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117
-남도민속학회 학술발표 후기-
전라병영 취타군(吹打軍)과 악공(樂工)
-동정월 함금덕선생 前史-
김희태
가야금 천재 함동정월 탄신 100주년
남도민속학회 월례발표, 216차, 강진 병영
반쯤의 강권과 원천적인 의무감
사회를 보기위해 나선 길, 2017.05.27.
'함펴~♬엉 처언♪지' 호남가 들머리
호남 각 군현의 역사 지명을 따라
풍물과 인심과 경관을 읊은 단가
그 속의 고을 지명은 몇 개소일까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이기에
56개 고을명. 54개, 55개도 있긴 하지만
조선초 회진, 수령 등 20여 고을이 폐합되어
전라도 호남은 57개 고을로 정착
16세기 후반 정유재란 전쟁 피해로
진원현이 장성에 합해진 이후
호남, 지금의 전남북, 광주, 제주는 56 고을
함평천지 호남가는 56고을인 것.
이 호남 전라도의 56개소 부군현의
사람과 물산이 몰려들었던 병영
전라도의 육군본부이자 훈련소
전라병마절도사영, 1417년 강진 이영(移營)
조선시대는 군사권이나 사법치안권도
고을 수령에게 있었고 왕권 대행 격이기에
귄한도 막강하지만 지휘체계도 일사분란
보고나 순시, 진상, 감찰 등 상급기관은 더욱
그 군현의 상급에 전주 감영과 강진 병영
여기에 두 곳의 수영, 해남 우수영, 여수 좌수영
말 그대로 성시(城市)를 이루는 곳
오가는 이들이 묵어갈 주막과 숙소, 물산 거래 시장
병영 상권, 병영 부기 등이 개성에 버금갔을 터
인물 물산 성시속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게 풍류
전라병영 영지(營誌)의 취타군(吹打軍)
함동정월의 부친 함일권의 병영 악공(樂工) 출신 설
하나씩 풀어보자. 먼저 동정월(洞庭月) 함금덕(咸金德) 명인의 가계. 강릉함씨. 할아버지 함채룡(采龍), 아버지 함일권(一權, 일명 영권, 일곤), 어머니 밀양박씨 박양근(朴兩根). 제적등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제적등본을 통해 가계 파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재조사 참고 공용으로도 발급받기 어렵다. 다행히 전경길님의 논문에 소개되어 있다.
제적등본을 통해서 안 두가지 새론운 사실. 하나는 함동정월 선생의 할아버지 이름 함채룡. 다른 하나는 아버지 함일권의 출생연대. 1881년이다. 개국(開國) 연호로 표기되어 있다.(첫번째 사진 가운데 왼쪽줄) 그대로 따른다면 서른일곱살 때 동정월이 태어난 것. 함일권은 북과 피리 명인으로 알려졌고 병영의 악공으로 전해온다.
악공(樂工). 그것도 병영 악공. 전라 병영이라는 군영에 소속된 전문인. 악공은 악기를 다루는 사람일터이지만, 악기를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관청 소속의 기술 꾼들은 '장(匠)'을 쓰기 때문에 악공은 악기를 다루는 사람일터. 아버지 함일권의 병영 악공설은 함동정월 명인의 구술을 따른 듯하다.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알거든>(민중자서전15, 뿌리깊은나무, 1991)
악공과 관련된 전라병영 기록의 해석
1895년(고종)에 간행한 <호남영지(湖南營誌)>(규장각소장 규12189) 가운데 <전라병영영영지(全羅兵營營誌)>를 보면 군병(軍兵)조에 취타군(吹打軍)이 두 군데 보인다.
① 취타군 400명은 납포군인데 각 읍에 소속되어 있다(吹打軍 四百名 ..... 以上納布軍 散在各邑)(두번째 사진 2줄, 3줄)
② 취타군(吹打軍)은 7명인데 돌아가면서 입직하고 병영 곁에서 거주한다.(吹打軍 七名 ..... 輪回入直 居在營下)(두번째 사진 7줄, 9줄)
군병이란 군역(軍役)의 의무를 지닌 양인(良人) 신분의 정남(丁男)을 말한다. 남자 16세 이상이면 병역의무자가 된다. 상근 형식으로 현역병 근무하는 경우도 있고, 1년에 2필의 군포(軍布)만을 내고 현역복무를 면제 받는 사례도 있다. 이른 바 납포군(納布軍).(①)
위 기록에서 취타군 7명의 윤회 입번(②)은 상근형식이다. 거주지도 해당 관청 부근이다. 그래서 '居在營下', 즉 병셩성 곁에 거주한다고 표기한 것. 다시 말해 전라병영 군병 가운데 취타군으로로 근무하면서 병영성 부근 성밖에서 거주한 것.
