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12 - 고교생에게 받은 편지 – 직업인과의 만남, 역사학자, 2012

향토학인 2017. 5. 10. 05:50

인지의 즐거움112

 

고교생에게 받은 편지 직업인과의 만남, 역사학자, 2012

 

김희태

 

직업인과의 만남 - 감상문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꿈을 밝히는 바이다. 나의 꿈은 종교학자이며 종교가 거짓이든 진실이든 현 사회의 한 구축이 되어 경제적/사회적/사업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군중을 다스리고 이끌고 안심을 주는 것이 때로는 무기도 될 수 있는 영향이 있기에 그 초석됨과 버팀목이 단단하고 올바르며 한편으로는, 구심점을 찾기 위한 정당성을 가져야한다.’ 라는 이념을 가지고 사회의 한 획을 긋는 목회자가 되는 것이기에 역사학자에 신청하였다.

 

왜냐, 역사는 과거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 인류의 모든 대소사와 변천과 문화와 예술과 사상과 종교 등등을 총 망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 역사적으로 설명되어 종교학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의 하나가 이것이다.

 

[종교를 들여다보면 그 교리들이 지역문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로, 한국 민속 신앙에는 집에 구렁이 신이 들었다. 라고 한다. 그 말은 곧 복이었다. 왜냐 당시 조선시대에는 곳간에 쥐가 끌었기에 집에 구렁이가 들면 그 쥐를 잡기에 복인 것이다.] 처럼, 인문/사회/종교/사상 등등은 역사학을 통해 연구할 수 있기에 역사학에 관심을 두고 김희태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수련관 강의실을 열고 고개를 딱 들어 보는 김희태 선생님은 고지식한 역사학자 같았다. 모두가 생각하기에 딱딱하고 지루하며 더욱이 그에 부합한 선생님들이 있는 사회, 인문, 철학, 사상학, 역사학! 등등처럼 말이다.

 

내심 긴장하였다. ‘저런 분이 성질내면 곤란한 것은 우리다.’ 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을 벗어나 선생님은 시작도 전에 펼쳐진 지루함의 눈을 깨우기 위해 장흥의 역사에 대한 것을 비루먹은 강아지 같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양강(탐진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장흥의 변천사와 강을 중심으로 나타난 장흥의 길문화와 장흥의 문화재들. 그렇게 나의 귀에 들리우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타와 같은 그 지루함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 김희태 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기에 말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 역사를 관철함에 필요한 자세들과 마음가짐, 등은 종교학자를 꿈꿔 역사를 바탕으로 종교를 연구 하려던 나의 목표를 더욱 앞당겨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생님과 나누었던 나의 질문에 대해 선생님의 논점은 이것이었다.

 

[다른 이(현 시점에서 보는 자료/인터넷/번역된 고문헌/다시 집필되고 고쳐진 사료/등등)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조건 옳을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가장 부합하고 정확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의 자료를 이 시점과 저 시점에서 들여다보는 즉, 다각적으로 보는 것과 한 가지 사실을 이러저러한 다른 사실들과 부합하고 조합하여 보는 다방면적인 사고방식과 문제와 자료에서 도출한 사실을 가지고 한 가지 문제에 대하여 푸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입하는 다목적성을 가져라.] 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김희태 선생님.

 

2012716일 월요일

장흥고등학교 2학년 328번 장○○ .

 

 

20127172014.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예의 컴퓨터 앞에 앉아 또닥 또닥. 전설의 독수리 타법’. 그 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김희태 선생님, 장흥고교생 장○○입니다. / 직업인과의 만남 감상문요~^-^b. 파일첨부했습니다. 그저 읽어주세요. 그리고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한 강의에 반응을 해주고 글까지 보내 준다는 것은. 늘 궁금하긴 하다. 해설사교육이나 역사문화 특강 등을 하곤 하는데 듣는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 중고교생들도 대상이다. 진로탐색과 함께 직업인과의 만남이라는 시간에 참여 한 것. 역사학자나 학예연구직, 문화재관리 등에 대한 전문직업인으로 나선 것.

 

장흥에서 부른다기에 앞뒤 가릴 것 없이 나섰다. 장흥청소년상담지원센터(관장 위명온)에서 장흥고교 등과 연계하여 자리를 마련 한 것. 1~2학년생. 여러 분야의 직업인들이 나섰고, 그 가운데 하나로 역사학자요청을 받은 것.

 

학생들은 자기가 관심 가진 분야를 선택해 강의를 듣는 방식. 과연 역사학분야에 몇 명이나 올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무슨 말을 처음올 해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강단 앞에 섰다. 예상외로 많은 수. 전체 참여한 인원에 비하면.

 

프리젠테이션 첫 사진. ‘학교가는 길-역사?’라는 글과 함께 장흥고등학교 약도. 두번째 사진은 학교 기숙사. ‘예양학사제암학사’. 세 번째 사진은 장흥고교 교가악보.

