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291
광주의 눈 속에 갇혀 해남을 강의하다, 2022.12.23.
김희태
“문화유산의 이해”라는 주제로 말하는 자리가 있어 준비하던 중인데, 그 며칠간 눈이 쌓이고 또 쌓였다. 마침 강의일 당일 결국은 현장에 가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2022년 12월 23일의 광주는 온종일 눈 천지다. 한 시간쯤 기다려 봉선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광주터미널로 향해 가면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보니 해남행 버스는 모두 “매진”으로 나온다. 그 “매진” 표기는 “결행”을 말한다. 14:30분 차가 한번 예정은 되어 있는데, 그 버스를 탄다 한들 해남 가면 강좌 시간은 끝나버린다. 해남군청 측과 협의하여 “줌”으로 진행해 보자 하였다.
해남은 눈이 얼마나 왔는지 정보는 없지만, 일정을 미루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서울 쪽에서 사시는 강사 한 분이 그 전날 미리 내려와 있다는 것이다. “줌”으로 한다고 어렵게 연결하려 했지만 잘 안되어, 스마트폰 통화로 강의를 하였다.
PPT 자료는 해남 쪽에서 넘겨 주고, 광주에서는 스마트폰 전화기에 대고 강의를 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비대면 방식. “다음” “다음” 하면서 진행. 약간은 낯설었지만, 시대 추세에 따라 진행된 터라 신기하기도 했다.
o주제 : 복합뮤지엄파크 건립을 위한 관계전문가 강연회
o일시/장소 : 2022.12.23.14:00 / 해남문화원공연장
o참석 : 해남복합뮤지엄파크건립 추진 위원, 미술협회 회원, 중견작가협회 회원, 문화예술위원회 회원, 문화유산연구회 회원, 문화원 회원 등 100여명
o내용
-문화유산의 이해(김희태)
-공립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최선주,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공립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장)
o강의 자료-문화유산의 이해(김희태)
1.문화재의 개념과 분류
2.문화유산과 역사현장 읽기
1)사적 전라우수영의 흔치 않은 조선시대 건조물 ‘방죽샘’
2)1747년(영조 23) 어성교중창석비(漁城橋重創石碑)
3)1781년(정조 5) 남천교중수기비(南川橋重修記碑)
3.향토자원 용어 사례
광주 터미널로 가다 말고 돌아와서 또 한가지 생각에 꽂혔다. 광주에 눈오는 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니 무등산에 눈이 내린 기록이 있다. 1661년이다. 전후 설명 없이 짧게 사실만 기록해, 광주 무등산에 눈이 내렸던 것이 실록에 오를 일일까 했다. 다시 보니 눈이 내린 시기를 보면 실록에 오를만 했다. 8월 26일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9월 중순이었다. 이 때 눈이 내렸으니 기상 이변이라 할 것이다.
호남의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에 눈이 내렸다.(壬申/湖南光州 無等山雨 雪)(현종개수실록 6권 현종 2년(1661) 8월 26일 임신)
한번 더 훑어 보니 광주 읍내에 눈이 내린 기록도 보인다. 9월이니 10월 초반 무렵이다. 1697년이다. 승정원일기를 보니 전라감사가 이에 대해 서목을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서목도 찾아 봐야겠다.
광주 등 다섯 고을에 눈이 내리다.(戊子/光州等五邑下雪)(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1697) 9월 11일 무자)
전라 감사의 서목은, 광주(光州) 등 5개 고을이 모두 8월 27일에 눈이 내렸는데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과 관계된다는 일이었다.(全羅監司書目, 光州等五邑, 竝以八月二十七日下雪, 事係異常事。)(승정원일기 373책 숙종 23년(1697) 9월 12일 기축)
이 무렵 전국적으로 비와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8월 26일에는 장단부(長湍府), 27일에는 원주와 영월 등 고을에서 비와 눈이 내렸는데 겨울 같다고 했다는 기록이다.
그런데 몇 달 뒤 겨울에는 눈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겨울에 눈이 어느 정도는 와야 농사가 잘 된다. 그런데 겨울철이 절반이 지났으나 한 점의 눈도 내리지 않아 밀과 보리 등이 모두 얼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겨울철이 절반이나 지났으나, 한 점의 눈도 내리지 않아 모맥(牟麥)이 모두 얼어 손상되었으므로, 기설제(祈雪祭)를 종묘(宗廟)·사직(社稷)·북교(北郊)에 지내도록 명하였다.(壬辰/時冬節將半, 點雪不下, 牟麥擧皆凍損。 命行祈雪祭于宗廟、社稷、北郊。)(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1697) 11월 16일 임진)
강의용으로 작성했던 PPT 자료를 띄우고 광주의 폭설 경관과 실록의 광주기록을 추가했다. 그리고 해남에서는 눈이 오면 이동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곳으로 ‘우슬재‘가 떠 올랐다. 지금은 터널로 통행하지만, 예전에는 큰 고갯길이었다. 우슬재 자료를 찾아 넣고, “문화유산”으로 연결하였다.
