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94 - 유배인의 詩語를 통해 본 흑산도(우이도)의 문화 경관-옥호 이조원(1758~1832)의 「흑해음黑海吟」-

향토학인 2023. 2. 21. 01:20

인지의 즐거움294

 

유배인의 詩語를 통해 본 흑산도(우이도)의 문화 경관

-옥호 이조원(1758~1832)흑해음黑海吟-

 

김희태

 

옥호 이조원(玉壺 李肇源, 1758~1832)1827(순조 27)에 흑산도(우이도) 유배되어 생활한 5년 동안에 남긴 시집이 흑해음(黑海吟)이다. ··3권의 이 시집에는 411756수가 실려 있다. 아마도 시의 분량으로 보면, 신안 유배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축에 들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 기록상의 흑산도는 지금의 우이도를 말한다.

 

신안문화원에서 흑해음(黑海吟)시집 국역본을 냈는데 개략을 살펴 서문을 쓰는 일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시() 외에도 기문(記文)이나 비문(碑文), 일기류 등이 있어 섬지방을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도움도 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웬걸 문집을 대하고 보니 전체가 시였다.

 

평소 공부하는 것과는 다른 분야였지만, 유배인의 시어(詩語)를 통해 도서지방의 문화경관을 읽어보자는 호기심이 앞섰다. 고전 한시(漢詩)를 이해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어를 통해 사실과 현장을 읽어 내보고자 한 것이다.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시인의 심상을 하적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보면 논외의 사안일 수도 있지만 나서 보았다.

 

이조원의 생애와 흑산도 유배 과정을 살피고 시어를 선별하고 뷴류하여 해석해 보려 하였다. 조선후기 흑산도(우이도)의 문화경관과 풍물, 인정과 사회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였다.

 

이조원은 1792(정조 16) 식년시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병조판서, 이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조원의 저술은 옥호집, 국호필화, 연계풍연, 북정이목구등이 전한다. 그리고 글씨를 잘 썼고 전각에도 뛰어났다.

 

이조원은 1827(순조 27)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유배 사유는 이조원이 평안감사 재임 때 18189월에 관할 강동현감 서만수(?1827)를 고을의 일로 장계하여 파직하고 상소를 올린 것이 계기가 된다. 이조원의 상소를 시작으로 서만수와의 사이에서 몇 번의 상소가 오고 가게 된다. 그리고 이조원의 아들 이용수와 서만수의 아들 서유규는 각자의 아버지가 죄가 없음에 대해 여러 번 상소를 올리면서 서로 헐뜯기에 이른다. 결국 서만수는 18274월에 추자도로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물고된다.

 

서만수 아들 서유규는 이조원과 김기후가 1814(갑술) 순조가 위독했을 때를 틈 타 반역을 도모하기 위해 흉서를 퍼뜨렸다는 상소를 올리고 여러 대신들에게 이조원과 김기후를 무고하였다. 부제학 정기선, 대호군 조정철, 영부사 한영귀 등 대신들이 그 사건을 소상히 밝힐 것과 이조원 등을 탄핵할 것을 상소하게 된다. 이 사이 김기서도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같이 공격을 받게 된다. 결국 18278월에 이조원은 나주목 흑산도, 김기서는 영암군 추자도에 안치되었던 것이다.

 

이조원은 흑산도에서 5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1832년 적소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조원은 유배 초창기에는 죄 없이 유배 온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고 한탄스럽다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차츰 유배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게 된다. 유배 후기로 갈수록 흑산도의 풍물 경관이나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것들을 소재로 지은 시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조원의 옥호집은 권110에 시 1,1311,979수가 실려 있다. 시기별로 수록되어 있는데 청춘음(靑春吟), 황량음(黃粱吟)(··), 자지음(紫芝吟)(·), 백두음(白頭吟), 흑해음(黑海吟)(··) 다섯편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가운데 흑해음은 흑산도[우이도] 유배시절의 글인데 상편은 77110, 중편은 188305, 하편은 145321수로 모두 411756수이다. 전체 시의 37%쯤 되어 시작이 매우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흑산도는 이조원의 생애에 있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다. 흑해음에 실린 시는 유배인으로서의 애환, 가족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 흑산도의 인정과 풍물 경관 등의 내용이다.