 

약도에는 장흥 시가와 탐진강이 보인다. 탐진강은 옛 이름이 예양강인데, 이에 연원해서 지금도 예양리가 있다. <동국여지승람>이란 책에 나온다. 530년 전 기록이다. 기숙사 예양학사는 이처럼 오래된 장흥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제암산은 장흥을 지켜 주는 산이다. ‘억불산사자산도 있다. ‘억불산에는 조선시대 통신시설이라 할 봉수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다.

 

장흥고 교가를 보면 제암산’, ‘억불봉’, ‘사자봉’, ‘탐진강이 나온다. 모두 장흥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담고 있다. 무심코 다닌 학교 등교 길이지만 지나는 길, 보이는 산과 강, 들마다 유래가 있다. 그게 역사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 문화를 날마다 접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역사의 주체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게 역사학자이다.

 

자기 고장의 역사를 살피면 향토사라 할 것이고 우리나라의 역사라면 한국사, 중국의 역사라면 중국사, 서양이나 동양의 역사라면 서양사와 동양사 등등. 그런데 역사학과에서만 역사학을 다룬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를 갔는데, 시대별 경제학의 변천 역사을 다룬다면 그것은 경제학사가 된다. 수학도 마찬가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어떤 수학의 분야가 있었고 어떻게 변했을까를 연구하면 한국수학사가 되는 것. 그만큼 역사학은 다양하다.

 

이어서 장흥을 중심으로 시대변천을 살피면서 설명. 마침 장흥호 건설 때 수몰지구 고인돌 발굴조사 사진도 있어 보여 주고, 장흥의 골목길이나 역사인물 등도...

 

사실은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평상심을 찾았고 나름 재미나게 풀어보려 애썼다. 끝 날 무렵, 질문시간을 가졌다. 7~8건의 질문이 있었다. 직접 문화재 발굴을 해 보았는지, 역사학의 관점은 무엇인지 등등. 그 가운데 유독 흥미롭게 여러 질문을 했던 친구가 편지의 주인공이다. 고교 2년생이지만 내공이 있는 질문도 있었다. 그 친구가 편지를 보내 온 것. 그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편지를 읽고 나서 그 강의 날 분위기와 오고간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답장 글을 썼다. 보내온 글에 비하면 짧지만

    

○○, 아니 ○○!!!

보내준 감상 글 잘 보았어.

그래도 강의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한 일이고

답장 글도 고마워.

가끔 강의를 하지만, 무척 궁금하긴 해.

내 강의가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그런데 내가 말하려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고,

또 그러한 마음을 글로 표현해 전달해 주니

나로서는 반갑고 고맙고....

지금처럼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생활하다보면

분명 목적하는 바가 가까워질 거야, 아니 이루어질 거야.

항상 좋은 일만 많이 많이 있기를 바란다.

김희태 보냄. (2012.07.10. 23:31)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대학에 재학중이라면 4학년이 되었을 게다. 남자라서 병역의무와 연관이 있으니 군생활을 하고 있거나 제대해 복학생이 되었을 수도 있다. 페이스북에 같은 이름이 있어 가끔 보곤 하는데, 그 페이스북의 친구는 한신대를 다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는 사진도 올라 왔다. 걱정도 되었지만 이내 회복되었는지 글을 올리곤 한다. 풍물 동아리 활동도 하는 것 같다.

 

종교학자의 꿈이 있노라고 고교 2년 때 말했으니 한신대생인 페이스북의 청년이 맞을 것도 같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 둘 다 장흥이라는 연고가 있고, 한번은 만났던 인연이 있기에 그 인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2012.07.13. 장흥청소년상담지원센터 주관 <직업인과의 만남><역사학자> 분야로 참석한 이야기를 풀어쓰다.


장흥의 고고생들을 대상으로 <직업인과의 만남-역사학자> 강의할 때 ppt의 첫 사진.

장흥교교의 약도. 장흥시가도 함께 있는 지도이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장흥'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 온 역사 공간이다. '탐진강(예양강)' 등 땅이름(지명), '건산'이나 '향양' 등 행정지명, 장흥경찰서나 장흥군청, 장흥고교 등 관공서도 그 이름만으로도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학교가는길-역사?'로 시작했다. 미쳐 관심을 못 가졌을 뿐이다.

장흥고교 기숙사 예양학사와 제암학사. 두번째 사진

'예양(汭陽)'은 탐진강의 원 이름이다. 행정지명으로 예양리도 있다. 늘 생활하는 곳이지만,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공간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예양'은 동쪽(陽)에서 떠 오르는 햇빛에 강물이 반짝거리는 모습(汭)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강의 위치와 형상을 알 수 있다. 제암은 장흥을 지켜 주는 산(鎭山) 가운데 하나이다.  



장흥고교 교가 악보, 세번째 사진

제암산, 억불봉, 사자봉, 탐진강... 장흥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자연 지명이다. 억불산에는 조선시대 통신시설인 봉수대가 설치되었다.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다. 나와 주변부터 관심을 가지다 보면 고을의 역사를 알 수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역사의 주체이다. 이를 조사 연구 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고을의 역사(지역사, 향토사)가 있는가 하면 한국의 역사(국사)도, 서양의 역사(서양사)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역사 변천을 다루면 한국경제학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