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358

인지의 즐거움264 - <화순 한천농악 문화재 지정 40주년> 단상, 2019

인지의 즐거움264 단상, 2019 김희태 화순 한천농악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지 40주년이 되던 해, 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한천농악전수관에서 학술대회가 열렸다. 남도민속학회 주최. 토론문으로 준비했던 자료를 다시 들춰본다. 화순 한천농악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게 1979년 8월 3일이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전남도청의 문서관이나 국가기록원에는 있을 터이다. 거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에 훑어보았는데, 의외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1979년 당시 지정 회의 관련 자료는 아직 못 보았는데, 우연하게도 1980년 5월 2일 문화재위원회 회의 자료를 보게 되었다. 이 회의 자료의 기타협의사항으로 올라 있는 내용이다. 5개 항목 가..

인지의 즐거움 2022.02.15

인지의 즐거움263 - 곳곳마다 물 길으며 옷을 빨고, 400년전의 동네 ‘시암’

인지의 즐거움263 곳곳마다 물 길으며 옷을 빨고, 400년전의 동네 ‘시암’ 풍경 -고산 윤선도의 우물과 샘 인식과 형상화- 김희태 고산 윤선도(1587~1671)선생. 1612년(광해군 4) 정월 어느 길가의 풍경을 읊는다. ‘날이 갠 것을 기뻐하며[喜晴]’라는 제목의 시 38구 가운데 보이는 일부 구절이다. 샘과 관련해서는 “곳곳마다 물 길으며 의복을 세탁하네”라는 구가 보인다.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빨래터가 보이는 경관이다. 농부는 밭에 나가 민첩하게 밭을 갈고 여행객은 길에 올라 거마가 가벼워라 곳곳마다 물 길으며 의복을 세탁하고 집집마다 멍석 깔고 곡식을 말리누나 안개와 먼지 사라지니 뱃노래가 일어나고 산과 물 산뜻하니 노닐 마음이 더해지네 도인은 약을 말리며 시렁 옆에 서 ..

인지의 즐거움 2022.01.06

인지의 즐거움262 - 해남의 우물과 샘, 역사와 현장

인지의 즐거움262 해남의 우물과 샘, 역사와 현장 김희태 해남의 우물 문화재 전수 조사(2020~2021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해남군에서 관내 우물의 정비와 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조사였다. 조사 기관은 마한문화연구원(원장 조근우). 조사위원은 김희태, 황호균(문화재위원), 장모창(청우요박물관 학예사), 이수경(지역유산연구원장). 272개소를 조사하였는데 위치, 규모, 마을 유래, 현황, 구전 등을 정리하였다. 일부는 실측도를 넣었고 고지도 자료도 덧붙였다. 우물이 조사대상이지만 우물 자체가 생활사 현장이라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사정 때문에 외지인이 드나들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마을 어른들은 물론 면사무소나 이장님 등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셨다. 해남..

인지의 즐거움 2022.01.06

인지의 즐거움261 ; 유달산➆ - 목포 팔경 ‘유달기암(儒達奇巖)’, 목포인의 심상(心象)

인지의 즐거움261 ; 유달산➆ 목포 팔경 ‘유달기암(儒達奇巖)’, 목포인의 심상(心象) 김희태 1955년(단기 4288년) 7월 16일에 중수한 전말을 기록한 유선각의 기문(儒仙閣記). 첫머리에 유달산의 입지와 형상을 잘 그리고 있다. 유선각은 1932년 처음 세웠는데 당시 목포시 시민들의 공모로 지어진 이름이다. 목포인의 심상이 녹아들어간 명칭이다. 1955년 중수하고 지금 건물은 1973년에 중건한다. 호남의 유달산(儒達山)은 목포항의 주산(主山)이오, 그 빼어난 경치로 고금에 으뜸가는 산이다. 영산강과 다도해가 만나는 물목에 우뚝 서서 마치 장군이 깃발을 진열하고 창과 방패를 정렬하여 적의 무리를 기다리는 것 같고, 그 기세는 하늘이 안배하며 땅이 포설하고, 그 자태는 귀신이 수를 놓고 신령이 그..

인지의 즐거움 2021.12.24

인지의 즐거움260 ; 유달산➅ - 朝鮮에 몇군데 風光, 저물녁의 유달산 一景-1937년 5월 7일 유달산을 바라본 야나기 무네요시-

인지의 즐거움260 ; 유달산➅ 朝鮮에 몇군데 風光, 저녁무렵의 유달산 一景 -1937년 5월 7일 유달산을 바라본 야나기 무네요시- 김희태 1937년 5월,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3~1961)가 유달산을 바라보며 탄미의 글을 남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1937년 5월 48세 때 우리나라 여행을 한다. 5월 2일 부산으로 도착하여 여수, 순천, 담양, 곡성, 광주를 거쳐 5월 7일 오후 목포 유달산을 본다. 다음날까지 목포에 머물다가 광주, 이리, 전주, 임실, 운봉, 남원을 거쳐 5월 12일 서울로 간다. 이듬해 3월 『공예(工藝)』82호[日本民藝協會]에 “전라기행(全羅紀行)”을 기고한다. 1937년 5월 7일 저물녁 야나기 무네요시가 본 유달산 경관이다. 저녁 햇빛을 받은 儒達..

