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070
(민학회답사, 1990.03)
백암산 황매화야 저 혼자 피고진들 어떠하리만
-백암산과 황룡강-
김희태·박순천
황룡강 상류를 찾아
산을 말할 때 높이를 말하듯 강을 이야기할 때는 길이를 갖고 비교한다. 지금까지의 기록에서 보면 영산강의 발원지는 책마다 글마다 다르다.
조선 초기의 방대한 인문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기록을 보자.
“(전라도의) 대천은 남포진이 나주에 있는데, 그 수원이 셋이 있다. 그 하나는 담양 추월산의 물이 창평현을 지나 무진(茂珍 ; 광주)의 북쪽으로 들어가 창평현의 남쪽물과 합하고, 뚜 무진성 서쪽물과 어울려 서쪽으로 흐른다. 그 하나는 장성의 위령(葦嶺)의 물이 진원현(珍原縣) 서쪽과 나주 북쪽 경계를 지나 옛 내상성(內廂城)의 남쪽을 거쳐서 생압진(生鴨津)에 이르러 무진 북쪽 경계의 물과 합하여 나주의 동쪽을 지난다. 그 하나는 능성 쌍봉(雙峯)의 물이 남평현 북쪽을 지나 또 나주의 동쪽 경계의 물과 합하여 남쪽으로 돌아 서쪽으로 흘러서 남포진이 되어 나룻배로 사람을 건너게 되고 무안현 동쪽에 이르러 대굴포가 되고, 또 서쪽으로 흘러서 영암군의 운적산 기슭을 지나 목포가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하도(下道)의 조운(漕運)이 이곳을 경유하여 서울에 이른다.”(세종장헌대왕실록 제 151권, 전라도조)
“광탄(廣灘) : 그 근원이 여덟이다. 하나는 창평현 무등산의 서봉학(瑞鳳壑)에서 나오고, 하나는 담양부의 추월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노령에서 나오고, 하나는 광주 무등산 남쪽에서 나오고, 하나는 능성현 여점(呂岾)의 북쪽에서 나온다. 이것들이 모두 나주의 북쪽에 이르러 (용진산 및 영광 수연산에서 나오는) 작천·(도야산에서 나오는) 장성천과 합류하여 나주의 동쪽 5리에 와서 광탄이 된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 35권, 나주목 산천조)
이들 기록은 영산강의 각 지류와 발원지를 적고 있다. 두 기록 모두 담양의 추월산을 한 가닥으로 잡고 있다. 이미 지난(1990년) 2월 영산강문화유적조사 발대식을 했던 용추봉(용소)이 발원지의 한 곳임을 답사했던 터라 위 기록을 그대로 따르기는 문제가 있긴 하다.
물론 추월산도 용추봉도 아닌 병풍산 쪽재골이라는 한국 하천연구소의 조사도 있다. 이 쪽재골의 물은 장성호로 흘러 들어 황룡강을 타고 흐르는, 즉 극락강이 아닌 황룡강이 영산강의 본류라는 것이다.
위 두 책은 황룡강의 발원지를 과 백암산으로 각각 적고 있다. 민학회의 두 번째 영산강 답사지는 바로 이 황룡강의 상류이다.
황룡강은 장성고을을 적시며 흐르는 탓에 장성의 역사나 지리조건과 연관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백암산 황매화야 저 혼자 피고진들 어떠하리만
장성군의 수계(水系)는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황룡강의 본류와 북하천·약수천·문암천 등의 지류로써 고을의 중앙부를 적신다. 두 번째로 극락강의 지류인 진원천·산정천·평산천 유역으로 진원면·남면 지역이다. 세 번째는 고막원천의 상류인 유평천·대도천 유역으로 고을의 서남부에 해당한다.
황룡강은 백양사를 안고 있는 높이 721m의 백암산에서 발원하여 이 산의 남사면을 급한 경사로 흐르다가 약수천이 된다. 다시 서쪽으로 높이 677m의 가인봉을 넘어서 약수천과 병행하여 남창골에서 입암천이 장성호로 흘러든다. 이 두 소지류는 국립공원 백암산일대의 수려한 관광지를 이룬다.
