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61
‘하여면앙정(荷輿俛仰亭)’ - 면앙정의 현판과 1798년의 어고(御考) 시권(試卷)
김희태
불볕 더위, 면앙정에 오른다. 맺힌 땀방울. 솔바람 시원타. 2024년 8월 3일.
세칸 면앙정 둘러본다. 현판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동쪽 편에 있는 현판. ‘어제(御製)’란 큰 글씨 다음으로 문장이 보인다. 네 번째 줄에 ‘시 하여면앙정(詩 荷輿俛仰亭)’이라 제하고 설명이 있다. 이를 간추려 본다. 『광주목지』와 『면앙집』에도 실려 있다.
“송순의 호는 기촌(企村)이다. 스무살에 과거시험에 급제했으니 그 문장력은 당대에 으뜸이요 표준이었다. 네 분 임금을 섬기고 관직에서 물러나서 고향의 언덕에 정자를 마련하여 명칭을 면앙정이라 하였으니 대체적으로 면앙(俛仰)이라는 뜻은 우주를 두루 살펴본다는 뜻이다. 선생께서 임금을 사랑한다는 충성심은 여러 시구절에서 표현되고 있으며 급제에 오른 지 60주년이 되는 날을 맞아 면앙정에서 연 잔치는 마치 급제에 오른 당시와 같아서 온 전라도가 떠들썩하였다. 술기운이 절반이나 돌 무렵 당시 수찬 정철이 말하기를 우리 모두가 이 선생님을 위하여 가마[竹輿]를 매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정언 임제, 헌납 고경명, 교리 기대승 등이 가마를 붙들고 내려오자 여러 군현 수령들과 사방에서 모여든 하객들이 뒤를 따르니 사람들 모두가 감탄하여 광영으로 여겼다. 이는 실로 예전에는 없었던 훌륭한 행사였다.”
면앙정 현판 어제(御製)의 하여면앙정 시해(詩解) (2024.08.03.)
다시 풀어 본다. ‘어제(御製)’는 임금이 친히 지었다는 의미이다. ‘학자 군주’로 알려진 정조 임금이 1798년(정조 22) 광주목에서 치러진 과거시험의 시제(試題), 시험문제를 직접 냈다. 이 시험은 호남 선비 우대책으로 광주목에서 시행된 것이다. 정조가 <대학연의>, <대학연의보>, <주자대전절약>의 교정에 참여한 호남유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과거는 시·부·전·의·책 등 다섯 과목 가운데 세과목을 선택하여 보는데 시(詩) 분야의 시험문제가 ‘하여면앙정(荷輿俛仰亭)’이고, 이를 시험 문제로 선정한 사유를 적은 것이다.
송순(宋純, 1493∼1582)은 20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문장력은 당세 으뜸이라는 평을 하고 있다. 또한 네 분의 임금을 섬기면서 정도를 실행하였고 관직에서도 엄정하게 임했다는 점, 고향 면앙정에서 우주를 두루 살피면서 유상 강학하였다는 점 등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심이나 60년 관직의 공정함 등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송순의 기개를 기리면서 생평을 축하하고자 1579년 회방연(回榜宴)을 열어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과 문인 제자와 담양, 창평, 광주 등 인근 고을의 수령들, 축하객들이 참여하여 감탄하면서 광영의 자리가 되었고 가마[죽여]를 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 200년이 지나 정조는 회방연 당시 호남 선비들의 풍류와 기개를 도과(道科)의 시 과목 시험 문제로 낸 것이다. 다만, 고봉 기대승(1527∼1572)은 별세한 뒤라 회방연은 시기와는 맞지 않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참여자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과거시험에 참여한 69명이 「어고방(御考榜)」이라는 문서에서 확인된다. 정조 임금이 직접 채점하여 ‘어고(御考)’라 하였다. 면앙정 현판의 ‘어제(御製)’와 연계된다. 이 문서는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1798년 광주의 과거시험” 기획전(2015.10.8~11.22)에서 전시한 바 있다. 길이가 28.2미터이다.
「어고방」 고문서 앞부분(광주역사민속박물관 소장. 끝에서 세 번째 저 시권의 주인공 김재박이 보인다.)