취타군 400명(①)은 상근 복무를 하지 않고 군포만 내고 각읍(군현)에 흩어져 생활했던 것. 그래도 신분은 군병인지라 <전라병영지> 군병조에 400명 정원으로 관리 한 것. 56개 고을이었으니 군현당 평균 7명 내외. 해당 군현은 군현대로 상근이 있었을 것이니 이들, 병영으로 치자면 취타군들이 지역의 풍류를 담당했을듯 하다.
취타군의 취(吹)는 부는 악기, 타(打)는 치는 악기. 명칭으로만 보자면, 함일권은 피리와 북에 능했다고 하니 '취타군'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뒤의 '취타군'(②)은 상근이고, 병영성 곁에서 거주한다 하고, 함씨집안의 생가도 성밖 '지로리'로 전해지고 있어 오히려 전라병영성 '취타군'으로 봄이 옳겠다.
'윤회 입번', 곧 정해진 근무 시간을 따라 돌아가며 차례에 따라 근무(入番) 한다니, 근무시간 외 성밖 지로리 집에 있을 때에는 그곳이 풍류방이 되었을 터. 가르치고 교류하고.
하여 송흥록, 송광록, 김채만(1865~1911), 공창식(1887~1936) 명창이 함일권의 북에 따라 소리하고자 병영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회자되었던 것은 아닐까. 열 여섯살 많은 김채만, 일곱살 적은 공창식과는 정이 도타웠을 것이다.
그런데 송흥록과 송광록과의 교류는 다시 살펴야 할것 같다. 송광록의 손자인 송만갑(1865~1939)의 재세연대로 보면 송광록이나 그의 형 송흥록과 함일권은 50년 이상의 나이차도 날 수 있겠기에. 함일권의 아버지, 곧 함동정월의 할아버지나 그 윗대와도 연결될 수도.. 할아버지 함채룡이 별세하고 아버지 함일권이 호주를 승계한다. 광무(光武)1년 2월, 1897년. 보통 별세 일시가 호주 승계일이기 때문에 함채룡은 1897년 별세.
또 한가지 살펴볼 것은 제적등본을 통해 확인되는 함일권의 나이. 1881년 출생임으로 전라병영이 폐영되던 때(1895년)로 보아도 열네살,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다. 말하자면 군역의 의무를 지니는 열여섯에는 이르지 못한체 전라병영은 막을 내린다는 것. 어쩌면 함동정월 말년(73~4세)의 구술, 전라병영 악공(취수)=부친 함일권, 단일인으로 확정해 보기 보다는 그 악공은 함씨일가(함○○-함채룡-함일권)로 보아야할듯 싶다.
생가터 지로리 - 고군내면→로상면→고군면→병영면
오전에 <궁중정재를 활용한 국악감상 지도방안>-포구락과 춘앵전을 중심으로-(김경하, 한국교원대), <중학교 창의적 체험활동을 위한 가야금 지도방안>(김상아) 발표(사회 서해숙)가 있었다. 학자로서 '머리를 올리는' 격. 수인관에서 푸짐한 점심을 하고 아이스크림으로 입맛을 다신 뒤 오후 발표.
얼떨결에 나선 길이지만 <함동정월 가야금산조,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후 가락변화를 중심으로-진양조를 중심으로->(최진, 한국교원대)와 <함동정월류 가야금산조 장단 연구>(양재춘, 국립국악원)가 주제. 이론과 실기를 갖춘 학자들의 열정적 발표에 회원들도 호응한다. 여유가 있으려니 했는데 시간이 오히려 부족하다.
이윽고 성밖 함동정월선생 생가터. 생가 건물을 본적 있는 회원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그 몇 곳을 돌다가 골목길 담벼락 곁에 도열. 일행은 '배(拜)' '흥(興)' '배' '흥' 참례를 한다. 이어 최진교수의 함동정월류 가야금산조 헌정. 당초에는 자리를 옮겨 하기로 했으나, 생가에서 동정월선생과 함께 하자해 성사. 난장인듯 하지만 의미를 두니 더 뜻깊다. 최진교수 역시 '프로'다. 흔쾌히 동의하고 혼신의 힘을 다 한다. 나른다.
