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24 - 사진 향토사와 <전남사진지>(1917)

향토학인 2016. 4. 25. 22:19

인지의 즐거움 024

 

사진 향토지를 꿈꾸며

-<전남사진지>(1917)와 사진 향토사-

 

김희태

 

1917년 10월에 간행된 <전남사진지(全南寫眞誌)>,

 

<전남사진지>는 1917년 당시 전남 23개 부군(府郡)별로  편차하여 공공기관, 경관, 명소, 산업, 유산 등의 사진 4~20개를 실었다. 사진의 해설도 길게 기록하여 당시의 사회사정이나 연혁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지역별로 보면 목포부 12, 광주군 20, 담양 4, 곡성 4, 구례 6, 광양 7, 여수 4, 순천 4, 고흥 4, 보성 4, 화순 4, 장흥 11, 강진 4, 해남 7, 영암 7, 부안 12, 나주 11, 함평 4, 영광 4, 장성 4, 완도 4, 진도 4, 제주 8장 등 모두 151장이다. 이 가운데 하나의 설명문에 사진이 2개(축소 사진 포함)인 곳도 있어 낱장 사진으로 보면 162장이다. 장흥 줄당기기, 무안(현 신안) 염전 사진 등은 지금까지 알려진 이 분야 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보인다. 그만큼 중요한 역사현장을 담고 있는 사진자료집이라 하겠다.

    

무안 압해면 대천리 염전. 현재의 신안군. 천일염 이전 전통 소금생산 방식 화렴(자렴)의 가장 오래된 현장

<전남사진지> 무안군편 설명 :  압해면 대천리에 있는 염전의 일부(押海面 大川里 所在 鹽田一部)

소금은 무안군 특산물의 하나로 육지부 현경, 망운, 해제 3개면과 도서지방 15개면에서 거의 생산된다. 총 면적은 230정보에 이르며 가마수만도 278개로 연 4,170,000근을 생산한다. 군에서 소비한 것을 제외하고는 영산포, 목포, 전라북도 홍경, 경남지방 등으로 팔려나간다.

 

<전남사진지>는 1917년에 목포에 주소를 둔 목포신보사에서 발행한 것인데, 인쇄는 일본 도쿄(東京)에서 하였다고 한다. 발행자 산본정일(山本精一)은 <신문지요람(新聞紙要覽)>(1926)에는 목포신보(木浦新報) 발행인,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직원록>(1930년판)에는 함흥심상소학교 훈도로 나오며, <조선 은행회사조합 요록(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 1931년판과 1942년판에는 목포신보광주일보(주)의 이사, 1933년판·1935년판·1937년판에는 목포신보광주일보(주)의 목포신보 주간으로 등재된 기록이 확인된다.

 

 <전남사진지>의 발견 경위와 그 이후의 활용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해 두는 것도 향토사 자료의 소개를 위해서 필요할 것 같다. 1990년도 초반에 나주시 김종순, 윤지향 학예사로부터 <전남사진지> 책의 소재에 대한 제보를 받고 대출하여 당시 전라남도 문화공보담당관실 사진 담당선배님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접사 촬영을 하였다. 당시 책의 소장처는 나주터미널 앞 국도1호변 나씨가로 기억된다.

 

그때 생각으로는 이 사진과 그 위치를 찾아서 찍은 사진을 곁들여서 1917년 사진과 설명, 변화된 모습의 사진과 설명, 위치 등을 정리 편집한다면 <사진향토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진향토지에 대해서는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강수의, 장흥군·장흥문화원, 1995), 《전남 100년 : 開道 100주년 기념 사진집》(전라남도, 1997 ; <전남사진지> 23건 수록)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사진의 정리와 편집, 해설 등을 한바 있다. 앨범에다 사진 접사 인화본을 책의 순서대로 편집하고 설명문 복사본을 해당 사진 항목에 편집하여 함께 볼 수 있도록 자료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설명문은 번역이 필요하여 서울 중앙대 일어일문학과에서 공부하던 지인에게 부탁하여 초역을 하였다. 초역문은 출판사(향지사, 김경수)에 의뢰하여 입력 작업을 하였고, 이를 다시 교정한다고 준비하다가 마무리 하지 못하였다. 그러기를 20여년....

