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55 - 반곡 정경달선생 관련 조사 연구 현황

향토학인 2026. 7. 14. 03:30

인지의 즐거움455

 

반곡 정경달선생 관련 조사 연구 현황

 

김희태

 

1. 머리말
2. 1984, 반계사 유물 조사, 1987년 반산세고 간행
3. 1985, 반곡 난중일기 전반부 1차 국역
4. 1988, 반곡난중일기 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지정
5. 2012, 논문, 2016~17, 반곡난중일기와 반곡집 국역
6. 맺음말

 

 

1. 머리말

 

정경달(丁景達, 1542~1602)선생은 1570(선조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산부사로서 일본군을 참포(斬捕)한 숫자가 275()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594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계청(啓請)으로 그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도내를 순검하면서 군량을 조달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명나라 사신 및 군대의 접반사로 외교 분야에 활동하였다.

 

정경달은 난중일기를 남겼는데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구별하기 위해 정경달의 호를 붙여서 반곡난중일기(盤谷亂中日記)라 한다. 이 일기는 1592415일부터 16021217일까지 기록한 것이다. 정경달의 자는 이회(而晦)이며, 호는 반곡(盤谷)이다. 전라도 장흥도호부 장동면 반산리(盤山里) 출신이다.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에 소재한 반계사에 배향되었다.

 

반곡 정경달선생 관련 조사 연구현황에 대해 살펴보겠다. 조사의 과정과 연구 성과의 목록 정리를 중심으로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때 느꼈던 아쉬운 점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에 대해서도 제안을 해 보겠다. 관점이 같지 않고 기억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질정과 제보를 기대한다.

 

2. 1984, 반계사 유물 조사, 1987년 반산세고 간행

 

반곡 정경달선생 관련 조사 연구 현황을 정리하면서 오래전 인연이 스치운다. 1984고문서연구수업의 일환으로 레포트 과제가 부여되어 현장을 답사한 곳이 장흥 장동면 반계사(盤谿祠)’였던 것이다. 전남 지역의 서원과 사우를 조사하고 고문서 등의 소장관리 현황을 알아보고자 하여 낸 과제를 준비하면서이다. 지도교수는 이해준교수. 목포대 사학과 한국고문서연구수업이다. 만학으로 역사학에 입문해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이다. 당시 부산면 유량리의 금계사(金溪祠)도 들렀다. 동기생의 과제도 함께 하기 위해 동행하였다.

 

반계사를 방문하여 정용백님 등 문중 어른들을 뵙고 자료를 열람하였다. 만학이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답사에 자료를 선뜻 보여주고 설명해 주신 어르신들의 귀한 뜻도 큰 가르침으로 남는다. 장흥 출신이라는 점도 도움이 되었다.

 

*당시 정용백님보다 더 연만한 몇 분을 뵙고 자료 열람도 할 수 있었다. 어딘가 적어 놓았을텐데 당시의 야장을 찾기가 어렵다. 반산리 이장님(정상현님)과 통화(2019.12.18)를 하여 그 무렵 문중 일 보시던 분들의 성함을 여쭤보니 정상구님 등이라고 한다. 역으로 추적해본 셈이다.

 

당시에 본 교지(敎旨) 등 고문서와 공신녹권, 그리고 난중일기로 부르게 된 일기 등등. 역사학 입문 초년생으로는 전부 감당할 수 없었지만, 열심히 사진은 찍고 크기를 재고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그때 사진기는 올림푸스 였던 것 같다. 필름 24판이면 50장을 인화하던 하프판으로 학교 앞 사진관에서 대출한 것이다.

 

학교로 돌아와 사진을 인화하고 끙끙거리며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아마 반계사 유물이 처음 조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자료를 보고 이해준교수님은 순천대 조원래 교수님께 연락하여 장흥 반계사 조사를 정식으로 가게 된다. 두근 거리는 마음뿐이었다. 혹시 제출된 과제물을 보고 잘못 정리했다고 야단을 맞지 않을까 하는. 이해준교수와 조원래 교수께서 한건씩 차분히 보시면서 설명을 해주어 종중 어르신들도 중요성을 더 알게 되었고, 초학자인 필자도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이 조사가 계기가 되어 이해준교수의 주선으로 반산세고-반곡난중일기-(아세아문화사, 1987)가 간행된다. 이 책에 이해준 교수가 집필한 산세고(반곡난중일기) 해제는 장흥 본가 소장 반곡 정경달 관련 저술과 유물에 대한 학계의 첫 소개일 것이다.

