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33 - 큰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는다. 1893년 9월 15일 봉양정사

향토학인 2017. 11. 13. 02:55

인지의 즐거움133

 

큰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는다[行不由徑]

-1893년 9월 15일 봉양정사, 오남장과 경회당-

 

김희태

  

계사년(1893년) 9월 15일 밤.

이젠 겨울에 접어 든 듯

몸이 움츠려 든다.

저녁 무렵 비가 약간 흩뿌렸다.

강진 수양리의 봉양정사.

  

낮에 이어 강습이 시작된다.

경회는 낮 강독에 참여치 못해

밤 강독 시간에야 다다랐다.

14명의 학인들과 나란히

자리 하면서 몸을 추스렸다.

   

위봉식의 태극도설 강독에 이어 경회 차례.

스승 오남장이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의

담대멸장(澹臺滅明) 조항을 짚어 준다.  

거기에 나오는 글

‘지름길이나 뒤안길로는 가지를 않는다[行不由徑]’.

  

내용인즉 공자가 제자 자유(子游)가 고을 수령이 되었을 때

“인재를 얻었느냐”고 묻자,

“담대 명멸이란 사람이 있는데,

좁은 지름길을 마다하며[行不由徑],

공무가 아니면[非公事] 제 방에 오지 않습니다[未嘗至於偃之室也].”

  

아! 정도(正道), 대로(大路)로구나.

경회는 문득 깨우친다.

그날 강독이 끝나고도 밤이 늦도록

오남장과 제자들은 토론한다.

유학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일상사도 말하고

작금의 시국도 당연히 말이 나왔다.

이방의 학문, 사당(邪黨)의 글들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

비도 그치고 보름달이 차 올라 사위는 휘영청.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서둘러 떠나는 사람들.

환갑을 앞둔 쉰 여섯의 스승 오남장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제자들에게 눈짓을 보낸다.

내년 3월 9일 강독 때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

  

열 네 살에 오남장을 뵙고 글을 배웠는데

대명동의 한천장사, 수양리의 봉양정사

오가기를 벌써 열일곱해.

해가 바뀌어 갑오년(1894) 3월 9일.

수양정사의 강독회.

   

위봉식, 나유영, 황명규, 김학식, 김인식 등

경회는 참예하지 못한다.

그러고 시세가 혼잡하고

더더욱 이학(異學)이 들끓어

여름에는 완도로 백운산으로 길을 떠난다.

  

그해 한 겨울 12월 24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하청봉 노인이 와서

오남장의 순절

비보를 전해 준다.

   

아! 작년 초겨울 강독이 마지막이라니.

올 3월 강독에 가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그리고 나에게 강독하도록 한

‘行不由徑’처럼 대도를 가셨구나.

예언이라도 하신 듯.

  

우리들의 갈 길도 그 길이리라!

   

강진의 근대학자로 명성을 날린

경회 김영근(1865~1934)과

조선말기에 유학자로 우뚝 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다가

동학에 맞서 순절한

스승 오남 김한섭(1838~1894).

  

몇몇 자료를 엮어

관계망을 서사(敍事)로 풀이 해 보았다.

말하자면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이를 실마리로 하여,

유학과 동학,

오남과 경회 세대의 시대상과 인물군상.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정학, 대로, 정도를 살펴 보자.

  

  

* 2014년 4월 어느 날, 김환균님이 오남·경회와 동학 관련 정리자료를 보내 오자,『한천정사강록』등을 보고 “서사(敍事)”로 꿰맞춰 보다.

* 글의 끝에 시대상과 인물군상(교유 연망)을 살펴 본다고 했으나 차일 피일 하다가, <경회 김영근의 도학사상과 문학세계>(강진, 2017.11.10) 학술대회를 지내면서 기억을 되살려 보다.

* 1893년 9월 15일은 음력. 양력 10월 16일.



<한천정사강록(寒泉精舍講錄)> 1893년(계사) 9월 15일 봉양정사 강회록.

경회 김영근 선생은 이날 낮 강회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야강(夜講)에 참여 한다. 아래 사진. 위봉식의 태극도설에 이어 논아 담대멸명장 강회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한천정사강록>은 오남 김한섭선생이 강진 대명동(성전면 대월리) 한천정사와과 수양리 봉양정사(신전면)에서 제자들과 강회를 한 기록이다. 1886년(고종 23) 3월 강진군 대구면의 정수사(淨水寺)에서 열린 2박 3일의 강회를 시작으로, 1894년(고종 31) 3월 강진군 신전면 봉양정사에서 열린 강회까지 모두 17차례의 강회가 기록되어 있다. 참석자 성명과 자, 본관, 거주지, 강회 내용이 보이는데 150명에 이른다. 근대기 인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다. 김영근선생은 열네살 때 부터 한천정사에서 오남에게 배웠는데, <한천정사강록>에는 6회의 강회 참여 기록이 있다.


대명동 한천정사 터를 찾은 후학들. 강진군 성전면 대월리. 2017.3.25. 김기홍님(전 장흥문화원장), 안동교님(조선대 고전번역원 전임연구교수),박민영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환균님(경회당 증손), 장안영님, 조일형님(고전번역팀), 김희태


경회 김영근의 도학사상과 문학세계 학술대회, 2017.11.10 강진 파머스마켓 대회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