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47 - 신령이시여! 비를 내려 주소서, 금성산과 남해사의 기우제

향토학인 2024. 2. 18. 22:39

인지의 즐거움347

 

신령이시여! 비를 내려 주소서, 금성산과 남해사의 기우제

-기록을 통해 보는 재난(災難)6-

 

김희태

 

큰물이 져 피해가 나는 재난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비가 오지 않아 든 재난도 있다. 비를 내려 주소서. 기우제를 올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 기록이 1,447회가 나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실제로 설행되었다고 보는 것은 864(세종 136, 숙종 115, 영조 101회 등), 기후재난 679, 환경개선사업 533회로 분류한 바 있다.(유재심성종상 논문)

 

나주 목사를 지낸 장유(張維, 15871638)의 금성산 기우제문과 남해사 기우제문을 소개한다. 장유는 1629(인조 7) 915일부터 1630(인조 8) 8월 사이 나주목사에 재임한다.

 

장유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 또는 묵소(默所)이다. 아버지는 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우의정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사위로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다. 1609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에 들어갔다. 대사헌, 대제학, 예조판서를 지냈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장유는 좌천되기는 했지만 나주목사로 재임하는 동안 수령으로써 숭유흥학(崇儒興學)에 힘썼다. 1630(인조 8) 11월에 세운 선정비에 숭유흥학이라 새겼다. 금성관 경내에 있다. <자헌대부 행 목사 신풍군 장공 숭유흥학 청덕선정비(資憲大夫行牧使新豐君張公維崇儒興學淸德善政碑/崇禎三年十一月 日)라 새겼다.

 

나주목사 장유 숭유흥학선정비(나주 금성관 내, 20204422)

 

장유는 나주읍지 간행을 추진하였고, 1630(인조 8) 417(병인)에는 금성산의 기우제 제문을 짓고 423일에는 남해사의 기우제 제문을 짓는다. 그리고 김천일 정열사비문을 짓는다.

 

먼저 417일에 금성산에서 기우제를 올린다. 금성산은 나주의 진산으로 봄가을로 전례를 준행해 오고 있다고 하였다. 구름과 비를 일으켜 곡식이 잘 자라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원이다.

 

농사가 잘 되어야 세금[租賦]도 납부하고 진상[公上]도 바치고 신령님께 올리는 제수(祭需)도 나오는데, 근년 이래로 물난리와 가뭄이 겹쳐 파종도 할 수 없고 심어 놓은 싹들도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있으니, 단비를 속히 내리시어 말라 죽어가는 곡식을 촉촉이 적셔 주시라 한다. 흉년의 재앙을 당해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옮겨 간다면, 제수 마련이 어려워 신령님 역시 의지할 바를 잃게 되고 만다고 읍소를 한다.

 

금성산 기우제 제문[錦城山祈雨文] - 장유

 

“1630(숭정(崇禎) 3년 경오년, 인조 8) 4월 경술삭 17일 병인에 나주 목사 장유는 감히 금성산(錦城山) 신령님께 밝게 고합니다.

 

금성산으로 말하면 우뚝 높이 솟아올라 남쪽 지방의 진산(鎭山)으로 모셔지고 있는데, 제사 전례(典禮)를 준행하면서 봄가을로 향기로운 제물을 올리는 것은, 구름과 비를 일으켜 곡식이 잘 자라게 함으로써 이 백성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끔 해 주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고달프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봄에는 밭갈고 여름에는 김매면서 그 토지에서 거둔 곡식을 몽땅 털어야만 겨우 조부(租賦)를 납부하고 공상(公上)을 바칠 수가 있게 되는데, 신령님께 올리는 제수(祭需)도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물난리와 가뭄이 겹쳐 일어나는 바람에 바야흐로 기근(飢饉)이 든 상태인데, 지금 곡식이 무럭무럭 커야 할 계절인데도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아 논바닥이 메말라 갈라진 나머지 밭갈아 파종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심어 놓은 싹들도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있으니, 만약 열흘 정도만 더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에는 전혀 가망이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명을 받고 이 지방에 와서 백성을 돌보고 있는데, 가령 이 백성들이 흉년의 재앙을 당해 사방으로 흩어져 옮겨 가게 되고, 그리하여 신령님 역시 의지할 바를 잃게 되고 만다면, 어찌 신령님만 부끄러워할 일이겠습니까. 나 역시 장차 그 죄를 모면할 길이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에 감히 제물을 갖추어 묘정(廟庭)에 가서 황망(遑忙)히 부탁드리게 되었으니, 신령님께서는 굽어살피시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단비를 속히 내리시어 말라 죽어가는 곡식을 촉촉이 적셔 주시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흠향하소서.”

