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92
삼굴과 석탑의 성산, 봉산이자 국제를 지낸 역사문화명산, 금골산
김희태
진도 금골산(金骨山, 해발 202.2m)은 개골산(皆骨山)이라는 다른 이름이 말해주듯 산 전체가 기암 절벽으로 형성돼 "진도의 금강"이라고 불리우는 명산이다.
금골산에는 세개의 굴[三窟]이 있고 오층석탑(보물[제 529호])과 산 중턱의 굴에 조선시대의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제110호])이 음각되어 있으며 해언사(해원사)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산림 관리와 연계되는 봉산(封山) 지역이었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초기(1502년) 이주(李胄)가 지은 『금골산록(金骨山錄)』과 같은 기록유산이 있고,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서도 진도의 대표적 명산으로 기록하고 있는 역사문화 명산이다. 그 특징을 간추려 본다.
첫째, 진도 금골산은 금골(金骨)로 회자되고 있는 명산(名山)이다. 금골산은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금골산록』에는 “중봉이 가장 높고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바라보면 옥부용(玉芙蓉)과 같다.”고 하였다.
둘째, 진도 금골산은 삼굴, 마애여래좌상, 오층석탑이 있는 불교 성산(聖山)이다. 금골산 입구에 고려시대의 오층석탑(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이 있다. 이 탑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을 모방한 백제 양식을 채택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금골산 오층탑은 해언사[해원사]탑이라고도 하는데, 『금골산록』에는 해원사(海院寺) 사명이 나온다.
금골산 9부 능선의 암벽면에는 조선초기의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망헌 이주(忘軒 李冑, 1468∼1504)가 조선초기에 지은 『금골산록』에 “산 위에는 세 개의 석굴이 있는데, 맨 왼쪽 굴 북쪽 벽에 진도군수 유호지가 주관하여 조성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고 하였다. 유호지가 진도군수로 재임한 것은 1469년~1471년 사이임으로 조선초기 불상으로 조성 편년이 확인되는 기년명 불상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셋째, 진도 금골산은 진도군수가 제관이 되어 기우제를 올린 국제산(國祭山)이다. 전통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왕명으로 기우제를 시행하라는 명이 내리기 때문에, 왕권을 대행하는 지방관이 기우제를 지낸 것은 일종의 국제를 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진도군수 이구징(李耉徵, 1609~1688)이 지은 금골산 기우제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구징이 진도군수에 부임 무렵에 전국적으로 기근과 가뭄이 있어 임금이 대신들을 인견하여 논의하면서 녹봉이나 세미를 견감하고 추쇄와 세초(歲抄)를 정지한다. 특히 양남 지방의 세초를 정지하였다. 세초란 각 읍(邑)과 진(鎭)에서는 사망하거나 도망간 군병, 연로하여 군역을 면제해 줄 군병 등이 있으면 이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다른 군병으로 대신 충원하였는데, 이처럼 탈이 있는 군병을 뽑아 명단을 작성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회사정으로 진도군수로 부임한 이구징은 금골산 등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고, 그 기우제의 제문을 짓게 된 것이다. 당시 진도 관내에서는 금골산, 여귀산, 범굴산, 망적산, 첨찰산, 지력산 6개소에서 기우제를 올렸고, 기우제문은 2종이 이구징의 문집에 실려 있다.
넷째, 진도 금골산은 국가에서 특별 관리한 봉산(封山)이었다. 진도지역의 봉산은 금골산, 여귀산 등 11개소이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나오는 전라도의 봉산은 당시 56개 군현 가운데 19개 군현에 봉산 142처가 나오며 강진 26처, 영광 14처, 흥양 12처에 이어 진도는 무장과 함께 11처로서 봉산이 많은 편에 든다.

