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23 - 5백년 묵은 화살대, 삼향 죽전(三鄕 竹箭)

향토학인 2016. 4. 24. 23:20

인지의 즐거움023


5백년 묵은 화살대, 삼향 죽전(三鄕 竹箭)

    

김희태

 

"저 건너 둥그마니 솟은 메가 '월출산'이여. '달래뫼'라고 불렀다제."

"머시여! '달래뫼'! 먼 뜻이랑가"


"그랑께 그거시 머냐먼. '달이 나온다' '달이 뜬다'는 뜻이락 하드만. 그라고 뫼 산"

"그라고 불르덩 거슬, 유식한 사람들이 한자로 쓰다 봉께 '달월(月)' '날출(出)' ‘뫼산(山), 월출산이락 했닥 하드만"


"그란디 밤에 뜨는 달(月) 보다도 산(山)이나 돌(달, 石, 巖) 솟아 나온 곳을 뜻했는데 언젠부터인가 달월(月)로 쓰고 그라고 불르다 봉께 뜻도 변해부렀닥 할까..."

"득고 봉께 말이 되네"

 

"그라믄 우덜이 앙거 있는 여그 삼향정, 그것이 도청 이사옴시로 지었닥 하기는 해도 먼 뜻은 없스까?

"그랑께. 꼭 먼 뜻이 있을거 가타"

"우덜 가치 촌놈(鄕)들 서니(三) 모여서 그라고 불르작 해 붕거 아니까"


"이라고 땔싹 큰 정각을 팔각정으로 만듬시로 그라고 대충 이름을 부쳐쓰까"

"듣고 봉께 그러네"


"강 건너는 영암, 여그는 무안, 쩌그 해너머 가는 쪽은 목포, 그래서 세개 시군이 관계댄닥해서 부쳐쓰까"

"그라고 봉께 여그 면 이름도 삼향이네"

"도청 이사 옴시로 사람이 늘어나 인자는 삼향읍이제"


"글고 보니 '삼향'이란 말은 검나 오래된 이름 같네"

"어야! 머라고 말좀 해 봐"

"그래도 자네씨가 머 좀 안담서"

"모다들 박사라 불르더구만. 먼 박산가 몰겄지만 좀 갈쳐 조 바. 잉"

 

해가 뉘엿할 무렵.

삼향정(三鄕亭)에 좌정한 세명의 길손들. 무안군 삼향읍 대죽도 중앙공원 팔각정.

머리가 희끗. 웬만큼 나이는 들어 보인다. 초로의 남정네들.

그냥 바람쐬러 온듯도 하다.

아니 먼가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멀리 동쪽을 물끄미 쳐다 보던 이가 '달래뫼' 이야기를 꺼낸다.

또 한 사람이 맞장구 친다.

이말 저말 맞춰가며 '삼향(三鄕)'에 대보려 한다.

 

"그거시 그랑께. 저 머냐먼, 한 오백년 되야부렀제. 삼향이란 말이“

"머시야. 그라고 오래되 부렀어. 그라먼 먼 뜻이라냐"

"아까 느그들 말 중에 영암, 무안, 목포 세곳 고을 말이 나왔는디. 그거하고 좀 비슷해야. 느그들도 어질뱅이 지랄뱅 된다고, 나 따라 댕기드만 통박으로 넘겨 짚긴 하구만"

"알았씅께 얼릉 말해 봐“

 

“아주 오래된 옛날에 이 일대에는 지금의 시군보다는 적은 행정 구역 단위가 있었는디. 향소부곡이라고 들어는 봤제. 보통 천민이 사는 곳 그렇게 알려졌는데, 꼭 그것은 아니고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기술집단 또는 특수한 산물을 생산하는 지역을 관리하는 곳 정도로 보면 될 거여. 여그 삼향은 조선시대 국용으로 쓰던 화살대(竹箭) 산지로 유명했제. 원래 극포, 임성, 군산 등 세곳의 부곡이 있어서 화살대 산지를 관리했는네 조선시대 초기에 세곳(三)의 부곡(鄕)을 합해 ‘삼향(三鄕)’이라 한 것이여. 그 기록이 나온 책을 찾아 봉께 1481년이드라. 그랑께 그 전에 삼향이란 말이 생겼단 말이제. 535년이 넘은 거여. 그란디 지금도 삼향이라 쓰고 있으니 그 질긴 역사성을 머라 해야 될끄나. 오래된 전통....”

