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82 - 수령 500여년의 강진 송월리 청룡동 동백나무숲

향토학인 2022. 8. 29. 01:48

인지의 즐거움282

 

수령 500여년의 강진 송월리 청룡동 동백나무숲

 

김희태

 

강진 성전면 송월리 신안동 청룡동에 수령이 500년은 됨직한 동백나무숲이 있다. 성전면 송월리 392번지 일대이다. 신안마을 북쪽의 구릉성 평지형 계곡 끝자락에 군락지로 위치하는데 풍양조씨(상장군파, 감사공파-추원파) 실인 추원당(追遠堂)을 에워싸는 형태이다.

 

이 동백나무숲은 2021년과 2022년에 조사하여 강진군에서 전라남도를 거쳐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식물) 우수 잠재자원 추천을 한 바 있다. 문화재청에서 매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검토 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천연기념물 지정 절차를 거친다. 강진에는 백련사 동백나무숲이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로 분류된다. 성전 청룡동 동백나무숲은 문화역사기념물-민속으로 분류된다. 주민들의 생활사와 관련되는 것이다. 인문학적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한 자료를 소개한다.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Linnaeus)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소교목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옹진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북한지가 천연기념무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冬柏) 외에 산다(山茶) 또는 산다수(山茶樹)만다라수(曼茶羅樹)라 적고 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꽃은 2월부터 4월 사이에 절반 정도 벌어져 붉게 피고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지고 길이 35cm로서 수술과도 합쳐지며, 꽃밥은 황색이다. 910월에 결실하는 삭과(蒴果)는 둥글고 지름이 34cm이고 3()에는 종자가 들어 있다. 꽃은 우아하고 잎은 광택이 있어 관상수로 많이 심어진다.

 

송월리 청룡동 동백나무숲은 모두 21그루가 군락하고 있는데 세 곳으로 분포되어 있고 가장 큰 나무는 흉고 2.3~2.4미터에 이른다. 이처럼 큰 동백나무는 국내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기존에 지정된 천연기념물 나주 금사정 동백나무 등과 비교해도 수령도 뒤지지 않고 수세도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동백나무로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리고 흉고가 1.5미터~1.9미터에 이르는 동백나무도 12그루이다.

 

이 동백나무숲의 식생과 관련하여 마을에 세거하는 성씨인 풍양조씨(豊壤趙氏) 집안의 인물들이 식재했다고 전해 온다. 성전면 송월리(松月里)는 신안(新安)마을, 대월(大月)마을, 월송(月松)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풍양조씨는 고려조에 강진(성전면 도림리 일대)으로 입향하였고 신안 마을에는 1500년대에 입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월마을에 세거를 하던 풍양조씨의 조사순(趙士舜) 손자인 조환규(趙還圭)가 임실현감을 지낸 조황(趙瑝)과 수원백씨 사이에서 태어나 1500년대에 신안마을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강진군 마을사-성전면편->, 172, 183)

 

이때 정착한 조환규가 보호를 위해 집앞에 동백나무를 식재하였는데, 가장 큰 흉고 2.3~2.4미터의 동백나무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조환규의 아들 조문(趙雯)이 동백나무를 심으면서 아버지의 산소가 보이는 북쪽은 심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조문이 심은 동백나무가 흉고 1.5미터~1.9미터에 이르는 12그루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처음 정착하여 살았다는 종가는 터만 남아 있지만, 후손들이 재실을 지어 지금도 조환규의 묘소 제사를 지내면서 동백나무숲을 관리하고 있다. 수령이 앞서는 13그루 외에 8그루는 처음 심은 나무와 연관하여 자연식생으로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신안마을의 풍양조씨가에는 조환규(趙還圭)가 마을에 정착할 무렵의 1500년대 산소[墳墓]와 재실(齋室)의 위전답(位田畓) 등과 관련된 고문서가 전해 온다.

 

이 문서는 1540(중종 35 庚子, 嘉靖 19)에 작성된 명문(明文)이다. 이 명문은 조황(趙瑝)의 아들 5형제(還圭, 錫圭, 世圭, 全圭, 完圭)가 합심하여 조상을 숭배하는데 필요한 분묘와 재실을 관리하기 위한 전답과 노비 등을 나누어 잘 관리하자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1990년에 조사하면서 1535년으로 표기하였다. 당시 소장은 신안마을 조영연이었다.(<강진군 마을사-성전면편->, 188) 현지 확인 결과 이 명문 문서는 지금도 신안마을 풍양조씨가에 전해 오고 있으며 작성 연대는 1540으로 확인되었다. 현 소장자는 1990년 조사 당시 소장자의 아들 조준선이다.

 

이 명문 문서는 嘉靖拾玖年庚子十月初四日同生兄弟中完議明文[가정 십구년 경자 시월 초사일 동생형제중 완의 명문])이라 하여 1540년에 형제들이 합의하여 작성한 명문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조선분묘(祖先墳墓)와 재실(齋室) 위전답(位田畓)을 장자손(長子孫)뿐만 아니라 형제가 합심해서 관리하자는 내용이다. 관련 재산은 비() 1(18), () 1(16)5개소의 답() 35두락지(斗落只, 마지기)이다.

 

이 문서에 나오는 조환규는 신안마을 입향자이면서 큰 동백나무를 식재한 인물로 알려져 온다. 신안 마을의 입향과 정착, 종중 재산의 관리와 보호 등에 있어 귀중한 문서이다. 이를 통해 신안 마을 정착한 풍양조씨 가문은 세거 사족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고, 이같은 재산을 관리하는 방안으로 집터자리의 보호를 위하여 동백나무를 식재했다고 전한다.

 

강진 송월리 청룡동 동백나무숲은 수령이 오래되었고 수세나 생장상태가 좋아 기존에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과 비교하여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마을에 세거하는 풍양조씨가의 인물들과 연결되는 식재 일화가 전해지고 있고, 입향 식재 시기와 연관성이 있다고 보이는 1540년의 고문서도 확인되어 인공림 조성형태로서 경관이나 풍수, 유가 사상 등 인문적 의미도 커 역사적, 학술적, 생태학적, 경관적 가치가 있다.

송월리 청룡동 동백나무숲 조사(2021.09.01, 김희태, 한성욱, 조진선)

 

1540년 송월리 풍양조씨가 조환규(趙還圭) 형제 명문(明文) - 조환규는 종가를 보호하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하며,  이문서는 선조의 분묘(墳墓)와 재실(齋室) 위전답(位田畓)을 형제가 합생해서 관리하자는 내용이다.

고문서 조사 - 소유자 조준선, 제보자 조진선 전남대교수(오른쪽)(202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