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115
광주 무등산 '어사 바우', 19세기 전라좌도 향촌 사정
김희태
광주 무등산 충효동. 충장사에서 원효사 산장쪽으로 가다보면 ‘어사바우(바위)’가 있다. ‘어사(御史)’, 암행어사가 지나간 흔적을 남긴 것이다. 널찍한 바위에 언제 누가 왔었는지 큰 글씨로 새겨 놓았다. 그 옆에는 적은 글씨로 몇 줄을 더 새겼다. 첫줄에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보여 ‘어사바우’라 전하는 곳이다.
暗行御史閔達鏞
崇禎紀元後四
丁巳初秋過此
子南平縣監閔泳稷
丙子中秋奉審
내용인즉,
1857년(정사) 전라좌도 암행어사인 민달용(閔達鏞, 1802년생)이 광주를 들렸던 모양이다. 그리고 무등산 유산을 했던지 뒤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20년 뒤 1876년(병자) 그 아들 민영직(閔泳稷)이 광주 인근 남평현감으로 와서 암행어사 부친의 행적을 확인하고 봉심한다. 그리고 다시 기록을 남긴다. 광주의 무등산 전라좌도의 암행어사, 남평현감. 조선시대 중기에 전라좌도가 연관됨을 알 수 있다.
민달용(閔達鏞)은 1802년 임술(壬戌)생이고 1853년(철종 4) 별시 문과에 급제한다. 민영직(閔泳稷)은 1824 갑신(甲申)생이고 1840년(헌종 6) 식년 생원시(生員試)이 입격한다.
현장 기록에는 연대 표기가 ‘숭정기원후 4 정사(崇禎紀元後四丁巳)’으로 시작되고 있다. 민어사가 순행 당시에는 중국 청나라 시기이다. 청의 연호를 써야 함에도 굳이 ‘숭정4정사년’으로 표기한 이유는 뭘까?
조선후기의 연호 표기 방식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청나라의 연호를 쓰는 경우이다. 국가나 왕실의 공식 기록이나 공공 문서 등에 쓴다. 사찰에서는 왕이나 왕비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사의 기록물에는 청나라의 연호를 그대로 쓴다. 강희(康熙) 20년, 건륭(乾隆) 3년 등
다른 하나는 ‘숭정(崇禎) 몇주갑(周甲) 간지’ 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명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여 명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을 사용한다. 숭정원년이 1628년이니 숭정 5주 갑신이면 1628년으로부터 다섯 번째 되는 갑신년으로 환산해야 한다. 이따금 숭정5갑신을 숭정5년 즉, 1628+5년=1632년으로 보고 간지가 틀리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이해를 좀 잘 못한 것이다.
암행어사는 직무를 수행한 뒤 복명서를 올린다. 서계별단(書啓別單)이다. 민달용 암행어사 시기 <일성록>을 검색해 보니 군현 외에도 벽사도 등 국가 기구도 보인다. 광주를 비롯해 동복은 물론 낙안, 창평 등 20여 개 고을이름이 보인다.
① 全羅左道暗行御史 閔達鏞 進書啓別單
[<일성록> 철종 9년 1858-04-25(음)]가야그
② 吏兵曹 以 全羅左道暗行御史 閔達鏞 書啓覆啓
[<일성록> 철종 9년 1858-04-28(음)]
③ 備局 以 全羅左道暗行御史 閔達鏞 別單覆啓
[<일성록> 철종 9년 1858-05-09(음)]
①의 기사에는 ‘전라좌도 암행어사 민달용을 희경당에서 초견하였다.(召見 全羅左道暗行御史 閔達鏞 于 熙政堂)’로 시작한다. 암행어사는 암행 내용을 보고서(서계별단)로 올리고 필요한 경우 왕이 불러 직접 묻기도 한다. ‘초견(召見)’이 왕이 신하를 불러 물어본다는 용어. 희정당(熙政堂)은 창덕궁(昌德宮)에 있는 왕의 집무실.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보물 제815호.
