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39
사진으로 본 영암군 근현대사1 -기관, 읍면, 문화-
김희태
<사진으로 본 영암 근현대사>를 영암군에서 2021년에 발간하였다.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분류와 감수, 해설하는데 지혜를 모은 적이 있다. 전체 개설이 필요하다 해 원고를 작성하였으나, 발간 일정상 다 싣지 못하고 첫장과 마지막장만 간추려서 편집후기 형식으로 실었다. 당시 작성한 개설 원고를 나누어 소개한다.
사진에 담긴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다
“어제도 역사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시절은 그 어느 것, 그 어떤 때이던 돌아보면 역사자료가 된다는 말일게다. 특히 사진은 바로 볼 수 있고, 비교할 수 있고, 회상할 수 있기에 그 “어제”의 자료로서 역사가치가 있다 크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진 한 장이 중요한 역사문화현장을 고증하고 복원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사진은 근현대사 자료로서 중요하다.
영암군에서는 이같은 사진자료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수집과 정리에 관심을 기울였다. 1991년에는 그 시점까지 영암군청에 보관중이던 홍보기록사진을 정리하여 분류하였다. 당시 영암군청의 기록과 홍보를 맡고 있던 전판성(1957~2016)과 강평기가 의기투합한 것이다.
필름을 찾고 모으는 작업에서부터, 인화한 사진을 토대로 일시와 장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적어 나갔다. 그리고 오래된 영암 사진이 있다하면 달려가서 모으거나 “접사” 방식의 재촬영을 하였다. 그래서 조금씩 모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기간을 정해 놓은 게 아니고, 일상업무가 있었기에 일의 추진은 생각보다는 더디었다.
이렇게 시작한 “영암 사진 자료 모으기 작업”은 “사진으로 본 영암 근현대사” 발간 사업 계획이 수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전판성 선생의 유족은 그가 평생 담아온 영암 사진 자료를 조건없이 내 주었다. 처음 함께 시작하고 지금도 기록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강평기가 분류하면서 사진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냈고, 편집을 하였다. 청내 실과에 통지를 하여 옛 사진을 모아 달라 하였고, 읍면과 문화원, 향교, 학교, 기관 등지에도 통문을 보냈다. 소식을 들은 주민은 물론 출향민이나 영암에 연고가 있던 분들도 동참해 주었다. 멀리 경상도에서도 사진을 보내 왔다.
문제는 사진 속의 정보를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홍보체육과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문화관광과도 지혜를 모아 주었다. 지역의 원로를 비롯한 몇 분을 자문위원으로 모셨다. 김한남 영암문화원장, 최남호 영암향교 전교, 문배근 영암신문대표, 이봉인 영암군 체육회장, 그리고 김희태 전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이 분류와 해설작업에 지혜를 모아 주었다. 분류와 편집은 강평기가 맡았고, 곽경애 홍보팀장이 행정지원을, 송태갑 주무관이 문화 관련 사항을 검토해 주었다. 감수는 김한남 원장과 김희태가 하였다. 개설이나 사진 설명은 디지털영암문화대전(yeongam.grandculture.net)이나 각종 향토지와 학술조사 자료, 각급 기관단체의 누리집 등을 참고하였다.
9개 분야로 나누고 시대순으로 편제하다
“사진으로 본 영암 근현대사”는 몇 번의 논의를 거쳐 ①기관, ②읍면, ③문화, ④교육, ⑤생활, ⑥산업, ⑦개발, ⑧체육, ⑨재해 등 9개 분야로 구분하였다. 분류의 방안은 시기별, 지역별, 직능별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는데, 사진의 소장처와 출처, 사진의 주된 내용을 따라 일정 분량이 되고 설명이 가능한 부분을 포함하여 분류한 것이다.
기관 - 영암군의 치정과 교육, 치안 등의 중심
첫 번째의 <기관> 분야는, 영암군청, 영암군의회, 영암경찰서, 영암교육지원청, 세한대학교 등이다. 영암군의 치정과 교육, 치안 등의 중심이 된 기관이다.
