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14 - 화순 마애불, 담양 공덕비, 광주 학생독립운동 - 현장과 상생

향토학인 2017. 5. 18. 19:20

인지의 즐거움114

 

화순 마애불, 담양 공덕비, 광주 학생독립운동 현장과 상생

 

김희태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무등산 석불암 마애불상

담양읍 양각리 시산마을 송애 국승준선생공덕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독립유공자

 

언뜻보면 위 세 가지는 전혀 관련이 없을 듯 보인다. 광주, 화순, 담양이 서로 가까운 거리의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화순 무등산 석불암 마애불은 불감형의 암벽안에 새겨져 있는 좌상이다. 언젠가 문화재 등록 문제가 있어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고려시대로 조성시기가 알려 지기도 했지만 옆에 새긴 조성기록을 통해 1933, 근대작임을 알 수 있었다. 두 군데에 기록된 조성기. 담양 천변리 사람들이 대시주인이다. 국영현, 오씨, 장남 국승준 등

 

담양 시산마을 경로당 앞에 있는 공덕비는 마을 앞에 흔히 볼 수 있는 까만 오석에 팔작지붕형 가첨석이 있는 현대 비석이다. 도로 한켠에 철제 보호책으로 둘러져 있는 비문을 살펴보니 1974년에 세운 것이다. 이 마을 출신 송안 국승준 옹(1911~2011)의 공덕비였다. 읽다가 보니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독립유공자로서 그 때 당시 생존해 계신 유일한 분이셨다. 2009년의 일이다.

 

마을에 끼친 공덕을 기려 양각리 위친계에서 세운 것이다. 국승준옹은 마을계를 만들고 조금씩 모은 돈으로 전답을 사들여 마을 공동소유로 하였다. 1950년대에 10원씩 모아 이룬 것으로 10원계라하여 전국적으로도 알려 졌다. 이를 기려 세운 것이다. 담양 비석은 자연스레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연결이 되었다.

 

그런데 화순 석불암의 마애불과는 어떤 관계인가. 석불암 마애불의 조성 암각기문에 보면 대시주 가운데 장남으로 국승준이 나온다. 담양 양각리 경로당 앞에 공덕비 주인공, 광주 학생독립운동 참여자 중 1, 바로 그 국승준선생이다.

 

높직한 산사에 있는 사찰의 불교 문화재인 불상, 흔할 듯한 마을 노인당 앞 길가의 공덕비, 전국 190여 학교로 들불처럼 번졌던 항일학생독립운동의 주인공 등, 전혀 관계되지 않을 것 같은 세 곳의 개별 유산과 현장, 기록과 구전을 조금 더 진지하게 살펴보니 서로 연계되어 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일종의 서사(敍事, 스토리텔링)’이다.

화순 석불암에 시주하며 마애불상을 새기던 때 국승준 옹은 거기 가지 않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던 것. 가족발원으로 어머니께서 시주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 성년이 된 국승준 옹은 석불암에 올랐다. 1964. 이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도 참여자로 나선지 35년 뒤의 일이다. 불상을 새긴지도 30년이 지나서 그러한 어머님의 진심이었던지 담양의 국씨가는 사업도 번창하지만 복지사업과 교육 사업에 큰 기여를 한다.

 

이리저리 떨어져 있지만 불상과 비석과 학생운동이 연결되면서 100여년 광주와 전남의 역사, 지역의 역사, 개인의 역사, 나라의 역사까지 연결되고 신앙과 문화, 복지 등등이 얼키설키 연결된다. 연결이 아니라 상생이라 할 것이다. 현대사건, 전통시대건 역사문화의 그 현장과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 그것이 문화의 상생이요 상생의 문화라 할수 있지 않을까.


* 화순 석불암과 국승준선생에 대해서는 심홍섭 화순군청 문화재전문위원이 조사한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석불암 마애불 시주 암각문(1933년) - 전남 화순

담양 천변리 건명 국영현 곤명 오씨정각원, 장남 국승준의 명문이 보인다. 명문에 보이는 장남 국승준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유공자이다. 1974년 담양읍 양각리 마을 앞에 주민들이 공적비를 세운다. 화순 마애불, 담양 공적비,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연결된다. 현대사건, 전통시대건 역사문화의 그 현장과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 그것이 문화의 상생이요 상생의 문화라 할수 있지 않을까.



국승준선생공덕비 - 전남 담양

담양읍 양각리 마을 회관(노인당) 앞에 있는, 최근(1974년)에 세운 흔한 모습의 비석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웃한 지역의 역사나 문화와도 연결된다.

양각계 계원들의 나들이 기념사진(1970년).

윗부분 원 안은 국승준선생. 국승준옹은 1950년대에 마을 공동체운동을 하였다. 10원씩 모아 공동소유 전답을 마련한 것으로 10원계라하여 전국적으로도 알려 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유공자(누리집) - 광주

2009년 조사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유공자로는 유일한 생존인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