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국가유산

새문화재 - 여수 오충사와 이순신 자당 기거지 - 전남 문화재자료 지정예고, 2021.05.27

향토학인 2021. 5. 28. 12:25

새문화재

 

여수 오충사와 이순신 자당 기거지 - 전남 문화재자료 지정예고, 2021.05.27

 

〇문화재명 : 여수 오충사와 이순신 자당 기거지(麗水 五忠祠와 李舜臣 慈堂 起居址)

지정종별 : 문화재자료

소 재 지 : 전남 여수시 웅천로 354(웅천동 624) 일원

시 대 : 오충사(1923년 복설), 정대수 비(1881년), 이순신 자당 기거지(조선)

면 적 : 3필지, 964.56㎡

소유자(관리자) : 압해정씨월천공파종친회, 여수시

 

지정 예고 사유

 

- 1847년 가곡사로 설립한 뒤 1868년 훼철되었고, 1923년 현 위치에 오충사(정면 3칸, 측면 1칸)로 재건립하여 충무공 이순신, 정철, 정린, 정춘, 정대수 등 다섯 충신을 배향한 호국 유적

 

- 영의정 홍순목이 비문을 지어 1881년 세운 정대수 비는 임진정유 난 때 참전 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금석문 자료

 

- 이순신의 모와 가솔들이 압해정씨 집안의 도움을 받아 약 4년간 피난 생활을 했던 ‘이순신 자당 기거지’는 이순신의 지극한 효심을 알 수 있고, 오충사와 관련된 역사유적으로 가치 부여

 

여수 오충사 정대수비 제액(전서) - 贈兵曹判書丁公墓碑

여수 오충사 전경 - 오충사와 정대수비
오충사 전경

이순신 자당 기거지 발굴조사 완료 후 평면(영해문화재연구원/여수시)

『난중일기』의 1593년(癸巳) 6월 1일 기록(좌 3행~)

이순신장군의『난중일기』1593년 5월 18일조에 “목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종이 해포(아산 해안)에서 왔다. 어머님께서 편안히 잘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답장을 써서 보내고, 감곽(미역) 5동을 집으로 보냈다.”라 되어 있어 이때는 아산에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1593년 6월 1일자 일기(사진)에는 “아침나절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님의 편지도 함께 왔는데 평안히 잘 계시다고 한다. 다행이고 다행이다. 아들의 편지와 조카 봉(拳)의 편지가 함께 도착하였다.[六月初一日甲申, 朝探候船入來, 天只簡亦來, 則“平安云”, 多幸多幸 豚簡 及 拳简 并至]“라고 기록되어 있다. 탐후선은 지방에서 출전한 부대와 연락을 위해 정찰과 물자보급을 담당하며 오가는 작은 배이다. 이 탐후선을 통해 연락을 받았다는 것은 어머님이 1593년 5월 18일 이후 전라좌수영 본영 관할 내로 왔음을 뜻하는 것이고, 그 기거지가 송현마을에 있다.

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도체찰사 이원익에게 근친 휴가를 얻기 위해 보낸 글에서 “…저에게는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어 올해 여든 한살이온데 임진왜란 첫 무렵에 모두 함께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어쩌다가 혹시 구차하나마 보전해볼까 하고 온 집안이 바닷길을 따라 남쪽 순천부 경내에 붙어 살았습니다.…[某有老母。今年八十有一。當壬辰之初也。怯於俱焚。幸於苟全。遂以一家浮海而南。寓於順天之境。于是之時。以母子相見爲榮而不暇計其他矣。]”라 하여 당시 순천부 경내(현 여수 송현마을)에서 우거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이충무공전서』上體察使完平李公[元翼] 書, 한국고전종합DB 원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