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60 - 전통주, 용수 안에 고이는 노랗고 말간 찹쌀 청주

향토학인 2018. 9. 9. 08:47

인지의 즐거움 160


전통주, 용수 안에 고이는 노랗고 말간 찹쌀 청주

-남도의 전통주 맛 궁금하지 않으세요?- 

 

김희태

 

전통주. 딱히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명주. 그건 지역일수도, 향촌일수도, 집안 일수도 있겠다. 전라도 명주, 진도 특산주, 김씨 가문 내림 술 따위. 또 특정한 계절이나 일시에 맞춰 빚는 술, 재료로서 바라 보는 술,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서 담그는 술. 그런 것들이 몇 대가 지나도록 오래 되어 이름난 술로 자리 잡은 것.

 

예전에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했다. 문화재 관련법에 따라 지정된 인간문화재가 내린 술. 관광 관련법에 따라 관광지에서 특산주로 담근 술. 잘 알려진 진도 홍주는 문화재, 낙안 사삼주는 관광쪽이다. 어느 경우던 국세청에서 주류제조면허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사자들이 문화재와 관광을 관장하는 중앙부서에 신청하면, 부서의 장이 국세청장에게 추천하고, 통과되면 주류제조면허 허가를 받는 형식.

 

전통술을 빚는데도 “세금” 다루는 국세청장에게 제조허가를 받는다는 게 무언가 맞지 않아 제도 개선을 수없이 제기해 왔다. 술은 “세금”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음식”과 “건강”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탓인지 몇 년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절차도 마련되었다. 그런데 국세청 주류제조면허 업무는 그대로인체 식품청이 들어 갔으니 한 단계 더 까다로워져 버렸다. 주류제조 면허 허가 업무 전반이 “음식” 차원에서 다루어질 때 “가양주”, “전통주”는 광복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인간문화재가 만든 술은 먼저 문배주, 면천 두견주, 경주교동법주가 유명하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보유자가 빚는 술이다. 문배주는 원래 평안도 대동강 유역의 석회암층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이용하여 밀누룩에 밀, 좁쌀, 수수가 주원료이다. 엷은 황갈색에 48도. 문배나무의 과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문배향을 풍긴다고 한다.


충청도 면천 두견주는 진달래꽃 향기가 일품이다. 연한 황갈색에 단맛이 나며 점성이 있다. 신맛과 누룩냄새는 거의 없다. 원래는 면천의 안샘의 물로 빚어 100일 지나 마신다. 21도. 성인병 예방에도 효용이 있다.


교동 법주는 경주의 최부자집 마당의 우물물을 쓴다. 양과 온도가 사철 내내 거의 같아 물맛 좋기로 알려진 곳. 토종 찹쌀로 빚은 순수한 곡주. 투명한 미황색 술에서 우러 나오는 향기와 단맛, 약간의 신맛. 16~18도.

 

충청 두견주와 영남 법주에 이어 미향(味鄕)으로 이름 높은 전라도는 어떤 술이 있나. 아쉽게도 국가무형문화재는 아직 없다. 듣기로는 진도 홍주가 국가무형문화재 반열에 오르려고 추진했으나 이런 저런 사유로 지정되지는 못하고 문배주, 두견주, 법주만 먼저 지정되었다고 한다. 1986년이니 40년이 훌쩍이다. 1994년에 전남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명칭은 진도 전통홍주.

 

밑술과 덧술의 중양기법으로 만든 막걸리를 증류기법으로 소주를 내리고, 소주가 지초 층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진홍색 홍주가 된다. 보리쌀이나 멥쌀을 쪄서 고두밥을 짓고, 밀과 보리를 반반씩 섞어 띄운 누룩을 물과 함께 섞어 술을 빚어 항아리에 담고, 30~50일 정도의 오랜 발효 기간을 거친 뒤, 소주고리를 이용하여 소주를 내린다. 술 단지에 받쳐둔 지초를 지나면서 홍옥 색을 낸다. 40도 이상의 도수 높은 술인데도 목안에 큰 자극을 주지 않고 여러 약효도 있어 전국적인 명주가 되었다. 허화자(1929~2013)를 이어 김양덕(1932년생)이 인간문화재로서 전승하고 있다.