이들 소천이 장성호를 지나 1km쯤 남으로 흐르다가 동쪽에서 흘러드는 덕진천과 만나고, 장성읍 부근에서 월계천과 합류한다. 월계천은 서쪽에서 흘러온 황룡강의 지류로서 호남선철도·고속도로와 병행하여 흐르는 소천으로 전남북의 경계인 노령에서부터 흘러온 줄기이다. 상류는 개천이라 부르고 이 지류의 작은 지류에 해당하는 청천은 방장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노령의 서쪽 자락을 적시다가 황룡강으로 흘러 든다.
극락강의 지류인 진원천·풍수정천·평산천·용산천·학림천은 길이 3~8km의 소하천으로 병풍산지에서 근원하여 극락강 본류로 흘러 든다.
고막원천의 상류는 유평천과 대도천으로 해발 고도 40~60m의 저평지를 이루며 황룡강과의 분수령도 60~80m의 낮은 고도에서 이루어지므로 망상의 하계망을 형성한다.
이처럼 산줄기와 지세를 따라 물길도 달랐던 탓에 장성의 문화양상도 차이가 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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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과 어로·원시농경을 생활기반으로 했음직한 선사시대인들의 묘인 고인돌이 고막천 상류인 삼서·삼계지역, 황룡강의 장성읍·북이·북하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진원지역만은 예외적으로 고인돌이 많지 않다.
백제시대 이래 장성지역은 세 곳의 치소가 있었는데 황룡강이 흐르는 중앙부의 고시이현(古尸伊縣 ; 岬城郡→장성), 극락강 지류인 진원면 지역의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 ; 珍原), 고막천 상류의 남부지역의 소비혜현((所非兮縣 ; 森溪) 등이다.
이처럼 세 곳으로 나뉜 치소는 고려말까지 지속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삼계현은 없어지지만 물길과 관련깊은 조창(漕倉)은 전라도 지역에 나주 영산창·영광 법성창·용안 덕성창 등 세 곳이 있는데, 장성은 법성창에, 진원은 영산창에 속하여 인근지역이면서도 서로 다른 면이 나타난다.
백암산 황매화야
저 혼자 피고진들 어떠하리만
학바위 기묘한 景 보지 않고선
造化의 솜씨일랑 아는 체 말라
노산 이은상(1903~1982)이 호남의 명승지로 대한팔경에 손꼽았던 백암산을 노래한 구절이다.
백암산은 입암산이나 전북의 내장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국민관광지인 장성호도 있다. 이 백양골에는 백양대찰(白羊大刹)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얀 학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이다는 학바위와 쌍계루, 운문암, 영천암, 약사암, 감로암, 대웅전, 비자림, 비림(碑林), 용수탕, 천진암, 청류암, 봉황대 등 백양 12경이 절경을 이룬다. 또 쥐골, 청류동계곡 등 4대 계곡과 금강폭포·용수폭포·용남폭포 등 3대 폭포가 비경을 이룬다.
특히 운문암은 전국 사찰터 가운데 3대 명당의 하나로 손꼽히며 고려 충정왕 때 각진국사 복구(覺眞國師 復丘 ; 1270~1355)가 개창한 곳으로 한 때 백파선사 긍선(白波禪師 亘琁 ; 1767∼1852)이 주석하며 선강법회(禪講法會)를 열어 유명한 곳이라 한다.
청류암은 백양사의 제 15대 주지 청수선사, 제 25대 환양선사, 제 26대 소요대사, 제 35대 도암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이 주석하여 선도를 이룩한 청정도량이다. 정면 7칸 측면 1칸의 관음전이 있다.
입암산은,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를 가르면서 예부터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다. 이산 서쪽의 갈재(蘆嶺)는 호남정맥을 관통하여 남북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이자 전남의 관문이다. 산 정상에는 입암산성이 있다. 광주민학회에서는 지난해 8월 답사한 바 있다.
