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44 - 1936년 남평에 화재-막걸리로 불을 꺼, 1931년 예배당 화재, 1932년 怪火

향토학인 2024. 2. 17. 04:29

인지의 즐거움344

 

1936년 남평에 화재-막걸리로 불을 꺼, 1931년 예배당 화재, 1932怪火

기록을 통해 보는 재난(災難)3-

김희태

 

1936년에는 남평에서 화재가 났는데 날이 가물어 물이 부족하자 막걸리로 불을 껐다는 기사가 보인다. ‘가물에 물이 없어, 이러케 불잡아’, ‘삼호소실에 손해 이천원의 부제가 있다.

 

불은 221일 오후8시 남평리 67번지 김씨잡 나무가리에서 났다. 집과 벼 70여석, 마굿간의 소까지 탔다. 이웃 잡화상도 탔고, 소방조원이 노력하였지만 우물이 고갈하여 어찌하지 못하고 5시간만에 전소하였다. 이웃 주조회사에서는 탁주를 소방펌프에 넣어 연소를 방지하는 등 대혼잡이 있었다. 부엌에서 발화하였고, 손해는 약 2천원이며 화재보험에는 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1936년 남평에 화재, 막걸리로 불을 꺼. 삼호소실에 손해 이천원 / 동아 19360225

 

이 막걸리 회사는 남평주조장인 듯 싶다. 남평주조장은 조선 탁주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1932515일 남평주조주식회사(南坪酒造株式會社, 자본금10,000, 업종 양조업)로 남평리 164번지에 설립되었다.

 

191691일부터 시행된 주세령(조선총독부제령 제2, 1916.7.25. 제정)에 따라 우리의 전통가양주도 제조장 1개소마다 면허를 받아야 하고 주세를 부과하였다. 당시 주세령에서는 조선주조선의 재래 방법에 의하여 제조한 탁주·약주 및 소주를 말한다.”고 규정하였다. 주류는 양조주, 증류주, 재제주로 3종으로 구분하였다. 양조주는 청주·탁주·약주·맥주류로서 기타 발효액으로 제조한 술을 말한다.

 

이같은 규정에 따라 각지에 주조장이 들어서는데, 남평주조장도 1932년에 설립된 것이다. 1938년 박씨가에서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광복 뒤 19491021일 주세법(법률 제60, 1949.10.21 제정)이 시행되면서 일제강점기의 주세령은 폐지되었지만, 부칙에 의해 기존의 주류제조 면허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주류판매업도 정부의 면허를 받도록 규정하되, 다만 단서 조항으로 주류제조자가 그 제조장에서 하는 판매업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는 규정(주세법 제8)을 두었다. 이 조항에 따라 남평주조장에서 주류판매도 함께 하였다.

 

남평주조장 설립 이후 각종 자료와 남평 향토자료를 많이 소장(소장 윤태석)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되어 관리하고 있으며 201951~ 731일 사이 조사를 실시하여 소장자료 목록집을 발간하였다.

 

정리한 자료는 총 1,2872,316점이다. 자료의 시기는 근·현대이며, 6개의 대분류로 분류하였다. 도면/지도류: 2222, 도서류: 3738, 문서류: 1,0931,678, 사진/필름류: 97529, 신문/잡지류: 33, 유물류: 3546점이다. 6개의 대분류로 분류한 자료는 내용의 특성상 다시 21개의 중분류로 분류하였다. 남평주조장 건물은 2011726일에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27호로 지정되었다.

 

 

1931년 나주 예배당 화재, 1932怪火, 1933년 잠실 화재

 

1931년에는 나주 예배당에서 화재가 나고 1932년에는 괴화(怪火) 기사가 보인다. 1933년에는 산포면의 잠실(蠶室)에서 불이 난다. 1931년 예배당은 서문정 역원주택에서 불이 났는데 630일이다. 주인이 출타한 틈에 79세의 노파가 자기 방에 불을 때다가 났다.

羅州 禮拜堂 역원주택 火災 - 서문정/동아 19310703
나주에 怪火, 원인은 몰라-동강면 양지리/ 동아일보 1932.10.28.
蠶室에 발화 – 산포 / 동아 19330615

 

그런데 서문정 예배당은 지금의 서내동 예배당을 이른다. 1908년에 건립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배유지 선교사의 서한과 선행연구 등을 통해,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가 1896년에 나주에 전남 선교부를 설치하였고 1897년 선교부가 이전해가자 그곳에 학교 예배당이 설립되어 집회를 계속하면서 선교사들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다가 광주 선교부를 설립하면서 매각하고 1904년 또는 1905년에 서문정 교회(현 나주교회)가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김관영소장 논문)

 

1932년의 괴화는 동강면 양지리 박씨가에서 1017일 밤 중에 후원 산나무(生木), 대문간, 행랑에서 불을 끄면 연이어 불이 났는데, 3일 뒤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소관 주재 경관이 잠복까지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참고

조미은고정서박선미김희태, 나주 남평주조장 소장자료 학술조사, 나주시한국학호남진흥원, 2019.

김관영, 나주지역 개신교 전래경위(經緯)에 관한 고찰전남 선교부와 학교 예배당을 중심으로―」, 호남학74,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23., 161-19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