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44 - 선비의 시, 화가의 산수화로 형상화 된 기차, 1935년·1936년

향토학인 2018. 3. 2. 22:10

인지의 즐거움144


선비의 시, 화가의 산수화로 형상화 된 기차, 1935년·1936년

-역과 철도, 역사따라 풍류따라3-


김희태


1920~30년대에 이르면 기차 여행이 유행이 된다. 장흥, 강진 등 남부사람들은 영산포역이 기점이다. 1935년 4월 28일 9시. 한 무리의 선비들이 길을 나선다. 장흥군 용산면 국정마을. 정기차를 타고 장흥읍 자동차연합소, 다시 대절차를 타고 영산포에 이른다. 김주현, 이정원, 김병룡, 송재우, 위복량, 위계룡 등 열세명. 점심을 먹고 나서 한 구절을 읊는다.


차 타고 차분히 유상함이 이제 비롯되는데
겨우 영산에 이르러 활연함을 깨달았네.
기적소리 길게 내며 출발을 재촉하니
행인들이 바삐 오가니 연기처럼 먼지이네.


언젠가는 차를 타고 차분하게 세상 풍물을 보며 감상하고 싶다. 이제야 출발. 여러 벗들과 함께 만난다. 영산포에 이른다. 이윽고 역이다. 이제 저 큰 도회와 역사 현장을 보리라. 생각만해도 세상이 확 트인듯하다. 이윽고 기차가 들어 온다. 기적소리 길게 울린다. 연기처럼 먼지가 인다. 곧 출발한다는 것. 승객들이 바삐 움진인다. 내리는 이 별로 없고 대부분 타는 사람들이다. 향촌 선비의 눈에 비친 영산포역 경관이다.


이윽고 한 밤. 8시 51분 직행 기차를 탄다. 밤새 달려 4월 29일 7시 경성 남대문역전에 이르러 또 한 수를 짓는다. 장흥 선비 정강 김주현(1890~1960)의 탐승록(探勝錄)이다. 조선 왕궁을 들러 보고 인천. 개성. 금강산 여행을 한다. 다시 돌아 오는 길 또한 기차여행이다.


또 다른 자료를 보자. 선비화가가 그린 능주 죽수십이경도 한국화 그림. 염재 송태회(1872~1941) 작. 죽수(竹樹)는 능주의 별칭. 화순 남면 사평리 출신. 교육자이자 서화가. 근대 호남화단의 마지막 시서화 삼절.

 

그런데 그가 그린 산수화 그림에 ‘기차’가 보인다. 전통 남종화를 이어 받았다는 작가의 그림에 철도교량 실경이 그려진 것.


그림이 그려진 사연 또한 흥미롭다. 원 그림은 1929년 2월에 그렸다. 벽강어부(碧江漁夫). ‘영벽강의 고기잡이’라는 시를 곁들인 그림이다. 영벽강은 지석강의 이칭. 원래 공필 양재명(1882~1934)이 자신이 지은 죽수십이경시에 그림을 그려 달라고 송염재에게 부탁 한 것. 영벽강 강이름의 유래가 된 영벽정 주변의 산수 경관.


그 벽강어부 화제(畫題) 옆에 또 하나의 화제가 곁들여 있다. 병자년 즉 1936년 봄 쓴 글이다. 내용인즉 지석강 상류에 기차가 다니는 철교가 놓이자 이를 추가해 그려 넣은 것. 그런데 당초에 그림을 의뢰한 양재명은 이태전 세상을 떠나고, 그의 동생 양재희가 그림을 지참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가로 그려준다.


철교 아래는 다리가 보인다. 신작로의 다리와 기찻길 다리, 처음에는 하나이다가 1936년 들어 추가로 그려 '쌍교'가 된 것이다. 전통 서화에 있어 덧칠이나 가채는 하지 않았던 것이 일종의 불문률. 그래도 추가로 철교를 그리고 화제까지 덧 붙였으니 단순한 가채가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인 셈.

 

이곳 능주를 지나는 기찻길은 광려선(光麗線)(광주-보성-여수)이라는 이름으로 1929년 2월 26일 남조선철도에서 공사를 시작해 1930년 12월 20일 광려선 전 구간이 개통된다.


선비화가 송염재가 죽수십이경도를 그릴 무렵(1929년 2월)에 철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7년여가 지난 뒤에는 지역의 문화경관으로 자리잡아 산수화 그림으로 남게 된 것.



염재 송태회의 죽수십이경도 중 벽강어부 그림의 철교.

원 그림은 1929년, 철교 그림은 1936년에 추가로 그렸고 그 사연을 적어 두었다. (사진 화순군청 심홍섭 문화재전문위원, 호남회화연구소장 석주 박종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