 

3. 1985, 반곡 난중일기 전반부 1차 국역

 

반산세고간행 보다 앞서 정경달의 난중일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충북대 이수봉교수의 반곡의 난중일기 고(1)(호서문화연구5, 1985)이다. 이 글은 정경달 난중일기의 체재, 작자, 구본(舊本)과 산정본(刪正本), 일기의 개요를 살피고 1592415일부터 159324일까지 일기를 번역하였다. 이어 번역한 부분을 분석하고 연표식으로 정리하였다. 국역문은 원래 월간지 전통문화19857월호부터 12월호 사이에 기고한 번역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 한다.(일기로 쓴 임란사~2난중일기)

 

이수봉 교수는 반곡의 난중일기를 살피면서 발견 경위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기 소개되는 반곡(盤谷) 정경달(丁景達) 선생의 난중일기(亂中日記)198510일경 전남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 다산촌 영광 정씨(靈光丁氏) 동족부락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아마 이 일기는 고서(古書) 수집으로 생업하는 상인의 손을 거쳐 청주시 모충동에 거주하는 임해호(林海鎬)씨에게 전매되어 현재 임씨가 소장하게 된 것 같다. 난중일기와 함께 발견된 문헌은 영지(營誌)·연보(年譜)·행장(行狀)·상례근수(喪禮謹修)5종이다.(盤谷亂中日記 攷(1), 앞논문, 100.)

 

이로 미루어 보면 난중일기1985년에 반산에서 발견되었는데 고서 수집 상인을 거쳐 청주의 개인이 소장한 것을 본 것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영지(營誌)·연보(年譜)·행장(行狀)·상례근수(喪禮謹修)등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1985년 발견되었다는 이 난중일기는 반계사 유물 조사 당시에는 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수봉교수의 글에는 ‘1985년 발견’, ‘청주 개인소장으로 적고 있는데, 국립중앙도서관 영인본 수장 연도도 1985년이다.

 

1984년 현지 조사를 하고 1987반산세고를 내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해준교수는 그 무렵 이수봉교수와는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2019.12.11. 유선 확인) 그리고 반산세고의 해제에서도 이수봉교수의 논고를 언급하고 있다.

 

본서에 수록된 亂中日記는 충북대학교 이수봉교수에 의해 지상에 이미 공개된 바 있다. ➀『전통문화一九八五年八月-一二月號, ➁「盤谷亂中日記 攷(湖西文化硏究, 一九八五,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교수가 지상에 공개한 <亂中日記>와 본서에 수록된 亂中日記는 다른 판본이며 茶山刪定하기 이전의 筆寫本이 함께 合綴되어 또 다른 자료적 의미가 보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해준, 반산세고 해제, 앞논문, 4)

 

앞에서 그때 그때의 아쉬운 점을 말하고자 한다 했는데, 첫 번째의 아쉬움이다. 그때 또는 그 이후로 청주 개인 소장의 난중일기와 이수봉교수의 글에 함께 언급된 영지(營誌)·연보(年譜)·행장(行狀)·상례근수(喪禮謹修)등에 대해서 더 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청주 개인이 입수한 경위나 장소 등에 대해서, 또 국립중앙도서관 수장 경위에 대해서도 알아봤어야 되는데 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반산 현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유출의 경위에 대한 추적 조사라 해야 할 것이다.

 

4. 1988, 반곡난중일기 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지정

 

1988년에는 4월에서 12월 사이 장흥군 문화유적 학술지표조사를 하면서 유교유적편에서 반계사를 조사한다. 반계사의 연혁과 배향인물, 유적현황, 관련 자료를 소개하는데 1989년에 보고서로 간행된다.(이해준, 장흥군의 유교문화유적, 장흥군의 문화유적, 351~352.)

 

19881221에는 반계사 소장 유물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164]로 지정된다. 이 때는 필자가 전라남도 문화유산 전문직원으로서 그 실무를 맡았다. 역사학 초입 때의 인연이 문화유산 지정까지 연결된 것이다. 장흥군수의 지정신청에 따라 전라남도에서 관계전문가로 조사위원을 위촉하여 조사를 하였다. 반계사 건조물과 유물을 함께 조사하였는데, 건조물은 김지민교수, 유물은 이해준교수가 조사하였다.(장흥 반계사 유물 일관 조사보고서, 1988.11.)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사우는 지정되지 않고 관련 유물만 지정되었다.