①의 기록에서 광주목사에 대한 내용은, 당시 목사는 재임이 얼마 되지 않아 전임 목사 김재헌에 대한 근무실태가 보고되어 이다. 행정을 잘하여 사민이 칭송한다는 내용. 이처럼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현임 관원들 만이 아니라 전임 수령들의 업무도 평가했던 것. (光州牧使 李台鉉 除拜 在臣過境之後 前牧使 金在獻 精稅而均糴庶政 俱擧愛士而勸農 四民咸頌)
③의 기사 일부를 보면, <비변사의 계사에 “방금 전라좌도(全羅左道) 암행어사 민달용(閔達鏞)의 별단(別單)을 보니, 그 하나는 ‘본도의 구재(舊災) 명색이 번다하여 한번 재총(災摠)에 포함되면 그대로 영구히 탈로 잡아버립니다. 그래서 남평(南平)·보성(寶城)·진안(鎭安) 등 세 고을의 투모결(偸冒結)에 대해 이미 관문을 이송하여 사실대로 도로 기록하게 하였는데, 이 외의 다른 열읍(列邑)들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의 내용이 있다.
암행어사 민달용이 올린 보고서(별단)를 비변사에서 접수하여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인데, 재해 등이 한번 있으면 그해의 생산 여하를 따지지 않고 재총에 포함하여 영구히 탈로 잡아 버린다는 것이다. 재총(災摠)은 재결의 총수.
①의 기사에 나오는 전라좌도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행정 구분. 쉽게 말해 서울에서 보아 좌우. 군사나 행정 측면에서는 ‘좌도’, ‘우도’의 구분을 많이 사용했다. 전라좌도, 경상우도, 전라좌수영(좌수영), 우수영 따위. 단순한 행정구역 구분이라기보다는 지리적 구분이다.
전라도는 백두대간에서 갈린 호남정맥을 기준해 좌우로 구분. 보통 ‘섬진강’의 동(좌)과 서(우)라 하는데 ‘산’이 중심이 된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이같은 지리 구분에 연유해 문화도 갈린다. 좌도농악, 우도농악, 판소리 동편제, 서편제.
□ 조선시대 전라좌우도의 영속관계
구분 | 府尹 (종2품) | 牧使 (정3품) | 都護府使 (종3품) | 郡守 (종4품) | 縣令 (종5품) | 縣監 (종6품) | 계 |
전라좌도 (호남좌도) |
| 광주(1) | 남원, 담양, 장흥, 순천(4) | 순창, 낙안, 보성(3) | 용담, 창평, 능주(3) | 임실, 장수, 곡성, 옥과, 운봉, 진안, 무주, 남평, 광양, 구례, 흥양, 동복, 화순(13) | 24 |
전라우도 (호남우도) | 전주 (1) | 나주, 제주(2) |
| 익산, 김제, 고부, 금산, 진산, 여산, 영암, 영광, 진도(9) | 만경, 임피, 금구(3) | 정읍, 흥덕, 부안, 옥구, 용안, 함열, 고산, 태인, 장성, 함평, 고창, 무장, 무안, 강진, 해남, 대정, 정의(17) | 32 |
계 | 1 | 3 | 4 | 12 | 6 | 30 | 56 |
광주 무등산의 어사바위. 정리를 해보자. 광주에 있지만 기록물 자체에서 전남 나주의 남평까지 연관된다. ‘어사’라 하니 광주 한 곳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기록을 보니 전라좌도 암행어사, 1857년에 전라좌도 암행어사 순행을 알 수 있고 서계별단을 통하여 당시 전라도 20여 고을의 사회 사정과 향촌사회를 알 수 있다.
경관 좋은 산길 암벽에 새겨진 암각문. 그저 단순한 인명 표기만이 아니라 조선후기 전라도의 역사를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지의 즐거움117 - 전라병영 취타군(吹打軍)과 악공(樂工)-동정월 함금덕선생 前史- (0) | 2017.06.06 |
---|---|
인지의 즐거움116 - 영암 시종면의 “진도 명산”과 무안 삼향면의 “나주 삼향” (0) | 2017.05.19 |
인지의 즐거움114 - 화순 마애불, 담양 공덕비, 광주 학생독립운동 - 현장과 상생 (0) | 2017.05.18 |
인지의 즐거움113 - 해설사에게 보낸 편지1 - 차문화와 보성차, 2001 (0) | 2017.05.10 |
인지의 즐거움112 - 고교생에게 받은 편지 – 직업인과의 만남, 역사학자, 2012 (0) | 2017.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