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89 - 황호균, <사찰문화재(유물과 문헌과의 대화)> 발간, 호남한국학 저술지원총서7, 2022.09.

향토학인 2022. 9. 29. 08:50

인지의 즐거움289

 

황호균, <사찰문화재(유물과 문헌과의 대화)> 발간, 호남한국학 저술지원총서7, 2022.09.

-옛 도, 개선사지, 중흥산성, 쌍봉사, 태안사, 무위사-명찰과 절터에 유전하는 걸작-

 

김희태

 

전남대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낸 황호균위원이 <사찰문화재>를 펴냈다. 성보자체와 현장, 기록과 문헌, 구전되는 이야기까지 치밀하고 섬세하게 씨줄과 날줄로 엮었다. 역사와 향토문화는 물론 미술사, 불교, 문헌, 그리고 사진과 도면 등을 수집 정리하고 분석하고 해설하였다. 사회추세라 할 디지털인터넷을 통한 자료도 녹아 들어 있다. 게다가 학술 성격을 겸하면서도 일반화를 시도했다. 쉬이 다가가고 읽고 느껴 보자는 것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천득염)에서 호남한국학 저술지원총서로 냈다.

 

*황호균저, <사찰문화재-유물과 문헌과의 대화>(호남한국학 저술지원총서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2022.09, 398)

 

40여년 심취한 사찰문화재의 세밀한 부분까지 집성하여 돋보기로 훑은 듯 살핀 내용이다. 광주 광산동 구도청일대의 절터 문화재, 개선사지 석등,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태안사, 쌍봉사, 무위사의 탑비, 승탑과 건조물 등 세 곳의 고찰과 3개소 절터의 성보문화재가 대상이다. 수많은 사찰문화재가 더 있고 할 이야기나 조사 수집 정리한 내용은 수두룩 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서막을 연 1편인 셈이다. <사찰문화재> 상재 회향의 기쁨을 함께하고자 헌사(獻辭)를 올릴까 싶어 글을 시작했는데, 무언가를 덧붙여 한줄 글을 쓴다는게 오히려 누가 될까 염려된다. 하여 머리말의 일부를 옮긴다. 조만간 모타부러자리를 마련하리라. 황호균은 남도불교문화연구회장을 지냈고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의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찰문화재, 유물과 문헌의 대화,  계속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머리말에서)

 

황호균

 

정년퇴직한 뒤 최근 1~2년 사이에 인연이 닿아 세상에 태어난 글들을 모아서 다듬고 이리저리 꾸며 보았다. 그동안 풀지 못한 묵은 숙제를 끙끙 앓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마무리하여 세상에 막 내놓은 글도 보이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풀어낸 장편소설 같은 글도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갖가지 억측만 난무하던 광주 구 전남도청 일대 폐사지와 관련 사찰문화재에 대한 여러 정보를 분석하고 폐사지의 실체까지 추적하는 일련의 과정을 다루었다.

 

전남 지역의 구산선문인 곡성 동리산문 태안사화순 사자산문 터전 쌍봉사에 전하는 구산선문 관련 사찰문화재를 중점 적으로 살펴보았다.

 

전남 지역 최고의 석등인 담양 개선사지 석등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에 관련된 총체적 접근과 분석을 시도하여 그동 안의 그 어떤 연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연구 성과도 거두었다.

 

전남 지역 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건축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과 수륙사 지정 후내부 공간을 개조하는 일종의 변용 과정을 거치는 이유와 의미를 살피고 관련 사찰문화재의 문화사적 의미도 짚어 보았다.