 

이같은 금성산 기우제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감응하지 않아 비는 내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열흘 안에 구름과 비를 일으켜 달라고 간절한 기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해당으로 나서 기우제를 올린다. 금성산에 이어 칠일만인 423일이다.

 

한발의 재앙을 입은 나머지 보리 이삭도 여물지 않는 가운데, 높은 지대의 논밭은 이미 땅이 갈라져 있고 낮은 지대 역시 장차 메말라 버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밭갈아 파종하지 못한 경우가 반을 넘어 농부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만약 앞으로 열흘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채 망종(芒種) 절후를 넘기게 된다면, 신령님이 아무리 단비를 내려 준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장유 목사는 직접 금성산 신령에게 기도를 드렸건만 아무런 영험도 보여 주지 않기에 감히 남해당 신령님께 달려와서 호소드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백성들이야말로 하늘의 백성들이요 신령님 역시 임어(臨御)하고 계시는 바인데, 어찌 차마 굶어 죽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 하면서 다시 한번 예를 올린다.

 

금성산 기우문(장유, 계곡집)

남해사 기우문(장유, 계곡집)

 

 

남해사의 기우제 제문[南海祠祈雨文] - 장유

 

“1630(숭정 3년 경오년) 4월 경술삭 23일 임신에 나주 목사 장유는 감히 남해(南海)의 신령님께 밝게 고합니다.

 

삼가 살피건대, 물은 감덕(坎德, 자기를 낮추어 낮은 곳에 거하는 겸허한 덕성)을 지니고 있는데, 바다로 말하면 또 뭇 물줄기들이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서 지극한 음()의 기운이 응결되어 있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교룡(蛟龍)이 서식(棲息)하는 곳에서도 비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 아홉 마장 정도는 그래도 축축이 적셔 주는데, 지극히 광대한 바다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나라에서 바다와 산악을 떠받들며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남쪽 바다의 사당이 그야말로 이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니, 사방의 경내 안에서 만약 비오고 햇볕 쪼이는 것이 순조롭지 않아 뭇 생령들이 고통을 호소해 온다면 모두 신령님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한발의 재앙을 입은 나머지 보리 이삭도 여물지 않는 가운데, 높은 지대의 논밭은 이미 땅이 갈라져 있고 낮은 지대 역시 장차 메말라 버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밭갈아 파종하지 못한 경우가 반을 넘어 농부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만약 앞으로 열흘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채 망종(芒種) 절후를 넘기게 된다면, 신령님이 아무리 단비를 내려 준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이를 두려워하여 직접 금성산 신령에게 기도를 드렸건만 아무런 영험도 보여 주지 않기에 감히 신령님께 달려와서 호소드리는 바입니다. 만약 정성이 지극하지 못했거나 예를 경건히 차리지 못했다면 모든 죄는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 백성들이야말로 하늘의 백성들이요 신령님 역시 임어(臨御)하고 계시는 바인데, 어찌 차마 굶어 죽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속히 현묘한 기틀을 다시 한번 발동하시어 비가 쏟아지는 은택을 내려 주소서. 간절히 기원하며 우러러 소망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흠향하소서.”