남창골의 6대 계곡(산성골, 은선동, 반석동, 하곡동, 자장동, 내인골)의 물줄기가 장성호로 모여든다. 갈애바위의 애달픈 사연과 원덕리 미륵의 벅수같은 눈짓, 전일귀의 지극한 효행이 깃든 효자비의 매무새도 물길따라 반긴다.
입암산이 갈재를 건너 뛰어 높이 750미터의 방등산(방장산)을 만드는데 백제가요 방등산가(方等山歌)*의 산실이다. 이 성의 도둑떼에 붙잡혀간 ‘長日縣’(장성?)의 아낙이 지아비가 곧 와서 구해주지 않는 것을 풍자하여 지은 노래인데 가사는 불행하게도 전하지 않는다. 이 곳의 물줄기는 장성읍의 기산리에서 본류와 합류한다.
문필의 기운이 곳곳에 서린 장성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장성의 하천으로 문필천(文筆川)이 나온다. 문필천,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과 통함직 하다. 수많은 문인들이 나온 곳이라 하천 이름마저 문필천인가. 장성이 낳은 큰 인물 하서 김인후(1510~1560)가 필암(筆巖)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구전과도 비교된다. <동국여지승람> 편찬이 1481년이고 그 증보판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이 1530년인 것을 보면 이미 문필의 기운은 황룡강의 물굽이를 따라 장성의 곳곳에 서려있었던 듯 싶다.
하서 김인후를 모신 필암서원은 1590년(선조 23)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되었고, 1662년(현종 3) 필암이라 사액되었으며, 1786년(정조 10) 하서의 사위인 고암 양자징(1523~1594)을 추배하였다. 통안천과 관동천이 휘감아 도는 필암서원의 춘향제는 2월 중정일인데 올해(1990년)는 3월 11일에 있었다.
전남의 문학권을 광주·나주·담양·장성·화순과 장흥·해남·영암·강진, 그리고 순천지역 등 크게 세 지역으로 가르는 이도 있다. 첫 번째 지역은 면앙정시단·성산시단이 이름 높고 지연이나 혈연으로 치자면 서인계가 주류를 이룬다. 두 번째 지역은 윤선도 등이 중심인 남인계로 볼 수 있다.
'문‘을 빛낸 장성의 인물로는 진원출신 위남 박희중(1401년, 증광문과), 세종때의 문관 청파 기건(?~1460), 중종 때의 명신 청백리 지지당 송흠(1459~1547), 교리 김개, 청백리 박수량(1491~1554), 금강 기효간(1530~1593), 율정 최학령, 망암 변이중(1546∼1611), 노사 기정진(1798~1879) 등이다.
황룡강가의 시문이 어우러진 정자로는 장성읍 장안리의 영사정, 황룡면 황룡리의 요월정이 있다.
영사정은 변정·변이중·변경윤·변윤중 등이 세세(世世)로 강학하던 곳이다. 요월정은 명종조에 김경우가 퇴관 휴식하던 곳으로 김하서·기고봉·양송천·김문곡 등 명현들의 시가 있다. 이곳 경치와 더불어 ‘조선제일황룡리(朝鮮第一黃龍里)’, ‘천하제일한양(天下第一漢陽)’, ‘만고제일낙양(萬古第一洛陽)’의 일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장성의 특산물, 한지
좋은 물로 만들어내는 장성의 특산물로 한지가 이름높다. ‘물따라 간다’는 한지의 백양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섬유지로가 배합이 잘 이루어지는 철분 없는 맑은 물 때문에 양질로 인기가 높다.
1978년 발견되어 이듬해 국보 제196호로 지정된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 大方廣佛花嚴經) 사경(寫經)의 발문(755년, 경덕왕 14,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 백지에 먹으로 쓴 화엄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 사경이란 경문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꾸민 불경이다. 두루마리 형태이며 크기는 세로 29㎝, 가로 1390.6㎝이다.
