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65 - 《증보역주 경회집》 발간에 부치는 글-근대기 강진 유학자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 문집 전5권-

향토학인 2024. 10. 7. 11:11

인지의 즐거움365
 

《증보역주 경회집》 발간에 부치는 글
-근대기 강진 유학자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 문집 전5권-

 

김희태

 
경회당 김영근 선생의 문집 증보 역주본이 다 되어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라 할까. 2013년 4월인가로 기억되니 훌쩍 10년의 세월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아서이다. 그런 글을 쓸만한 처지인가를 생각하기를 며칠, 이내 독촉을 받는다.
 
지금은 주춤하지만,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면 알게 모르게 기록한다. 이리저리 뒤져 보니 2013년 4월 27일, 장흥에서 향토사 선배님(양기수)이 전화를 주셨던 기록이 있다. 강진이 고향인 방송사 PD가 장흥 강진 자료를 확인하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듣기도 하고 장흥문집해제 등 자료도 보고서 나와 교류를 했으면 한다고 해 연락한다는 것. 그이는 김환균(金煥均). 경회 김영근(景晦 金永根, 1865~1934) 선생의 증손자. 문화방송 부장. 언론계 현직의 후손이 선조의 자료를 찾고 다닌다니, 약간 의아하면서도 궁금증도 있었다. 무슨 자료를 찾을까. 도움이 될까. 한편으로 PD는 어떤 절차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까. 4월 29일 통화를 했고, 5월 1일 《경회집》 영인본을 우체국 택배로 보내왔다. 5월 3일 긴 글을 전자우편으로 받았다. 그 글 가운데 몇 줄을 옮긴다.
 
“사실 제가 저의 증조부이신 경회 선생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부끄럽지만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선친께서 돈 될 것 같지 않은 일에만 신경을 쓰시는 것이 불만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다니던 때 장흥 관산에 사시던 정학수(丁鶴壽) 선생께서 우리 집에 머무르시면서 뭔가를 옮겨 적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증조부의 문집 필사본들을 정리하시는 거였습니다. 증조부님의 글들은 전쟁통에 사라졌습니다. 전쟁이 나자, 조부께서 큰 독 세 개에다 책을 담고 밀랍으로 봉해 땅속에 묻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파보니, 이미 ‘녹아버린’ 후였습니다.”
 
환균은 조부(中植, 자 希宣, 경회당의 둘째 아들)께서 죄책감에 사시다가 1965년 돌아가실 무렵 선친(炳麟)과 당숙(炳國, 경회당의 다섯째 형 永準의 손자, 당시 서강대 교수)을 불러, “제자들이 베껴놓은 글이 있을 테니 너희가 그 글들을 모아 정리하라.”는 유명을 남기셨는데, 그 모으고 정리하는 것이 선친의 필생 업이 되었던 것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선친은 10년여에 걸쳐 경회당의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글을 수집하였다. 어느 정도 수습이 되자 장흥 관산 학교에 살던 제자 정학수 선생에게 문집으로 편집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학수 선생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문집 작업은 미완으로 남았다.
 
환균의 선친 병린과 당숙 병국은 또 글이 하나둘 흩어져 버릴까 두려워 논의한 끝에 수집한 글과 정학수 선생이 편집하다 중단된 문집 초고를 그대로 영인하였다. 그것이 1987년 경인문화사에서 간행한 《경회집》이다. 중복된 글이 많은 것은 여러 문인의 필사본을 그대로 영인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 환균의 당질 현장(鉉奘)이 《경회집》의 국역을 위해 백방으로 뛴 끝에, 2010년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아 강진군에서 《국역 경회집》을 펴냈다. 송담(松潭) 이백순(李栢淳) 선생과 최한선 교수가 번역에 참여하였다. 이 《국역 경회집》이 나올 때도 조금 거들었던 인연이 있다. 환균의 선친은 《국역 경회집》을 받아보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2월 세상을 떠나셨다.
 
1950년 유고를 잘 보존하려다 유실되고, 1965년 제자들이 베껴 놓은 글이라도 모으라는 유언, 10여 년을 전심한 끝에 모은 유고, 정학수선생이 편집하지만 마무리 못 하고, 다시 흩어질까 염려하여 낸 1987년의 영인본, 그 글을 알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나온 2010년의 국역본, 그 《국역 경회집》을 받아 보시면서 환균의 선친께서는 조부로부터 이어진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셨으리라. 아니다 ‘사명감’의 완수에 환희하셨을 것이다.
 
초판 《국역 경회집》 이후 남은 일은 아직 수습되지 않았을 유고를 찾는 일과 문집 형태로 새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유고의 발굴은 경회당의 증손자 환균이 도맡았다. 그 계기를 다음 글에서 읽어 낼 수 있다.
 
