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25 - 무등산 증심사, 비가 내리네

향토학인 2016. 4. 25. 22:39

인지의즐거움025

 

무등산 증심사, 비가 내리네

-20150404 남도불교문화연구회 탁본조사 후기-

 

김희태 

 

無等山逢雨[證心寺]

증심사에 비가 내리네

 

滯雨無等山   (체우무등산)

무등산(증심사)에서 비에 멈추니

登臨可柰何   (등임가내하)

산 오를 일은 어쩌나

山靈如有意   (산령여유의)

산령이시여 뜻이 있으시다면

洗滌舊煙霞   (세척구연하)

저 묵은 산안개 걷어 주시구랴

 

일옹 최희량 선생

(逸翁 崔希亮,1560~1651)

일옹문집에 실린

오언절구 제영.

 

나주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분.

언제 쯤 이었을까?

임란 전일까?

아니면 전쟁이 끝난 뒤였을까?

1615년 쯤으로 치자.

400년전.

 

일옹선생은

무등산에 오르려고

몇몇 일행과 나선다.

어쩌면 교유하던

백진남(1564~1618)선생도

함께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삼당시인 옥봉 백광훈의 아들.

 

무등산 입로,

증심사 어귀에 이르자 비가 온다.

몸을 피할수 밖에.

증심사 취백루에 오른다.

이것 참!

난감하구만.

오래전부터 마음을 다지다가,

모처럼 길을 나섰는데.

해남에서 온 친구를 만나

나주에서 함께 한 길이건만....

저 길따라 왔는데...

 

저 산!

무등산을 어찌 오를 것인가.

별(等)이 없다(無)는 데,

비가 막는가.

산에 막히는가.

 

소재 노수신선생,

제봉 고경명선생

그분들도 이 무등산을 유산하고

증심사를 완상하셨다는데

그땐 막히지 않으셨겠지.

고개 들어 멀리 보니

비 들치는 처마밑엔 산안개만이

 

아! 그렇지!

무등산도 신산이라 했지.

고대에서 국제(國祭)까지 올렸지.

얼마전 읽은 기억이 새롭다.

나주 금성산신과 겨루기도 했고

 

그러면 이곳 산신의

영험함에 기대 보자.

무등산 신령이시여!

진실로 뜻이 있다면

저 산안개를 씻은듯 걷어 주소서

길을 터 주소서

무등산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고 싶나이다.

금성산을 조망하고자 하나이다.

 

눈에 보이는 경관으로

기승전결 구절따라

절구의 시상을 헤적여 보았다.

서정(敍情)으로 가자면

비는 전쟁일 수도 있겠다.

모든 어려움을 국혼으로 씻고

국가 재조(再造)의 길로...

일옹 자신으로 보면

학문도 가문도 세태도

막힘없이 트이라. 씻으라!

확연 廓然!

 

세월은 흘러 흘러

타임 머신을 타고 400년

을미년 4월 초사일

남불회원이 무등산에 오른다

불교문화유산 학술조사

이번에는 탁본조사

약사암(사)과 증심사 비군

불량계佛粮契 공적비 사적비

 

볕이 나지 않고

바람도 잦아 들어

탁본조사에는 더 없이 좋은날

밴드에 공지하고 문자로 알리고

17명이 사전에 참석의사를

그런데 웬걸

점심 공양 때 보니 22명

그야말로 문전 성시

아니다 밥상 만만(滿滿)이다

 

다시 오후 작업

꾸물거리고 바람이는데

할까 말까 하다가

무엔들 우릴 막으랴

그런데 한가지 논점

무등산신지위 無等山神之位

이 신체(神體)를 어찌하나

하자니 신령 영험에 어긋치고

말자니 조사가 먼가 허전하고

결론은 유보한 체 다시 재촉

 

몇 건을 하고나자

밤이 된듯 어둑 어둑

시침은 이제야 세시를 향하는데

어떻든 서두르자

선수들 나선다.

탁본계의 레전드

언제 병원 갔었느냐는 듯 호균님

여전히 질퍾한 생활언어 선종님

두 선배 바짝 긴장할만한 명호님

6학년 넘어도 벼루는 내가 춘규님

 

자진모리 쯤은 별거 아니다.

휘모리다.

아니 휘휘모리

따다 따다 따다다다닥 따다다

곧 온다. 끝나면 온다

자리를 준비해라

쏟아지면 덮어야 한다

차아 착. 칙. 찰칵

따다다다다

어울림 두드림

다시래기다

 

이윽고 “비”자를 치니 “비”온다

어쩌나

하긴 왼 종일 비(碑石)를 쳤으니

비가 쏟아 질 수 밖에 없지

빨리 빨리

덮어라

아! 그래도 다행이다

자리로 덮었으니

 

인간 기둥으로

하늘을 받쳐

아니 우주를 들쳐맨다

비석도 높낮이가 있더니

기둥들도 평주 고주가 섞였다

돛자리 아래서 마무리하여

비 한방울이라도 들칠까봐

조심 조심 탁본문을 접는다

접신接神의 경지이다.

 

400년전엔

누하樓下에서 비를 피하고

누상(취백루)에서 비 그치고

산안개 씻기기 기원터니

오늘엔 자리밑蓆下에서

비 들칠까 근심하며

신의 손으로 따다다

그런데

저 자리 위에 뉘 계시나?

 

무등산 신령 왈

공부 한다니 산 신위도 탁본해라

안하니 서운해 비를 보냈으니 명심

 

해산선생 가로되

워메!

졸라 고생해분다야.

나도 왕년에는 마니했는디

나 업서도 재밌게 사네

근디 비 핑게로 이차 갈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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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목포행 버스에서(김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