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42 - 매천 황현선생, 기차를 보다 - 1909년

향토학인 2018. 3. 1. 01:25

인지의즐거움142

 

매천 황현선생, 기차를 보다 - 1909년
-역과 철도, 역사따라 풍물따라1-

 

김희태

 

종일토록 뇌성벽력 소리만 들릴 뿐   
  終日惟聞霹靂聲(종일유문벽력성)
큰 고래 바다 나간 길이 따질 수 없다
  長鯨出海不論程(장경출해불논정)
무심히 기차 수레 밖을 이야기해보니 
  無心話及車輪外(무심화급차륜외)
청산은 보내고 맞이함만 있을 뿐이라 
  只有靑山管送迎(지유청산관송영)
                                     
물끄러미 쳐다본다. 왼 종일 뇌성 벽력소리 뿐이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들을 수도 없다. 그 소리 따라가 본다. 큰 고래가 바다로 나간 길 따질 수 없다 했는데, 저 기차도 어디까지 갈지 알기 어렵다. 기차를 큰 고래로 비유했다. 무심코 기차 바퀴 밖을 이야기 해본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 밖이다. 돌아 보니 청산이다. 그 청산, 보내고 맞기만 한다.

 

‘기차’를 보고 쓴 시이다. 언제쯤일까. 누구의 작품일까. 어디였을까.

 

우선 작품의 주인공. 매천 황현(1855∼1910)선생이다. 조선말기~대한제국기의 순국지사. 시와 문장으로 알려 졌고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 매천의 문집에 있는 ‘기차(汽車)’란 제목의 시이다. 호남학연구소 편 <매천전집1>(1984)에 실려 있다.

 

시기는 언제인가. 매천의 문집은 연도별로 분류되어 있다. 이 시는 ‘기유고(己酉考)에 실려 있다. 기유년, 1909년이다. 이 연대가 있음으로서 어디인가에 대한 단서도 찾아진다. 황매천은 광양에서 태어났고 뒤에 구례에서 살았다. 지역 연고로 보면 경전선(慶全線)이나 전라선(全羅線) 어딘가의 산 기슭에서 기차를 보며 지은 시로 연상 할 수 있다.

 

경전선, 호남선 송정리에서 경부 삼랑진까지의 동서를 가로 지르는 철도. 전라선, 익산(이리)에서 여수까지 이어지는 철길. 전라선의 구례구역쯤일까? 경전선의 광양역쯤일까? 그런데 두곳 다 아니다. 전라선은 1914년 첫구간(이리-전주)이 개통되었다. 경전선은 1905년 마산구간이 개통되었지만, 섬진강을 건너는 철길은 1968년에 열린다. 황매천이 연고지인 광양이나 구례에서는 기차를 볼 수 없었던 셈.

 

매천이 “기차” 시를 지은 1909년 당시 개통되어 있던 철도는 경인선(노량진-인천, 1899년)과 경부선(서울-부산, 1905년), 경의선(서울-신의주, 1906년)이다. 이렇게 보면 황매천이 기차를 보면 시를 지은 곳은 서울 나들이를 할 때 경부선 어간으로 보인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기차, 어디로 가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돌아 보니 그 뇌성도 저 청산과 마주하니 그저 오고가는 것일 뿐. ‘기차’라는 서구 이기를 보고 놀랐을 법하다. 그런데 그 ‘뇌성벽력’은 어쩌면 당시 세태의 어지러움과 혼돈을 말하는 것 같다. 도대체 앞 길이 보이지 않는.... 동학농민혁명, 서구 여러나라의 침탈, 을사늑약과 일제, 의병전쟁, 정부와 관료의 나약함과 부패... 그래도 ‘청산’같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염원을 노래한 듯.

