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63
보성 선비들의 시회, 오봉산 용추동 암각문
김희태
보성 오봉산 용추동 석벽에 새겨진 암각문을 들러 볼 기회(2024.04.17.)가 있었다. 용추폭포 동쪽으로 바로 곁에 서향의 석벽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 산143번지 일원이다. 암각문1은 1924년, 암각문2는 1935년의 연기가 새겨져 있어 1924년~1935년 사이 보성 선비들의 유산 풍류 시회 현장 금석문 자료이다. 석벽면의 형태를 따라 두 군데 새겨져 있다.
1924년 봄, 용추동의 보성 선비 16인
암각문1에는 윗단에 초서체로 ‘용추(龍湫)’와 갑자모춘(甲子暮春)의 연기, 아랫단에는 안규용(安圭容)선생(이하 인명 경칭 생략) 등 16명의 인명이 오른쪽에서 왼쪽을 순서로 새겨져 있다. 끝의 3인은 한 글자씩 내려 새겼다. 암각문2에는 임창주(任昌柱) 등 6명의 인명과 서문, 연기를 새겼다.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암각문1
龍湫」甲子暮春
安圭容」鄭海榮」宋運會」李秉馹」鄭在煜」安鍾南」朴佑龍」李敎川」朴泰璿」許炤」沈權淳」安圭嵩」任潤極」梁會昞」朴彰杅」朴佑淑」
암각문2
任昌柱」宣炳文」任南基」曺興來」許珍」任升鈺」
浴龍湫」風釼岩而皈」喚友春風」好点四月」
乙亥年
<표 1> 암각문1
<표 2> 암각문2
암각문1은 안규용(安圭容, 1873~1959) 등 16명이 유산(遊山)하고 참여 인명과 연기를 새긴 것이다. 활달한 초서로 ‘용추(龍湫)’라 쓰고 이어 연기 갑자모춘(甲子暮春)이 있는데, 1924년에 해당한다. 모춘(暮春)은 ①늦은 봄 또는 ②봄을 셋으로 나눌 때 그 마지막 부분을 이르는 말, 즉 3월을 이를 때 쓴다. 여기에서는 암각문2의 시문과 연결하여 보면 ①의 의미로 쓰인 듯 싶다. 16명의 참여 인물은 대부분 보성지역의 근대기 학자와 서화가들이다.
암각문2는 임창주(任昌柱) 등 6명의 인명에 이어, ‘浴龍湫風釼岩而皈 喚友春風好点四月’라는 시문이 있다. ‘용추에서 목욕하고 칼바위 바람 쐬고 돌아오니 벗을 부르는 봄바람 증점의 4월처럼 좋을시고.’라는 내용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기 뜻을 이야기할 때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며 시를 읊조리며 집으로 돌아오리라.”라고 한 고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 보았다.( 《論語 先進》) 연기는 을해년(乙亥年)으로 1935년에 해당한다. 보성의 학인들이 용추동 폭포에서 유산하는 경관을 말하고 있다.
‘용추(龍湫)’는 암각문이 새겨진 용추폭포를 말하고, ‘검암(釼岩)’은 오봉산 정상의 ‘칼바위’를 말한 것 같다. ‘皈’는 ‘歸’와 동자(同字)이다. ‘点’은 《論語 先進》 편에 나오는 공자와 증점(曾點)의 고사를 연상시킨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상(理想)을 묻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暮春]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舞雩]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詩歌]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나는 증점을 따르겠다’고 하여, 그의 쇄락(灑落)한 기상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암각문1의 모춘(暮春), 암각문2의 용추 목욕, 칼바위 바람이 공자-증점 고사의 모춘, 기수 목욕, 무우 바람, 시가 음영 등이 서로 연계된다고 하겠다. 암각문1에서는 ‘모춘’(1924)이라고만 새겼는데, 후학들이 암각문2(1935)에서 선학들의 모춘(暮春) 욕풍(浴風)과 음영(吟詠)을 함께 의미화하여 이 시문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회봉 안규용의 “오봉산 용추를 유람하고[遊五峯山龍湫]”
안규용(安圭容, 圭鏞, 1873~1959)은 은봉 안방준(隱峰 安邦俊, 1573~1654)의 10대손으로, 본관은 죽산이며, 자는 경삼(敬三), 호는 회봉(晦峯), 죽곡(竹谷)이다. 복내 옥평리에서 태어났다. 일생동안 항상 <중용(中庸)>을 깊이 연구하였고 의약․ 복서의 분야에도 통달하였다. 회봉은 23세인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中華와 오랑캐의 구별은 왕의 명령보다 엄정하다. 차라리 머리 없는 귀신이 될지언정 터럭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통분하며 머리 깎기를 거부했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그에게는 곧 도학의 의리를 저버린다는 것을 뜻하였다. 용추동을 찾은 시기에는 죽곡정사(竹谷精舍, 전남문화유산자료 [제279호])에서 강학과 저술을 하던 시기이다.
안규용의 문집인 회봉집(晦峯集)에 갑자년에 오봉산 용추를 유람하기 지은 시가 실려 있어서이다. 일부 글자가 누락되어 있지만 오봉산과 용추 지명이 시제에서 확인된다.
