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18 - 일제잔재 지명으로 왜곡될 뻔한 역사지명 영산강(榮山江), 2005

향토학인 2017. 6. 17. 15:30

인지의 즐거움118

    20090521

 

일제잔재 지명으로 왜곡될 뻔한 역사지명 ‘영산강’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 ‘바로잡아야 할 일제문화잔재’ 시민 공모, 2005

-‘영산강, 만경강 이름 일제 잔재로 창지개명(創地改名)’, 으뜸상 선정, 이의제기, 취소-

 

김희태

 

 

남도의 젖줄 ‘영산강(榮山江)’,

그 오랜 역사 지명이 일제잔재 지명으로 왜곡될 뻔한적이 있다. 2005년 8월의 일이다.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실시한 ‘바로잡아야 할 일제문화잔재’ 시민 공모에서 “영산강, 만경강의 이름이 일제 잔재로서 창지개명(創地改名)한 것”임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1등(으뜸상)에 당선됐음이 언론에 발표 된 것. 2005.08.10일.

 

그런데 ‘영산강’은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시대의 국가 기록과 문집 등 고전문헌에도 등장하는 역사 지명임을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검색 자료 등을 토대로 이의 제기하여 재심사 끝에 으뜸상 선정이 취소되었다.

 

역사 지명임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든 지명으로 ‘역왜곡’ 될 뻔 했던 사례를 <한국고전종합DB> 등을 활용하여 바로잡은 것이다.

 

전남도청 김희태가 이의 제기에 처음 나섰고, 나주시청 윤여정님에 연락하자 향토학계와 지자체, 학자들이 나섰고, 언론까지 연계된 것. 결국 재심사 끝에 ‘으뜸상’ 선정 취소를 이끌어 냈다. 앞에서 <한국고전종합DB>를 언급한 것은, 4년이 지난 2009년에 <한국고전종합B> 활용수기 공모에 ‘왜곡될뻔한 영산강 역사지명을 바로잡은 사례’로 응모하면서 정리한 글이기에 그렇다. 2009.05.29일 발표. ‘역사지명을 왜곡한 내용을 바로잡은 사례(김희태)’. 우수상. 여기에 그 내용을 올린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홈페이지를 자주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로서 활용수기 공모에 자료를 보냅니다. 저는 한국사를 공부하고 문화재 분야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지역 역사 문화자료에 대한 조사, 연구를 하고 있어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종합DB>를 수시로 활용하며, <한국문집총간>도 소장하고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고전자료의 생활화가 되어 가고 있고, 그 중심에 한국고전번역원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2005년 8월 10일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실시한 ‘바로 잡아야 할 일제문화잔재’ 시민 공모에서 ‘영산강, 만경강의 이름이 일제 잔재로서 창지개명(創地改名)한 것임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1등(으뜸상)에 당선됐음을 언론에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언론에 공개한 선정 사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안자 이름은 표기 생략]

 

- 제안 내용 : 일제의 식량기지정책 시 사수강과 사호강을 각각 만경현, 영산포구에 예속된 만경강, 영산강으로 일제가 개칭해 현재에 이름

 

- 선정 사유 : 일제는 식민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모든 부문에 걸려 일본식 용어의 사용을 강제하면서 이를 제도화 해나갔다. 특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역사성과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편의적으로 지명을 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유의 아름다운 땅이름들이 일본식 한자조어로 바뀌었으며 그 조차도 원래의 명칭을 비하· 왜곡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거나 단순한 행정구분을 하는 식의 무리한 창지개명(創地改名)을 강행하였다. 제안자는 일제잔재가 땅이름에 그치지 않고 강이름에도 많이 남아 있음을 주목하고 강이름 개정운동을 주창하고 나섰다. 우선 만경강· 영산강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전통 지지류에는 나타나지 않는 일제 잔재임을 입증하고 강이름 조사를 호남 전역으로 넓히고 있다. 나아가 전국에 결쳐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 독창성과 실천력을 평가하며 으뜸상 후보로 선정한다.

 

제안내용이나 선정 사유에 설명한 내용 가운데, ‘영산강’이 일제에 의해 창지 개명업의 일환으로 작명되었다는 내용은 수긍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많은 고전문헌자료에서 영산강의 지명을 확인한 터 였고, 영산강에 대한 연구서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사업으로 추진하여 관계 전문가들에 의한 몇 차례의 심사 결과를 거쳐 언론에 발표 했다는데 있습니다. 공모-심사[3회]-발표를 거쳤기 때문에 웬만한 이의 제기는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수차례의 <고증심의위원회>와 <선정심사위원회>를 거쳤는데, 특히 고증심의위원회는 민간인 10명과 국립국어원, 민족문제연구소, 한글학회 등 국가기관과 전문단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론 발표된 이상, 빨리 정정해야만 ‘역왜곡’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생각난 것이 한국고전번역원[당시는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종합DB> 였습니다.