1798년 광주목 도과에서는 53명이 합격을 하였다. 가장 점수가 높은 고정봉(高廷鳳)과 임흥원(任興源) 두 사람에게는 직부전시의 자격이 주어졌다. 2차 시험을 보지 않고 바로 임금 앞에서 치루는 3차 시험인 전시를 치를수 있다. 그리고 급분(給分) 14푼을 인정하였다. 이어 박종민(朴宗民)과 정주환(鄭冑煥) 두 사람에게는 경기전과 조경묘의 참봉(종9품) 벼슬을 주고 급분 12푼을 인정하였다. 전주에 있는 조선 왕실 관련 유적 관리 책임자라 하겠다. 16명의 차상(次上) 유생들에게는 사기영선, 주서백선, 오륜행실 등의 서책과 붓과 먹과 종이를 하사하였다.
그렇다면 담양의 면앙정과 관련이 있는 ‘하여면앙정’ 시제에 응시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의 시는 어떤 내용일까. 문집에 올라 있을까. 과거 시험 답안지, 시권은 남아 있을까.
광주목 도과에 응시한 69명 가운데 24명이 시 과목을 선택하였다. 이들의 점수와 다른 응시과목, 시험 당시 나이와 본관, 거주지를 인명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본다. 전체 번호는 원 시권 문서상 등재 순서이다.
<표> 1798년 광주목 도과 시(詩)과목 응시자 현황(試題 : 荷輿俛仰亭)
번호 | 전체 | 응시자 | 직역 | 응시과목 평가 | 나이 | 본관 | 거주 | |||||
詩 | 賦 | 義 | 箋 | 策 | ||||||||
1 | 39 | 기상리 | 奇商履 | 生員 | 三下 | 59 | 幸州 | 광주 | ||||
2 | 13 | 기학경 | 奇學敬 | 進士 | 三下 | 草三下 | 草三下 | 58 | 幸州 | 광주 | ||
3 | 22 | 김상휘 | 金相徽 | 生員 | 三中 | 次上 | 次上 | 52 | 光山 | 장흥 | ||
4 | 11 | 김재박 | 金在博 | 幼學 | 三上 | 草三下 | 49 | 商山 | 광주 | |||
5 | 57 | 김치복 | 金致福 | 幼學 | 次上 | 次上 | 45 | 光州 | 광주 | |||
6 | 61 | 김치의 | 金致儀 | 幼學 | 次上 | 草次上 | 25 | 光州 | 광주 | |||
7 | 24 | 노문달 | 盧文達 | 進士 | 三中 | 次上 | 39 | 光山 | 광주 | |||
8 | 7 | 박정원 | 朴定源 | 進士 | 三中 | 三中魁 | 次上 | 50 | 潘南 | 나주 | ||
9 | 3 | 박종민 | 朴宗民 | 幼學 | 二下一 | 三中 | 36 | 潘南 | 나주 | |||
10 | 9 | 박종학 | 朴宗學 | 幼學 | 三上 | 三下 | 41 | 潘南 | 나주 | |||
11 | 34 | 박중원 | 朴重源 | 幼學 | 次上 | 三下 | 52 | 潘南 | 나주 | |||
12 | 25 | 박효덕 | 朴孝德 | 幼學 | 三中 | 47 | 忠州 | 광주 | ||||
13 | 63 | 신보권 | 申輔權 | 幼學 | 次上 | 草次上 | 40 | 高靈 | 순창 | |||
14 | 62 | 양득희 | 楊得熙 | 進士 | 次上 | 草次上 | 43 | 南原 | 순창 | |||
15 | 16 | 양종해 | 楊宗楷 | 幼學 | 三上一 | 55 | 南原 | 순창 | ||||
16 | 47 | 윤 서 | 尹 㥠 | 幼學 | 次上 | 草次上 | 草三下 | 57 | 海南 | 보성 | ||
17 | 55 | 윤치언 | 尹致彥 | 進士 | 次上 | 草次上 | 次上 | 44 | 南原 | 순창 | ||
18 | 23 | 이일성 | 李一成 | 幼學 | 三中 | 次上 | 51 | 延安 | 순창 | |||
19 | 45 | 이지문 | 李志文 | 幼學 | 三下 | 30 | 全義 | 광주 | ||||
20 | 8 | 임환원 | 林煥遠 | 幼學 | 三上 | 三下 | 次上 | 49 | 羅州 | 나주 | ||
21 | 67 | 정의찬 | 鄭義燦 | 幼學 | 次上 | 44 | 河東 | 광주 | ||||
22 | 21 | 정재면 | 鄭在勉 | 幼學 | 次上 | 草三下 | 草三下 | 39 | 迎日 | 창평 | ||
23 | 4 | 정주환 | 鄭胄煥 | 幼學 | 二下 | 三下 | 草三下 | 39 | 迎日 | 창평 | ||
24 | 69 | 한계두 | 韓啓斗 | 幼學 | 次上 | 36 | 淸州 | 순창 |
지금은 담양에 속한 창평이 2명이다. 그리고 광주 9명, 나주 5명, 순창 5명, 장흥 1명, 보성 1명이다. 이 가운데 광주의 겸재 기학경(謙齋 奇學敬, 1741~1809)은 문집에 ‘하여면앙정’ 시가 실려 있다. 광주 효령동 행주기씨 후손가에도 시권이 전한다. 그리고 김재박(金在博)의 시권이 후손가에 전해져 온다. ‘어고(御考)’라는 제첨이 그대로 있다.