기관의 역사, 특히 영암군청을 두 번째의 <읍면> 분야의 연혁 변천과 궤를 같이하면서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 사진은 1961년 10월 1일 실시된 군 자치제 관련 사진이다. 군청사는 단층 슬라브 건물이다. 1960년 내무과 산업과 등 2과 11면으로 구성되었던 조직은 1964년에 1실[공보실], 4과[내무과, 재무과 산업과, 건설과], 16계, 2사업소[보건소, 지도소], 11면에, 공무원 수는 82명으로 확대되었다. 군 자치제는 1961년 9월 1일 법률 제787호로 공포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에서 농촌의 기초 단체를 읍·면에서 군으로 개정하면서 실시되었다. 지방의회의 의결을 요하는 사항에 관하여 시·군은 도지사의 승인을 얻어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읍·면장은 군수가, 이장은 읍·면장이 임명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지방행정에 대한 주민참여와 주민자치의 길이 막히고 자기 기관 선임의 원칙이 배제됨으로써 독립세의 부과·징수, 재산의 소유·관리, 독자적인 예산·회계 등의 자주적 재정기능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지방자치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원래 읍면 자치제는 전쟁기이던 1951년 도입되어 1961년 폐지되었다.
단층 슬라브형 청사는 3층 현대식으로 지어 1981년 3월 31일에 준공식을 했다. 이 무렵 1실[공보실], 9과[내무·새마을·재무·농산·산림·식산·건설·민방위] 32계, 2사업소[보건소·지도소], 1읍 10면이었고 공무원 수는 182명이었다. 2021년 기준 1실 15과, 1의회, 2직속기관, 4사업소, 2읍 9면이고 공무원수는 군 585명, 읍·면 190명으로 모두 775명이다. 예산규모는 574,460백만원으로 일반회계 506,175백만원(88%), 특별회계 68,285백만원(12%)이다.
영암군의회는 1990년 12월 31일 법률 제4310호 「지방자치법」이 개정됨에 따라 1991년 3월 26일 시·군의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1991년 4월 15일 정수 11명으로 영암군의회가 개원하였다. 제1대 의회 의장은 전반기 김원정, 후반기 최철환·전종배였다. 영암군의회 현판식은 당시 영암군수(김광진, 1991.01.14~1993.01.17 재임)와 영암군의회의장(김원정, 1991.04.15~)이 참여했다. 2010년 제6대 영암군 의원 선거는 의원 수를 지역구 8명, 비례 대표 1명 등 9명으로 축소하여 실시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영암군 의회는 의회 운영 위원회, 자치 행정 위원회, 경제 건설 위원회 등 3개 상임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영암경찰서는 1946년 개청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트러스트 구조의 가건물을 임시청사로 사용했다. 가건물을 사용하던 1952년 신구서장 환송환영식은 8월 27일에 했는데 13대 서장 정의식과 14대 서장 구서칠이었고 발령은 8월 23일이었다. 1956년에 서남리에 청사를 지었고 1986년 영암읍 남문로 19 현 위치에 지었다. 본관 3층 별관 2층이며 서장 아래 청문감사관, 112치안종합상황실, 4과[경무·정보안보외사·수사·생활안전교통], 7계, 4팀, 1지구대[삼호], 5파출소[시종·신북·읍내·군외·학산], 6치안센터[대불·도포·금정·덕진·서호·미암] 체제이다.
영암교육청은, 1952년 5월 24일 교육자치제 출범에 따라 6월 4일 영암교육구청으로 발족했다. 초대 교육장은 유민홍이고 1960년 12월 3일 청사를 신축했다. 1998년 12,355㎡ 부지에 연면적 2,039㎡ 청사를 신축하여 11월 13일 이전했다. 관할학교는 유치원 16[공립15·사립1], 중학교 12[공립10·사립2], 고등학교 6[공립5·사립1], 특수학교 2개소이다. 폐지학교는 10개소이다. 교육장 아래 2과[교육지원·행정지원], 1센터[학교지원], 10팀 체제이다.
영암문화원은 1965년 「지방문화사업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사단법인으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영암문화원이 있던 건물에는 영암향토재건중학교·재건국민운동 영암군위원회·대한상이군경회 전남지회·영암군분회사무실이 있었다.
농업기술센터는 농업 관련 기술의 보급·농민교육 및 지도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다. 1957년 12월 「농사교도법」에 따라 1958년 3월 1일 영암읍 역리에서 영암교도소로 출범하였다. 1962년 「농촌진흥법」에 따라 영암읍 춘양리 525번지에 영암군농촌지도소로 이전하였다. 1990년 12월 1일 농촌진흥원 산하에서 영암군수 산하 지방직으로 하고 농업기술센터로 개칭하였다. 2003년 3월 1일 이전하였다. 2과[농촌지원·연구개발] 7팀 체제이다.
세한대학교는 1994년 3월 10일 대불공과대학으로 개교하였다가 1996년 1월 9일 종합대학인 대불대학교로 승격했다. 2012년 5월 23일 세한대학교로 교명 변경인가를 받아 6월 18일부터 사용하였다. 대학본부는 영암과 당진에 있고 6개 학부[항공·경찰안전·IT·예술·건강보건·교양], 24개 학과가 있다.
