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290
송재 박대업선생님과 시절인연 30년을 돌아보며, 곡성 죽동농악
-<상쇠 박대업의 삶과 예술 회고록>에 올리는 글-
김희태
곡성 죽동농악.
전라좌도 농악의 진수를 전승하고 있다.
그 선두에서 “연부역강(年富力强)”하고 계시는 죽동농악 인간문화재 송재 박대업 선생님.
그 인연을 돌아 본다. 얼추 30년이다.
목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20회 남도문화제. 곡성농악(성주굿) 상쇠로 나서 지휘자 역을 하시던 박대업선생을 처음 뵌 것 같다. 전라남도청의 문화예술전문위원으로 근무할 때이다. 남도문화제가 1992년 10월 22~23일 열렸으니 지금 이 무렵이다.
전남 도내 27개 시군에서 민요, 민속놀이, 농악 분야에 출연하여 경연을 하는 일종의 축제이다. 민속이나 문화는 나름의 특성이 있으니 등위를 겨룬다는게 어색하긴 하지만, 20년째 계속되어온 터라 신명을 다해 준비하고 경연을 했다.
옛 자료를 뒤적여 보니 그때의 해설문이 보인다. 당시 곡성농악은 박대업 등 상쇠 3인, 지동호 등 장고 3인, 백옥성 등 북수 수 2인 등 모두 50인의 죽동주민이 참여했다. 질굿, 문굿, 마당밟기, 성주노래, 정제굿, 장독굿, 샘굿 순으로 한판 굿을 했다. 박대업선생은 당시 46세. 연기상을 차지했다.
죽동농악이 처음 남도문화제에 참여한 것은 1987년 16회 때이다. 이어 1989년 18회 때는 죽동전라좌도농악 명칭으로 출연한다. 1998년 26회 때는 종합최우수상을 품에 안는다.
이같은 전승 실적을 바탕으로 2001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지정신청을 하여, 문화재전문위원 직임으로 현지 확인과 조사를 실시하였다. 1992년 목포에서 열린 남도문화제 만남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02년 3월 15일 전문가 조사를 실시하였다. 허경회 목포대교수, 나승만 목포대교수, 김혜정 경인교대교수가 조사를 하였다.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4월 2일, 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고시는 2002년 4월 19일이다.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35호 곡성죽동농악과 보유자 박대업이 일종의 고유명사로 등극한 것이다.
2016년에는 『곡성 죽동농악』을 농악학술총서5집으로 내는데 공동필자로 참여하였다. 공부 방향이 약간 달라 농악 분야 학술조사에 참여한다는게 조심스러웠지만, 송기태교수의 권유로 서문 격에 해당하는 곡성의 유래와 죽동의 역사편을 정리하였다.
여러번 죽동 현장을 갔고 박대업선생과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대업선생은 마을과 농악에 관한 내용을 하나라도 더 기억해 내려 하였다. 함께 해 주신 마을의 여러 어른들도 열정적이었다. ‘곡성 죽동농악과 함께한 현장과 공간, 사람’들이란 소제목으로 70개의 표제어로 정리했다. 민속원에서 간행했고 필자는 송기태·김현숙·박혜영·김희태.
이제 보니 한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 ‘죽동청소년농악단’이다. 1950년대말에 구성을 했고 단장은 신태식님, 쇠는 박대업님, 박양문님, 김우식님이었다. 스물두명의 명단이 『곡성 죽동농악』에 실려 있다.
어렸을 적부터 죽동농악대를 따라다니며 기창수님, 강순동님의 쇠치는 것을 보고 배웠던 박대업선생이 상쇠로 나온 청소년농악단. 중학교 다닐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사정에 따라 객지생활를 하다가 1982년 다시 죽동에서 생활하였다. 바로 시작한게 농악계의 결성과 죽동농악의 전승활동이다. 그로부터 오롯한 한길 40년, 어렸을적 쇠잡을 때부터로 치자면 70여년. 죽동농악과 함께 해 온 한길 인생이었다.
송재 박대업선생과의 지난 30여년의 시절인연을 돌아 보며, 그 일생을 정리한 대서사 회고록 끝에 후학으로서 예가 아님을 무릅쓰고 헌정의 글을 올린다.
*김희태, 송재 박대업선생님과 시절인연 30년을 돌아보며, <상쇠 박대업의 삶과 예술>, 사)죽동농악보존회, 2022.10., 6~7쪽
*방죽고을 한마음 축제 2022.10.30. 11:00~
1부 박대업선생님 회고록 출판기념회 2부 곡성죽동농악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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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 1982년 농악계 설립한지 40년, 무형문화재 지정 20년, 결혼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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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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