 

3곳의 명찰과 3곳의 폐사지에 유전하는 최고의 걸작 사찰문화재를 대상으로 떠나는 대장정이다. 여러 문헌과 현장 유물의 대화를 통한 진정한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어렵고 고단한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저 증심사 철불로 알려진 광주읍내 철불과 재명석등으로 작명된 광주관사내 석등, 구 전남도청 내에서 발견된 고려 석탑재를 조성한 사찰을 추적하는 일은 30년 묵은 오랜 숙제이기도 했다. 구 전남도청 일대의 사찰문화재에 담긴 문화사적 의미 찾기와 아울러 폐사지의 절 이름을 밝혀 보려는 시도는 광주 덕림 태생으로서의 단순한 예향심 차원만은 아니다. 이 지역은 신라 하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정유재란 직전까지 존속한 명찰의 사역이었 다. 광주목 설치시기인 1373년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 일부 지역이 광주읍성 내의 아사와 내아에 포함되어 사원의 기능이 일부 중지되고 급기야는 유구의 대량 파괴가 이루어진 후 사세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로 인근에 작은 규모로 명맥을 유지하다 정유왜란 당시 왜적의 침탈로 인해 16세기 후반경 폐사에 이른 과정을 고증하기 위해 관련 문헌과 자료를 하나하나 들춰 보는 수고도 즐거웠다.

 

다음으로 전남 지역의 신라 하대 석등인 담양 개선사지 석등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에 담긴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찾는 긴여정. 석등 불밝기창 주변에 새겨진 석등기 명문으로 인해 그 가치가 상상 이상을 초월하는 담양 개선사지 석등’. 현장성이 반영된 석등기 명문 텍스트를 가장 먼저 구축해 학계의 연구에 기여한 이래 석등기에 기록된 석보평지명의 위치를 찾는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글을 전개해 보았다. 암수 사자가 불 밝기 집을 머리에 이고 선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석등의 조형적 의미 부여와 단순한 찬탄인 감상적 평가에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의 현지조사와 외지 반출에 대한 조선총독부 일본어 문서 전문을 번역 수록하였다. 이처럼 석등의 문화사적 의미와 간주석 변화에 담긴 당시 사회상, 아울러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지혜의 등불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려고 한다.

 

또한 전남 지역 선종구산문인 화순 사자산문 터전 쌍봉사곡성 동리산문 태안사’. 창건주 승탑과 탑비의 총체적 조명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혁명적인 선종사상의 진정한 사상적 의미와 아울러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재조명해 보았다. 선종은 왕실과 귀족에 결탁하여 타락할 대로 타락한 교종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새로운 개혁운동이다. 신라 하대 당시 불교가 백성의 고통은 외면한 채 왕족과 귀족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할 때 중국 당나라의 서당 지장선사에게 남종선을 배워 온 여러 선승에 의해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열게 된 선종산문을 구산선문이라 부른다. 사람의 운명이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었다는 운명론적 인식의 교종 불교는 종래 귀족과 왕실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정권 유지 도구로 전락하였고, 선종의 사상은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당시로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을 제공하였다. 그렇게 등장한 선종 사원에서는 교조의 무덤인 불탑과 거의 같은 격으로 승화시킨 조형적 형상미를 담은 선사의 승탑과 탑비를 조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승탑과 탑비의 구석구석을 근접촬영하듯 샅샅이 살펴 그러한 조형성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까지도 밝혀내려 한다.

 

마지막으로 전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보 전. 단순히 건축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륙재 지정 후대대적인 내부 개조에 담긴 변화상과 건물 내부를 장엄하는 예술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글로 다채롭게 꾸며 보았다. 당시 왜 강진에서 수륙재를 지내야만 하는 절박한 사회적 요구가 불어닥치게 되었는지조선 전기 불전 내부 공간 변화상의 첫머리에 우뚝선 무위사 극락보전. 공양물 진설을 위해 보조단을 설치하는 불탁형 불단의 출현과 예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불단의 위치를 뒤쪽으로 이동시키는 이주법이 성행했고, 불전 바닥 마감도 전돌이 깔렸던 그 이전 시대보다 장시간 머물 수 있는 거주 편의시 설인 마루가 설치되었으며, 창호의 형태는 정면 대부분 흙벽 사이에 좌우 양협칸 살창과 중앙 어칸 판장문을 최소한으로 두는 고려시대에 비해 모두 분합문으로 바뀌는 등 개방적인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이처럼 불단이나 내부 공간 형태, 마루나 천장, 창문의 변화 하나하나뿐 아니라 최초로 등장한 삼존불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상의 첫머리 정점에 놓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는 긴 여정은 어쩌면 고행과도 같은 험난한 길일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미술사 전문서적들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처음 시도된 미술사와 문헌사의 만남. 그동안 줄기차게 지속적으로 시도된 사찰문화재, 유물과 문헌의 대화는 한여름 밤의 꿈으로만 그치지 않길 바라며 이 책을 계기로 그 대화는 계속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차례