영암향교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이다. 교육기능과 함께 공자와 동국 18현 등 현유를 배향하고 석전대제를 모신다. 영암향교는 1420년(세종 2)에 중건한 것으로 전하며 4칸의 명륜당, 3칸의 대성전, 그리고 양사재·내삼문·외삼문·전사청이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이다. 영암도서관은 1994년 12월 14일 개관하였다가 2006년 10월 20일 신축하여 이전 개관하였다.
읍면 - 1읍 10개면, 공간과 경관, 시가, 변화, 행사
두 번째의 <읍면> 분야는, 영암읍, 삼호읍, 덕진면, 금정면, 신북면, 시종면, 도포면, 군서면, 서호면, 학산면, 미암면 등 1읍 10개면 순으로 하였다. 읍면사무소의 원위치 또는 현 위치 공간과 경관사진, 시가 사진, 중심 공간, 변화와 행사 등의 사진을 모았다.
영암군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여러 유적이 남아 있고 국보로 지정된 유물도 있다. 백제시대에는 월나군(月奈郡), 통일신라시대에는 영암군이라 한 이래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서남부의 중심고을이었다. 미암면과 학산면 일원에는 있던 백제의 고미현(古彌縣)은 통일신라때 곤미현(昆湄縣)이라 하였고, 금정면 일원이었던 아로곡현(阿老谷縣)은 통일신라때 야로현(野老縣)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낭주안남도호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영암군 경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 말기의 행정제도 개편을 살펴보아야 한다. 조선시대의 영암군은 8도제(道制)하의 전라도에 속했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해남의 북평면, 송지면, 옥천면도 영암 관할이었다. 시종면의 일부 지역은 진도현 명산면에 속했고, 금정면과 신북면은 나주목에 속했다.
1894년 갑오개혁에 따라 행정체제도 근대적으로 개편되는데 1895년 5월 1일 8도제(道制)는 폐지되고, 23부제(府制)가 되면서 8도제하의 전라도는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나뉘었다. 영암은 나주부 관할을 받았다. 1896년 8월 4일에는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道制)로 개편되는데, 종전의 8도 가운데 전라, 충청, 경상, 함경, 평안이 남도와 북도로 나눈다. 전라남도가 처음 들어서며 영암은 전라남도에 속한다.
1906년 9월 24일에는 월경처(越境處) 등을 정리하는 행정구역 개편하면서 지금의 신북면과 금정면 지역의 나주군의 종남면(終南面), 비음면(非音面), 금마면(金磨面), 원정면(元井面)이 편입된다. 시종면에 있던 진도군 명산면(命山面)도 영암으로 편입된다. 해남 북평면과 송지면 지역인 송지시면(松旨始面), 송지종면(松旨終面), 북평시면(北平始面), 북평종면(北平終面), 옥천면(玉泉面)은 해남으로 넘겨준다. 월경처는 경계를 넘어서 다른 군현 안에 있는 지역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진도 명산면은 지금의 영암군 시종면 지역에 있었다. 그렇게 된 연유는 1350년 왜구가 침탈하자 진도군이 내륙으로 피난을 왔다가 수령이 집무하는 읍치(邑治)는 돌아가지만, 주민들은 이곳에 살면서 진도군 소속으로 세금이나 부역을 진도군에 냈던 것이다.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는데 현재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군시면(郡始面)과 군종면(郡終面)을 합해 영암면, 금마면(金磨面)과 원정면(元井面)을 합해 금정면(金井面), 비음면(非音面)과 북이종면(北二終面)을 합해 신북면(新北面), 북이시면(北二始面)과 명산면(命山面, 종남면(終南面)이 합해져 시종면(始終面), 서시면(西始面)과 서종면(西終面)을 합해 군서면(郡西面)이라 한다. 그리고 북일시면(北一始面), 북일종면(北一終面), 곤일시면(昆一始面), 곤일종면(昆一終面), 곤이시면(昆二始面)과 곤이종면(昆二終面)은 면 이름을 그대로 하여 영암군은 11면 121리를 관할한다.
1915년 4월 1일에는 영암군 곤이시면 신주산리, 원진리, 선산리를 해남군으로 넘겨준다. 1917년 9월 30일에는 무안군 압해면 나불리를 편입하고, 시종면 양호리를 무안군에 넘겨준다. 곤일종면을 삼호면(三湖面)으로 개칭한다. 1928년에는 곤일시면을 미암면(美岩面)으로, 1929년에는 북일시면을 덕진면(德津面)으로, 1930년 4월 1일에는 곤이종면을 서호면(西湖面)으로, 1932년에는 북일종면을 도포면(都浦面)으로, 곤이시면을 학산면(鶴山面)으로 개칭한다. 1973년 7월 1일에는 군서면 송평리를 영암면으로, 금정면 용산리를 신북면으로 편입한다. 1979년 5월 1일에는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된다. 2003년 5월 1일에는 삼호면이 삼호읍으로 승격된다.
