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仁智)의 즐거움 따라 002
1240년, 나는 湖南의 마을들을 두루 다니고자 하나니
김희태
'호남(湖南)'이란 역사 용어, 언제부터일까.
고려 말의 광주출신 문관 탁광무(1330~1410)의 문집 경렴정집 권1 칠율, 경렴정편액(景濂亭扁額)의 시 첫 구절, 해동형승천호남(海東形勝擅湖南) 구절이 먼저였을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한국문집총간 6집 249쪽.)
목은 이색(1328~1396)의 회덕 미륵원 남루기에서 그 기원을 찾는 이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호남이란 용어를 썼음이 보인다.
1240년 추7월, 정명국사 천인(1205∼1248)은 천관산을 찾아 성적(聖迹)을 탐방한다. 서른 여섯 시절이다. 탑산의 주공 담조와 담일이 사적기를 부탁하자 천관산기를 짓는다. 동문선에 실린 명문이다.
천인은 백련사의 원묘국사 요세(圓妙國師 了世, 1163~1245)를 찾아가서 스님이 되었다. 수선사(修禪社)의 혜심(慧諶)으로부터 조계선(漕溪禪)의 요령을 습득하고 다시 백련사로 돌아와, 1232년(고종 19)에 『묘법연화경』을 염송하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만들었다. 백련사의 제2세가 되었다.
천관산을 탐승할 때 원상인(圓上人)이 척촉의 주장(柱杖)을 선물했던가 보다. 바위뿌리에 나 있는 한그루 척촉으로. 철쭉나무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 고마움에 사례하는 천인의 시가 동문선에 있다. 7언 20구이다. 그 가운데 한 구절.
원상인이 척촉의 주장을 선사함에 사례하여 / 謝圓上人惠躑躅柱杖
내가 행각하려는 것을 상인이 생각하고 / 上人念我欲行脚
그것을 내게 주니 어찌 이리 은근한고 / 持用惠我何殷勤
위험한 곳 올라갈 때 남은 힘이 있으니 / 登危陟險有餘力
언제나 너의 은혜 입는 것 진실로 알겠구나 / 信知造次承渠恩
너는 내 손에 떨어진 것을 한하지 말라 / 報渠莫厭落吾手
나는 호남의 마을들을 두루 다니고자 하나니 / 我行欲遍湖南村
* 출전 :『동문선』제6권 칠언고시(七言古詩)(한국고전번역원(http://db.itkc.or.kr)/한국고전종합DB/고전번역서)
천관산의 원상인이 천인국사의 운수행각에 벗하며 의지하라고, 아니 행각을 미리 알아 차리고 주장을 선물로 주니 그 은근함. 고마울 뿐 이라는 것.
그런데 나에게 온다고 한스러워 말라고 한다. 호남의 여러 마을들을 그 촉척 주장을 친구삼아 두루 다니면서 불법을 전수하고 민심을 살필지니. 민의 아픔을 보살피는 구도(求道), 구환(求患)의 길에 동행할 터이니. 철쭉꽃은 전라도의 약재로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약재조.
척촉의 주장으로 불법을 펴니 마음 다스림이요, 철쭉꽃은 약재로서 몸을 다스림이니. 안과 밖, 성과 속이 따로가 아니로구나. 호남의 곳곳 촌촌이.
* 1988년 <장흥문화>(장흥문화원) 제11호에 ‘천관산기’를 동문선 소재 다른 기문 2종(中寧山 皇甫城記[이색], 龍頭山 金藏寺 金堂 主彌勒三尊 改金記[이산])과 함께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지나쳤던 모양이다. 뒤에 다시 보니 ‘湖南’ 기록이 눈에 들어 왔다. 아마도 가장 이른 시기인가 싶다. 2011.09.01. 초고를 작성하고 다듬어 2011.09.15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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