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366

인지의 즐거움252 - 무안의 대봉감과 함평 대굴포의 김충수 의병 격전 옛터 안내판

인지의 즐거움252 무안의 대봉감과 함평 대굴포의 김충수 의병 격전 옛터 안내판 김희태 대봉감이 한 상자 택배로 왔다. 이래도 되나 싶기는 하지만, 그 어르신의 정성을 받아 들이고 있다. 무안에서 온 감인데 함평과 연관이 있다. 우선 대봉감과 연관하여 무안이나 함평의 토산물과는 관련이 있을까 찾아보았다. 함평의 토산으로 감[柿]이 올라 있다. 함평군 토산조. 1481년(성종 12)에 간행하고 1530년(중종 25)에 신증본이 나온, 왕명으로 간행 된 관찬 지지이다. 무안 토산으로는 올라 있지 않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함평의 토산으로 540년전 국가 기록에 나오는 감. 풍토가 비슷한지라 무안의 대봉감도 역사성이 깃들었을 것 같다. “감 [柿] ”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말하려는 것은 역사인물과 유적현장에..

인지의 즐거움 2021.11.12

인지의 즐거움251 - 나는 함평(咸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신영호의 <함평 문화유산 탐구>-

인지의 즐거움251 나는 함평(咸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신영호의 - 김희태 신영호의 (향지사). “나는 함평(咸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오랜만에 들추어 훑어 본다. 1997년 발간이니 훌쩍 25년 세월이다. 세속의 인연이 다한지라, 몇 줄이라도 그에 대해 무언가 남겨야 하지 않을까라는 “부채감”이 늘 있었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 머리글을 읽다 보니 다시 덧댈 것 없이 그대로 소개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책 머리에 신영호/1997 함평에서 낳고 자랐지만 고향 함평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란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상매체와 인쇄매체의 발달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고 사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즈음에 과연 자신이 낳고 자란 탯자..

인지의 즐거움 2021.11.11

인지의 즐거움250 - 무위사 선각대사 형미스님 출신지, ‘武州 固安人’으로 판독, 양무군에 속한 固安縣[일명 同安], 현 해남

인지의 즐거움250 무위사 선각대사 형미스님 출신지, ‘武州 固安人’으로 판독 -양무군에 속한 固安縣[일명 同安], 현 해남 ; 탑비 원문, 탁본문, 금석집첩 기록 정밀 판독 김희태·정선종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보물 제507호, 그 주인공 형미스님의 출신지가 “무주 고안인(武州 固安人)”으로 판독되었다. 고안은 고안현(固安縣)으로 지금의 해남 마산면과 계곡면에 일원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고을 이름이다. 백제 때 고서이현(古西伊縣)인데 경덕왕 때 고안[固安, 일명 同安]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는 죽산현(竹山縣)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 해남현에 합해졌다. 지금까지 선각대사의 출신지는 대부분 “무주(武州)”로 표기하고, 경우에 따라 “무주[현 광주광역시]”로 설명을 덧대어 왔다. 비문 원문의 판독은 ..

인지의 즐거움 2021.10.17

인지의 즐거움249 - 항일 역사를 간직한 소안도를 지켜라-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인지의 즐거움249 항일 역사를 간직한 소안도를 지켜라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김희태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1월에 건립되어 2008년 10월까지 등재의 기능을 수행했다. 일본이 조선의 각종 생산물 수탈을 시작하던 시기에 소안도와 추자도 사이를 항해하는 일본 군함과 상선의 항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해상항로의 등대시설물이다. 2006년 12월에 해양수산부 등대문화유산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이때는 대한제국기 항일의병의 활동이, 내륙에서 이어지는 탄압과 일본군의 공격에 의해 여러 지역으로 피신과 분산이 이어지면서 북으로는 간도지역, 서쪽으로는 중국의 상해 등으로 진출한데 반하여 남쪽으로는 도서지방으로 연결되어 도서민들과 연합한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던 시기이..

인지의 즐거움 2021.08.31

인지의 즐거움248 - 107년 전 여름의 강강술래 현장, 1914년 6월 18일 진도-사진을 통해 읽어 보는 향토민속경관-

인지의 즐거움248 107년 전 여름의 강강술래 현장, 1914년 6월 18일 진도-사진을 통해 읽어 보는 향토민속경관- 김희태 기와집이 뒤로 보이는 마당에서 하는 강강술래.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강강술래 사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총독부 시절의 유리건판 사진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한 것이다. 사진 크기는 16.4cm, 세로 11.9cm이다.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있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1870~1953)가 조사한 자료이다.  자세히 보니 왼쪽에 글씨가 보이는데 촬영일자와 장소, 명칭이다. 거꾸로 되어 있어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 막연히 1914년 또는 1915년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컴퓨터에서 사진 이미지를 띄우고 180도 회전(반전)을 하니 뚜렷하게 읽을 ..