 

흑해음의 시어를 상권을 중심으로 사람(인간)과 관련하여 인명과 인칭, 생활(문화)과 관련하여 세시·복식·음식·도구, 자연(공간)과 관련하여 지명·공간·기상·생태 등으로 크게 구분해 보았다. 흑해음()에 실린 시의 순차대로 살펴보면서 단어나 글자를 추출하여 분류하였다. 신안문화원에서 제공해준 번역문에 실린 원문을 참고하였다. 해설 또한 동 번역문을 기반으로 하였다.

 

<> 흑해음(黑海吟)() 시어(詩語) 현황과 분류

구분 시어
흑산도(우이도) 島外1(현 신안) 島外2
인명 景寬, 玉壺翁, 麟兒, 鵷秀   , 坡翁, 魯仲連, 少陵, 伯喈, 熙明, 唐虞, 司馬遷, 謝太傅
인칭 區生, 癡白, 小子, 先靈, 村兒, 舟人, 漁子, 男娶, 女婚, , 是兒, , , 赤脚, 老少, , 公私, 殘民, , , 炊婢, 衰癃, 雙鬢, 老者, 狂生, 老年, 男子, 老婆, 九十, 諸孫, , 樵童, , , 鬼神, 罪客, , 天下士, 先生, 老病, , , 村童, 病奴, 樵男, 主翁, 島人, 男女, 家人, , 白頭, (禪客), , 學徒, 隣人, 鎭將, 漁人, , 白首, 村朋, 老人, 釣客, , 釣翁, 癡僕, 山魅, 水神, 癡人, , 村人, , 島民, 如來, 不善人, 主人, 老子, , 識者, 墨吏, 兒少, 人間, 圃翁, 小主人, 貴人, 此老, 估客   古人, 津吏, 天子, 英豪士, , 明君, 良臣, 賢愚, 生民, 聖人, 文景世
지명 黑山, 寒山, 牛耳, 曳尾村, 別峙, 西峰, 小牛耳, 檟山, 黑山島, 南洲, 荻嶺, 豚項, , 白山 (홍의도), ·(태사도), 大黑, (암태), (비금), 飛禽, 長山, (팔금) 廣津, 恩津, 故山, 呂宋, 琉球, 東園, 錦州, 故里, 田園, , , 列國, 三峽
공간 墟落, 水國, , 村扉, 海上, , 巖角, 海路, 林前, 石窟, 名泉, 海門, 廿戶, 巖田, 山隈, 家鄕, 家累, , 望鄕臺, 家庭, 山陰, 牆角, 村烟, 空汀, 石确, , 千頃田, 水旱田, 井籬, 富戶, 鳴泉, 七百戶, 小島, 土沃, , , , 空嶼 高山, 前階, 明光宮, 大海, , , 三畝, 籬竹, , , 孤嶼, 北渚, 海山村, 窮溟, , , 平沙, 寒雲, 茅茨, , , 篁林, 大瀛, 海口, 石山, , , , 海中, 山北, 南邊, 前浦, 小圃, 疎籬, 小屋, 深林, 荒村, 漁戶, 前隣, 天涯, , 山海, , 鄕隣, 酒家, 鉏田, 村里, , 曉山, 峽村, 大海, 絶島, 橋畔路, 高峰, 桃源, 楡壇, 西巖路, 靑林, 港口, 石橋, 空山, , 穴壁, 滄溟, , 島村, 石牆, 古堥, 山林川澤, , , 群峰, 白沙, 石澗, 門前, 小島, 前山, 白碑 , 蠻家, 十二島 北磯, 滿苔, 小塢,
기상 大風日, 風氣, 鯨海, 風雨, 晩霽, 獰風, 驚濤, 怒木, 蒼天, 滄海, 風濤, 奔濤, 風雪, 夜雷, 大海風, 暮色, , 落日, 寒濤, 三冬, 北風, 凜寒, 落日, 寒波, 夜露, 片雨, 風烟, 急風, 纖雨, 寒濤, 簷嵐, 白日, 曉雨, , 瘴烟, 流水, 行雲, 宿霧, 疎雨, 苦霧, 靑天, 碧海, 海雲, 瘴氣, 滄浪, 夏雲, 明天, 霽天, 滃滃霧, 滾滾氣, 白霧, 淸風, 恐有風,   風波, 淸晨
생태 雌黃, , 落木, 群鴉, 耕牛, , , 菁根, , , , 魚膏, 鮑肆, 薧魚, 疋布, 魚龍, 海芼, , 綿, , , , , 山鼠, , , , 荊蔓, 刈柴, , , 蠢虫, , 杜鵑花, , , , 老木, , , , 千梅, , , , 虎豹, , 山鳥, , 異禽, 細鱗, , 纖鱗, , , , 綿, , , 柳子, , , 黃鸝, , 桃花, 海禽, 蚊蝱, 豺虎, , , 狗皮, 紫荊樹, 蚊蠅, 狗蒼, 篔簹, 鶯鵲, 惡鳥, 烏竹, 蝮蛇, , , 土産, , , 海鷗, , , 蛟螭, , 檜木   花梅, 古栢, , 老松, 黃花
세시 長歌, 生日, 是日, 元朝, 上元, 棹歌, 七夕, 九日   十月十四日
복식 , 單衣,    
음식 , , 酒樽, , , , , 飯稻, 羹魚, 金叵, , 煖酒, 魚塩, , 壺樽, 禁酒, , 禁釀, 村醪, , 海蔬, 甕酒, 麥飯, 蔥湯    
도구 孤舟, 一帆, , , 紙牕, , , , 廻燭, , 瓦樽, , 炊備, , , 商帆, , 魚船, 舂杵, , , 短帆, 漁舟, 片帆, , , , , , 論孟, 詩經, , 采藿船, 小燈, , 商帆, , 稅船, 車輦, , 小舟, , 漁釣,  

