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50 - 금화 이성호선생, 억불산을 유람하다, 1928년

향토학인 2026. 6. 7. 02:05

인지의 즐거움450
 

금화 이성호(1873~1929)선생, 억불산을 유람하다, 1928년

 

김희태

 
장흥 용산면 금곡마을 출신 근대기 학자 금화 이성호(金華 李誠浩, 1873~1929) 선생은 1928년 억불산을 오른다. 그리고 유산기를 지었는데 문집인 《금화유고(金華遺稿)》에 실려 있다. <억불산 유산기(億佛山遊山記)>이다.
 
이성호 선생은 무진년 (1928년) 4월10일 건산의 산찬재에 머물러 지낼 때 안덕재, 안태진, 임연재 족숙 이치경 등과 함께 오래도록 동경해 오던 억불산을 유람하였다. 재사 관리 승려가 술과 안주를 마련하였고 가르치던 아이들도 뒤따랐다. 오르는 길 동네 우목리(현 우산리)에서 안도원의 정사에 들러 점심을 하고 산을 올랐다.
 
험준한 바위길을 넘어 큰 나무 그늘에 옷을 걸고 쉬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았다. 정상에 오르자 신선이 된 듯한 상쾌함을 느꼈으며, 봉수대와 옛 유적을 보며 역사에 대한 감회를 품었다. 하산길에는 인경대암(仁磬坮菴)과 마르지 않는 샘[石泉], 천만장(千萬𠀋)이나 되는 기암을 둘러보며 자연의 신비와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흔적을 되새겼다. 하루 동안의 산행은 풍류를 나누고 자연과 역사를 음미한 뜻깊은 여정으로, 지나고 나니 한바탕 봄꿈같다도 했다.
 
이 기문은 억불산 유산기로서는 흔치 않은 기록이다. 부처의 형상을 한 우뚝한 바위 '억불암'은 '며느리바위'일듯 싶다. 건산의 산천재외 우산리 안씨가 정사, 마르지 않은 돌바위샘을 찾아 나서고 싶다. <억불산 유산기> 일부를 읽어 본다..

 

"사방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손바닥만 한 평지가 하나 있었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인경대암(仁磬臺菴)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아래는 곧 천만 길 낭떠러지인데, 온통 돌을 쌓아 만든 것이었다. 얼핏 보면 마치 자연 그대로인 듯하지만, 귀신과 신령이 동원되지 않았다면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으니,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듯하였다. , 고려 사람들이 불교를 좋아하였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구나.

 

서쪽 바위 아래에는 샘물이 하나 있었는데 맑고 차가워 마실 만하였다.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동쪽으로 가니 마치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참으로 불상과 흡사하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조화(造物)의 솜씨였다.

 

우연히 생긴 것이라면 어찌 이토록 닮았을 수 있으며, 만약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겠는가. 또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억불암(億佛岩)’이라 부른 것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화유고(金華遺稿)》에는 억불산 유산 때 지은 시[億佛山遊山韻 ]가 있다. 성 동쪽 억불산에 올라 산수의 절경을 굽어보면서 바위와 샘물, 푸른 이끼가 어우러진 풍광 속에서 번다한 세상사를 뒤로하고 옛 자취를 돌아보며 지나간 역사와 인생을 되새겨 본다. 끝없이 이어진 산세는 자연의 영원함과 인간사의 덧없음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성 동쪽 억불대(億佛臺)에 한달음에 오르니
인간세상 만리가 모두 티끌인듯 아득하구나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온통 바위 투성이요
바위아래 만난 샘물에는 푸른 이끼 가득하네
 
시를 지으며 품은 시름 잔 낙엽처럼 흩어지고
주흥도 크게 일지 않아 큰 술잔하나 기울일 뿐
문득 옛유적 마주하니 어찌 지난일 생각않으랴
눈길 닿는 곳마다 오직 산만이 이어져 있을 뿐
 
一上城東億佛臺(일상성동억불대) 人間萬里㧾塵矣(인간만리홀진의)
峯頭出路全然磧(봉두출로전연적) 巖下逢泉半是苔(암하봉천반시태)
 
無恨詩愁餘短葉(무한시수여단엽) 不多酒興覓湥盃(부다주흥멱돌배)
仍來古跡那堪想(잉래고적나감상) 只有山来極目來(지유산래극목래)
 
2023년에 이성호선생의 《금화유고》를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장흥은 물론 동복 등 다른 지역의 자연경관과 풍물, 세시절기, 생활사 공간, 문화유산 등을 읊은 시가 많고 교류한 문인들과도 20여명 이상을 시제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서간문이나 기문 등을 통해서 근대기 장흥지역의 인문학적인 배경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림의향 장흥의 귀중한 자산이다. 《금화유고》의 자세한 해제, 영인본의 발간과 보급, 국역 주석서의 발간, 학술 자료조사와 공유화 등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 본다. 
 

이성호 선생의 억불산 유산기 (금화유고)

 

억불산 유산 운
억불산 봉수 유적(2004, 마한문화연구원 사진)
동여도 억불산 부근도(김정호, 19세기 중반, 규장각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