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49 - 태풍이 지난다, 문화재를 살려라. 도림사 보물 구출작전, 2006

향토학인 2016. 6. 3. 02:38

인지의 즐거움049

  (20060712)

 

태풍이 지난다, 문화재를 살려라

곡성 도림사, 보물 1341호 괘불탱 등 문화재 구출작전

 

김희태

 

   태풍.....매년 치르는 전쟁이다. 자연과 인간의 대응이라지만, 현장에서는 항상 불안하다. 예보를 하지만, 자연의 큰 힘은 인간에게는 항상 버거운 상대이다. 2006년의 에위니아 태풍(2006.07.10)도 많은 피해를 남겼다. 그 가운데에서 곡성 도림사의 문화재 피해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재난이 닥치자 모두가 준비를 한 듯 잘 대응했다. 도림사(주지 정은)에서는 바로 문화재 관할 관청인 곡성군에 알렸고, 소방관서 등에도 알렸다. 곡성군에서는 바로 전남도와 문화재청에 알렸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문화재담당 조종주계장과 담당 직원 이정주씨였다. 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얼마 전에 말끔히 단장을 끝낸 보광전이 뒤틀릴 정도로 산사태로 인해 밀려든 토사는 건물 안에 넘치고 있었다. 삼성각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응진당은 흙더미에 반쯤 잠겨 버렸다. 사람들이 다닌 곳이라 인명피해에 대한 염려도 컸지만, 다행히 무사하였다. 산사태가 나기 한시간전까지 기도를 하던 신도들이 있었는데, 주지스님의 권유로 요사체로 옮겼기 때문이다.

 

  산사태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문화재이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괘불탱과 목조불상이 보광전에 있었던 것이다. 괘불탱은 1683년에 제작되어 17세기의 대표적인 괘불로 가치가 인정되어 2002년에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 1341호로 지정된 귀중한 불화이다. 더욱이 옷감에 채색된 그림으로서 물이나 진흙탕 속에 들어가면 훼손은 급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목조삼존불상 또한 1600년대에 만들어진 부처님상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조형성이 우수하여 2005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되었다. 나무로 된 문화재 역시 물에 잠겨버리면 훼손되기 십상이다.

 

  이제 남은 것은 ‘문화재를 살려라’이다. 하나의 작전처럼 일이 진행되었다. 소방관서에서는 건물 안전성에 문제제기하면서 인명피해를 염려하였지만, 우리 전통건축의 우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보광전 건물도 더 이상 붕괴위험이 없고 산사태도 진행이 멈춘 것으로 판단되어 문화재 구출작전에 들어간 것이었다.

 

  우선 불상을 옆 건물인 명부전으로 대피시켰다. 흙더미속에서 꺼낸 삼존불상 가운데 보살상의 머리부분에 균열이 있었지만, 더 이상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또한 각종 불경을 찍어냈던 경판도 옮겼다.

 

  이제 괘불탱이 문제였다. 그러나 물에 잠기고 흙탕물은 넘치고... 괘불함과 불단과 불상 좌대, 흙더미가 범벅이 된 보광전 내부에서 꺼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문화재를 다뤄본 경험자들이 필요하여 문화재 수리 기술자들에게 연락을 해 두었는데, 마침 도착해 있었다. 중장비까지 함께 동원하여 순천에서 온 것이다. 성도건설의 심우승)표, 유신건설의 양한철대표, 삼진건축 이봉수소장 등이었다. 문화재 훼손 소식에 광주에서, 그리고 순천에 달려 온 것이다.

 

  불상과 경판을 차례대로 옮겼다. 신도와 주민들도 동참했다. 괘불을 꺼내기 시작했다. 괘불의 크기만 7.7m 이니 괘불함 크기는 8m였다. 이 괘불함의 일부분이 밀려든 토사의 압력으로 통째 굽어져 버렸다. 내부의 괘불도 일부 손상이 있었다. 참여한 모든 이들이 지혜를 모으고 합세하여 보광전에서 꺼 낼 수 있었다. 동원된 장비도 큰 힘이 되었다.

 

  다행히 비는 멈추고 있었다. 괘불 보호를 위해서 받침나무를 대고 부직포를 들러 쌓아 운반에 따른 응급 안전조치를 하고 절을 떠났다. 8m에 이르는 거대한 괘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던 차 곡성읍내 곡성군 농업기술센터의 회의실로 옮겨 모셨다.

 

  문화재청 김창균 문화재전문위원과 동산문화재과 박찬정선생은 대전에서, 전남도청의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과 정경성 학예연구사는 무안에서 달려 왔다. 그리고 도림사 현장과 이전된 괘불도 현지에서 점검하였다. 곡성군수도 현장에 나섰다.

 

  점심 때인 1시에 산사태가 났었는데, 문화재 구출작전과 점검이 끝나고 나니 오후 7시 30분이었다. 모두가 준비된 듯 힘을 합한 결과였다. 사찰과 행정관서, 그리고 문화재 수리 경험 기술자들의 협조가 초기 피해 외에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고 문화재를 살려 낸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자산인 ‘문화재 보호’라는 대명제 앞에 ‘너와 나’가 따로 없었다.

 

  도림사 주지 정은스님도 이제는 평상심을 찾은 것 같았다.

 

   [처음에 산사태를 당했을 때만해도 눈앞이 캄캄했는데, 우선 신도들을 돌아보고 곡성군청에 알렸고, 나중에 자료로 활용될지 몰라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귀중한 문화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자기일 같이 참여해 주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더욱 문화재 관리에 힘쓰겠습니다.]

 

  원래 곡성의 도림사는 도인(道人)들이 숲을 이룬다 하여 도림사(道林寺)라 했다고 한다. 그 이름의 영험이 증명된 것 같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도인(道人?)들이 이번에 도림사로 몰려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2006.7.12)

 

 피해전경(정면 건물이 보물 괘불탱 보관 보광전)

피해전경(전파된 삼성각, 지붕부분은 응진당)

 보광전 내부(삼존 불상 등)

보광전 법당 내부(매몰된 괘불탱과 구출작업)

 응진당(지장전) 내부

보광전 내부(괘불탱

괘불탱 훼손부분(괘불함이 부분 절단되면서 훼손)

목조삼조불 중 보살상 1구 훼손 부분(머리부분 균열)

괘불탱 긴급 대피(문화재수리업체등 협조)

괘불탱 대피 보관(군 농업 기술센터) 및 확인

 

* 사진 : 곡성군, 김희태, 정경성

* 당시 정리했던 이 글을 2008년 4월 공무원 문예대전 수필분야에 낸바 있다.

* 곡성의 토박이 문화재 지킴이 조종주 계장은 그 뒤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불철주야 곡성 문화,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다하다가 홀연히 이승의 끈을 놓으셨다.(20160219)  분명 그는 어디서든 '문화지기'로 세상을 관조하고 계실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