인지의 즐거움 2021.12.24

인지의 즐거움259 ; 유달산➄ - 유달산(儒達山) - 운동가, 문학작품, 회사명, 학교명으로

인지의 즐거움259 ; 유달산➄ 유달산(儒達山) - 운동가, 문학작품, 회사명, 학교명으로 김희태 1920년 5월에는 목포청년회에서는 운동회를 개최하는데 주악과 운동가를 고창하는 가운데 20여종의 경기가 진행된다. 운동가 가사에 “儒達山의 굳은 골격 威儀 嚴하고”라 하여 유달산이 목포의 상징으로 불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5권) 理想 높고 용감스런 우리 靑年아 오날이 우리들의 活動할 때 일세 온 世界의 우승권을 목표 삼아 大潤步와 大進取로 活動해 보세 활동하세 굳은 맘으로 활동하세 끝끝내까지 儒達山의 굳은 골격 威儀 嚴하고 榮山江의 맑은 源流 活氣 動하네 장쾌한 노리터에 심신수련코 鵬程萬里 저너머로 웅비해 보세 근현대 시기 유달산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록을 몇 ..

인지의 즐거움 2021.12.23

인지의 즐거움258 ; 유달산➃ - 유달산의 여러 표기들 , 楡達山, 靈達山, 諭達山, 輸達山, 儒山, 達山

인지의 즐거움258 ; 유달산➃ 유달산의 여러 표기들 , 楡達山, 靈達山, 諭達山, 輸達山, 儒山, 達山 김희태 유달산은 1448년 ‘유달산(鍮達山)’으로 처음 기록이 나온 이래 1454년 ‘유달이(鍮達伊)’로도 표기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유달산(儒達山)’은 1899년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후 기록이나 구전되는 내용을 보면 ‘楡達山’, ‘靈達山’, ‘諭達山’, ‘輸達山’ 등이 나온다. ‘유달산(楡達山)’은『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권19 여지고7, 1903∼1908)에 “(해남) 옥천산의 한 기슭은…, 일성봉으로부터 서북쪽으로 등산의 포구에 이르러, 동북쪽으로 유달산(楡達山)을 사강(沙江, 영산강 이칭)의 남쪽에서 바라본다.[玉泉山一麓西 至金剛山…自日星西北 至登山之浦東北 望楡達山於沙江之南…]”라 ..

인지의 즐거움 2021.12.23

인지의 즐거움257 ; 유달산➂ - 1899년 기록에서 보이는 ‘儒達山’

인지의 즐거움257 ; 유달산➂ 1899년 기록에서 보이는 ‘儒達山’ 김희태 유달산의 현재 표기는 ‘儒達山’이다. 한자의 표기나 뜻에서 보듯이 유학(儒學), 유도(儒道)를 진작시켜 유학의 가르침에 이르도록 하려는 데서 온 이름이라 알려진다. 그 유래나 연원에 대해서 조선 시기의 기록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번 조사를 하면서 1899년 8월 24일 기록을 확인하였다. 지도까지 함께 있는 자료이다. 이 자료는 로국(露國)에 토지를 팔려고 하는 일본인에 대한 신문기사에 관한 건을 보고한 문서로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13권 七. 木浦高下島買收書類)에 나온다. 발신인은 재목포 영사(在木浦 領事) 삼천계사랑(森川季四郞), 수신인은 재경성 특명전권공사(在京城 特命全權公使) 임권조(林權助)이다..

인지의 즐거움 2021.12.23

인지의 즐거움256 ; 유달산➁ - 1454년, 유달산의 또 다른 이름 ‘鍮達伊’와 봉수

인지의 즐거움256 ; 유달산➁ 1454년, 유달산의 또 다른 이름 ‘鍮達伊’와 봉수 김희태 호남정맥의 끝맺음, 영산강이 바다와 입지 여건은 봉수(烽燧, 烽火)라는 국가 관방 시설이 유달산에 설치되면서 바로 연결된다. 『세종실록』 권151, 지리지(1454년) 전라도 무안현조에는 ‘유달이(鍮達伊)’ 봉화가 나온다. 유달산 봉수와 관련하여 최초 기록은 ‘유달이(鍮達伊)’인데 유달산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다음 기록을 보자. “봉화가 2곳이니 유달이(鍮達伊)가 [무안]현의 남쪽에 있고, [남쪽으로 영광 황원(黃原)에 응하고, 북쪽으로 나주(羅州) 군산(群山)에 응한다.] 고림(高林)이 [무안]현의 서쪽에 있다. [북쪽으로 함평(咸平) 땅 옹산(甕山)에 응한다.] (烽火二處, 鍮達伊在縣南, [南準靈光 黃原..

인지의 즐거움 2021.12.23

인지의 즐거움255 ; 유달산➀ - 1448년, 유달산의 최초 기록 ‘鍮達山’

인지의 즐거움255 ; 유달산➀ 1448년, 유달산의 최초 기록 ‘鍮達山’ 김희태 목포의 상징 ‘유달산(儒達山)’ 언제부터 어떻게 썼을까? 그렇게 쓴 뜻은 있을까. 산 이름 표기가 바뀌기도 했을까. 유달산의 역사와 기록유산에 대해서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유달산의 최초 기록은 ‘유달산(鍮達山)’이라는 명칭으로 조선 초기 기록에서 확인된다. 조선왕조 역사를 기록한 관찬 정사로 대한민국 국보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보인다. 이 책의 『세종실록』세종 30년(1448년) 8월 27일(경진)조에 의정부에서 당시 외적을 막을 병선(兵船)을 건조하는 자재인 소나무를 확보할 계책을 임금께 상신하면서 소나무가 잘되는 전국의 산과 곶(串)을 열거하는데 ‘유달산(鍮達山)’이 나온다. 다음..

인지의 즐거움 2021.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