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88
금성일기, 1364년~1489년, 1510년~1708년 기록 1923년 소실
김희태
『금성일기』 해제 차례(* 이번호 소개) 1358년~1481년 나주목사와 판관, 관인의 행적 기록 1424년 고쳐 기록하고 1489년 다시 개수 후대 나주 방문 관인들의 추가 기록, 1710년 이후 중수 *원래 1364년~1489년, 1510년~1708년 기록은 소실, 일본에 소재 1747년 『승정원일기』 개수에 참고한 나주의 『호장일기』 조선시대 기록이나 자료를 통해서 본 『금성일기』 58인의 나주 목사, 46인의 나주목 판관의 행적 *인명, 관직, 지역 등을 종합적으로 연계해 활용되기를 |
원래의 『금성일기』에는 언제까지 기록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알아 보자. 자료를 통해서 보면 『금성일기』 는 1364년(고려 공민왕 13 갑진)~1489년(조선 성종 20 기유), 1510년(중종 5)~1708년(숙종 34) 사이의 기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성일기』는 원래 교토대(東京大)에 2종의 필사본이 있었다. 이들 필사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1935년에 전간공작(前間恭作, 마에마 교사쿠, 1868~1942)이 『광사(廣史)』와 『휘총(彙總)』에 실린 두 가지 본을 처음 소개하였다.
『광사(廣史)』는 200책, 『휘총(彙叢)』은 15책으로 된 야사총서이다. 이 두 총서류는 『총사(叢史)』(50책)와 『설하(說海)』(59책)와 함께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었다. 이들 일실본 야사총서 4종의 수집 경위와 전사본(轉寫本)에 대해서는 정우봉의 글(「사라진 야사총서의 복원 -광사(廣史)』와 『총사(叢史)』의 수집과 전사(轉寫)를 중심으로-」, 2024)이 참고가 된다
『광사』 제2집에 수록되었던 『금성일기』는 6권이었다. 1, 2권은 1364년(고려 공민왕 13 갑진)~1489년(조선 성종 20 기유), 3~6권은 1510년(중종 5)~1708년(숙종 34) 사이 일기이다.
이 내용은 1935년 전간공작(前間恭作)이 소개( 「野史の叢書中卷帙き廣史(上)」-白山黑水文庫收藏朝鮮本所見-)하였다. 이 글은 국역하여 소개(前間恭作(成宅慶 譯), 「白山黑水文庫 收藏朝鮮本에 對한 管見(上)-野史의 叢書가운데 卷帙이 가장 많은 廣史를 中心으로) 된바 있다.
『휘총』 제1책과 제2책에 수록되었던 『금성일기』는 상하 2권이었는데, 『광사(廣史)』 본의 3~6권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광사』와 『휘총』에 실려 전해 오던 『금성일기』는 백산흑수문고(白山黑水文庫)본의 하나로 도쿄대학[東京大學]에 옮겨졌다. 그런데 1923년 9월의 관동대지진으로 불에 타 버렸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문서 가운데 今西龍(이마니시 류, 1875~1932)의 사적해제(史籍解題) 모음(생산 연도 : 1910~1911)에 『휘총(彙總)』 제1책과 제2책에 실려 있는 『금성일기(錦城日記)』(관리번호 L002-004-002)에 대한 해제가 있다. 1508년(중종 3 무진, 正德 3)~1708년(숙종 34 무자, 康熙 47) 사이 201년간 기사인데 1511년(신미), 1512년(임신) 2년이 누락되었다고 하였다.
『금성일기』가 실린 『광사』와 『휘총』이 관동대지진을 소실된 이후 1960년대 후반에 전천효삼(田川孝三)이 교토대학(京都大學)도서관 가와이문고[河洽文庫]에 소장된 『설총(說總)』 에 1358년(공민왕 7)~1481년(성종 12) 사이의 『금성일기』가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하여 1969년에 이를 소개했다.
『설총(說總)』은 필사본으로 불분권(不分卷) 16책인데 서지사항은 ‘四周雙邊 半郭 20.1×13.7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 29.2×18.7cm’이다. 16책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설총』은 원래 100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2 조야기문(朝野記聞) 상·하(徐文重 찬)
3 동각잡기(東閣雜記)(李廷馨 찬)
4 금성일기(錦城日記)
5 야사초본(野史初本)(李植 찬)
6 경연일기(經筵日記)
7 계사일록(癸已日錄)(尹卓然 찬)·섭란사적(涉亂事迹)(姜沆 찬)
8 효빈잡기(效顰雜記)(高尙顔 찬)·곡운잡록(谷雲雜錄)(金壽恒 찬)·퇴우만록(退憂漫錄)(金壽興 찬)
9-10 이상국일기(李相國日記) 상·하
11 응천일록(凝川日錄)
12 심관록(瀋館錄)
13 연중강계(筵中講啓)(朴世采 찬)
14 수필록(隨筆錄)(朴世采 찬)
15 정암잡기(正庵雜記)(李顯益 찬)·석실어록(石室語錄)(尹宣擧 찬)
16 삼연잡록(三淵雜錄)(金昌翕 찬)
『금성일기』는 책4에 있다. 전천효삼(田川孝三)은 『금성일기』 본문 내용을 『고려사』 및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정리하였다. 그리고 연표형식으로 표로 정리하였다.