 

<사진향토지> 논의는 윤여정선생, 김경수소장과 하였는데 이루지 못한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다시 책의 소재를 수소문하니 분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출판사 입력자료도 남아 있지 않아, 출판사 입력본을 다시 HWP 파일로 입력을 하였다. 그렇게 저장된지도 십수년이다. 이태전 사진자료를 디지털하는 작업을 윤여정선생, 김경수박사와 다시 논의하게 되었다. 윤여정선생께서 친히 스캔작업을 해 주었는데, 한참 지나 파일을 살펴보게 되었다.

 

장흥 보름줄다리기에 대한 학술조사 논의가 있어, <전남사진지>에 실린 장흥 줄다리기 사진을 참고하기 위함(2012.2)이었다. 그러다가 앨범 자료집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면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는데, 문득 눈에 띠는 사진이 있었다. 무안 압해면 대천리의 염전 전경사진. 지금의 신안군 압해면. 염전 분야 연구자(전남발전연구원 김준박사)에게 문의 하니 1910년대 염전 사진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 하였다. 현재는 천일염전이지만 그 이전시기의 화렴 현장 사진으로 아마도 가장 오래된 사진일 수도 있다는 대화를 하였다. 염전 역사에 있어서 귀한 사진인데, 여태껏 집에 두고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유산 추진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책의 소재처를 김종순선생, 윤지향선생을 통하여 탐문하였으나 소재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몇몇 지인에게 사진자료 일부를 공유하고자 보냈더니 최성환선생(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이 연락을 해 와 앨범 자료와 사진 파일자료를 보면서 토론(2012.3.19)을 하게 되었다. 목포 하당의 부영아파트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서로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자료나 현장에 대해서 사실은 새로운 정보가 된 것이 많았다. <전남사진지> 자료는 아니지만, 1910년대 ‘데라우찌’의 목포방문 관련 표지석(현 무안 애중원소재, 윤여정 촬영 제보) 등등. <전남사진지> 사진도 목포 부분, 나주 부분(나주시,《羅州近代百年史 : 신문자료집성(1887-1960)》, 1997)은 소개 되었고, 광주일보에서 간행한 <월간 예향>에도 소개 된 바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도 하였고....

 

그리고 <전남사진지> 책의 순서대로 사진 파일을 정리(확인)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되면 파일을 보내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 또 다시 십수년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인지라, 바로 자료를 넘기면서 순서 확인과 정리,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함께 논의 해 보자고 하였다. 바로 다음날 정리한 자료를 보내 왔다. 시간을 지체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과 함께.

 

다시 몇 가지 수소문 해 보았다. 당초 제보한 김종순(나주시청 문화재관리 팀장), 윤지향선생(나주시청 학예연구사)에게 경위를 알아 보았다.(2012.03.21) <월간 예향>에 소개된 자료를 보고 탐문하여 나주 개인 소장자를 찾을 수 있었고, 시청에서 접사 촬영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본 사진 접사 촬영을 두 곳에서 한 셈이다. 나주 김종순, 도청 김희태.

 

이제 생각하니 그때 그때 필요한 사진을 앨범에서 때 내어 쓰거나 제공하였다. 벌교 홍교 조사작업시 제공한바 있는데, 출전 표기없이 조사보고서 표지사진(보성군, 《벌교홍교 지표(유구)조사 보고서》, 1999)으로 나온 적도 있다. 그리고 이해준교수의 저서 《역사속의 전라도》의 운주사 전경사진(2006년 초판 3쇄. 96쪽), 전남대박물관의 《운주사자료집성》의 운주사 전경사진(2009, 화보사진) 따위로도 제공하였다.  그런데 자료 관리가 안 되어 때내어 쓴 사진이 돌아 오지 않았거나 제자리에 끼워 넣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필자가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자료에도 출전없이 실린 경우도 있었다. 최근 광양에서 나온 《광양 김 시식지 :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김 시식지 유적 보존회, 2008)에는 ‘해태개량전습(海苔改良傳習)’ 사진이 출전 표기 없이 ‘조선시대 말기’의 사진으로 시기까지 잘못 소개 되었다. 이럴수록 <사진향토지>를 냈어야 했는데 생각만 더 간절할 뿐, 진척은 못하고 예까지 이르렀다.