병영성(城)에서 정성(誠)을 다 한 소리(聲) 성(聖)스럽도다. 동정월 명인이시여! 흠성(歆聲) 하소서.
동정월의 생가는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 521번지이다. 호적상 출생지 주소. 집터로 알려진 525번지도 함씨 집안과 연고가 있을듯 싶다. 2002년에 찍은 521번지 집 사진이 남아 있다.
생가 소재 지로리(枳路里)는 1914년에 생성된 지명이다. 1914년 4월 1일자로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하는데, 지정리(枳亭里)와 로상리(路上里)가 합해져 한 글자씩 따서 지로리로 합성지명이 된 것. 면은 고군면(古郡面).
원래 지금의 병영 지역에는 도강군(道康郡)의 중심지(邑治)가 있었다. 1417년에 도강군은 남부의 탐진현(耽津縣)과 합해져 강진군이 되면서 현재의 강진읍에 치소를 정한다. 그 이후 옛 도강군 지역이라 해 고군면이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 도강군 자리에 전라병영이 옮겨 온다. '강진(康津)', '고군(古郡)', 병영(兵營)'의 역사지명이 올해로 600년이 된 것이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1417년 전라병영이 지금의 병영면에 자리잡으면서 조선왕조 전 기간을 군사 중심지로서, 행정 중심지 전주와 함께 전라도 56개 고을의 사람과 물산이 몰려 들었뎐 것.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곳에 풍류는 자연 뒤 따랐고, 병영의 악공(취수)이던 함씨일문은 그 풍류의 한 중심이었던 셈.
조선후기 기록을 보면, 지금의 병영면은 175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고군내면이고 1,374호 3,755구로 나타난다.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로상면(路上面)과 로하면으로 분면된다. 로상면은 로상리 등 7개 마을, 로하면은 8개 마을 이름이 보인다. 두면을 합하면 1,250호 4,368구이다. 홋수는 줄었지만 인구가 늘어 분면된 것 같다.
1872년 강진현지도(규장각 소장)에는 고군내면으로 고치고 로상리 등 마을이름이 보인다.(세번째 사진 성밖 위쪽).
1912넌 기록을 보면 고군면에 지정리, 로상리 등 24개 마을명이 보인다. 동학농민혁명기(1894)에 전라병영이 함락되고 1895년에는 폐영이 되지만 사람과 물산의 집산지로서는 그 성세는 되살아 났던듯 싶다.
이같은 사회 추세속에서 1914년에 지정리와 로상리가 합해져 지로리가 되고, 1917년에는 고군면 지로리 521번지에서 동정월 함금덕선생이 태어난다. 1931년에는 면이름도 병영면으로 개칭한다. 생가 소재지는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가 된 것이다.
동정월선생의 아버지 함일권(咸一權) 제적등본 호주 부분.
왼쪽칸이 출생연도인데 개국(開國) 연호로 표기하고 있다. 개국 490년. 서기로 환산하면 1881년(고종 18)으로 서른 일곱나던 1917년 함금덕선생이 태어난다. 어머니는 박양근(朴兩根), 개국 489년생(1880년). 어머니는 밀양박씨인데, 그 어머니(동정월선생의 외할머니)가 이칠량(李七良)이다. 어쩌면 '칠량면'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 함채룡의 별세로 아버지인 함일권이 호주를 승계하는데 광무(光武) 1년 2월이다. 1897년. 이들의 재세연대로 보아 할아버지 함채룡(?~1897)이 전라병영의 악공(취타군)이었을 것 같다. 전라병영은 1417년에 옮겨 와 1895년까지 전라도 육군 본부 겸 훈련소로 기능하였다.
1895년 <호남영지>(규 121892)의 <전라병영영지> 군병(軍兵)조. 두번째 줄에 취타군 400명(각읍), 일곱번째줄에 취수 7명, 여덟번째 줄에 취타군 7명(居在營下)이 보인다. 함씨 일문은 병영성 밖 영하에 거주하던 취타군으로 보인다. 뒤에 병영 악공으로 전해진듯 싶다.
1872년 강진지도(규장각 소장). 성밖 윗쪽에 로상리가 보인다. 이 로상리는 1914년에 지정리와 합해져 고군면 지로리가 된다. 지로리 521번지가 동정월의 출생지로 기록이 나온다. 고군면은 1931년에 병영면으로 개칭한다.
동정월 함금덕선생 탄생 100주년.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학술발표에 이어 생가터 난장에서 최진교수의 함동정월류 가야금산조를 헌정하고 함께 인증하였다. 남도민속학회(회장 이윤선)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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