 

인명과 인칭 관련 시는흑해음()의 시어 가운데 이조원이 흑산도에서 만났거나 생각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지칭이다.

 

인명은 고향애서 흑산도 찾아 온 경관(景寬), 자기 자신인 옥호옹, 둘째아들 이인수, 서자 이원수이다. 옥호옹은원조피주구호(元朝被酒口號)에서 눈은 흐릿하고 통증, 청력도 잃고, 팔 마비, 편두통 등 병든 자신을 한탄하면서 나온다.

 

인칭 관련해서는 90여 건으로 매우 다양한 표기가 보인다, 이조원 자신을 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흑산도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대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촌아(村兒, 마을아이들), 주인(舟人, 뱃사공), 어자(漁子, 어부들), 노파(老婆), 초동(樵童, 땔나무하는 아이), 도인(島人, 섬사람들) 등이다. 문과 급제한 관인 출신이지만 흑산도 주민들이 생활을 관찰하고 교유하는 것을 알 수 있다.

 

90이 된 노파의 건강한 모습을 읊은 시를 보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한 노파가 있는데 걸음걸이가 아주 가벼우며 보고 듣는 것이나 치아 모두가 성한데, 듣자 하니 올해 나이가 만 구십이라 하더라. 隔籬有一老婆行步甚輕視前齒牙皆如常聞今年恰滿九十云는 긴 제목의 시이다.

