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42 - 1932년 영산포 화재, 3호 전소 - 삼영리 17번지-기록을 통해 보는 재난(災難)1-

향토학인 2024. 2. 17. 03:49

인지의 즐거움342

 

1932년 영산포 화재, 3호 전소 - 삼영리 17번지

-기록을 통해 보는 재난(災難)1-

 

김희태

 

기록을 통해 보는 재난(災難)’을 주제로 나주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나주학회와 조선대학교 재난인문학사업단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재난(災難)으로 알아보는 나주 깊이 알기” 4회차 강의(2024.02.05.)였다. 몇 자료를 찾아 가면서 강의안 원고를 정리하고 사진을 곁들여 PPT자료를 만들어 보았다. 의례 그렇듯이 시간이 다 되 가도록 또 몰두했다. 강의 안의 첫머리에 몇줄 소회를 적고 찾은 자료를 엮어 나갔다. 그 소회와 정리한 제목을 제시한다. 강의 자료로 제공한 원고를 일부 보완하여 나누어 소개한다.

 

1932년 영산포 화재, 3호 전소 - 삼영리 17번지

1929, 나주 신청 화재 본정 29번지 박판석 집 접방

속칭 신청과 나주 국악 명인 박판석

1931년 나주 예배당, 1932怪火, 1933년 잠실 화재

1936년 남평에 화재, 막걸리로 불을 꺼

1920~1930년대의 광주 시가 화재

나주 동문-남평현, 영산포-영암 소지포, 큰 늪이 되다

영산교(榮山橋), 1년에 한 번씩 수리 신증동국여지승람

장마철이면 떠내려가 다리도 사람도 길도 끊겨 단교(斷橋)”

방재림, 남평의 십리송, 나주의 외목성, 내목성

비를 내려 주소서, 금성산과 남해사의 기우제, 1630

산신이시여 비를 내려 주소서, 진도 금골산 기우문, 1668

영산강 홍수의 형상화, 박화성 소설 <洪水前後>

 

재난(災難)”을 주제로 한 강좌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준비가 되려나하면서도 예의 그렇듯이 좀 어렵겠다라는 말을 못하고 말았다. ‘저어했던 것은 무엇 보다도 원고를 작성하고 자료를 찾아 강좌 자료를 준비하는 일에, 시간이 다 되도록 몰두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전에 했던 이것 저것 있으니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때 그때 마다 매달리곤 한다. ‘재난이라 하니 기록이나 자료에서 보았던 일반적인 것들을 얼마쯤 간추리면 될 듯도 하다 싶었는데, 계획서를 받고 보니 이거야말로 재난이다.

 

주제가 나주 깊이 알기이고 취지에 풍부한 역사현장 여건을 활용’, ‘가치 높은 향토의 인문학을 제공한다는 것, 나주 관련 재난인 셈이었다. 옇든 준비는 해야하니, 여러 재난에 대한 기록, 나주 관련 자료, 기존의 해석에 대한 확장 등을 통해 살펴보겠다. 이에 더하여 자료를 찾고 읽어 나가는 나름의 과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해석 확장이란, ‘재난의 내용과 함께 그 기록 속의 자료를 통해 지역의 현장이나 자료와 꿰맞추어 보고, 지금까지의 이해의 시각을 조금 더 넓혀 보자는 것이다.

 

1932년 영산포 화재, 3호 전소 - 삼영리 17번지

 

처음 찾아 본 자료가 1932영산포화재기사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에서 영산포화재로 검색하니, 1932년과 1934년 동아일보 기사 2건이었다. 그 무렵 영산포 자료를 보던 중이라 영산포’, 화재 발생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던 차라 화재를 연결해 본 것이다.

 

榮山浦火災기사는 <동아일보> 19320501일자 44단 기사이다. 다음 내용이다.

영산포 화재, 3호 전소-1932.04.26./동아일보 19320501

 

영산포 화재-02.28/동아일보 19340303

 

榮山浦火災 三戶全燒 / <동아일보> 19320501일자

[영산포] 전남 라주군 영산면 삼영리(羅州郡榮山面山三榮里) 一十七번지 전소례(全小禮)의 집에는 지난 二十六일 오전 시경에 불이나서 그 이웃 류진석(柳晉錫) 조병률(曹炳律)의 집까지 련소되어 대소동을 이르켜 동 시 반경에 겨우 진화되엇스나 원인은 전긔 전소례의 집 굴둑에서 발화한 듯 하다하며 손해는 방금 조사중이라 한다.