 

황매천의 역사 저술인 <매천야록(梅泉野錄)>의 1909년 기록에는 철도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5월 기록으로 정부에서 호남철도부설권을 철회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때 서오순(徐午淳)은 그 일을 착수한 지 수년이 되었지만 경비가 부족하여 공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으므로 그 부설권마저 잃은 것이다. 간혹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송병준(宋秉畯)의 음모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한 ‘호남철도’는 지금의 호남선을 말한다. 경부선의 대전역에서 분기되어 논산·익산·김제·정읍·장성·나주·무안을 거쳐 목포에 이른다. 나름 의미가 있다. 1894년 7월에 의정부 공무아문에 철도국을 둔 것이 우리나라 공식 철도업무 수행을 위한 최초의 기구이다. 그리고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여러나라는 철도부설권을 요구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경목철도 부설에 대한 자영을 주장해 1904년 5월 호남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직산-강경-군산에 이르는 선과 공주-목포 간의 철도부설권을 철도원에 청원했다. 말하자면 우리 정부가 직접 뛰어 든 것이다.

 

호남선은 1910년 1월에 대전에서부터 공사를 실시해 대전-연산 간 39.9㎞를 1911년 7월에 개통한 이래 구간별로 철길이 열렸다. 학교-목포 간 35.2㎞를 1913년 5월에 개통해 1914년 1월 22일에 목포에서 호남선 전통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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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문화> 2018년 3월호 기획특집 <역과 철도> '역사기행'에 기고한 글 원본.(인지의 즐거움 142~146)

 

* 인연

소년시절 '철도'와 인연을 맺었다. 국립철도고등학교 운전과. '자응(장흥)' 출신의 '깡촌놈'이 서울행 기차를 영산포에서 탄 것. 일종의 유학길. 기차를 보도 못했고 타본 적도 없었는데...   1974~1982.

 

청년시절 '역사'(목포대 사학과)와 인연, 이어서 '문화재', '향토사'(전남도청 문화재 전문위원)와의 인연. 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역사학의 이해준교수님. 문화재학의 지허 성춘경위원님, 향토학의 학고 김정호 향토문화연구소장님 을 위시한 여러 선생님.

 

도청에 들기 바로 전 1986년 황현 선생의 '汽車' 시와 인연. <전남 문화유적총람>, <전남의 마을유래 자료집> 등의 조사 집필에 참여하게 되는데, 전일도서관에서 향토학 자료를 뒤적이다가 <매천전집>에서 '汽車' 시를 본 것. 아마도 소년시절의 '철도'와의 인연이 잠재되어 있어서 눈에 띄었던 듯 싶다.

 

그때 향토사 대부(학고선생님)께서 인물사 평전을 정리해 보고 글이 되면 신문에 실어 보자 제안하여 향토지 조사 정리와 함께 역사인물 자료를 뒤적이고 초고를 쓸 때 <매전전집>을 보았던 것.  김천일선생과 황현선생을 정리. 글은 싣지 못했지만 어딘가 그 초고가 있을 게다.  

 

그러고는 '기차' 시는 감춰졌다. 이따금 철도 여행시 생각하곤 했고, 언젠가 그 시심(詩心)을 읽어 보리라 하면서도... 훌쩍 30여년 세월이 흐른 것.

 

그러다 또 다른 인연으로 왔다. <대동문화>에서 '역과 철도'를 2018년 3월호 특집으로 계획하고 주제나 필자 등을 논의하게 된 것. 이동호 국장이 '전통시대의 역'에 대해서 '한 꼭지' 논의차 연락한 것인데, 나의 '전력'을 말하니 위임해 주어 주제 선정과 필자까지 섭외. 어디까지나 무임소 재능기부. 자주 그러지만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한국 철도(배은선), 관광 마케팅(박석민), 추억 여행(박관서), 역사 기행(김희태), 미래 철도(김을현) 따위.

 

다시 황현선생의 '기차' 시를 '버벅거리며' 옮겨 봤고 한시 전문가가 손 봐주었다. 몇 줄로 그 시상을 살피면서 철도 역사도 더듬어 보았다. 언젠가 보았던 선비들의 서울 나들이길 기차 여행, 선비화가의 산수화 그림에  철도교량이 추가로 오른 사연, 일제하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나주 역사, 문화재가 된 역과 철도...

 

 

 

 

이제 새로운 무대[정년]로 나아가려 한다. 영산포역에서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던 열일곱 소년이 '광주'와 '목포' 타관에서 환갑이 되어 머리가 훤해져 버린 것. 그동안의 시절인연, 사람인연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매천 황현의 시 ‘汽車‘(<매천전집>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