 

지팡이 짚지 않고 앉아서도 꼿꼿하네

귀밑머리 백설같고 생기 도는 푸른 눈동자

첫닭 우는 새벽 일어나 양치하고 삼베 손질

손자들 늦잠 자면 꾸짖기까지 하는구나

 

行不扶筇坐不敧(행불부공좌불기)

鬢毛如雪綠瞳奇(빈모여설록동기)

鷄鳴漱齒治麻枲(계명수치치마시)

且叱諸孫睡起遲(차질제손수기지)

 

시 제목에서 울타리를 사이에 두었다 하였으니, 유배처가 흑산도의 여느 민가일 것으로 보인다. 위리안치형이면 일반 사람들과 접하기 어려운데, 울너머로 바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듯하다. 귀밑머리는 백설이지만 지팡이를 짚지 않고 꼿꼿하고 생기도는 푸른 눈동자에 보고 듣는 것이나 치아 모두가 성하다 하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자기자신과도 비교한 것 같다. 양치하는 생활 모습을 알 수 있고 삼베를 짠다 했으니 옷감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자들이 늦잠자면 꾸짖기까지 하니 어린이들의 교육도 맡았다.

 

지명 관련 시어를 보면 흑산(黑山), 한산(寒山), 우이(牛耳), 예미촌(曳尾村), 별치(別峙), 서봉(西峰), 소우이(小牛耳), 가산(檟山), 흑산도(黑山島), 남주(南洲), 적령(荻嶺), 돈항(豚項), (), 백산(白山) 등이 흑산도 관련 지명이다. 섬 자체를 말한 것도 있고 섬 안의 봉우리나 고개, 마을을 이른 것도 있다.

 

우이잡영(牛耳雜詠)첫째 수에서 섬모양이 소가 들판에 누은 듯한데 우이라 부르니 의아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예미촌에서 서쪽을 바라 보니 바위가 뿔처럼 보여 두 귀 같다고 우이(牛耳)란 땅이름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섬 모양 마치 소가 들판에 누운 듯

우이牛耳라 부르기에 처음에는 의아했지

예미촌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은

바위 뿔(巖角) 솟아 나와 두 귀 같다네.

 

島勢如牛臥野坰(도세여우와야경)

人稱牛耳訝初聽(인칭우이아초청)

若從曳尾村西見(약종예미촌서견)

 

지금의 신안권역 지명으로는 홍(, 홍의도), (·, 태사도), 대흑(大黑), 巖角依然兩耳形(암각의연양이형)(, 암태), (, 비금), 비금(飛禽), 장산(長山), (, 팔금)] 등이 보인다.

 

우이잡영(牛耳雜詠)세 번째 시에 홍의도와 태사도의 표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우이도의 홍어상인 문순득(1777~1847)의 표류에 대한 것이다.

 

홍의 태사 두 섬에선 자칫하면 표류하여

비바람 때도 없어 바닷길 길어지네

듣자 하니 이웃 사람 구사일생九死一生하여서

여송呂宋 유구琉球까지 여러 해 떠돌다 왔다오.

 

紅苔兩島易漂流(홍태양도이표류)

風雨無時海路脩(풍우무시해로수)

聽說鄰人曾九死(청설린인증구사)

多年呂宋與琉球(다년여송여유구)

 

자칫하면 표류하고 비바람이 때도 없이 불어 바닷길이 길어진다고 하면서 여송(呂宋)과 유구(琉球)까지 표류하여 여러 해를 떠돌다 구사일생을 돌아온 온 이야기를 읊고 있다. 이는 우이도의 홍어상인 문순득(1777~1847)의 표류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문순득은 180112월에 대흑산도 남쪽에 있는 태사도에 홍어를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유구국(현 오끼나와), 여송(현 필리핀), 중국 광동성 오문(현 마카오), 난징, 베이징을 거쳐 18051월에 돌아 왔다. 32개월의 여정이었다.