 

해남 진양주는 계곡면 덕정리에서 빚어내는 찹쌀청주이다. 덕정리의 좋은 샘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순하고 향기가 높다. 찹쌀 한되에 물 닷되를 부어 죽을 쑨 뒤 찬 기운이 돌도록 식힌다. 누룩 두되를 곱게 찧어서 죽과 함께 섞고, 항아리에 담아 부뚜막에 놓아둔다. 온도는 20도 이상을 유지한다. 사나흘이 지나 술이 익으면 다시 찹쌀 9되를 술밥으로 쪄 식힌 뒤 항아리의 술과 섞어 부뚜막에 놓아둔다. 칠팔일이 지나면 물 닷되를 끓여 식힌 뒤 항아리에 붓는다. 사나흘이 지나 술이 완전히 익으면 용수를 박아 그 안에 고이는 맑은 청주를 떠내고 다시 참채로 걸러내 완성한다. 1994년 지정 이래 최옥림이 전통을 잇고 있다.

 

보성 강하주는 청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술로 회천면 지역에서 전승된다. 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에서 과하주라고도 한다. 향과 맛이 진하고 숙취가 없으며, 마실 때 부드럽고 뒷맛이 개운하다. 재료는 밀, 보리, 햅쌀, 찹쌀 따위이다. 대추, 강황 등 약재도 곁들인다. 맛이 뛰어나서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술이라고도 한다. 강하주는 밑술, 덧술, 증류주 첨가 등의 과정과 약재 등의 첨가를 통하여 중양, 혼양, 약용주로 발달시킨 술이다. 2009년 도화자를 보유자로 인정하였는데 별세하여 그 향내도 끊길 처지이다.

 

전북 김제의 송순주는 소나무순과 쌀밥, 밀가루 반죽 그리고 맑은 물을 재료로 삼아 숙성시킨 소주이다. 맑은 황갈색 25도 내외. 약효도 있다. 전주의 이강주는 밀과 쌀로 만든 소주에 배와 생강, 계피, 울금의 추출액을 더하고 과당을 배합해 빚는 술이다. 정읍 죽력고는 청죽을 잘개 쪼개 불에 넣어 구워 스며 나오는 진액인 죽력(竹瀝)을 소주에 넣고, 꿀과 생강즙을 넣어 끓는 물에다 중탕하여 제조한다. 완주 송화 백일주는 수왕사 사찰에서 빚어 온 술이다. 좋은 쌀과 깨끗한 송화가루를 이용하여 100일 남짓 발효주를 빚고, 이 술을 한 번 더 증류시켜 100일간 숙성시킨다. 산수유, 구기자, 국화, 당귀 따위 약초도 함께 한다. 38도 내외 향기가 아주 좋다. 무엇 보다도 수왕사 절벽의 바위틈에서 흘러 내리는 약수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현행 주세법 등 관련법규의 전통주

  - 무형문화재보유자(국가, 시도)(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 주류부분 식품명인(식품산업진흥법),

  - 농업경영체 및 생산자단체(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 예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원리를 계승·발전시켜 진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술(전통주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


* 김희태, 전통주 한동이면 동네 잔치 열었제, <대동문화> 2018년 9월호(108호) 기획 특집 -우리 전통주와 명주-, 44~47쪽


용수(보성 강하주, 2009)

고두밥(보성 강하주, 2009)


누룩(진도 전통홍주, 2017)

밑술(보성 강하주, 2009)

덧술(보성 강하주, 2009)


증류(진도 전통홍주, 2017)

지초-홍주(진도 전통홍주,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