현재의 영암군 행정편제는 2읍, 9면, 403 행정리, 121 법정리, 725 반이며 면적은 612.5㎢이다. 인구는 2020년 12월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27,827세대, 53,966명(남 27,595명, 여 26,104명)이다. 산업 구조는 고용인원 기준으로 1차 산업 30.6%, 2차 산업 40.5%, 3차 산업 28.9%이다.
읍면별 연혁은 영암읍의 해설 사례를 예시한다. 오늘날의 영암읍은 1979년에 영암면에서 승격하였다. 영암면은 1914년 4월 1일 군시면과 군종면을 합하면서 부르게 된 지명이다. 군시면의 23개마을·군종면의 44개마을은 15개리로 통폐합되었다. 1973년에 군서면 송평리를 편입하여 회문·교동·서남·동무·역·남풍·춘양·용흥·개신·송평·망호·대신·장암·농덕·학송·한대 16법정리, 41행정리, 114반이다.
문화 -
천년 고찰 도갑사, 왕인문화축제, 마한문화공원, 도기박물관
세 번째의 <문화> 분야는, 천년고찰 도갑사, 천황사,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문화축제, 도기박물관, 마한문화공원의 변화를 정리하였다.
도갑사는 신라말 도선(道詵)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고찰이다. 1456년(세조 2년) 신미(信眉)와 수미(守眉)가 중건하여 966칸에 달하는 당우가 들어섰다. 전란과 실화로 훼손되기도 하지만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변화상을 볼 수 있는 사진이 많다. 도갑사 해탈문은 국보로서 최고의 전각이다. 도선수미비는 보호각 건립 이전의 사진을 통하여 그 위용이 드러난다.
천황사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46년 중창되었다. 1953년 인법당, 1959년 칠성각을 조성하였다. 전남에서는 희귀한 목탑지가 조사되었다.
왕인박사유적지는 영암에 학문을 전한 왕인박사의 출생지이자 수학터 군서면 성기동 일원에 조성한 유적지이다. 1973년 왕인박사유적지 조사단 구성 뒤 왕인박사현창협의회가 창립되었다. 1976년 왕인박사유허비 제막식과 함께 유적지 정화사업 기공식을 가졌다. 1987년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된 뒤 매년 왕인춘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왕인문화축제는 매년 4월 초에 개최한다. 일본 학문의 시조로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한 선각자 왕인 박사의 업적을 조명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함이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왕인박사유적지 일대의 아름다운 벚꽃 길을 관광 자원으로 “군서 벚꽃 축제”를 개최하다가, 1997년부터는 왕인의 탄생을 기념하고 업적을 기리는 문화 축제로 진행하고 있다. 1997년 4월 9일~4월 13일에 개최된 영암 왕인 문화 축제는 왕인 박사 춘향대제·벚꽃 아가씨 선발 대회·왕인 학생 선발 대회·마당극·왕인 가요제 등 27종이다. 2012년에는 4개 부문 69종으로 메가 퍼레이드 ‘왕인 박사 일본 가오!’ 등 테마 기획 프로그램 21종, 기 체조 체험 등 참여 체험 프로그램 37종 등이다.
마한문화공원은 시종면 옥야리에 위치한다. 영산강 유역에 산재한 고분문화를 보여주면서 고대 마한문화의 체계적으로 이해를 돕는 영암의 대표적인 테마관광명소이다. 2003년 8월 마한문화공원 관광지 지정고시를 했고 2006년 6월 13일 준공식이 열렸다.
도기박물관은 국내 최초 고화도의 유약도기를 입힌 '구림도기'를 제작했던 국가 사적 제338호 구림리 도기가마터의 역사성을 토대로 전시와 교육 및 체험을 하고 도기 상품을 판매한다. 군서면 서구림리의 구림중학교를 매입해 1999년 10월 9일 영암도기문화센터를 개관하였다. 2008년 4월 신축하고 2009년 4월 영암도기박물관으로 등록(전남 제10호 제1종 전문박물관)하였다. 시설규모는 건축면적 3,027㎡에 3개 층의 전시실·공방·체험실·판매장·현관홀 등이다.
*영암군, <사진으로 본 영암군 근현대사>, 2021(원색인쇄, 415쪽)
영암경찰서(1952)
도갑사(1940년, 박재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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