 

“또 한가지는 이곳에서 생산된 죽전(竹箭)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했다는 것이여. 제일 강하고 튼튼하다 해서 궁중 진상용으로 썼다는 거여. 어느 정도냐 하믄 대나무가 자라는 것도 해마나 풍흉이 있을 거 아녀. 근디 진상한 물품이 질이 좀 안 좋거나 수량이 부족하면 관할하는 나주목사는 물론 전라도 관찰사까지 목이 나갈 정도도 였다고 해. 지금 같으면 도지나 시장군수가 해임된다고 할까. 어마 어마 하제”

“우와 무장 재밌네. 가만있자. 계속 잔 이야기 해주라.”

 

“근디 으째 나주목사라냐. 여그는 무안 땅인데, 무안군수나 현감 아니여”

“그거는 지금하고는 좀 개념이 달르제. 국용으로 쓰던 화살대라 중요하니까 자라도의 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큰 고을이었던 나주목에서 직영을 하였제. 말하자면 여그 삼향 사람들은 세금을 내도 무안군에 안내고 나주목에다 낸 것이여. 경계 지역을 넘어서 있다해서 월경처(越境處)라고도 하제. 조선시대 전 기간을 나주목에 속했제.”

“거 묘한 제도구만. 글먼 언제 무안군에 속했당가”

 

“1906년이여. 전국적으로 그처럼 뛰어 넘어 있거나 들쭉 날쭉한 지역을 다 정리하제. 나주 삼향이 무안 삼향이 된 거여. 그로부터 100년 지나 2005년에 도청이 왔제. 또 전남의 중심이 된 거여.”

 

“근디마다. 전라도관찰사로 삼향 죽전을 방문했던 김종직선생은 ”삼향 화살대는 천하에 이름났다“고 시를 읊기도 했제. 그렇게 좋닥하고 알려졌건만, 500년 가까이 화살대를 생산하면서 자연재해 등 흉년이 들어 생산량이 줄거나 질이 안좋다에 해 나주목사나 관찰사가 해임될 정도면, 그 때는 이곳 삼향 촌민들은 얼마나 핍박을 당했을까 생각해보니 억장이 무너져. 그리고 그들의 생활사를 한번 파보고 싶어. 그래서 내가 지금 준비중인게 있어. ‘500년 묵은 화살대’”

 

 

조선초 성리학을 이룬 대학자 점필재 김종직선생(1431~1492은 쉰일곱 나던 1487년(성종 18년) 5월 27일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는 데, 순행길에 들려 나주의 사적과 명소, 물산을 소재로 <錦城曲> 칠언절구 12수를 짓는다. 일곱 번째 시에서 “삼향의 대화살이 천하에 소문나니(三鄕竹箭聞天下)”라고 읊고 있다.(4행)

 

무안 남안신도시 대죽도 중앙공원 삼향정(2008-2009 건립)

* 본 서사(敍事)는 향토지명 “삼향”과 토산물 “죽전(竹箭)”을 소재로 그 연원을 찾으면서 가공의 인물들을 내 세워 조선시대 당시 화살대의 생산, 제작, 유통, 생산 향민의 생활사, 궁중 활용, 관찰사 방문 등을 약간의 창작을 가미해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 김희태 외, 삼향 죽전(三鄕 竹箭) 향토지명과 토산물의 문화자원화 방안, <향토문화>34,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15. 160~193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