김재박(金在博)은 광주 조봉촌[현 봉선동 조봉을] 출신으로 시 과목에서 급분 8푼의 점수를 받는다. 김재박의 ‘하여면앙정’ 시는 “넓은 호남에 인재 마을을 여니 성조의 원기 모여드네. 이 고을에 태어난 훌륭한 선비 의기투합하여 자주 만나 시대를 밝히네. … ”라 하였다.
‘하여면앙정(荷輿俛仰亭)’은 ‘면앙정에서 가마[죽여]를 매다’, 또는 ‘면앙정선생을 위하여 가마[죽여]를 매다’로도 뜻이 통한다. 앞의 뜻은 공간(면앙정 정자), 뒤의 풀이는 사람(면앙정 송순)이다. 이 시를 옮기면서, 더 많은 ‘하여면앙정’ 시가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시의 역주는 엄찬영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면앙정에서 가마를 매다 荷輿俛仰亭
넓은 호남에 인재 마을을 여니 / 大湖南坼人材府 대호남탁인재부
성조의 원기 모여드네. / 聖朝元氣玆畜渟 성조원기자축정
이 고을에 태어난 훌륭한 선비 / 多士濟濟生此州 다사제제생차주
의기투합하여 자주 만나 시대를 밝히네. / 風雲盛會明時丁 풍운성회명시정
엎드려 부끄러움 없고 우러러 부끄럽지 않으니 / 俯而無愧仰不怍 부이무괴앙부작
누구 집의 정자가 우주에 빼어났을까. / 宇宙高出誰家亭 우주고출수가정
청렴한 시대 채봉의 깃을 일찍이 펴고 / 淸時早儀彩鳳羽 청시조의채봉우
해 저문 주림 화학의 나래 먼저 돌아오네. / 暮柱先迴華鶴翎 모주선회화학령
천하의 네 조정 섬긴 늙은 신하 / 四朝乾坤一老臣 사조건곤일노신
회갑에 꽃을 꽂고 천성을 도네. / 簪花舊甲回天星 잠화구갑회천성
천은으로 갈옷 입은 날을 잊지 못하고 / 天恩不忘釋褐日 천은불망석갈일
아리따운 기녀 성대한 잔치에서 〈녹명〉을 노래하네. . 少妓華筵歌鹿萍 소기화연가녹평
이순은 동관의 붓으로 난대를 바르고 / 而順彤筆直蘭臺 이순동필직란대
명언은 옥패 차고 조정에 오르네. / 明彦玉珮登大庭 명언옥패등대정
동남의 주인과 객 다 모여 아름답고 / 賓主盡會東南美 빈주진회동남미
퇴색한 푸른빛 비단도포 화관 모였네. / 錦袍華簪頹翠欞 금포화잠퇴취령
멋진 모임 어찌 사죽의 소리만 시끄러우랴 / 勝會豈但絲竹喧 승회개단사죽훤
성대한 일 가송의 명에 비유하기 어렵네. / 盛事難喩歌頌銘 성사난유가송명
군자는 어거하는 군자 얻어 기쁘고 / 君子喜得君子御 군자희득군자어
꽃그늘에 푸른 죽여 살포시 보이네. / 花陰見出笋輿靑 화음현출순여청
자명의 주옥같은 풍채 고삐를 잡아도 공손하고 / 慈明玉儀執㘘恭 자명옥의집㘘공 만
맹전의 맑은 소리 수레를 타고 들려오네. / 孟轉淸籟凭車聽 맹전청뢰빙거청
어진 이 이 모임 어찌 즐겁지 않으랴 / 賢人此會豈不樂 현인차회개불락
원래 취미는 위수경수 구분 않는걸. / 趣味元無分渭涇 취미원무분위경
봄꽃 핀 앞길 수레를 안은 마음 / 煙花前路擁車心 연화전로옹거심
또한 성대의 문치 향기가 나네. / 亦爲聖代文治馨 역위성대문치형
선대의 왕조가 다스린 이백년 / 先朝培植二百年 선조배식이백년
왕의 선비 성대하여 나라가 편안하네. / 王士彬彬王國寧 왕사빈빈왕국녕
때때로 웃고 냄새 맡은 장원랑 / 時時笑嗅壯元郎 시시소후장원랑
작년의 경화 전형을 두었네. / 去年瓊花留典形 거년경화류전형
한갓 시골의 사람이 아니라 / 非徒林下見一人 비도림하견일인
함께 사현이 되어 원개의 조정에 오르네. / 四賢俱登元凱廷 사현구등원개정
