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64
예로부터 나한도량으로 유명한 화방사의 나한상 일괄, 국가유산 지정
김희태
강진 화방사 나한상 일괄(康津 華芳寺 羅漢像一括)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2023.08.31.)되었다. 조선후기 17세 후반에 조성한 존상으로 미술사적, 조형적 가치가 매우 크며, 조선 후기 조각사 연구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두 17구이다. 현황과 특징을 살펴본다.
화방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금천로 328-103(화산리 544)에 소재하며 대한불교조계종 해남 대흥사 소속이다. 화방사 경내 입구에 있는 「천불산 화엄사 사적비에 따르면, 1211년(고려 희종 7)에 원묘국 사가 백련사(白蓮社)를 중수할 때 주변 여러 산에 산재하였던 암자 가운데 하나로 화방암을 들고 있어서, 화방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적비는 허원응 계정(許圓應戒定) 비문을 지었고 1917년에 세웠다. 강진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나한도량으로 유명한 화방사
사적비에는 화방사가 이전에는 나한사(拏漢寺)로 불리기도 하였고, 화방사 북쪽 산속에 있던 암자도 나한도량으로서 이름이 났다고 하였다. 절이 위치한 천불산(千佛山) 이라는 이름도 “천불이 푸른 공중 우뚝 서 있고, 나한이 가운데 봉우리에 예를 갖추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지어졌다고 하였다. 화방사의 중심 전각이 현재의 영산전이며, 조선시대의 여러 기록에서도 모두 나한전에 관한 것이 나온다. 그만큼 화방사의 ‘나한’은 알려져 왔다.
나한전상량문에는, “금릉 즉 강진의 화엄암 응진당은 천불이 늘어서 화엄경을 연설하고, 나한이 함께 살며 모든 번뇌를 끊는다.[今此金陵之華嚴庵應眞堂者 千佛列立演說三十九品之圓音 羅漢幷 居修斷八十一品之愚法.[”고 하여 응진당에 봉안되어 있는 나한상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이 상량문은 『동사열전(東師列傳)』의 저자인 범해 각안이 1888년에 지었다.
이처럼 화방사의 나한상은 역사성이 있다 하겠는데, 일부에서는 근대기 조성한 것으로 이해를 해 왔다. 사적비에 1912년에 사찰 중수 내용이 나오면서 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을 언급한 부분이 있어, 존상의 조성을 이 시기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비문 기록은 1912년에 전각을 새롭게 고쳐 지었으니 전각이 엄숙하며, 그 이전부터 있던 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이 더 빛을 발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내용을 토대로, 화방사 등 관계인들이 노력하여 강진군의 지원으로 나한상에 대한 정밀조사가 송은석 교수(동국대) 등이 중심이 되어 실시되었다. 이 조사에서 특기할 것은 보존처리 관련한 과학적 조사가 함께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의 품종 분석과 연륜연대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CT’라고 하는 엑스레이 전산단층촬영, 채색 안료 분석 등이다.
보통 불상이나 보살상, 나한상, 시왕상 등 불교 존상은 조성할 때의 발원문이 복장(腹藏)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조성 연대, 작가, 장소(사찰), 명칭, 목적 등을 알 수 있다. 이게 역사성이고 학술적 가치이다. 그리고 조각 양식 등을 비교하면서 예술성을 평가한다. 그런데 복장(腹藏)을 조사하려면 지정되지 않은 유산이라도 일정한 허가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나한상 등 불교 존상의 복장 유물은 ‘건조물에 포장(包藏)된 매장유산’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절차는 추후에 거치기로 하고 우선 과학적 조사를 한 결과, 나무의 나이가 1652년경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CT’ 촬영을 통하여 복부와 하반신 부분에 서적 등 복장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먼저 문화유산 지정 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1685년 조성된 고흥 능가사의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을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조선후기 17세기 후반의 뛰어난 조각 양식
나한상(羅漢像)은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조각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인 말로, 산스크리트어 아르하(Arhat)의 음역이다. 체일의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聖者)로서, 응공(應供), 무학(無學), 응진(應眞), 살적(殺賊), 불생(不生), 이악(離惡) 등으로도 번역된다. 나한상은 불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불교 경전의 도상에 얽매이지 않아 여러 모습의 자세와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한상은 16나한상, 18나한상, 500나한상으로 분류된다. 16나한상이나 18나한상은 단독의 석가모니불상이나 삼존불상, 혹은 가섭상(迦葉像)과 아난상(阿難像)이 시립한 오존불상의 좌우에 각각 배열되는데, 이들 상의 왼쪽에 홀수 서열의 나한상이, 오른쪽에 짝수 서열의 나한상이 있다. 이들 나한상들은 나한전, 응진전(應眞殿),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영산전(靈山殿) 등에 봉안된다.
강진 화방사 영산전에는 원래 목조 석가모니불상(1구), 가섭존자상(1구), 아난존자상(1구), 나한상(16구), 사자상(2구) 등 21구의 목조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본존 석가불은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다. 나한상 2구(좌1상, 우1상)는 소조상으로 후대에 보완된 것이라 한다. 실제 지정 대상 조선시대 목조 존상은 가섭존자상 1구, 아난존자상 1구, 나한상 14구, 사장상 2구 등 17구이다.
가섭존자상은 지권인을 취한 늙은 승려의 모습이고, 아난존자상은 합장인을 취한 젊은 승려의 모습이며,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되었다. 나한상은 16구인데 이 가운데 소조상(2구)은 구조적으로나 양식적으로나 목조상(14구)과는 조성시기가 다른 것으로 보아, 목조상들보다 뒤에 보결로 제작된 것이다.