 

당시 흑산도에 유배와 있던 손암 정약전(17581816)이 문순득의 체험담을 기록한 표해시말(漂海始末)로 정리했다. 1818년에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1789~?)는 정약전의 표해시말과 자신이 쓴 운곡선설(雲谷船說)등을 묶어 유암총서(柳菴叢書를 완성하였다.(*『유암총서』 『운곡잡저(雲谷雜櫡)』와 함께 우이도의 문채옥(1920~2011)선생이 보존해 오다가 신안군에 기증을 하였고, 「신안 우이도 유암총서와 운곡잡저 명칭으로 2010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조원은 1827년 흑산도로 유배되는데, 그보다 20여년전의 표류에 대한 내용을 시로 지어 도서지방의 지리적 사항과 전래되는 실화를 함께 형상화한 것이다.

 

도인(島人) 두 번째 시에서는 비금(飛禽)과 장산(長山) 지명이 보이는데 해당 섬지방의 특산물을 말하고 있다. 미역을 들고 팔러 가서 소금과 바꾸어 오고, 장산도 무명솜으로는 겨울 옷을 해 입는다고 하였다. 비금의 염전은 지금은 천일염전이 유명하다. 당시는 자염(煮鹽) 형태였을 것인데, 그만큼 소금 생산에는 알맞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비금飛禽에 소금을 바꾸러 가서

미역을 내어 팔고 돌아온다오

만약 장산長山에 무명 솜 없다면

어찌 겨울옷 한 벌 해 입으리오.

 

飛禽貿塩去(비금무염거)

注乙販藿歸(주을판곽귀)

若無長山綿(약무장산면)

那得冬一衣(나득동일의)

 

공간, 기상, 생태 관련 시는 자연 환경과 지리 입지 등과 관련된 것이다. 이들 시어를 통하여 흑산도를 비롯하여 섬지방의 자연생태와 경관을 읽을 수 있다. 공간은 거처와 마을, 주가, 건조물, , 골짜기, , , , , 바다, 다리, 천택, 문전, 백사장, 울타리, 아궁이 등이다.

 

제도탄(諸島歎)세 번째 시에서 또 아이는 땔나무 해 아궁이에 불을 때고(堗黔刈柴童)”라 하여 온돌 아궁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영(閒詠, 한가함을 노래한다)두 번째 시에서는 남새밭[小圃]과 성긴 울타리[疎籬] 등 섬지방 민가의 논서밭에서 파를 뽑고 듬성한 울타리에는 박넝쿨 오르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봄 한 철 병을 앓고 나서는

해진 책 끌어안고 낮잠을 자네

남새밭에 파 뽑아낼 적에

성긴 울타리 박넝쿨 오른다

물에 뜬 오리들 가볍게 헤엄치고

물결 타고 고기들 활발하게 뛰노네

온갖 것들 모두가 생기 팔팔하건만

사람은 어째서 이 같지 않을까

 

一春吟病餘(일춘음병여)

午睡抱殘書(오수포잔서)

小圃蔥抽際(소포총추제)

疎籬匏上初(소리포상초)

輕盈浮水鴨(경영부수압)

活潑躍波魚(활발약파어)

物物皆生氣(물물개생기)

人何獨不如(인하독불여)

 

기상 관련 시어는 바람과 비, 파도, 우레, 밀물, 썰물, 계절, 이슬, 연기, , 구름, 하늘, 안개 등이다. 바람 관련해서도 대풍일(大風日), 풍기(風氣), 풍우(風雨), 영풍(獰風), 풍도(風濤), 풍설(風雪), 대해풍(大海風), 북풍(北風), 급풍(急風), 풍연(風烟), 청풍(淸風), 공유풍(恐有風)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섬지방에서 중요한 생활공간인 바다의 바람은 실생활과 관련되어 매우 중요하다. 바람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은 이조원의 문학적 감성도 있었겠지만 유배지 흑산도에서 체험으로 체득한 기상에 대한 관심이 시로 녹아들었을 것이다.

 

섬사람들 날씨 기후 잘 헤아려

어느 때 바람 불지 잘도 알더라

또 구름의 빛깔만 보아도

남북 동풍일지 금방 알더라.