천시의 별 오백년을 운행하고 天時星返五百年 천시성반오백년
성대의 운수 천년의 한 번 맑아지는 해. 聖運河淸千一齡 성운하청천일령
이때 천은을 다는 시초가 되어 權輿此時極天恩 권여차시극천은
태평성대에 절하고 칭송하며 좋은 술 따르네. 拜頌昇平斟緣醽 배송승평짐연령
주석
1. 4구의 ‘의기투합하여’는 원문의 ‘풍운(風雲)’은 풍운제회(風雲際會)의 준말로, 임금과 신하가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 5구의 ‘엎드려 부끄러움 없고 우러러 부끄럽지 않으니’는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로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3. 7구의 ‘채봉(彩鳳)’은 오색의 봉황처럼 아름다운 선비를 비유하는데, 여기에서는 송순(宋純)을 가리킨듯하다.
4. 8구의 ‘화학(華鶴)’은 요동(遼東)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은 학(鶴)을 말한다. 중국 한(漢)나라 때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는데, 천 년 뒤에 학으로 변하여 다시 고향으로 날아와 화표주에 앉았다. 마을의 소년들이 보고 활을 쏘아 잡으려고 하자, 훌쩍 날아 공중에서 배회하다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날아올라 갔다고 한다. 《搜神後記 卷1》
5. 12구의 ‘녹명(鹿鳴)’은 《시경》 〈녹명(鹿鳴)〉편을 말하는데, 임금이 신하들과 잔치를 할 때 이 노래를 불렀으므로, 전하여 천자가 군신과 빈객(賓客)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그 시에 이르기를 “화락하게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여, 들판의 대쑥을 뜯는도다.〔呦呦鹿鳴 食野之苹〕” 하였다.
6. 13구의 ‘이순(而順)’은 제봉 고경명(霽峯 高敬命, 1533~1592)의 자이다.
7. 14구의 ‘명언(明彦)’은 기고봉 대승(高峯 奇大升, 1527~1572)의 자이다.
8. 16구의 ‘비단도포 화잠(華簪)’은, 원문의 ‘금포(錦袍)’는 호방한 기상을 지녔음을 뜻한다. ‘화잠(華簪)’은 현달(顯達)한 고관이 쓰는 화려한 머리 장식을 말한다. 중국 당(唐)나라 이백(李白)이 방달(放達)하여 구속을 싫어하는 성품을 지녀 하지장(賀知章), 이적지(李適之), 여양왕(汝陽王) 진(璡),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張旭), 초수(焦遂) 등과 주팔선인(酒八仙人)이 되었다. 그리고 사직을 청하여 조정을 떠날 때 천자가 이백에게 금포를 하사하니, 이백이 사방을 주유하였다. 한번은 달빛 아래 금포를 입고 배 안에 앉았는데 그 모습이 방약무인하였다. 그래서 이백을 금포선(錦袍仙)이라 한다. 《新唐書 卷201 文藝列傳中 李白》
9. 17구의 ‘사죽(絲竹)’은 ‘금석사죽(金石絲竹)’의 준말로, 음악을 가리킨다. 금은 쇠로 만든 악기이며, 석은 옥으로 만든 악기이다. 사는 현악기이며, 죽은 관악기이다.