 

<나주문집목록>(1996)기우제문을 검색해 보면, 양만용(梁曼容, 15981651)<오재유고(梧齋遺集)>(5 祈雨文)구망씨(句芒氏)’, ‘축융씨(祝融氏)’, ‘후상씨(后上氏)’가 있다. 이병수(李炳壽, 18551941)<겸산유고(謙山遺稿)> 7에는 축문(祝文)으로 제 금성산신문(祭錦城山神文), 기우문(祈雨文)으로 사직단 기우문(社稷壇祈雨文)’, ‘금성산 기우문(錦城山祈雨文)’, ‘남해당 기우문(南海堂祈雨文)’, ‘가요산 기우문(歌謠山祈雨文)’, ‘성황 기우문(城隍祈雨文)’, ‘용진산 기우문(聳珍山祈雨文)’이 실려 있다. 가요산과 용진산에서도 기우제가 열렸음을 알 수 있다.

 

나주문집목록에는 다른 지역의 기우제문도 보인다. 이장영(李長榮, 15211589)의 문집(<竹谷集> 3)에는 광주 무등산 기우제문[無等山祈雨祭文(光州牧使時), 곤재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문집(<愚得錄> 3)에는 곡성 옥과 천덕산 기우제문[天德山祈雨祭文]이 실려 있다.

 

나주목사 송정희(宋正熙, 1802~1881)<남유록(南遊錄)>에도 2종의 기우제문이 있다. 사단[社壇祈雨祭文]과 여제단[厲壇祈雨祭文]에소 올린 제문이다. 사단은 토신(土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일반적으로 사직단(社稷壇) 안의 동쪽에 있다. 1865년 윤5월에 기우제를 올렸다. 여단(厲壇)은 여귀(厲鬼)를 위해 차린 제단이다. 여귀는 전쟁이나 돌림병으로 비명횡사하여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을 이른다.

 

사단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문[을축년(1865) 5월 일](社壇祈雨祭文[乙丑 閏五月日]) - 송정희

 

땅은 받들고 하늘은 베풀며   坤承乾施

교화가 널리 퍼지니   敷化斯普

농사를 주로 하기에   主厥稼穡

이 토양을 바칩니다   奠玆壤土

어찌하여 여름부터   胡自仲夏

오래도록 장마비를 아끼십니까   久靳霖雨

잠시 비를 내려주고 거두시니   乍浥而收

강산이 메마른 듯 합니다   滌滌山浦

작은 별은 밤에 빛나고   嘒星夜爛

밝은 해는 낮에 빛나나   杲日晝煦

쌓여서 불볕더위가 되니   蘊隆赫炎

여기(沴氣, 악성 전염병, 천연두)가 항상 모입니다   沴氣常聚

사람들[천우(千耦)]은 밭갈이를 멈추고   千耦輟耕

구름과 무지개 보기를   雲霓是覩

어린 아이가   譬如嬰孩

어미 젖을 갈망하듯 바라봅니다   渴望母乳

아름다운 은혜를 베풀어서   願垂嘉惠

재앙을 없애고 큰 복을 내려주시며   消灾降祜

속히 단비를 내려주시어   亟賜甘霈

전답을 적셔주기를 바라옵니다   沾洽田圃

 

여단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문[厲壇祈雨祭文] - 송정희

 

북쪽에 있는 단()   維北有壇

뭇 신령들이 임하고   群靈所莅

()*은 여러 덕을 모아서   坎爲衆德

(, )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壬以占位

불을 억제하고 물을 생하는 것은   制火生水

이내 신의 일이나   乃神之事

가뭄이 어찌 이리도 심하여   旱胡太甚

백성들을 다 병들게 하는 것입니까   俾民咸瘁

내천과 연못이 다 마르도록   川澤俱涸

더위는 매우 성하고   燠熱孔熾

아침에 비가 내리나 곧바로 개니 朝  雨旋霽

겨우 먼지나 적실뿐입니다   塵坱纔漬

구징(咎徵)**을 생각하면   言念咎徵

죄는 수령에게서 비롯되는데   罪由長吏

차마 무고(無辜)한 백성들로 하여금   忍使無辜

도리어 재앙에 걸리게 하였습니다   反罹災祟

자신을 돌아보고 자책하며   撫躬自責

감히 성의를 다하오니   敢罄誠意

신명의 도움을 드리워   庶垂冥佑

큰비를 속히 내려주소서   大霈亟賜

 