목조 나한상들은 모두 같은 제작 방식과 양식을 보이고 있다. 존상과 대좌가 하나의 통나무로 제작된 일체형이며, 존상 내부에 파내기 기법이 사용되었지만, 대좌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머리와 등 뒤쪽에 장방형의 구멍을 내고 상 내부를 파내었으며, 같은 재질의 목재로 구멍을 막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나한상의 자세는 결가부좌형이고 옷은 가섭상ㆍ아난상과 같이 삼(衫) 계통의 옷 위에 대의(大衣)를 착용하고 있다. 나한들은 지물(持物)을 든 상이 드물고 대부분은 옷을 쥐거나, 두 손을 맞대는 등 단순한 모습이다.
사자상은 나한상 옆에 시립하고 있는데, 머리에서 등으로 늘어진 두건을 쓰고, 깃발이 달린 창을 손에 쥐고 서 있는 모습이다.
나무 품종과 연륜연대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CT좔영 등 과학적 조사
수종 분석결과에 따르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좌우 사자상의 몸체는 소나무류, 받침대는 새우나무이다. 나한상은 소나무류(좌2, 좌4, 좌5, 좌7, 우2, 우3, 우4, 우6, 우5, 우7, 우8) 11구, 은행나무(좌3, 좌6, 좌8, 우5) 4구이다.
연륜연대분석은 목조나한상 가운데 소나무이면서 구성목재에 존재하는 연륜의 수가 40개 이상인 7구를 연대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최외각 연륜에 1651년이 부여된 6번, 13번, 15번의 최외각 연륜에는 수피부가 존재하였으며, 만재형성이 완료되어 있었다. 이는 사용된 목재가 1651년 늦가을에서 1652년 초봄 사이에 벌채되었음을 말해준다. 수피가 없고 최외각 연륜의 연대가 1649년인 14번은 치목에 의해 외각 부위가 제거된 것이며, 모든 부재가 함께 벌채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화방사 목조나한상은 1651년 늦가을에서 1652년 초봄 사이에 벌채되어 1652년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연륜연대기의 기간이 짧아 상호검증을 위해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실시하였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연륜1의 연대는 95.4% 신뢰구간에서 AD1490-1660년, 연륜25의 연대는 95.4% 신뢰 구간에서 AD1490-1660년으로 제시되었다. 위글매칭을 통해 두 연륜 시료의 연대간격(24년)을 충족시키는 연륜25의 연대구간은 95.4% 신뢰구간에서 A.D.1510-1660년으로 산출되었다. 따라서 최외각 연륜인 연륜45의 연대는 95.4% 신뢰구간에서 A.D.1530-1680년이었으며, 연륜연대로 밝혀진 1651년과 일치하였다.
투과분석도 하였는데 엑스레이 방사선 촬영(X-ray radiography)과 엑스레이 전산단층촬영(X-ray computed tomography, CT) 결과, 4구(가섭, 아난, 나한 좌5, 나한 우2)는 후령통과 복장유물이 확인되었고, 9구(나한 좌1, 나한 좌3, 나한 좌4, 나한 좌6, 나한 좌7, 나한 좌8, 나한 우8, 좌사자, 우사자)는 복장유물, 1구(나한 우7)는 후령통이 확인되었다. 2구(나한 좌2, 나한 우1)는 확인되지 않았다.
채색 안료 분석, 전통 안료인 염화동 검출
채색안료 분석은 나한상에 대해 채색의 색상 정보 확인, 휴대용 현미경 촬영, 색도측정, 성분분석의 3가지 비파괴적인 분석방법과 박락된 시편에 대상으로 X-선회절 분석의 정밀분석을 하였다. 안료분석 결과, 대부분 안료는 근·현대 합성 안료로 확인되어 최근에 채색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좌6 나한상에서 표면 황색 안료 아래 녹색 안료에서 전통 안료인 염화동이 검출되었다.
화방사 나한상의 양식적, 도상적 특징들로 보아 조선 후기 17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륜연대분석(1652년)과 방사성탄소연대측정(1530-1680) 과학적 조사 결과도 17세기 후반으로 시기가 분석된 바 있다.
조선시대 응진전의 존상 배치는 대체적으로 석가모니불(1), 제화갈라보살(1), 미륵보살(1), 아난존자(1), 가섭존자(1), 나한(16), 제석(2), 사자(2), 장군(2) 등 26구로 구성된다. 화방사에는 본존인 석가불과 제석상, 장군상이 없고 나한상 2구는 소조로서 후대에 보완한 것이라 조선시대 후기 제작 당시의 존상은 17구이다.
강진 화방사 나한상 일괄은 양식이나 도상 특징에서 1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연륜연대측정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통하여 17세기 후반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투과분석과 안료분석 등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여 학술적 의미도 부여 할 수 있다. 투과촬영을 통하여 복장유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절차에 따라 조사기 이루어 진다면 문화유산의 승격 지정도 가능하리라 본다.
* 2023년 지정 당시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였다. 2024년 5월부터 ‘문화재’가 ‘국가유산’으로 용어가 바뀌면서, ‘국가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분류하였다. 화방사 나한상은 국가유산 가운데 문화유산에 해당하며 지정격은 시·도지정문화유산, 지정종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나한전 상량문의 처음과 시주질 부분
(범해 각안이 1888년[고종 25]에 지었는데 2019년 영산전 해체 수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대시주의 병상국 조공은 전라병마절도사(趙羲轍), 성주 민공(閔公)은 강진현감(閔泳殷)이다. 도감은 대목장이다. 15행의 해남쉬(海南倅) 김성택(金聖澤)은 해남현감이다. 강진 해남 일원에서 민관이 두루 협력했음을 알 수 있다. 김성택의 증손자가 도올 김용옥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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