 

지역이나 종중에서는 사우 지정을 더 원하지만, 문화유산 관련 규정에 최소한의 연도 기준을 1945년 이전 건조물로 한정하는 조항이 있어 기대를 다 따르지는 못한다. 반계사는 원래 조선시대 후기(1714, 숙종 40)에 건립되지만 훼철되었다가 위치를 옮겨 1957년 강당, 1962년 영모재, 1967년 신실을 건립한다.

 

당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물은 반곡일기(난중일기) 1, 반곡년기 1, 진법(陣法) 1, 공신녹권[광국공신녹권, 선무원종공신녹권] 2, 광국공신계회도 1, 흉배[鶴背] 2점 등 8(5)이었다. 특히 반곡일기는 다산 정약용이 산정하기 이전에 정서한 필사본으로 다산 산정본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훨씬 많은 기록이 있다. 아쉽게도 무술년(1598) 이후의 일기 1책만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199852일 광국공신계회도 1, 공신녹권(광국원종, 선무원종) 2, 흉배[鶴背] 2점 등 5점이 도난 유물로 국가유산청에 등록되었고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곡일기와 반곡연기과 진법 1책 등 3책의 전남도지정 문화유산과 반곡집 3, 반곡행록 1, 7(4)은 안전한 관리를 위해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다.

 

198811월에는 전남지방 서원사우 2차를 조사하면서 반계사도 조사한다. 반계사의 연혁, 건축, 인물, 현화, 유물, 유적 등이다. 1989년 보고서가 발간된다.(전남의 서원·사우2,)

 

한편, 고줄 고을 장흥(1982) 등 향토지에도 반계사’, ‘정경달’, ‘소장 문서등이 소개된다. 한국 유림대전(전남편)(1981), 마을유래지(1987), 장흥군지(1990), 장흥원사록(1990), 문림고을장흥(1994), 청소년을 위한 향토인물열전(1995), 장흥문집해제(1997), 문화재도록(1998), 장동면지(2005) 등이다.

 

5. 2012년 학술논문, 2016~17, 반곡난중일기와 반곡집 국역

 

2009년에는 김신중교수가 정경달의 두견성가와 무인시조를 소개하였다.(정경달의 두견성가와 무인시조) 정경달이 선산군수 시절 52세 때인 1593(선조 26) 44일 밤에 달빛 드는 창가에서 두견의 울음소리를 듣고 눈물지으며 지었다고 한다. 무인시조의 대표적 명편으로 꼽히는 이순신의 <한산도가>에 한발 앞서, 그와 유사한 시상 전개 방식을 취한 번민가로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장흥뿐만 아니라, 남도의 시조문학을 보다 풍성하게 꾸며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2012823일에는 호남 지역사와 문화연구를 주제로 보성문화원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공동 주최하여 보성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김경숙 교수가 임진왜란과 정경달 형제의 활동을 발표한다. 그리고 학술지에 실린다.(임진왜란 초기 지방관의 守土活動-善山府使 丁景達 형제의 활동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65)

 

정경달의 수토 활동은 44도청의 운영을 통한 유격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159215934월까지 일본군을 참포(斬捕)한 숫자가 275급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정경달의 활약은 인근 고을에 알려져 의병장들이 합세하고, 경상도 관찰사는 그를 의병대장에 임명하여 의병 모집의 임무를 맡겼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159212월에서 다음해 1월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관·의병 연합 작전을 주도하면서 일본군 토벌에 전력을 쏟았으나 유격전 활동과 달리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정경달의 선산 활동은 형제자질들의 지원과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가능하였다고 하였다.

 

2016년에는 신해진교수가 반곡난중일기를 상·2책으로 국역을 한다. 국립중앙앙도서관 소장 반곡난중일기(소장도서명 : 반곡유고, 청구기호: 3648-69-24)가 대본이다. 앞서 언급한 1985년 청주 개인 소장본, 원 소장처 입장에서 보면 무단 반출된 책이다. 다산 정약용 산정본이다. 끝에 원본 영인본을 실었다. 머리말에서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다산의 산정본 원전을 역주서의 말미에 영인하려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영인 승낙을 요청하였던 바, 권한이 없으니 원소장자의 승낙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원소장자 임해호(林海鎬)씨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채, 1985년 충북대 이수봉 교수가 발견할 때의 여러 신문 보도문에 의하면 임해호씨가 당시 41세로 충북 청주시 모충동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어 직접 찾아갔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원전을 첨부하는 것은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의를 제공하려는 것임을 임해호 어른께서 양해해 주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전 자료 앞부분에 이름자를 명기하여 그 뜻을 기린다.( 머리말, 반곡난중일기--)

 

2017년에는 박종우교수에 의해 반곡집이 국역된다.( (압해 정씨 가문) 반곡 정경달 시문집1·2-조선명가문헌총서001) 대본은 1817년 간행 반곡집이다. 이 책에 실린 난중일기는 다산 정약용이 산정(刪定)했다는 내용이 정수칠의 발문(跋文)에 있다. 정수칠은 장흥 장동 반산리에 거주하였고 정경달의 후손이다. 강진에 유배와 있던 정다산을 찾아가 일기 산정을 부탁했고, 이때 오간 편지가 전한다.