 

‘영산강’이라는 한글 검색어만으로도 40여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이처럼 ‘크릭’ 한번이면 조선시대 문헌에 ‘영산강’ 역사지명은 부지기수가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광복 60주년 기념 국가 사업으로 하는 공모 심사를 그렇게 허술하게 할 수 있었을까 염려스러웠습니다. 바로 검색 자료와 함께 의견을 담당부서에게 보내고, 영산강의 중심지인 나주시의 향토사학자(윤여정)에게도 자료를 보내 주면서 공동 보조를 취하였습니다. 그때 이의제기로 보낸 글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광복 60년이라는 큰 계획 하에서 하시는 좋은 일이라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들이 분분하면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다시 한번 메일을 보내면서 관련 자료를 보내 드립니다.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제안자 께서는 ‘榮山江’이라는 강 이름이 조선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 것 같습니다만, 조선시대 여러 기록에 나옵니다. 제안자의 제안의도의 큰 줄기(강 이름 마저 고쳐 버렸으니 이를 조사하여 바로잡자는 내용)는 이해되지만, 사례로 든 ‘영산강’의 경우 조선시대에도 영산강이라 써 왔습니다. 국가 관찬 사료인 <조선왕조실록> 등 다음 자료를 참고하십시오. 관련 책자의 원문을 몇 가지만 디지털 사진으로 보냅니다. 민원이나 시비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첫 번째 메일 보낼 때도 실명으로 했었고, 특히 사실이 다른 내용이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좋은 기획이 빛이 바랠 수 있을 것 같아 염려되는 심정으로 자료를 급히 보내 드립니다.

 

자료(사진파일 참조)

1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 <영조실록> 권4 영조 1년(1725) 3월 계해(25일)조 [원전] 41집 490면

2. 수은 강항선생(1567-1618, 조선시대 문인, <간양록> 저자)의 <수은집>

3. 건재 김천일선생(1537-1593, 조선시대 문인, 의병장, 진주성전투 순절)의 <건재집>

4. 옥봉 백광훈선생(1537-1582, 조선시대 문인, 시인)의 <옥봉집>

5. 다산 정약용선생(1762-1836, 조선시대 실학자)의 <여유당전서>(아언각비)

 

처음에 이의를 제기하자 추진위원회측에서는 미심쩍어 했고, 저는 한국고전번역원[민족문화추진회] 홈피에 들어가서 ‘영산강’으로 ‘크릭’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했습니다. 여러 곳의 언론사에서도 확인하는 전화가 왔는데,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문헌DB’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산강’을 확인하면 조선시대 문헌에 수십 종이 나올 거라는 설명을 듣고 으뜸상 선정에 대한 이의를 함께 제기해 주었습니다.

 

문화부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이의제기를 인정하고 재심사한다는 내용을 당시 추진위원회 홈피에 공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신문에서는 <고전 국역 사업을 맡고 있는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에서 ‘영산강’을 검색했더니, 문집 10여건이 ‘주르륵’ 떴다.>(조선일보, 2005.08.15 기자수첩, 김기철기자)라고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를 언급했습니다.

 

당시 경과를 보도를 한 한 인터넷 언론사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같은 내용[으뜸상]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전남도와 나주시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인 김희태씨는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 [영조실록] 권4 영조 1년(1725) 3월 계해(25일)조 [원전] 41집 490면 (사진 1의 첫줄 상단) △수은 강항선생(1567-1618, 조선시대 문인, [간양록]의 저자)의 [수은집](사진2 4째줄 하단) △ 건재 김천일선생(1537-1593, 조선시대 문인, 의병장, 진주성전투 순절)의 [건재집](사진3 3째줄 하단) △옥봉 백광훈성생(1537-1582, 조선시대 문인, 시인)의 [옥봉집](사진4 6째줄) △다산 정약용선생(1762-1836, 조선시대 실학자)의 [여유당전서](아언각비) (사진5 8줄 하단) 등 사진파일을 통해 '영산강'은 조선시대 이미 존재한 이름이라고 밝혔다.[http://www.siminsori.com/ 시민의 소리. 2005.08.15. 안형수기자]

 

결국,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는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으뜸상 선정을 취소합니다.’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이 사유(발췌)를 공지하였습니다.(2005.8.18)

 

- 이번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시민제안공모에 으뜸상으로 선정된 “만경강, 영산강” 제안내용이 보도된 뒤, 전남지역 향토사학자와 전문연구단체에서 ‘영산강’의 경우에는 조선시대부터 ‘영산강’과 ‘사호강’의 명칭을 동시에 사용해왔음을 문제제기해 오셨습니다. 고증심의위원회는 이 자료는 물론 다른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 사실관계가 부합함을 확인하고 ..... 17일 고증심의 회의를 재차 개최하고 제안의 오류, 고증의 미비, 수상자의 고사에 따라 으뜸상 선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태가 여기에 까지 이른데 대해,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역사 바로 잡기에 동참해주신 국민 여러분들과 영산강을 사랑하고 가꿔온 나주를 비롯한 일대의 시민 여러분들께 깊은 사과 말씀을 올립니다. 위원회가 영산강 관련 내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 다시 한 번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5.8.17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선정심사위원회 위원장 ○○○, 고증심의위원 일동