“증조부의 글을 읽어나가다가 전기에 감전된 듯이 꼼짝 못하고 앉아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김윤도기덕(與金允道基德)〉이라는 편지글이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장작을 팼는데 그 자식이 이를 짊어지지 못함을 옛사람이 부끄럽게 여겼으니, 그대가 영념하기를 살며시 원하네.’[其父析薪 其子不克負荷 古人之所恥也. 竊顧賢者之加之意也.]”
 
이 과정에서 장흥과 강진을 자료 찾아다니다가 김희태와 김환균이 만난 것이다. 서로의 자료를, 인맥을, 방법론을 공유하였고, 환균은 그야말로 밤낮으로 전심하였다. 환균은 경회당의 길 따라 간도까지 다녀왔고, 경회당의 글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디지털화하였고, 《경회집》에 나오는 인물들의 문집을 찾았고, 후손들을 만났고, 시문 속에 깃든 지명을 따라 답사했다. 경회당이 중암 선생을 찾아간 지도를 방문했고, 경회당이 오남 선생에게 수학하였던 강진의 대명동과 정수사 등등. 새로 찾은 글이 《경회집》의 절반 정도나 되는 방대한 양이었다.
 
김해김씨송정파 문중에서는 경회선양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일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사장은 김인종, 이사는 김현장, 김환균, 김관, 김전구, 총무는 김양석이 맡았다. 다시 전라남도에서 지원받아 강진군이 사업의 주체가 되었다.
 
경회당 김영근 선생의 학문 세계의 공유와 홍보, 연구의 진전을 위하여 2017년 11월 10일 “경회 김영근의 도학 사상과 문학세계” 주제로 학술대회도 열고 단행본에 담았다. 김기림, 김봉곤, 김희태, 문희순, 박민영, 안동교, 유화송, 이향배, 임병권, 장복동, 홍영기, 황민선이 참여하였다.
 
《증보역주 경회집》은 《경회집》의 중복된 글들을 정리하고 새로 추가된 글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문집의 체제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국역 경회집》에 이미 번역된 글들도 다시 검토하고 요즘의 감각에 맞게 윤문하였고 주석을 달았다. 증보 역해인 셈이다.
 
국역의 총책임은 안동교 선생이 맡았다. 국역에는 장안영(전남대 박사), 조일형(한국학호남진흥원 연구원), 서한석(전남대 박사)가 참여하였다. 행장은 아당(峨堂) 이성우(李性雨) 선생, 해제는 박민영 선생, 제자는 송암(松巖) 정태희(鄭台喜) 선생이 해 주셨다. 지원을 해준 전라남도와 강진군을 비롯하여 강진문화원 등 힘과 지혜를 모아준 각 기관단체, 종중의 어르신과 선양사업회 관계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10년 전 인연이 되었던 환균에게 감사드린다. 부장으로 만나 어느덧 대전문화방송 사장이 되었다. 《증보역주 경회집》으로 그의 ‘아버지의 장작을 짊어지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덜어지리라. 2013년 보내 온 《경회집》 영인본은, 1987년 판은 절판이 되어 두어 달치 월급을 들여 사비로 한 것. 다시 2013년 5월 3일 보내온 전자우편 글로 돌아간다.
 
“제 관심은 이제, 남도 바다 끝에서 간도까지 간 사람들, 그들은 왜 그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가, 망국이라는 엄청난 상황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대처하려고 했을까 하는 것으로 넓어졌습니다.”
 
실제 그는 실천을 했다. 그 실천을 통해 같이 머리를 맞댄 우리 학인(學人)들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제 이 《증보역주 경회집》이 두루 읽혀져 어지러운 세상에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증보역주 경회집》(전5권)은 강진의 유학자 경회(景晦) 김영근(金永根, 1865~1934)이 한평생 남긴 자료를 모아 문집의 형태로 정리 편집하고 이를 국역 주석하여 간행한 것이다. 《증보 역주 경회집》의 구성은, 1-2권은 시(詩), 3권은 서(書), 4권은 서(序)·기(記)·발(跋)·명(銘)·찬(贊)·상량문(上樑文)·축문(祝文) 및 고유문(告由文)·제문(祭文)·비문(碑文)·행장(行狀)·전(傳)·어록(語錄)·유사(遺事)·잡저(雜著), 5권은 경설(經說)·일기(日記)·부록으로 되어 있다. 위 글은 《증보역주 경회집》의 발문에 해당한다.
 
* 《증보역주 경회집(增補譯註 景晦集)》 (김영근 지음, 안동교 장안영, 조일형, 서한석옮김, 일상출판, 450~453쪽)
* 강진우리신문, 2024.10.02.

경회집, 경회시집(필사본)

증보역주 경회집

<경회 김영근의 도학사상과 문학세계> 학술대회(2017.11.10.)

경회 김영근 선생 유적 답사(오남 김한섭선생의 한천정사 옛터, 강진 성전면 송월리 대월마을 대명동, 왼쪽부터 안동교님, 박민영님, 김환균님, 김기홍님, 조일형님, 2017.03.15.)

경회집 발간 고유제(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