 

윤여정선생이 스캔작업을 할 때는 내가 정리해 둔 앨범자료와 안재철선생(당시 영해문화재연구원)이 소장한 사진 자료를 함께 정리하면서 했다고 한다. 안소장이 소장한 자료가 나주시 접사자료(김종순팀장, 윤지향학예사)인듯 싶다. 그리고 김종순팀장을 통해 사진자료를 어느 대학교 조사진에게도 제공한 적이 있는데, 돌아 오지 않은 자료도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다음으로는 <월간 예향>에 언제쯤 실렸을까를 찾아 보았다. 김경수박사(향토지리연구소장)가 <월간 예향> 목록자료를 검색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한적 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바 있어 검색을 부탁했다. 한편으로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월간 예향>이 보관되어 있어 찾아 보았다(2012.03.24 토). <월간 예향>에 실린 것은 창간호인 1984년 10월 목포로부터 1985년 9월까지 1년간 특집 연재.

 

《예향》연재물 ‘70년전 독점 사진 발굴 시리즈’

고장

호수

쪽수

고장

호수

쪽수

강진

1985년 11월호

146-147

순천

1984-12

142-143

고흥

1985-4

144-145

여수

1984-12

138-141

곡성

1985-3

157-158

영광

1985-2

144

광양

1985-9

144-145

영암

1985-6

151-153

광주

1984-11

132-137

완도

1985-9

142-143

구례

1985-9

146-147

장성

1985-2

142

나주

1985-6

148-150

장흥

1985-4

140-141

담양

1985-3

154-155

진도

1985-1

142-143

목포

1984-10

126-133

함평

1985-2

146

무안

 

 

해남

1985-1

144-145

보성

1985-4

142-143

화순

1985-3

156-157

 

* 자료 제공 : 김경수향토지리연구소장

 

그리고 예전에 입력해 둔 <전남사진지> 설명 초역자료 파일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설명문 초역 자료를 보니, 말 그대로 초역본인지라 손 볼 곳이 많다. 그리고 초역 당시 출판사 입력본을 수정한다고 표시한 것도 눈에 띤다. 우선은 <전남사진지> 원문 그대로 직역한 자료로 정리하고, 추가 설명이나 현 위치, 변화된 내용 등은 따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남사진지>를 통해 본 도서해양생활사 연구, 대학원 수업과 발표

 

2013년 상반기는 ‘사진기록’과 관련해 정말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최성환 교수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도서해양문화학 석사과정 2013년 1학기 “도서해양생활문화사” 과목 강의 세부목표를 ‘『전남사진지』를 통해 본 도서해양생활사 연구’로 잡고 수업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대학원의 한학기 연구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실로 큰 진전이다. 얼마나 바라고 기다렸던 것인가! 그리고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2013년 6월 10일 15:00~18:00 목포대 교수회관 2층에서 도서문화연구원 신진연구자 발표회를 한 바 있다. 관련지역은 목포항, 여수항, 진도, 완도, 신안, 법성포, 위도, 제주’이며 발표주제는 ’경관, 항구, 파시, 시장, 어업, 농업, 해녀, 염전, 교통‘ 등이다. 참여자는 다음과 같다.

 

○ 최성환, 1917년 『전남사진지』의 자료적 가치와 연구방향

○ 박수홍, 사진을 통해 본 진도의 도서해양생활사-진도읍, 진도시장, 섬과 농업-

○ 오경문, 사진을 통해 본 신안의 도서해양생활사-섬과 염전, 태이도 어장, 흑산도 파시-

○ 고윤정, 사진을 통해 본 법성포와 위도의 도서해양생활사-법성포, 위도어장, 안강망어선-

○ 박영균, 사진을 통해 본 완도의 도서해양생활사-완도항, 청산도 청어, 어업전습-

○ 조운경, 사진을 통해 본 진도의 제주도의 도서해양생활사-제주항, 해녀, 전통어선-

○ 이성운, 사진을 통해 본 목포의 도서해양생활사-목포항과 교동, 수원지, 육지면 재배-

○ 김은주, 사진을 통해 본 여수의 도서해양생활사-여수항, 종포항과 타뢰망어선,키조개어업

○ 탁현진(사회), 박선미·최미영(호남권한국학센터), 신동범·한은선(도서연구원, 이상 토론)

 

 

최성환교수의 열정과 대학원생의 노력에 감사드린다. 한가지, 향토학 현장에서 여러 가지 자료를 더듬고 현지를 탐사하는 일을 해 온 사람들, <전남사진지>를 찾아내고 <사진향토지>를 꿈꿔온 사람 등, 이 ’토론자‘ 형식이든 ’현장 목소리‘라는 형식이든 함께 참여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다.