<표> 야사총서류의 『금성일기』 수록 내용
야사총서 | 『금성일기』 | 비고 | |||||
『광사(廣史)』 |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6권 | 東京大 (1923년 소실) |
1364년(공민왕 13)~1489년(성종 20) | 1510년(중종 5)~1708년(숙종 34) | ||||||
『휘총(彙總)』 | × | 上 | 下 | ||||
1510년(중종 5)~1708년(숙종 34) | |||||||
제1책 | 제2책 | 조선총독부박물관문서 | |||||
1508년(중종 3)~1708년(숙종 34) | |||||||
『설총(說總)』 | 1358년(공민왕 7)~1481년(성종 12) | 京都大 |
가와이문고[河洽文庫] 소장 『설총(說總)』에는 「嘉林白氏之章」, 「永嘉金○信」, 「繡山」의 장서인 3과가 찍혀 있다.

[가와이문고 <금성일기>에는 일본 전래 이전 으로 보이는 장서인 「嘉林白氏之章」, 「永嘉金○信」, 「繡山」 3과와 京都帝國大學圖書印 1과, 그리고 1918.12.16 등록인이 있다. 繡山 永嘉(안동)金○信- 嘉林白氏之章 - 京都帝國大學으로 소장처가 변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嘉林白氏之章은 서적상 한남서림 백두용(白斗鏞, 1872~1935)의 장서인이다.]
‘嘉林白氏之章’은 20세기 초 서적상 백두용(白斗鏞, 1872~1935)의 장서인이다. 백두용은 고서 매매 서점과 출판사였던 한남서림(翰南書林)의 주인이었다. 『설총』은 국내 전존본이 남아 있지 않은데, 가와이문고본은 백두용이 한남서림을 통해 하합홍민(河合弘民, 가와이 히로타미, 1872~1918)에게 넘겨졌던 것으로 보인다.(정우봉 논문)
하합홍민(河合弘民)은 1907년부터 1915년까지 조선에 체재하면서 조선고서간행회, 조선연구회 등 여러 조선연구단체에 참여하고, 조선총독부의 사업에도 관여하여 관습조사, 도서 해제작업에 참여하였다. 장서가로도 일본인 사회에 알려져 있었다.(박양신 논문)
1919년에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 류, 1875~1932)의 주선으로 교토대학도서관에서 하합홍민(河合弘民) 유족에게 『설총』을 포함하여 793부 2,160책을 구입하여 가와이문고[河合文庫]를 설치하였다.(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논문)
가와이문고 본 『금성일기』에 찍혀 있는 소장인에 “京都帝國大學圖書之印”과 “193660, 大正7.12.16”의 연기가 있어 1918년 12월 16일자로 京都帝國大學(현 京都大學) 도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지모토 유키오(「가와이문고(河洽文庫) 개관」)는 『京都大學附屬図書館六十年史』(1961)를 인용하여 1919년에 교토대도서관에서 구입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고, 京都大学貴重資料デジタルア―カイブ(디지털아카이브)의 河合文庫 설명에도 1919년으로 나온다.
그런데 『금성일기』가 실린 『설총』의 소장인은 ‘1918.12.27.’이다, 또한, 장서인 가운데 「永嘉金○信」, 「繡山」은 백두용 소장 이전의 소장자 장서인으로 보인다. ‘永嘉’는 ‘安東’의 군명(郡名)‘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이로 보아 백두용 소장 이전의 소장자는 안동김씨 ’繡山 金○信‘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금성일기』는 원래 1358년(공민왕 7)~1489년(성종 20) 사이 132년, 1508년(중종 3)~1708년(숙종 34) 사이 200년 등 모두 322년간의 기록이 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1358년(공민왕 7)~1481년(성종 12) 사이 124년의 기록이 남아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나주문화원, 『역주 금성일기』-선조들의 대기록-, 2024.
박양신, 「가와이히로타미(河合弘民)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행적과 조선 연구」, 『역사교육』 139, 2016.
前間恭作, 「野史の叢書中卷帙き廣史(上)」-白山黑水文庫收藏朝鮮本所見-, 『朝鮮之圖書館』 第四卷·第四號, 朝鮮圖書館硏究會, 1935.01.
前間恭作(成宅慶 譯), 「白山黑水文庫 收藏朝鮮本에 對한 管見(上)-野史의 叢書가운데 卷帙이 가장 많은 廣史를 中心으로」(上), 『國會圖書館』 第四卷 第九號, 1967.09.
田川孝三, 「『錦城日記』について-附 錦城日記年表-」, 『朝鮮学報』53, 앞 논문. 107~156쪽.
정우봉, 「일본 교토대학 가와이문고 소장 野史叢書의 학술적 가치」, 『민족문화연구』8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9, 11~33쪽.
정우봉,「사라진 야사총서의 복원 -광사(廣史)』와 『총사(叢史)』의 수집과 전사(轉寫)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문화연구』99, 2024., 15~46쪽.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가와이문고(河洽文庫) 개관」, 『민족문화연구』 제83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19, 143~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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