“우슬재”가 문화재로 지정된다면 어떤 종류로 할 수 있을까요.
질문형으로 강의를 했다. 직접 대면했다면 참석인들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말을 했을 터인데, 비대면이라. 바로 답을 이어 갔다.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던 옛 길은 “역사문화경관”으로서 “기념물”로 분류됩니다. 그 “기념물”이 국가지정문화재일 때 “명승”이 되고, 이미 “누릿재”와 “갈재”가 명승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전라남북도를 가르는 정읍-장성 간의 삼남대로 갈재, 영암-강진 사이의 삼남대로 누릿재.
누릿재를 지나 석제원을 거쳐 미암산과 금강산을 거쳐 해남읍성에 이르는 길. 이 길의 큰 고개가 우슬재입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석제원부터 해남읍성에 이르는 길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해남읍지 기록에는 우사현(于沙峴)으로 나옵니다.
강의에서는 소개를 못했지만, 우사치(迂沙峙)라는 기록도 있다. 윤이후(尹爾厚, 1636~1699)의 『지암일기(支菴日記)』에 7차례나 나온다. 윤이후의 넷째 아들이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이다.우슬재는 이처럼 주민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기다리고 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1690년대 기록이다. 두건만 보자.
진욱(陳稶)이 일행을 데리고 나가서, 우사치(迂沙峙)까지 갔다가 헤어져 돌아왔다. 권붕(權朋)은 별진(別珍)까지 갔다가 헤어져 돌아왔다.(陳稶率行 到迂沙峙落還 權朋到別珍落還)(1698년 5월 18일)
우사치(迂沙峙)를 넘어 김체대(金體大), 이송제(李松齊), 극인 민도삼(閔道三)과 우연히 만나, 말에서 내려 이야기를 나누었다.(踰迂沙峙 遇金體大李松齊棘人閔道三 下馬語)(1699년 9월 6일) *극인 : 유배인.
해남 강의실의 분위기는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강의를 이어갔다
“우슬재”를 넘다 보면 여러 기의 기념비와 추모비가 있습니다. 해남항일운동추모비를 보면, 석비 자체로는 “유형문화재”입니다. 비문 내용이나 역사성, 서체 등을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비가 서 있는 장소가 직접 항일운동을 했던 전적지나 집회공간, 그리고 그 유구 등이 있다면 똑같은 추모비라 해도 “기념물”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적지(史蹟地) 개념입니다.
추모비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의례를 올리게 되지요. 이 의례는 “무형문화재”가 됩니다.
고개를 넘나드는 주민들이 나들이길의 안녕을 빌기 위해 고갯 마루 어느 지점에 기원하는 의미로 돌을 놓곤 해서 그게 돌탑이 되었다면 마을 신앙요소로서 “민속문화재”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 네가지로 크게 구분합니다. 지정권자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포함), 등록문화재 등으로 구분합니다.
해남군에서 “군조례”로 지정하는 향토문화유산이 있긴 합니다만, 문화재보호법에 포함되지는 않았습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하는 시·군지정문화재도 문화재보호법에 규정되어야 합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지 30년이 다 되 갑니다. 기초든 광역이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문화분권”의 지름길일 겁니다. 문화재청 등 “중앙”의 입장에서는 “지방”을 못 미더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전쟁기에도 지방자치를 실현했던 국민입니다.
이같은 네가지 유형의 개념과 분류. 이 분류에 따른 해남의 문화재 몇 건에 대해서 살펴 보면서 그 문화유산을 통한 역사 현장 읽기와 쓰기 등을 사진과 함께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강의 자료 3.향토자원 용어 사례는 몇 년전 향토자원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법령이나 조례 등에 규정된 “향토”에 대해서 찾아 본 것을 분류해 보았던 자료입니다. 이들 자료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기본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신기한 소통의 방식으로 35분간 주어진 시간을 5분쯤 넘겨 강의를 마쳤다. 재해로 인해 직접 대면강의는 못했지만, 어려운 날씨 여건에도 참여하신 해남의 문화지성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갑작스런 여건 변화에 응급 방식으로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 해남군청 문화예술과의 문화예술팀장(김은자님)과 주무관(장모창님) 등 복합뮤지엄파크건립TF팀 관계자들의 노고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강의 내용은 해남군청 유튜브에 올린다니 얼른 들어가서 보면서 현장 분위기를 함께 하고 싶다.
*강의자료에는 몇줄 썼지만, 한가지 못다한 말이 있다. 근래 논의되고 있는 문화재의 분류를 자연유산, 문화유산, 무형유산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다. 기념물 가운데 사적은 문화유산, 천연기념물과 명승은 자연유산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승 가운데 역사문화경관 유산을 자연유산으로 분류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따른다. 남원 광한루원, 진도 운림산방, 담양 소쇄원, 강진 백운동원림, 완도 윤선도 원림 등은 역사문화경관 유산 분야의 명승이다. 이 유산을 자연유산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이다.
1661년 8월과 1697년 9월에 광주에 눈이 내린 조선왕조실록 기록/2023년 12월 23일의 봉선동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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