 

이같은 이의 제기와 자료 제공 결과, 재심사를 거쳐 ‘영산강 일제잔재설’ 제안은 으뜸상이 취소 되었고 ‘영산강’은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 근저에는 누구나 쉽고 빨리, 언제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만 연결되는 곳이면 검색이 가능한 한국고전번역원[당시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문헌종합DB’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공인된 기관의 고전문헌정보 검색을 쉽게 할 수 있었기에, 문화부 광복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고증심사위원회 위원과 전문기구인 국립국어원, 한글학회,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중앙 언론기관도 본 의견 제출자의 문제제기에 호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직접 검색어를 입력하면서 ‘주르륵’ 떠 오르는 검색 단어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국가사업으로 추진한 일에 대하여 잘못 심사된 내용을 ‘‘한국고전종합DB’ 등 역사자료를 활용하여 바로잡은 사례입니다. 따라서 제안한 당사자나 심사자 등이 있어 개인들에 대한 명예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고전 자료’의 일상화를 통한 ‘바른 역사 이해’에 있음을 밝혀 둡니다. 그리고 당시 본 의견 제출자의 자료 제공으로 이의 제기를 함께 해준 향토사학자나 지방 언론사 등에서는 <고전문헌종합DB> 등을 활용하여 보다 더 자세한 의견서를 내기도 했습니다만, 제출자가 활용한 자료 위주로만 정리하였음도 알려 드립니다.

 

전문가가 아니고 고전이나 한문을 모르더라도 검색어만으로 상식적인 검색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바른 역사를 이해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자료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1.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 <영조실록> 권4 영조 1년(1725) 3월 계해(25일)조 ; 정택하(鄭宅河) 상소문의 "나주 영산강"(羅州 榮山江) 운운 기사

2. <睡隱集> 祭文 旌烈祠奉安祭文 한국문집총간 73집 44쪽 c면 ; 榮山江兮千丈綠

3. <健齋先生文集> 附錄二 祝文 旌烈祠奉安祝文[睡隱 姜沆] 한국문집총간 47집 30쪽 d면 ; 榮山江兮千丈綠

4. <玉峯集> 附錄 年譜 한국문집총간 47집 159쪽 a면 ; 候奔行于榮山江

5. <與猶堂全書> 第一集 雜纂集第二十四卷 雅言覺非 卷二 江,河 한국문집총간 281집 519쪽 c면 ; 濚水 榮山江 외


1.<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의 '羅州 榮山江' 기록(첫줄). 조선시대 가장 중요한 국가기록 관찬사료에 버젓이 '榮山江'이 나오는데, '영산강은 일제가 만들어 창지(創地) 개명한 지명이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민공모 제안이 으뜸상으로 선정되어 발표되는 '얼척'없는 일이 있었다. 2005년 광복60주년기념사업회 주관. 즉시 조선시대 문헌자료를 토대로 '영산강은 조선시대부터 불러 온 오래된 역사지명'이라는 이의 제기(김희태, 윤여정 등)를 하여 재심사, 으뜸상 취소를 이끌어 냈다.

 

3. <건재선생문집>의 榮山江 기록(3줄 아래). 나주 출신 문신이자 의병장인 건재 김천일선생을 배향한 정열사 봉안 축문 내용이다. 수은 강항선생이 지은 글로 <수은집>에도 같은 내용(2)이 실려 있다.


4. <옥봉집>의 榮山江 기록(6줄 가운데). 조선시대 문장가 옥봉 백광훈은 47세때 나주 영산강을 유람한다. 당시 관찰사 송강 정철과 함께.

5. <여유당전서> 아언각비의 榮山江 기록(8줄 아래). 다산 정약용선생 문집. 이처럼 조선시대 관찬기록이나 사찬 기록에서 무수한 榮山江 기록을 볼 수있다. 말 그대로 역사지명이다. 그런데도 2005년 당시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바로잡아야 할 일제잔재 시민공사업을 추진하면서 '우'를 범한 셈이다. 말하자면 국가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더우기 '세차례'에 걸쳐 심사를 하여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영산강을 젖줄로 살고 있는 남도에서 이의를 제기해 취소되긴 했지만 '뜨악'했었다. 향토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역 왜곡'될 뻔한 것이다.



<시민의소리> 기사(부분) .[http://www.siminsori.com/ 시민의 소리. 2005.08.15. 안형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