*() : 주역》 〈감괘(坎卦) ()에 이르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習坎)이니 군자가 보고서 덕행을 변치 않으며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水洊至習坎 君子以 常德行習敎事]”라고 하였다. 이는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히 흘러 대하(大河)를 이루는 물의 속성을 통해 인간이 배워야 할 교훈을 말한 것이다.

**구징(咎徵) : 천벌의 징조를 말하는데, 흔히 임금의 과실에 대한 경계로서 일어나는 천재지변 등을 가리킨다. 書經 洪範

사단기우문, 여단기우문(송정희, 남유록/규장각)

송정희 나주목사의 남유록(역주본, 나주문화원, 2020)

 

錦城山祈雨文

維崇禎三年歲次庚午四月庚戌朔十七日丙寅羅州牧使張維敢昭告于錦城山之神維山巍然雄峙爲南服之名鎭秩于祀典春秋享芬苾之薦者以其興雲雨殖嘉生能惠澤斯民也民之爲生可謂勤矣春耕夏耘竭其地之所收僅得以給租賦奉公上而神之粢盛於是乎出焉比年以來水旱荐臻方有阻飢之憂今者節屬長養膏澤久閟田疇焦坼耕者不得種而苗者不得滋若復旬日不雨則無可望矣維受命來牧此土如使斯民遭罹凶侵轉徙四方而神亦失其所依則豈惟爲神之羞維將何所逃其罪乎茲敢具牲幣詣廟庭匍匐請命惟神俯垂鑑假速賜甘霔以潤澤焦涸不勝至幸尙饗

(계곡선생집9;이상현 역/한국고전종합DB)

 

南海祠祈雨文

維崇禎三年歲次庚午四月庚戌朔二十三日壬申羅州牧使張維敢昭告于南海之神伏以水者坎德也海又衆水所歸至陰之墟也蛟龍之所涵育雲雨之所蒸泄河潤猶及九里況海之至大者乎國家崇祀海嶽而南溟之祠實在此土一方之內如有雨暘不若群生告病則皆神之羞也今茲旱暵爲災麥秀不實高田已坼下田將涸民之不得耕種者過半農夫遑遑有大命近止之憂若旬日不雨奄過芒種之候則神雖惠以甘霔無可及矣維爲是懼躬禱于錦城山之神而不蒙靈貺故敢赴愬于神焉若維誠有不至禮有不虔則罪在於維之身斯民乃天之民而亦神之所臨莅也豈忍之饑而死乎伏願速回玄機賜以霈澤無任祈懇顒望之至尙饗

(계곡선생집9;이상현 역/한국고전종합DB)

 

*현장 강의(2024.02.05.) 때에는 진도 기우제문 사례도 소개하였다.

 

참고

나주시문화원, 나주문집목록, 1996.

유재심성종상, 조선시대 기후변화와 환경개선사업 관계-조선왕조실록의 가뭄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전통조경학회지29-3, 2011, 147~153.

나주문화원, 송정희 나주목사의 남유록, 2019.

나주문화원, 나주의 금석문, 2020., 251.

김희태, 산신이시여 비를 내려 주소서, 진도 금골산 기우문, 1668, 인지의 즐거움286, https://kht1215.tistory.com/m/920. 2022.09.01.

 

송정희 목사 후손(대전)의 나주문화원 방문

송정희 목사 후손(대전)의 금성관 답사(2020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