동여도의 금골산 부근도 - 三窟과 封山 표기가 보인다. 삼굴은 세곳의 사찰 암자, 봉산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나무숲이다.
금골산은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소재한다. 덕병리와 잇닿아 있고 군내면 녹진리와도 연결된다. 진도 군내에서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54개군 361기가 조사된 바 있다. 금골산이 있는 군내면은 5개소 35기가 확인되었다.
금골산 지역은 삼국시대[백제] 들어 도산현(徒山縣)에 속하였다.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는 도산현은 뇌산군(牢山郡)으로 승격하여 같은 섬 안의 첨탐현을 거느리는 주군이 되었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에는 금골산이 있던 지역의 뇌산군은 가흥군(嘉興郡)으로 바뀌는데 진도 권역 중심 고을을 된다.
이같은 역사배경에서 금골산 오층석탑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350년(충정왕 2)에는 왜구의 침략으로 진도 고을의 읍치와 주민들이 내륙 지금의 영암군 시종면 일원을로 옮기게 된다. 1409년(태종 9)에 해남 삼촌리로 옮겨 해남과 합해지면서 해진군(海珍郡)이 되고, 1437년(세종 19)에 해남과 분리되어 87년만에 진도로 돌아 온다. 지금의 진도읍에 읍치를 두게 된다. 금골산을 포함한 지역은 군내면에 속하게 된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금골산 지역은 진도현 관할을 받았고, 군내면에 속해 국제 기우제를 지낸 명산이자 봉산(封山)으로 지정된 국가 보호림 지구가 되었다. 아울러 불교 성지로서, 이주는 『금골산록』을 남긴다. 『금골산록』은 『동문선』(1478년)에 오르게 되고 금골산의 형승과 절경, 성지가 알려지게 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진도현 산천조에도 에도 실리게 된다.
망헌 이주는 1498년에 진도로 귀양을 오게 되어, 금골산의 삼굴(三窟) 가운데 상굴(上窟)에서 23일간 지낸다. 이주의 문집인 『망헌집』에는 금골산에서 읊은 여러 편의 시가 있다. 이주의 「금골산록」은 『속동문선』에 실릴 정도로 유산기로서 명문이다. 그리고 ‘야좌(夜坐, 밤에 앉아서)’, ‘즉사 효요체(卽事效拗體)’ 등은 『속동문선』(제10권)에도 실렸다. 그만큼 금골산을 읊은 제영은 문학성을 평가받은 것이다.
밤에 앉아서[夜坐]【금골산작(金骨山作)】
음풍은 쌀쌀하고 비는 임림할 제 陰風慘慘雨淋淋(음풍참참우임림)
바다 기운 메를 잇고 돌구멍은 깊었어라 海氣連山石竇深(해기연산석두심)
이날 밤 부생이 흰 머리만 남았는데 此夜浮生餘白首(차야부생여백수)
등불 켜고 때로 다시 옛 마음을 돌보았네 點燈時復顧初心(점등시부고초심)
소재 노수신(1515~1590)은 진도에 유배되어 을묘왜란 때 내륙으로 피난을 가기도 하는데, 「옥천이천언(沃州二千言) 」 시에 금골산을 읊은 구절이 보인다. 지촌 이희조(1655~1724), 문곡 김수항(1629~1689), 삼연 김창흡(1653~1722), 삼연 김창흡(1653~1722) 등이 시를 남긴다. 김수항은 진도로 유배와서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금골산록』 등본(謄本)이 있었으나 가져오지 못해 보내 달라고 한다. 그만큼 금골산은 선비들 사이에서 알려졌고 「금골산록」도 읽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진도 금골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 진도군 산천조의 신증편에 처음 올라 간다. 원래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에 편찬되는데 진도현 산천조에 금골산이 실려 있지 않은데, 이주(李冑)의 진도 유배를 계기로 작성된 「금골산록」을 통하여 알려지고, 『속동문선』(1518년)에 등재된 이후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르게 되면서 신증편에 기록이 된 것이다.
그리고 반계 유형원(1622~1673)이 편찬한 『동국여지지』(1656년) 전라도 진도군 산천조, 관찬지리지인 『여지도서』(1760년) 전라도 진도군 산천조, 성해응(1760~1839)이 편찬한 산수기(山水記) 『동국명산기』, 『여도비지(輿圖備志)』 전라도 진도군 산천조, 『대동지지』(1866년) 전라도 진도 산수조, 『진도군읍지』 산천조, 『여재촬요(輿載撮要)』 전라도 진도부 산천조, 『전라남도진도군읍지』 (1899년) 산천조 등에 금골산 기록이 있다. 그리고 고지도에도 다양하게 기록이 나온다.
진도 금골산은 기암괴석, 수십길 절벽, 층층바위로 형성된 산으로 뛰어난 학술성이 있다. 진도의 입로로서 명량이 내려다 보이는 입지적 특징이 있다. 여러 곳의 절터가 있고 고려시대의 석탑(보물)과 조선시대의 마애불상 등 불교유산, 조선 초기(1502년) 이주(李胄)가 지은 『금골산록』과 같은 기록유산, 기우제 국제 기록과 봉산(封山) 국가 관리 기록, 조선시기 각종 지도에서도 진도의 대표적 명산으로 기록하고 있는 등 역사문화 명산이다.

금골산 전경(사진 마동욱)


대동여지도의 금골산 부근도 - 三窟 표기가 보인다

보물 오층석탑과 금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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