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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화재 -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보물 지정예고, 20210831

향토학인 2021. 9. 1. 03:40

새문화재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보물 지정예고, 20210831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은 경북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불상으로서(평균 높이 약 3.3m), 색난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황전의 창건과 불상 조성은 화엄사의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불사(佛事)로서, 전각명도 왕실로부터 하사받아 이때부터 장육전에서 ‘각황전’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불상 조성에 있어 숙종을 비롯해 측근 왕실인사들인 인현왕후(仁顯王后, 숙종의 계비), 경종(景宗, 당시는 세자), 숙빈최씨(淑嬪崔氏, 숙종의 후궁), 영조(英祖, 당시는 연잉군延仍君)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권세 있던 가문의 인물들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 최대의 왕실불사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에 의해 7존(尊)의 불보살상은 1703년 10월 4일에 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협업해 만든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여래좌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雄遠),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秋朋), 지적보살상(智積菩薩像)은 추평(秋平)이 각각 주도하여 조성한 사실을 통해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과 그 제자들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입증해 준다.

 

* 지적보살: 다보여래를 따라 석가여래의 법화경 설법자리에 왔다가 문수보살과 성불(成佛)하는 일은 논한 보살

 

화엄사 각황전은 거대한 이층전각의 목조건물로서, 여기에 봉안된 불상 또한 규모에 맞는 웅장함과 형태미로 조성되었다. 주존불인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당당하고 묵직한 형태에 신체에 비해 큰 네모난 얼굴로 압도적이면서도 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삼불좌상의 좌우에 서 있는 사보살상은 유사한 얼굴과 비례를 보이면서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여래와 보살의 조형성은 전각 내부를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이끄는 효과를 보이는데 이는 색난의 우수한 감각과 조각기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화엄사 각황전 불상은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석가·다보·아미타여래 삼불상과 석가여래의 좌우협시로 석가의 협시보살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다보여래의 협시보살로 지적보살이,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 관음보살이 짝을 이룬 도상이다.

 

이는 1665년 간행『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의거한 ‘법화거불(法華擧佛)’, 즉 법화신앙에 바탕을 둔 불교의식집에 등장하는 도상의 최초 조각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협시보살(脇侍菩薩): 본존불을 옆에서 보좌하는 보살

 

이처럼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40여 년 동안 수화승으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이자,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는 점,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춘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 문화재청, 전라남도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