인지의 즐거움 2021.08.11

인지의 즐거움247 - 당산나무를 돌면서 강강수~울래, 1938년 5월 장흥 원도리-83년전 사진을 통해 읽어 보는 마을 변천사-

인지의 즐거움247 당산나무를 돌며 강강수~울래, 1938년 5월 장흥 원도리 -83년전 사진을 통해 읽어 보는 마을 변천사- 김희태 1938년 송석하선생이 조사한 민속현장 1938년 5월에 찍은 민속현장을 찾았다. 2021년 8월 4일. 83년이 지난 현장. 장흥군 장흥읍 원도리 1구 원도마을. 그 사진속의 당산나무는 그대로 있었다. 주변은 변했고 건너에는 고층 아파트 숲이 들어섰지만 두 당산나무는 사진속의 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저 사진의 설명을 찾아 보았다. 1938년 7월 12일자 조선일보에 실려 있다. 민속학자 송석하선생의 글. 당시 ‘향토문화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전국의 역사 현장과 민속풍물에 대한 조사 탐방 기획물을 연재 했는데, 여섯편의 장흥 기사 가운데 다섯 ..

인지의 즐거움 2021.08.11

인지의 즐거움246 - 동학농민혁명 광주 대접주 전수길(全秀吉)장군, 후손을 찾습니다

인지의 즐거움246 동학농민혁명 광주 대접주 전수길(全秀吉)장군, 후손을 찾습니다 김희태 동학농민혁명!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 인내천, 평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통되는 시대정신이라 하겠다. 광주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얼마나 될까. 지도자는 어떤 분이었을까. 오래전 자료를 뒤적이다가 보긴 했었는데 묵혀두었다가 다시 살펴보았다. 동학농민혁명 광주 대접주 전수길(全秀吉) 장군. 이렇게 이름하여도 될 듯싶다. 광주의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기록은 드러난 게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이미 알려진 자료에 기록이 있는데도 지나쳐 버린 것도 있다. 그걸 다시 추켜 든 것이다. 문서 제목은 『전라도 각읍 소착동도 급 소획즙물 병록 성책(全羅道各邑所捉東徒數爻及所獲汁物幷錄成冊』. 이 문서는 규장각(奎17189)에 있다. 이..

인지의 즐거움 2021.08.09

인지의 즐거움245 - 선암사와 대흥사, 세계인의 유산이 되다, 2018.07.02

인지의 즐거움245 선암사와 대흥사, 세계인의 유산이 되다, 2018.07.02 김희태 7~9세기 창건 이후 지속된 종합승원 순천 선암사와 해남 대흥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바레인, 2018. 6.24~7.04)에서 등재된 에 든 것. “천년고찰”이 남도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되었다. 는 전남 2개 사찰과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7개소. 7~9세기까지의 분명한 창건시기, 현재까지 신앙, 수행, 생활이 온전하게 유지된 종합승원, 유․무형의 문화적 전통 지속, 주불전의 원지형이 유지되며 주위 건물과 주변 환경과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가치 평가. 2011년에 첫발을 내딛고 2013년 잠정목록 등재..

인지의 즐거움 2021.07.21

인지의 즐거움244 - 성터 본래 모습 찾는 작업에 박수, 2003.01.18.- 김선기기자의 ‘전라도 성터이야기’

인지의 즐거움244 성터 본래 모습 찾는 작업에 박수, 2003.01.18., 광주타임스 -김선기기자의 ‘전라도 성터이야기’ 연재에 부치는 글- 김희태 성곽은 전근대 사회에서 방어기능과 행정기능을 겸한 관방유적으로 중요성이 있으며, 축조된 지형(산성, 평지성), 재료(석성, 토성, 토석혼축), 기능(행정성, 군사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국방, 행정, 생활유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고대부터 수많은 성곽을 쌓아 왔는데, 조선시대 초기의 인물인 양성지(1415~1482)는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지적한 바도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국가에서 편찬한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현재의 전남 지역에 48개소가 나타난다. 그런데 1986년에 전남도에서 간행한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성터 ..

인지의 즐거움 2021.07.21

인지의 즐거움243 - 사적을 옥돌에 새겨 없어지지 않기를, 화엄사 중건사적비문, 1702

인지의 즐거움243 사적을 옥돌에 새겨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를, 화엄사 중건사적비문, 1702 김희태 큰 절에는 으레 사적비가 있기 마련이다. 전남 지역의 주요 사찰의 사적비를 보아도 그렇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에서 탁본 조사한 사적비 등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하여 특별전(2020.6~8)을 한 바 있다. 그 목록이다. 백련사는 고려시대의 귀부에 조영한 것이다. 백양사 기적비는 1926년 건립하였다. 화엄사는 조선시대나 근대 건립 사적비는 확인되지 않고 2008년에 사적비(선교양종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비명)를 건립하였다. 번 탁본문 건립연대 찬자 서자 전서자 1 순천 송광사 사적비 1678(숙종 4) 趙宗著 李俣 李偘 2 강진 백련사 사적비 1681(숙종 7) 趙宗著 李俣 李偘 3 고흥 능가사 사적비 17..

인지의 즐거움 202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