 

화재는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다. 1932년 영산포 화재는 영산면 삼영리 一十七번지 전소례(全小禮), 류진석(柳晉錫), 조병률(曹炳律) 집까지 함께 모두 타 버렸다. 426일 새벽 1시에서 4시반, 집의 굴뚝에서 발화한 듯 하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1934년 기사는 영산면 산정리 이규채, 31동 행랑과 말 한마리 소사, 손해 80원 가량. 개인 집안의 뜻하지 않은 재난, 어쩔 수 없이 이어진 이웃 집의 전소, 전 재산이라 할 말()이 타 죽어 버린 피해. 그야말로 망연자실했을 것이고 풍비박산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풍비박산(風飛雹散)’이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살펴야겠지만.

 

저기 살았던 그 주인들은 언제부터 살았을까. 집은 어떤 형태였을까.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옆집이 탔는데 그들 관계는 어쨌을까. 사후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재난주제인데, ‘재난인문학이라 하니 이런 점들이 궁금하다. 혹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없을까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멈칫거리기를 며칠째. 거기에 궁금증이 나면 끌텅을 파보는 일상인지라 더더욱 더디다.

 

예를 들면 이렇다. 1932년 기사는 영산면 삼영리 17번지로 나온다. 지금으로 치면 어디쯤일까. 지도를 검색해 보는데 얼른 위치가 잡히지 않는다. 기사상 一十七인지 一七七인지 모호하여 17번지, 177번지, 117-1번지, 157번지, 197번지, 168번지 등을 검색한다. 어느 위치(삼영동 117-1번지, 강터 부근)는 주택이 있을만한 자리가 아니다. 어느 번지는 학교(삼영동 17)*가 들어서 있다. 1934년 기사는 번지가 없으니 위치 찾기는 지나친다.

 

*삼영동 17번지(도로명 주소 영강길 32)는 영산중학교와 영산고등학교가 있다. 영산중학교는 처음에 영산포중학교로 설립 인가(1952.09.28.), 영산고등학교는 영산포상업고등학교로 설립 인가(1966.11.17.) 받았다.(https://yeongsan.hs.jne.kr ; https://ysan.ms.jne.kr)

 

다음은 영산면(榮山面)과 삼영리(三榮里), 산정리(山亭里)를 찾아 본다. 영산면(榮山面)양곡면(良谷面)에서 1917년에 개칭한 면명이다. 양곡면은 1914년에 지량면(知良面)과 상곡면(上谷面)이 합해진 지명이다. 1929년에는 영산면에 나신면(羅新面)의 삼영리, 안창리, 삼도리 일부(영산강 이남 지역)가 합해진다. 삼영리는 1914년에 신촌면(新村面)의 내영리(內榮里) 남부리(南夫里) 택촌(澤村)이 합해진 지명이다. 1932년 기사의 3호 전소가 된 삼영리는 조선시대 말기에는 전라도 나주목 신촌면, 나주부 나주군 신촌면에 속했다가 1914년에 전라남도 나주군 나신면, 1929년 나주군 영산면에 속한다. 산정리는 1914년에 지량면(知良面) 용산리(龍山里) 율정리(栗丁里)가 합해져 양곡면에 속한 지명이다.

 

당시의 재난(화재)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기 있을까 하여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를 검색해 보기도 하였다. 1920~30년대의 나주 지역 화재 등에 대한 사항은 채록 자료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향토지(시사, 면지, 마을유래지 등)나 구전 자료를 통한 확인도 필요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는 설화, 민요, 무가, 현대구전설화, 근현대구전민요, 무경, 기타로 나누어 지역별, 제보자별, 유형분류별로 검색할 수 있다. 본문, 제목, 제보자, 조사년도로 구분하여 검색할 수 있는데, 제목 나주로는 12, 본문 나주로는 604, 본문 영산포로는 14건이 검색된다. 본문으로 검색할 경우에는 지명 나주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을 거쳐야 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1단계(2008.11~2011.10) 사업은 기본자료로 민요 8,101, 근현대 구전민요 722, 설화 5,447, 현대 구전설화 353, 무가 169, 기타 145건을 탑재하였다. 부가자료는 제보자정보 3,145, 조사지역정보 948, 사진자료 4,648, 비디오자료 123건이다. 원래의 [한국구비문학대계] 85(부록 3권 포함)인데,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전국 60여 시군의 4,000여명 이상의 구술-구연자를 대상으로 (15,107), (6,187), 무가(376), 기타(21) 등의 구비문학 자료를 수집 정리 출간했다. 2005년에는 증편이 발간되었다. 이경엽한미옥송기태임세경,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6-15)-전라남도 나주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 역락, 2015.

 

참고

목포대학교박물관나주시 편, 羅州近代百年史 : 신문자료집성(1887-1960),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