 

그런데 이 반곡집에는 한치응과 정약용의 서문이 있는데, 정약용의 서문 연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상지 이십삼년 경신 모춘(上之二十三年庚申暮春)’이라 하였는데, 서기로 치면 1800년 봄이다. 다산 정약용은 18012월에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11월에 강진으로 이배된다. 1800년 봄이면 관직에 있을 때이다. 서문에 쓴 관직도 승정원 좌부승지이다. 강진에서 산정을 하고 1817년에 간행을 하지만 그 이전, 강진 유배오기 전에 이미 서문을 썼다는 점이다.

 

2015년에는 김희태가 전남대박물관 명품 특별전 원고를 집필하면서 다산 정약용이 장흥 장동 반산 종인에게 쓴 편지를 확인하여 소개한다.( 정다산이 장흥사람에게 보낸 편지-여유당전서미수록 다산 정약용 간찰 7-)

 

2016년에는 박인호교수가 임진왜란기 구미 지역의 사족 동향과 의병활동을 다루면서 정경달의 행적을 살폈다.(임진왜란기 구미 지역의 사족 동향과 의병 활동)

 

2017년에는 박종우교수가 정경달의 한시(漢詩)를 주제의 특징적 국면을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였다.(반곡 정경달의 漢詩 연구-주제의 특징적 국면을 중심으로-)

 

2017년에는 전남도 유형문화유산인 <반계사 유물>에 건조물 반계사를 포함하여 변경 지정하고자 연구조사가 진행되었다.( 반계사 유물일괄 변경지정 신청서)

 

2018년에는 노영구교수가 임진란 초기 선산 부사 정경달의 활동에 대해서 발표하였다.(임진란 초기 선산 일대 일본군 동향과 부사 정경달의 활동)

 

20191223일에는 장흥군·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반곡 정경달 기념사업회 공동 주최로 <장흥과 반곡 정경달 선생의 재조명 학술심포지움>이 열렸다.

 

주제발표는 임진왜란과 반곡 정경달’(발표 김경숙, 서울대), ‘반곡 정경달의 난중일기’(신해진, 전남대, 반곡난중일기 1·2번역), ‘반곡 정경달의 문학세계(박종우, 고려대, 반곡정경달 시문집 1·2번역), ‘문림의향과 반곡 정경달’(김준옥, 전남대 명예교수)이었다. 토론은 반곡 정경달의 문학’(임준성, 광주여대), ‘반곡 정경달의 구국활동(김덕진, 광주교대), ‘반곡의 문림의향’(양기수, 장흥지역사학자) 이었다.

 

발표문집에는 부록 자료로 반곡 정경달 조명 운동의 의의’(김선욱), ‘반곡 정경달의 연기(年紀)’, ‘반곡 정경달선생 관련 조사 연구 현황’(김희태)을 별도 원고로 실었다.(장흥과 반곡 정경달 선생의 재조명 학술심포지움)

 

2021년에는 박균섭교수가 정경달의 임진왜란 활약상은 유교지식인의 국가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역동적으로 보여주었으며, 반곡난중일기등 관련 역사 기록과 기억의 끊임없는 재구성을 통해 유교지식인의 국가사회적 책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선산부사-통제사종사관 정경달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과 기억)

 

이서희선생은 임병양란기 실기(實記)의 외국인 형상을 다루면서 정경달의 반곡난중일기에 기록된 명인(明人) 형상을 시혜자의 작폐라 하여 구원자의 이중성을 살폈다.(임병양란기 실기의 외국인 형상 연구)

 

2024년에는 이서희선생이 반곡 정경달의 󰡔반곡난중일기󰡕를 분석하여 왜적 방어의 성취와 가족 이산의 염려나 왜적 추격시의 불안 고통 등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하여 애민정신과 충의식을 지닌 자연인으로 자리매김되었다고 하였다.(자기 치유 글쓰기로서의 전란 체험 실기 독해- 정경달의 반곡난중일기 를 중심으로 -)

 

2025년 7월 10일에는 ‘장흥 반계사와 소장 유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이 변경 지정되면서 건조물 반계사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88년 지정 명칭 ‘반계사 유물 일괄(盤谿祠 遺物 一括)’이 ‘장흥 반계사와 소장 유물(長興 盤谿祠와 所藏 遺物)’ 변경되었다. 지정 사유는 ‘역사적 장소성과 건축적 가치를 가진 반계사와 소장 유물의 통합적 가치를 반영하고 보존관리하기 위하여 명칭을 변경함’이었다. 그동안의 여러 가지 노력이 결실을 본 셈이다.