 

島人善測候(도인선측후)

能議有無風(능의유무풍)

且以雲之色(차이운지색)

輒知南北東(첩지남북동)

 

생태와 관련된 시어는 날짐승, 들짐승, 해어와 가축, 채소와 풀, 꽃나무, 유실수, 과일, 대나무와 매화 등이다.

 

우이잡영(牛耳雜詠) 번째 시에 마른생선[薧魚]과 므명 한필[疋布]을 들보위에 걸어 둔 경관을 읊고 있다. 얼마나 묵혔는지 어두컴컴한 들보 위에는 거미줄이 얽혀있고 흙먼지가 수북하다. 산신도 모시는데 해신도 모시니 백성의 풍속은 여러 가지라 하였다. 아마도 마른 생선은 명태일 것 같다. 명태는 동제, 고사, 제사, 굿, 안택제, 혼례, 장례, 상량식 등 다양한 의례 필수 품목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물고기이지만 신성한 제물로 승화되어 각종 의례에 사용되었다. 이조원이 시로 형상화했던 저 마른 생선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춘첩(春帖)과 함께 모셨던 제물인 것이다. 민간신앙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마른 생선 무명 한 필 몇 해를 묵혔는지

들보 위 거미줄에 어두컴컴 흙먼지

산 귀신 바다 귀신 함께 모시니

백성 풍속 모르겠네 어느 신을 받드는지.

 

薧魚疋布幾年陳(고어필포기년진)

樑上蛛絲暗土塵(량상주사암토진)

尙鬼一般山與海(상귀일반산여해)

不知氓俗奉何神(부지맹속봉하신)

 

세시의례 등관 관련된 시어는 생일(生日), 원조(元朝), 상원(上元), 도가(棹歌), 칠석(七夕), 구일(九日, 중양절) 등이다.

 

중양절의 시를 보자. 중양절 두보의 남전운을 써서 읊는다 九日用子美藍田韻는 시제이다.

 

99일 좋은 날 나그네 수심 느긋하여

술을 끼고 높은 곳 올라 기뻐하던 지난날

노란 국화 다시 만나 눈물 뿌리고

흰 머리 홀로 앉아 옷과 갓 풀어헤쳐

저물녘 멀리 포구 성긴 비 내리고

낙엽 진 빈 산에 샘물 차가워지네

무슨 악연으로 궁벽한 이 섬에서

바다 갈매기와 한 해를 말없이 서로 보고 있나

 

嘉辰難得客愁寬(가신난득객수관)

携酒登高昔日歡(휴주등고석일환)

黃菊再逢揮涕淚(황국재봉휘체루)

白頭孤坐廢衣冠(백두고좌폐의관)

斜陽遠浦生疎雨(사양원포생소우)

落木空山漾薄寒(낙목공산양박한)

何故惡緣窮島在(하고악연궁도재)

海鷗周歲靜相看(해구주세정상간)

 

구일(九日)은 주양절(重陽節)을 말한다. 음력 99일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의 하나이다. 33일 등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 해당되는데 특히 9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 또는 국화절(菊花節)이라고도 한다. 성묘, 차례, 등고(登高), 과거실시, ()을 금하는 풍속이 있었다.

 

남전운(藍田韻)두보의 시 구일남전최씨장(九日藍田崔氏莊)의 운을 말한다. 두보(杜甫, 712~770)가 장안(長安) 동남쪽에 있던 벗 최계중(崔季重)의 동산초당(東山草堂)에 가서 함께 즐기며 지은 칠언율시이다.

 

중양절 좋은 날이지만 유배객으로서는 근심이 가득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예전에 등고하며 기뻐했는데, 유배처의 담장 밑에 핀 황국을 대하니 그때를 다시 만난 듯 눈물이 난다. 등고는 중양절에 붉은 주머니에 수유를 채워 넣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면 사악한 기운을 피하고 재앙을 면할 수 있다는, ‘등고풍속을 이른다.