오봉산 용추를 유람하고【갑자년(1924) 여름】 遊五峯山龍湫【甲子夏】
글자 빠짐 缺
신룡이 쪼개니 새벽 구름이 습하구나 神龍劈去曉雲濕
황량한 옛 절에 뉘엿뉘엿 해 지는데 古寺荒涼夕照星
글자 빠짐 缺
송운회(宋運會, 1874~1965)는 율어 금천 출신으로 호는 설주(雪舟)이다. 보성으로 유배 온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에게 형 소파 송명회(1872~1953) 와 함께 배웠고 서예에 능했다. 설주는 문양재(文陽齋), 죽곡정사, 오충사, 관선재, 장천재 등 전국을 유람하며 서예를 지도하였다. 송운회는 문양재(율어면 문양리)에서 회봉 안규용의 아들 봉산 안종선[蓬山 安鍾善, 자 聲洪]을 가르쳤다. 설주 송운회의 아들 송사현(宋社顯)은 죽곡정사에서 회봉 안규용에게 배웠다. 옛 부터 ‘易子而敎之(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침, <孟子>, 「離婁章句上」)’라 한 풍습을 따른 것이다.
이병일(李秉馹, 1876~1928)은 호기 경재(耕齋)이며 겸백면 수남리 가곡마을 거연정(巨然亭)에서 강학 교류를 하였다. 영재 이건창에게 수학하였다.
박우룡(朴佑龍, 1882~1937)은 호가 소천(小川)이며 죽천 박광전(竹川 朴光前)의 후손이다. 이교천(李敎川, 1882~1948)은 호가 낙천(樂川)이며 복내면 동교리에 덕산정사(德山精舍)에서 강학하였다. 손자가 송담 이백순(1930~2012)이다. 박태선(朴泰璿)은 죽천 박광전의 후손으로 박우룡과 함께 1924년 죽천집 속편(續編)을 증보 수정하였다. 허소(許炤, 1882~1942)는 호가 효봉(曉峯)이며 득량출신이다. 서예가로 이름이 났고 전서의 명필이다.
보성지역 근대 시기의 선비들은 나름의 전문분야에 뛰어 났는데, 회봉 안규용(晦峯 安圭容)은 도학에, 낙천 이교천(樂川 李敎川)은 경학에, 소파 송명회(小波 宋明會, 1872~1953)는 시문에, 설주 송운회(雪舟 宋運會)는 서예에, 효봉 허소(曉峰 許炤)는 전서와 산수화에, 노석 임기현(老石 任奇鉉)은 시와 조각에 재능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매창 박태선(梅窓 朴泰璿), 소천 박우룡(小川 朴佑龍), 석하 정재욱(石下 鄭在煜), 계산 심기순(桂山 沈琪淳) 등이 출입하며 빛을 더했으니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절에 한국 유교문화의 명맥을 이어간 인물들이었다. 이들 인물들 가운데 안규용, 송운회, 이교천, 허소 등이 새겨진 암각문은 그만큼 보성의 인문학적인 중요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인문학적으로 중요한 자원, 다양한 조사가 이루지기를
보성 오봉산 용추동 암각문은 1924년~1935년 사이 보성 선비들이 유산 시회를 하면서 유교 이상사회를 희구했던 정신이 깃든 곳이다. 보성의 인문학적 기반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음으로 법격을 부여하여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성 오봉산과 용추동은 경관지로서 알려져 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 보성군 산천조에 “오봉산(五峯山)은 [보성]군의 남쪽 30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왕명으로 편찬한 지리지에 오를 정도로 보성의 대표적 명산이다.
국담 임희중(菊潭 任希重, 1492~?)과 오봉 정사제(五峰 鄭思悌, 1556~1594) 등 보성의 역대 선현들의 문집에 시문이 실려 있다. 오봉산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여제(厲祭)를 지낸 자료[五峯山逐厲祭文]가 완역당 박형덕(玩易堂 朴馨德, 1731~1815)의 문집(완역당집)에 실려 있다.
정상의 칼바위에는 마애여래불상이 새겨져 있어 불교 성산이기도 하다. '보성 오봉산 구들장 채석지'는 우리나라 온돌문화의 핵심 재료인 구들장을 채취하던 곳으로, 산업발전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유구(채석장 및 운반로 등)가 비교적 잘 남아있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용추동 계곡은 용추폭포를 비롯하여 바위경관 생태 경관이 수려한 지역이다. 판소리 보성소리의 득음처이기도 하다.
보성 용추동 암각문은 관련 인물과 기록, 자료 등에 대한 조사도 더 필요하다. 그리고 암각문1과 암각문2 외에도 몇군데 암각문(崔建中 등)이 남아 있음으로 오봉산과 용추동 일원에 대한 학술조사도 검토했으면 한다. 지질, 지형, 생태, 역사, 인물, 시문, 지명, 설화 등 다양한 조사를 실시하여 자연유산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를 정리하여 지정 자연유산을 추진하는 것도 검토했으면 한다.
*김희태, 「보성 오봉산 용추동 암각문 조사 자료」, 보성군청 제출(2024.05.20.) 자료 수정.
*조사일 : 2024.04.17., 조사자 : 김희태 / 손규호(보성 팀장) 이지은(학예사), 자문 : 엄찬영(한국학호남진흥원)
*조봉익님(고전연구가, 보성출신, 부산광역시 거주)의 제보에 따라 이교천선생의 별세연도(1948)와 송명회-송운회선생의 사승관계(영재 이건창선생께 수학)를 수정하였습니다. 귀한 제보에 감사드립니다.(제보 2024.10.13)
용추동 폭포(2024.04.17.)
용추동 산성 국유림 경계도(1916년, 국립중앙박물관 자료)
*이번 자료 조사 과정에서 용추동 산성에 대한 자료도 다시 한번 훑어 보았다. 이에 그 산성 현장 탐방길로 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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