 

 

6. 맺음말

 

반곡 정경달과 관련 유물 유적에 대해서는 1980년대 초반 이후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1985년 난중일기 국역(전반부), 1987년 반산세고 간행된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1988년에는 유물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학술지표조사나 향토지 등에도 꾸준히 조사되고 소개되지만 심화된 학술연구는 더딘 편이었다.

 

2012년에 이르러서야 학술대회에서 김경숙교수에 의해 정경달의 임란기 활동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고 학술지에도 실렸다. 이어 김신중교수의 시조 소개, 노영구교수와 박인호교수의 임란기 활동 연구, 박종우 교수의 한시연구, 박균섭교수와 이서희교수의 반곡난중일기 글쓰기 연구 등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신해진교수의 반곡난중일기국역, 박종우교수의 반곡집국역 등도 이루어졌다. 2019년에는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1980년대의 조사나 반산세고 간행, 문화유산 지정 등을 제외하면 그 이후의 일련의 연구나 국역 작업이 본토라 할 장흥 지역 외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에 대하여 여러 문제 제기가 있었고(반곡盤谷 정경달 조명 사업 보성군이 앞장 선다-장흥군은 언제까지 방치만 하고 구경만 할 것인가-) 논의가 모아져(반곡 정경달 선생의 선양과 연구의 과제) 반곡정경달기념사업회가 결성((2019.07.18. 창립대회, 장흥군민회관)되었다. 2019년 학술대회 등 연구 지평이 보다 더 확장되어 가고 있다. 2025년에는 ‘장흥 반계사와 소장 유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이 변경 지정되면서 건조물 반계사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념사업회는 학술대회 개최, 학술논총과 수상집 등 책자 발간, 사업회 사무실 마련, 기념관 조성과 동상(흉상)제작, 반곡유고집 추가 국역화, ‘평전발간 등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같은 기념사업회의 활동과 연계하여 다음에 제시하는 <자료1>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자료1>은 세 종류의 반곡난중일기를 제시한 것이다. 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반곡난중일기 하권이다. 는 다산 정약용 산정한 반곡유고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영인본이 소장되어 있다. 1817년 간행된 반곡집에 실린 난중일기이다. 제시된 분량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세 종류 모두 무술년 즉 15981월조를 예시해 본다.

 

다산 산정본()이나 이를 그대로 간행한 반곡집의 일기()15981월 분량이 1, 3, 8, 12, 135일분이 실려 있다. 그런데 산정 이전의 반곡난중일기(❶, 문화유산 지정본)11일부터 2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 내용이 보인다. 산정본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이 그득하다. 지금까지 세세히 살피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산정 이전의 상권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이들을 다시 번역하고 비교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관심과 제보를 기대한다.

 

*20245월부터 문화재용어는 국가유산으로 변경되면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화유산 가운데 유형문화재는 유형문화유산으로 표기한다. 본고에서는 변경된 용어를 따른다. 다만, 책자나 보고서, 위원회 명칭 등은 당시 용어를 썼다. 지정번호는 [ ]로 표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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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김희태, 반곡 정경달선생 관련 조사 연구 현황, 향토문화43, 향토문화개별협의회, 2024., 125~138.(수정)

 

자료1 : 반곡난중일기무술(1598) 정월(1)조 비교

반계사 소장 반곡난중일기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반곡유고 / 반곡집

❶-1 『반곡난중일기』 무술(1598) 정월 1~9일
❶-5 『반곡난중일기』무술(1598) 정월27~29일
❷-1『반곡유고』권10 / 右 : 표제 ‘盤谷日記 坤’ 左 : 盤山 丁景達 著, 冽水 丁鏞 刪, 後孫 修七 校

 

❷-2반곡유고무술(1598) 정월 조(1, 3, 8, 12, 13)

❸『반곡집6 일기, 무술(1598) 정월 조(1, 3, 8,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