 

복식으로는 치마[], 홑옷[單衣], 버선[] 등의 시어가 보인다. 섬 주민들이 온전한 치마 하나 없고 남자들은 홑옷으로 지내며 북풍 매서운 추위에도 맨발로 다니는 열악한 현실을 도인(島人)에서 읊고 있다.

 

사람들 거의 다 의식衣食 어렵고

바람도 많은 곳 추위도 혹심한데

한 해가 가도록 버선 한 켤레 없어

사내나 여인네나 모두가 맨발.

 

人多衣食艱(인다의식간)

地猶風寒酷(지유풍한혹)

終年無一襪(종년무일말)

男女皆赤足(남녀개적족)

 

음식은 쌀밥과 생선국, 물고기, 미역과 해초, 소금절인 생선, 시골막걸리, 밥과 해초, 보리밥과 파장국과 여러 종류의 술과 용기에 대한 것이 보인다.

 

탄식[有歎에서는 진장(鎭將)의 금주령과 술에 얽힌 주민의 생활, 주가(酒家) 풍속에 대해서 읊고 있다. 술집 두세군데 보리 몇되, 그나마 싸라기만 있다. 그래도 빈궁한 집에서는 밥을 지어 먹으면 몇끼 밖에 안되지만 술을 빚어 먹으면 닷새는 지탱한다고 했다. 금주령은 빈궁한 사람을 살피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논일하는 사내는 농주 한잔에 힘을 얻고, 주가의 주인은 그 벌이로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 가난한 사람은 밥을 대신하고 얼큰한 술기에 바닷가의 장기, 습하고 무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는 물러난다고 했다. 섬지방에도 술 때문에 문제가 많고 금주령을 내렸지만 없는 살림살이에는 오히려 한잔 술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막을 생업으로 운영하는 것도 알 수 있다.

 

두서너 술집 보리래야 몇 되

그마저도 싸라기 더 말할 게 뭐 있나

밥을 지어 먹으면 몇 끼니면 다하지만

술 빚어 마시면 닷새는 지탱하지

금하지 않는 게 금하는 것보다 편하니

빈궁한 사람 집 살림 살피지 못한 게지

김매는 사내 한 사발 술에 힘을 얻고

술집 아낙네는 식구들 먹여 살린다네

가난한 사람 한 끼 밥을 대신하고

얼근히 취하고 나면 장기瘴氣도 물러가지

 

兩三酒家麥數升(양삼주가맥수승)

尙何足論糜穀有(상하족론미곡유)

炊之不過數時盡(취지불과수시진)

釀可能支五日久(양가능지오일구)

設禁不如不禁便(설금불여불금편)

生業猶未察窮蔀(생업유미찰궁부)

一椀益力鉏田男(일완익력서전남)

數口資活當壚婦(수구자활당로부)

豈惟貧者代盤飱(개유빈자대반손)

瘴嵐不入微醺後(장람불입미훈후)

 

도구는 배(孤舟, 一帆, , 商帆, 魚船, 短帆, 漁舟, 片帆, , 采藿船, 稅船, 小舟), (), (, 小燈), 들보(), 빗장(), (, 紙牕), 거울(), 비녀(), 베개(), 부채(), 땔감거리(炊備), 절굿공이(舂杵), (), 돗자리(), 호미(), (), 사서삼경(論孟, 詩經), 그릇(), 큰동이(瓦樽), 책상(), 밥상(), 안석(案席), 손수레(車輦), (, ), 촛불(廻燭), 낚시질(漁釣), 통발(), 조롱(), 지팡이() 등이 보인다.

 

특히 배는 다양한 표기가 보인다. 섬지방의 특성이 나타난다 하겠다. 그리고 사서삼경 등 서책 관련해서 보면, 문과 장원급제한 이조원이 놀랄 정도로 서당에서 논어, 맹자, 시경, 사서(史書) 등을 학동들이 공부하고 있었던 점이 나타난다.

