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仁智)의 즐거움 따라001
20110914
17세기 고전용어, ‘농악(農樂)’을 만나다
김희태
유두절에 농악을 관람하다 流頭觀農樂
우뚝 선 한 깃발에 동풍이 휘몰아 불 때 匆旗一建颺東風
너른 들에 북 치며 색동옷 입고 너울너울 擊鼓郊原舞綵童
변방 일 이미 평안하고 농사철 빨라지니 邊事已平農事早
나랏님의 크나 큰 덕을 비로소 깨달았네 始覺吾君聖德鴻
1657년 일흔 여덟까지 살았던 전라도 장흥 선비 남파 안유신(安由愼, 1580~1657), 출사를 하긴 했지만 유배도 갔었고, 처사의 삶을 살았다. 그의 문집 <남파유고>( 연활자본, 1967년 간행)에 서경적인 느낌의 시가 많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띠는 한 단어, 농악(農樂)!
언제부터 '농악'이란 용어를 썼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세시 명절인 유두절! 그날 너른 들판에서 시화연풍(時和年豊)을 바라면서 기를 하나 우뚝 세우니 때마침 동풍이 휘몰아 기는 세차게 날린다. 색동옷차림의 무동이 북을 치며 바람을 따라가며 흥겨워 뛰논다.
돌이켜 보니 십대 소년시절에 만났던 임진왜란, 북녘 오랑캐가 몰아쳤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젠 다 지나고 국경은 이미 평정되었다. 그리고 농사철은 아직 조금 이르지만, 분명 시화연풍이리라.
돌아보니 나랏님의 크나큰 덕이라.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노라.
격고와 채동, 농악 풍물의 한 모습이다. 어디쯤이었을까? 교원(郊原)이라 했으니 너른 곳이기는 한데 향촌일까... 도회일까
가락은 웃녘이었을까? 연고지인 장흥이나 보성으로 치자면 호남 좌도굿, 아니 좌우도 경계지점이니 현란함과 잔가락 기교가 섞여 있지는 않았을까?
또 다른 생각 하나, 농기와 격고와 채동을 보는 사람들, 농사를 함께 하는 가족이나 동네분들도 있을 터. 그리고 이들을 부리는 나리들, 지주들, 마님들..
흥겨운 격고판이되 흥겹지만은 아닐터.
새경에 머슴에 소작에 얼키 설키,
그래도 오늘만은 휘모리 신나게.
그리고 돌아 보니 인간사, 세상사, 시대사가 주마등처럼...
그래도 농악과 함께 하는 흥겨움은 성군의 큰덕...
지금은 어떤가?
안유신의 남파유고 - 流頭觀農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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