10. 18구의 ‘가송(歌頌)’은 훈적비(勳績碑)가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 중국 당(唐)나라 원결(元結)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지어서 숙종(肅宗)의 공덕(功德)을 가송(歌頌)하여 이것을 오계(浯溪) 곁의 절벽 위에 새겼던 데서 온 말이 전한 것이다.
11. 21구의 ‘자명(慈明)’은 동한(東漢) 영천(潁川) 사람, 순상(荀爽)의 자이다. 일명 순서(荀諝)라고도 한다. 형제 여덟 사람이 모두 재덕(才德)이 뛰어났기 때문에 당시에 ‘팔룡(八龍)’이라고 일컬어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여섯째인 순상은 12세 때 이미 《춘추》와 《논어》에 정통하여 ‘자명무쌍(慈明無雙)’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재기가 출중하였다. 저서로는 《예전(禮傳)》, 《역전(易傳)》, 《시전(詩傳)》, 《상서정경(尙書正經)》, 《춘추조례(春秋條例)》, 《신서(新書)》가 있는데, 그 가운데 《역전》의 설은 그 영향력이 아주 컸다.
12. 24구의 ‘위수(渭水) 경수(涇水)는, 원문의 ‘위경(渭涇)’은 위수와 경수의 합칭으로, 위수는 맑고 경수는 흐리므로, 전하여 사물의 청탁시비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3. 25구의 ‘봄꽃’은, 원문의 ‘연화(煙花)’는 곧 연기를 띤 봄꽃을 말한 것으로, 두보의 〈상춘오수(傷春五首)〉의 첫 번째 시에 “관새의 거리는 삼천 리요, 연화는 일만 겹이로다.[關塞三千里, 煙花一萬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3》
14. 30구의 ‘경화(瓊花)’는 꽃나무의 이름인데 잎은 부드럽고 윤택이 나며 꽃은 옅은 황색을 띠고 향기롭다. 옛날 양주(揚州) 후토사(后土祠)에 경화 한 그루가 있었는데 당 나라 사람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송나라 순희(淳熙) 이후로 팔선화(八仙花)와 접목하여 이식하였는데 희귀하고 진귀한 식물이다. 《嘉慶一統志 卷 97 揚州府二 古蹟 無雙亭》
15. 32구의 ‘원개(元凱)’는 팔원팔개(八元八凱)로서, 원(元)은 선(善), 개(凱)는 화(和)를 뜻한다. 《좌전(左傳)》 문공(文公) 18년조에 보면 옛날 고양씨(高陽氏)에게 재주 있는 아들 여덟이 있었는데, 창서(蒼舒)ㆍ퇴애(隤敱)ㆍ도연(檮戭)ㆍ대림(大臨)ㆍ방항(尨降)ㆍ정견(庭堅)ㆍ중용(仲容)ㆍ숙달(叔達)로서, 백성들이 팔개(八凱)라 불렀고, 고신씨(高辛氏)에게 재주 있는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백분(伯奮)ㆍ중감(仲堪)ㆍ숙헌(叔獻)ㆍ계중(季仲)ㆍ백호(伯虎)ㆍ중웅(仲熊)ㆍ숙표(叔豹)ㆍ계리(季狸)로서, 백성들이 팔원(八元)이라 불렀다 함. 요(堯)임금은 그들의 자손을 등용하지 못했으나, 순(舜)임금이 요임금의 신하가 되었을 때 이들을 등용하였다.
16. 35구의 '시초(始初)'는 원문의 ‘권여(權輿)’는 처음[始]이란 뜻이다. 《이아(爾雅)》에, “權輿始也”라 보이고, 《대대례(大戴禮)》 고지(誥志)에는, “於時泳泮發蟄 百權輿”라 보이는데 맹아(萌芽)의 뜻으로 쓰여졌으며, 《한서》 양웅전(揚雄傳)에도, “萬物權輿於內 徂落於外”라 보이는데 처음이란 뜻으로 쓰였다. 《類選》 卷6上 經史篇1 經史門.
면앙정 현판 어제(御製)(1824년 갑신년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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