 

借書[책을 빌리다]시에서는, 깊은 숲 조그만 숲에서 긴긴 나날 낮잠을 자다가도 근심 걱정 날려 보내려고 책을 보려 하는데 황폐한 어부집에 책이 있을리 만무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책을 낀 앞 집 학도들에게 무슨 책인지 물었더니 논어 맹자 외에 사서도 이십 편에 시경 등본도 있어 놀랍고도 기뻐서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백개(伯喈)의 기이한 책, 희명(熙明)의 만권서 부럽지 않고 백번을 읽으면서 온고지신을 공부한다고 했다. 백개는 채옹(蔡邕)의 자인데, 중국 후한의 학자·문인·서예가로 젊어서부터 박학했고 비백체(飛白體)를 창시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이처럼 학업을 이루기를 기원해 준 것이라 하겠다. 이 시를 통해서 흑산도에는 서당이 있었고 논어, 맹자, 시경, 시서(史書)도 갖추고 학업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인문학적 기반이 있었다 하겠다.

 

바닷가 산 겹겹이 나를 가두어

늙은이 홀로 슬피 읊조리네

깊은 숲 조그만 집 선객禪客이 되었다가

긴긴 나날 자리에 누워 낮잠이 드네

근심 걱정 날려 보내려 책을 읽어보려도

황폐한 마을 어부의 집 책 있을 리 만무하지

책을 낀 앞집 아이에 시험 삼아 물었지

학도들 읽는 책 무슨 책인지

논어 맹자 외에 사서史書도 이십 편에

시경 베낀 등본도 갖추고 있다 하네

놀랍고도 기뻐서 무릎을 쳤지

이런 마을에 이런 책 생각지도 못했네

백개伯喈가 기이한 책 얻은 듯하고

희명熙明의 만권서萬卷書 어찌 부러우랴

한번 빌려 백번 읽어도 물리지 않구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 또한 공부이지

 

海山千重久囚吾(해산천중구수오)

白頭悲吟影何孤(백두비음영하고)

小屋深林坐如禪(소옥심림좌여선)

遲日睡課依團蒲(지일수과의단포)

消愁遣悶惟書籍(소수견민유서적)

荒村漁戶宜其無(황촌어호의기무)

試問前隣挾冊兒(시문전린협책아)

所讀何書諸學徒(소독하서제학도)

論孟二書史卄編(논맹이서사입편)

又有詩經謄本俱(우유시경등본구)

聞來拍膝驚且喜(문래박슬경차희)

此村有此曾不圖(차촌유차증부도)

看作伯喈異書得(간작백개이서득)

豈羨熙明萬卷乎(개선희명만권호)

一借不厭百回讀(일차불염백회독)

溫故知新亦工夫(온고지신역공부)

 

국역문은 신안문화원 제공자료를 참고하였다. 국역하신 김형만 선생님, 발간에 임해주신 주장배 신안문화원장님과 최휘철국장, 김재영팀장, 곽승혁팀장, 조애숙님, 도움말을 해준 최성환교수, 이재근님, 박선미님께 감사드린다.

 

참고문헌

玉壺集(이조원, 국립중앙도서관[古朝46-618])

나주지방흑산도지도(羅州地方黑山島地圖)(1872, 규장각한국학연구원[10449])

신안문화원, 옥호집 흑해음(玉壺集 黑海吟)-신안향토사료지-, 2022.11.

최성환, 문순득 표류 연구 : 조선후기 문순득의 표류와 세계인식, 민속원, 2012,

김지혜, 옥호 이조원의 생애와 시 연구, 계명대학교대학원 한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김희태,이조원의 옥호집(玉壺集)과 흑해음(黑海吟), 옥호집 흑해음, 신안문화원, 2022.11., 12~45; 신안문화32

 

조선후기 우이도 부근도(흑산도지도, 1872년, 규장각)

우이도 진리 전경(2007.05.19.)

 

이조원 문과 방목(장원급제)
우임잡영(이조원, 흑해음, 옥호집)(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