 번 찾아 든다. 김영근은 정수사에서 머리를 깍은지 60년이 되어가는 찬일(贊一)이란 사람을 만난다. 대구면 계율리 계치마을에서 살 때일 듯 싶다. 계치에서 정수사까지의 거리는 약 10리이다. 경회가 간도에서 돌아와 계치에서 살았던 1915년이나 1916년께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정수사에 들어갔다가[찬일(贊一)이란 사람이 이 절에서 머리를 깎은 지 이제 60년이 가까워진다고 한다.] 入淨水寺[有贊一者 祝髮是寺 至今爲近六十年] 불당과 선방이 절반도 남지 않았는데 두 스님 늙도록 절을 지키고 있네 사방의 산 엄연히 서있으니 모두 진면목이요물 ..

인지의 즐거움 2025.02.14

인지의 즐거움384 - 천년토록 지나가는 자 본받을지어다. 김억추 신도비와 현무묘

인지의 즐거움384 천년토록 지나가는 자 본받을지어다. 김억추 신도비와 현무묘 김희태 신도비와 현무묘, 전라남도 기념물 지정  강진 김억추 신도비와 현무묘(康津 金億秋 神道碑와 顯武廟)가 2024년 8월 1일자로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 고시되었다. 지정 사유를 간추려 보자. 김억추는 강진 출신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이순신과 함께 큰 공을 세웠다. 김억추 신도비는 1881년 당대 대학자인 송병선이 비문을 짓고 기우만이 글씨를 써서 1882년에 세웠다. 신도비에 김억추의 충효정신을 알 수 있는 자세한 기록이 있으며, 송병선의 문집에서도 확인된다. 찬자(撰者)와 서자(書者)를 비롯한 비의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후기 신도비 형식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사례로 가치가 있다. 현무묘는 조선 후기 건립..

인지의 즐거움 2025.02.13

인지의 즐거움383 - 향촌사회의 문화공동체 공간, 서재와 고택, 장흥 열호재(悅乎齋)

인지의 즐거움383 향촌사회의 문화공동체 공간, 서재와 고택, 장흥 열호재(悅乎齋) 김희태 장흥 열호재(悅乎齋)가 2024년 10월 4일 전라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열호재는 19세기 초반 건립 유서가 있고, ‘열호재’ 또는 ‘환앵정’이라는 명명 유래 기록이 있고, 향촌서재로 많은 전적이 보존되어 있고, 병사나 어사를 지낸 관인이나 인근 선비들의 시문이 전하고, 건축적인 특징이 드러나며 복합적인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건축학적 가치가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함께 지정하였다. 문화유산 명칭 ‘열호재’는 계서 백진항(1760~1818)이 중수하면서 서쪽은 ‘열호재(悅乎齋)’, 동쪽은 ‘환앵정(喚鶯亭)’이라 편액을 한 기록이 확인되어 명칭으로 삼기로 하였다. ‘열호재’는 사랑채의 ‘재..

인지의 즐거움 2025.02.09

인지의 즐거움382 - 임진왜란 시기 전공을 세운 위대기 장군의 투구

인지의 즐거움382 임진왜란 시기 전공을 세운 위대기 장군의 투구 -2019년 국립박물관 전시, 2024년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지정- 김희태 위대기 장군 투구는 위대기(1555~1611?) 장군이 임진왜란 때 쓰고 싸우던 투구이다. 이 투구는 철판을 두들겨 만들었으며 투구의 둘레는 놋쇠판으로 붙이고 투구의 앞과 면위에는 어떤 장식이 있었으나 떨어지고 붙였던 부위에 놋쇠못만 있으며, 투구의 뒷부분은 녹슬어 큰 구멍이 뚫려있다. 투구의 조이게 끈을 매었던 부위는 놋쇠를 두들겨 붙여 만들었다. 위대기 장군(1555~1611?)은 장흥읍 평화리에서 태어나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의 조전장(助戰將)으로 전공을 세웠다. 왜병이 금산에서 웅..

인지의 즐거움 202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