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83 -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의 향촌기반과 교유관계

향토학인 2019. 7. 3. 15:01

인지의 즐거움183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의 향촌기반과 교유관계


김희태

경회 김영근(景晦 金永根, 1865~1934)선생의 향촌기반과 교유관계를 간략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향촌 기반은 가계와 생애, 학통 등을 살피면서 입향세거지, 출생성장처, 수학처 등을 정리하였다. 교유관계는 강진지역, 장흥 지역, 도외 지역, 간도 지역으로 나누어 살폈다.


후손가에 전하는 자료와 현지 답사 등을 통하여 확인한 부분도 있지만 미진한 점이 많다. 다행히 『한천정사강록』을 통해 조선말기 향촌의 강회 강설 사례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좀 더 세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같은 자료가 전래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부분이다.


경회 김영근은 김해김씨 송정파이다. 중조 김승원(1596~1658)은 지금의 해남 송지면 죽도촌에 터를 잡았다. 손자 김철공(1648~1713)대에 완도 군외면을 거쳐 5세 김진태(1733~1806)가 강진으로 들어와 송정파 파조가 된다. 9세 심어당 김도순(1820~1886)은 강진읍 목리 초지마을에 살았고 1873년 금갑진 만호 임기를 마치고 칠량면 명주리 명동마을에 정착한다. 바로 경회 김영근의 부친이다. 김영근이 태어난 곳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친의 활동지역과 연관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근은 다섯 살입 입학하여 아버지 김도순에게 경서와 사서를 배우고 열네살부터 오남 김한섭(1838~1894)에게 수학을 한다. 김한섭에게는 한천정사와 봉양정사에서 배운다. 김한섭은 장흥 흥룡동에서 태어나 마흔살때인 1877년(고종 14) 강진 월각산 아래 대명동의 한천정사에서 강학을 한다. 한천정사학규를 마련하고 3월에 회강지일, 9월에 향음지일로 정하여 절차와 복식까지 규정하여 강회를 한다. 일감정, 잠심대, 연당, 죽원을 조성하고 주부자유상을 봉안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문생들에게 배알하도록 했다. 김영근은 한천정사에서 기숙하면서 수학을 한다. 김한섭은 1887년에 백도면(현 신전면) 수양리 봉양정사로 옮겨 강학을 한다.


김한섭이 한천정사와 봉양정사에서 강학한 자료로 『한천정사강록』이 전한다. 1886년(고종 23) 3월 정수사 강회를 시작으로 1894년(고종 31) 3월 봉양정사 강회까지 17회 강회를 기록한 것이다. 참여 문생은 150명이다. 강진이 79명이고 장흥 32명, 영암 22명, 해남 10명, 나주(지도) 1명, 보성 1명, 불명 5명 등이다. 김영근의 강회참여는 1886년 3월~ 1893년 9월 15일 사이 6회가 확인된다. 정수사와 한천정사가 1회이고 봉양정사 4회이다. 김영근은 열일곱살나던 1883년(고종 20) 중암 김평묵(1819~1891)에게 수학한다. 김평묵이 나주 백련동, 지금의 신안군 지도에 유배와 있을 때이다.


경회 김영근은 향리인 강진을 비롯하여 인근 장흥의 인사들과 교유를 많이 한다. 강진지역은 가문 종인, 스승 선인, 문하 동문, 문인 제자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문 종인은 종질이지만 김영근 보다 연상이었던 김태우(홍주, 1855~1894)가 대표적이다. 문중 기록에 관한 사항을 서로 의지하였고 선대 세계의 오류를 바로 잡고 김평묵에게 글을 청할 때 김영근의 부탁으로 김태우가 다녀오기도 한다.


사승 관계 교유는, 김영근이 김한섭 문하에서 수학할 당시 일을 기록한 글(기오남선생유사)이 있고 서간을 통해 문의도 한다. 김평묵에게 문목을 보내 문의하기도 하며 김평묵도 시를 지어 준다. 특히 김영근이 기숙하며 수학했던 김한섭의 대명동에 대해 김평묵이 지은 「대명동기」는 조선말기 향촌사회 서재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기록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


장흥 지역은 관산쪽 인물과 많은 교유를 한다. 김한섭 문하 동문인 위계두(1876~1934)의 경우 1930년~1934년 사이 여러차례 서간이 오간다. 『경회집』에 글이 있는 장흥인들은 40여명이 넘는다.


전남도외 지역은 간도를 두차례 오가면서 교유한 내용이 중요하다. 간도를 오가는 길에 충청도와 강원도를 들러 선인들을 만나고 토론하면서 오간 서찰이 많이 전한다. 김영근은 1906년 5월 19일 동문 위봉식과 조동겸(1863~?), 홍병원, 아들 김효주(1887~?)와 함께 간도로 1차 원유를 떠난다. 김영근과 함께 간 위봉식이 교류한 사람은 이상규, 김하수 등 16명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당시 북간도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했던 함경도 경성이나 명천 출신의 우국지사들과 연결되어 있다. 1907년 3월 원유에서 돌아오는 길에 춘천의 가정에 들러 유인석을 만나고 문답한 내용을 「가정문답」으로 남긴다.


자료의 발굴과 정리, 문집 정본화 작업이나 국역과 함께해야 할 일이 또 있다. 현장에 대한 것이다. 경회 김영근과 관련되는 개개 현장도 중요하지만 선대나 학통과 관련되는 현장도 학술조사를 하고 정비 활용계획을 세웠으면 싶다. 그리고 그같은 학문전통이나 정신문화도 이어가는데 힘과 지혜를 모아지기를 기대한다.


*  김희태, 경회 김영근의 학통과 교유관계, 맺음말

<경회 김영근의 도학사상과 문학세계>

-경회선생선양사업추진위원회, 일상출판, 2019.06, 339쪽.


1부. 경회 김영근의 생애와 사상

  1장 호남유생 경회 김영근의 일생과 북간도 항일 망명∥박민영/011

  2장 호남 유생 경회 김영근의 화서학 수용과 위정척사사상의 전개∥김봉곤/046

  3장 경회 김영근의 학통과 교유관계∥김희태/088

 

2부. 경회 김영근의 문학세계

  1장 경회 김영근의 한시에 투영된 위정척사 정신∥이향배 /169

  2장 경회 김영근의 한시 연구

        -강진에서 간도까지 <원유일록>을 중심으로-∥문희순 /206

  3장 경회 김영근의 삶과 시세계

        -김영근의 영물시를 중심으로-∥김기림/263

  4장 경회 김영근 한시의 전원 인식

        -전원을 표현한 시어(詩語)를 중심으로-∥황민선/303

 

* 2017년 11월 10일 강진에서 열린 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증보하여 단행본으로 엮었다. 집필자, 경회선생선양사업추진위원회, 강진군, 강진군의회, 강진문화원, 일상출판 관계관 여러분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주었다. 특히 기획 총괄 안동교 교수, 자료 제공 김환균 선생, 편집교정  이종우선생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