 

다시 2014년 7월말과 8월 사이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수리 논의 과정에서 <전남사진지>를 또 한번 살펴보았다. 사사삼층석탑 사진도 있어 남도불교문화연구회 밴드(http://www.band.us/#/band/hdndynpv)에 올리면서 화엄사에 대한 다른 자료도 찾아 보았다. 1956년 6월 15일에 당시 대통령 부부가 화엄사를 방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보국의 화엄사 사진자료나 ‘대한늬우스’로 제명된 화엄사 방문 영상(5분 45초)도 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립나주박물관에서 '유리건판 사진으로 보는 남도 사찰의 옛 모습 특별전'(2014.07.15~08.17)을 개최하여 관람하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1910~1935년 유리건판 사진 42점. 이들 사진들이 모아 진다면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사진향토지>를 뛰어 넘어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 변천사> 또는 <역사현장 변화상>을 알 수 있는 ‘눈으로 보는 역사기록자료집’이 탄생할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침 국립나주박물관의 ‘옛 사진전’의 연장선에서 전남대박물관에서 사진전을 열 계획이라는 정보도 알게 되었다. 외우 황호균 학형(전남대박물관 학예실장)과 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성균관대 유리원판, <조선고적도보>, <전남사진지> 등을 종합하여 사진전을 하면 더 좋겠고, 가능하다면 현장 비교사진, 설명 해제, 도록 발간 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서로 하게 되었다. 또 한발 오랜 꿈에 더 가까워진 셈. 문제는 시간과 예산. 더 노력해 보기로 하자 하면서 <전남사진지>의 완판 파일을 공유하게 되었다. 앞의 발견경위와 활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에서 말한, <전남사진지> 책자 복사 제본본, 개별 사진과 설명 스캔 파일, 해설문 국역 초고본 등을 황실장에게 제공하였고, <전남사진지> 완판 파일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 직접 작업을 해 주었다. 사진 스캔본이 없는 것은 <전남사진지> 책자 복사본에서 우선 스캔하여 표지부터 판권까지 순서대로 편집하여 컴퓨터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PDF파일 작성 작업을 그 바쁜 와중에도 직접 해서 보내 왔다. 지금가지 여러사람의 노력들이 한걸음 진전된 것이다. 곳곳에서 여러 사람이 거드니 힘과 지혜가 모아져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발견과 전래 경위를 적는 것은 기억과 기록의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간 예향>에 소개되고 나주의 동학(同學)이나 필자가 원본을 촬영한지 30년이 채 못 되었다. 그리고 역사, 현장, 인물, 사료, 유산 등을 대상으로 하여 현장에서 뛰는 일이 기본 업이다 그런데도 하나씩 정리해 보려니 기억이 혼란스럽다. 필자의 성격상, 처음 나주에서 대출할 때, 그 날짜나 소유자, 소재지 주소를 어딘가 적어 놓았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딘가’를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찾아질 것이지만 안타깝다. 하여 그 전말을 몇 줄 글로 정리 해 둔다. 제보와 자문을 기대 해 본다.

 

* 2015년 10월, 이십수년전부터 생각해 온 사진 향토지 초고를 정리해 보았다. 1917년 함평 사진 4장을 중심으로 몇번이고 현지 탐문과 확인, 촬영을 거치면서.... 원고 독촉을 하면서 기회를 준 함평향토문화연구회측(나홍채고문, 고송주회장, 신영호 전문위원)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 오랜 세월만이니 발동이 늦게 걸리는 것은 천성인 모양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 아닐까.

* <전남사진지> 자료를 입수한 이후 필요하다고 생각한 분들이나 요청이 오는 경우에는 제공을 하였다. 자료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분명 '활용'을 한 것은 같은데, '자료제공' 표기는 안하더라도 그 '결과'라도 알려 주는 것은 도리가 아닐까 싶다.

* 연전에 <전남사진지> 원본이 확인되어 구입 논의가 있었다. 최성환교수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성사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2016년 4월 광주의 지인에게서 원본을 입수했다는 소식을 또 들었다. 다시 길을 나서야 겠다.  

 

 

 

 

 

 

김희태, 100년 전의 함평 경관, 읽기와 쓰기-<전남사진지>(1917)와 사진 향토사-, <함향>10, 함평향토문화연구회, 2015. 112~150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