 

머리말

 

1_광주 구 전남도청 일대 폐사지

01_광주읍내 철불ㆍ광주 관사 내 석등ㆍ고려 석탑재, 어느 절에서 유래되었을까

02_구 전남도청 일대, 광주읍성 이전 시기와 정유재란 직전 존속 폐사지

03_광주 관사 내 석등(재명석등) 명문 판독사 및 양식사, 석탑재

04_광주읍내 철불(증심사 철불), 원 소재지와 이전사

05_광주읍내 철불(증심사 철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06_대황사ㆍ약사암ㆍ십신사ㆍ유림수 미륵불ㆍ유림수 석비, 그 실체 추적

 

2_담양 개선사지 석등

01_개선사지 석등, 균형감 탁월한 비례미와 최고 앙련석 조형미

02_개선사지 석등기 판독 및 해석

03_개선사지 석등기 고증

04_개선사지 석등기 연구사

05_개선사지 석등기 석보평 위치 비정

06_개선사 사명 고증

 

3_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01_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암수 사자 석등을 이고

02_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일제강점기 현지조사

03_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일제강점기 외지 반출

 

4_화순 사자산문 터전 쌍봉사

01_쌍봉사 철감선사탑, 팔각과 원형의 안오금 조형성 극치미

02_쌍봉사 철감선사탑, 벙그러진 연꽃 속 가릉빈가 악기 연주

03_쌍봉사 철감선사탑, 사천왕상 승탑 수호와 공양주악비천상 사후 극락왕생 기원

04_쌍봉사 철감선사탑, 향화 공양과 헌화 의식으로 극락왕생 기원

05_쌍봉사 철감선사탑, 석조미술 진수 최고 걸작

06_쌍봉사 철감선사탑비, 함통명 비편이 발견되다

07_적인선사 혜철과 철감선사 도윤, 쌍봉사에 선종사상을 전하다

 

5_곡성 동리산문 태안사

01_적인선사 혜철, 동리산문 개창자

02_태안사 적인선사탑, 구성 요소의 완전성과 단정한 엄숙미

03_태안사 적인선사탑비, 광자대사탑비 이수 머리에 이고

04_태안사 광자대사 부도전인 서부도와 일주문(봉황대) 옆 부도전 등장 사연

05_태안사 적인선사탑비와 광자대사탑비의 파손 시기와 이유

06_태안사 적인선사탑비와 광자대사탑비 이수 뒤바뀐 유래

07_태안사 적인선사탑비 이수 양식사적 검토

08_태안사 적인선사탑비와 광자대사탑비 이수 전액

09_태안사 적인선사탑비 비()와 귀부·이수 홈 비교, 타격흔 관찰

10_태안사 적인선사비편 판독

11_태안사 광자대사탑, 단아하면서도 무심한 조형미

12_태안사 광자대사탑비, 적인선사탑비 이수 등에 지고

13_태안사 삼층석탑, 이중기단의 늘씬한 균형감

 

6_강진 월출산 무위사

01_무위사 수륙사 지정의 사회적 배경

02_무위사 극락보전, 수륙재 전문 특화 불전

03_무위사 극락보전, 쾌적한 공간 분할 창출

04_무위사 극락보전, 옛 사진과 극락보전 편액

05_무위사 극락보전, 수륙재 특화 불전으로의 변용과 장엄

06_무위사 극락보전, 내부 공간 구조 변화의 의미

07_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삼존불 등장 최초 사례

08_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후불벽화의 효시

09_무위사 극락보전 백의관음도, 양탄자 타고 하늘을 나는

10_ 무위사 극락보전 내벽 사면벽화, 극락세계 불국토 장엄

참고문헌 / 393

後記 / 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