이에 따르면 754년 8월 1일부터 755년 2월 14일까지 화엄경 80권을 제작했다. 이때 종이를 만든 사람이 황진지(紙作人 仇叱珎兮縣 黃珎知 奈麻)로 기록되어 있다. ‘仇叱珎兮縣’은 구사진혜현(진원현)으로 보고 있다. 장성 한지는 이미 천이백 년 전부터 만들어졌음을 말해 준다. 지작인(紙作人)은 공장(工匠)으로 보이며 ‘奈麻’는 신라의 17중 열한번째로 황진지는 공장이면서 구사진혜의 촌주인 듯 싶다. 창호지는 궁중에까지 진상 되었으며 상오마을에는 ‘지소’가 있었다 한다.
한지라 하면 화선지, 창호지, 소지, 벽지피지를 말하는데 이들의 주원료는 닥나무 껍질이다. 또한 장성한지장판은 3갑지·6갑지로 만들어, 즉 3겹·6겹을 말하는 바 소문난 명산물이며 특히 6갑지는 왕가에서나 사용되었다 한다.
한천 역시 장성의 좋은 수질을 바탕으로 많이 생산하고 있다. 동해안·남해안·제주연안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 우뭇가사리를 끓인 다음 응고시키고 영하 5~10도씨에서 동결·융해·건조시킨 것으로 모(角)우무와 분말상이 있다. 주로 겨울철 농한기에 생산하는데 여름철의 배탈이나 설사에 특효가 있다.
물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가장 원초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농경과 어로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뗄 수 없는 삶의 방편이었다. 때로는 수마에 휩쓸리기도 했고 이따금씩은 가뭄에 목이 타야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식수로 사용코자 상수도를 설치하기도 하고, 공장의 폐수·농약·쓰레기등 오염으로부터 살려내자고 야단법석을 떨기도 한다.
장성에서는 황룡강변의 농경제의(유탕 동제·생촌 당산제)나 장성호의 방어제가 있으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용굿놀이라는 일종의 기우제를 지냈다. 음력 사월 중순이 지나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면 북상면 용곡·수성리 주민들이 자진하여 나무와 짚단을 가지고 성미산성에 봉화하고 하늘에 고사한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입암산성 정상 성화대에서 천제를 모신다. 참대를 가지고 용의 머리를 만들고 진흙을 발라 몸을 만들어 용의 전신을 싸고 돌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한다. 이러한 풍습들이 장성호에 수장된 것을 보면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깊은 듯싶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건대
영산이 본디 영산으로 흐르게 하시고
더럽고 해로운 물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정성이 그저 정성으로 뭉쳐져서
있으면서 더욱 솟고
일하면서 더욱 아는 총생들이 되게 하시고
이 남녘 이 땅이 복되고 화평하게
크게 나게 점지하소서.
-告天文 中-
(1990년 3월 답사, 주제 : 영산강문화유적조사)
*방등산 원문
方等山, 在羅州屬縣長城之境. 新羅末, 盜賊大起, 據此山, 良家子女多被擄掠. 長日縣之女, 亦在其中, 作此歌, 以諷其夫, 不卽來救也.(방등산(方等山)은 나주(羅州)의 속현(屬縣)인 장성(長城)의 경내에 있다. 신라 말에 도적이 크게 일어나서 이 산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니 양가(良家)의 자녀들이 많이 잡혀갔다. 장일현(長日縣)의 여자도 그 가운데 있었는데, 이 노래를 지어 자기 남편이 바로 와서 구출하지 않음을 풍자하였다)(<고려사> 志25 樂2 삼국속악 백제 방등산)
*박순천(호남향사회원), 나두야 간다, <금호문화> 1990년 3월호, 금호문화재단 ; <民學의 즐거움>-광주민학회 답사기 모음집-, 광주민학회, 1992. 296~305쪽
*광주민학회 초창기 연구간사(뒤에 기획위원, 김희태)와 간사(박순천) 역을 했다.
‘文不如長城’, 강이름 마저도 ‘文筆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초간 1481) 35 전라도 장성현 산천조
문필천(文筆川) (장성)현 서쪽 7리에 있는데, 송현에서 나온다. (8행)
황룡천(黃龍川) 일명 봉덕연(鳳德淵)인데, 단엄역(丹嚴驛) 동쪽에 있다. 백암산에서 나와서 진원현(珍原縣) 경내로 들어간다. (오른쪽 7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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