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450
금화 이성호(1873~1929)선생, 억불산을 유람하다, 1928년
김희태
장흥 용산면 금곡마을 출신 근대기 학자 금화 이성호(金華 李誠浩, 1873~1929) 선생은 1928년 억불산을 오른다. 그리고 유산기를 지었는데 문집인 《금화유고(金華遺稿)》에 실려 있다. <억불산 유산기(億佛山遊山記)>이다.
이성호 선생은 무진년 (1928년) 4월10일 건산의 산찬재에 머물러 지낼 때 안덕재, 안태진, 임연재 족숙 이치경 등과 함께 오래도록 동경해 오던 억불산을 유람하였다. 재사 관리 승려가 술과 안주를 마련하였고 가르치던 아이들도 뒤따랐다. 오르는 길 동네 우목리(현 우산리)에서 안도원의 정사에 들러 점심을 하고 산을 올랐다.
험준한 바위길을 넘어 큰 나무 그늘에 옷을 걸고 쉬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았다. 정상에 오르자 신선이 된 듯한 상쾌함을 느꼈으며, 봉수대와 옛 유적을 보며 역사에 대한 감회를 품었다. 하산길에는 인경대암(仁磬坮菴)과 마르지 않는 샘[石泉], 천만장(千萬𠀋)이나 되는 기암을 둘러보며 자연의 신비와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흔적을 되새겼다. 하루 동안의 산행은 풍류를 나누고 자연과 역사를 음미한 뜻깊은 여정으로, 지나고 나니 한바탕 봄꿈같다도 했다.
이 기문은 억불산 유산기로서는 흔치 않은 기록이다. 부처의 형상을 한 우뚝한 바위 '억불암'은 '며느리바위'일듯 싶다. 건산의 산천재외 우산리 안씨가 정사, 마르지 않은 돌바위샘을 찾아 나서고 싶다. <억불산 유산기> 일부를 읽어 본다..
"사방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손바닥만 한 평지가 하나 있었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인경대암(仁磬臺菴)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아래는 곧 천만 길 낭떠러지인데, 온통 돌을 쌓아 만든 것이었다. 얼핏 보면 마치 자연 그대로인 듯하지만, 귀신과 신령이 동원되지 않았다면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으니,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듯하였다. 아, 고려 사람들이 불교를 좋아하였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구나.
서쪽 바위 아래에는 샘물이 하나 있었는데 맑고 차가워 마실 만하였다.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동쪽으로 가니 마치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참으로 불상과 흡사하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조화(造物)의 솜씨였다.
우연히 생긴 것이라면 어찌 이토록 닮았을 수 있으며, 만약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겠는가. 또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억불암(億佛岩)’이라 부른 것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화유고(金華遺稿)》에는 억불산 유산 때 지은 시[億佛山遊山韻 ]가 있다. 성 동쪽 억불산에 올라 산수의 절경을 굽어보면서 바위와 샘물, 푸른 이끼가 어우러진 풍광 속에서 번다한 세상사를 뒤로하고 옛 자취를 돌아보며 지나간 역사와 인생을 되새겨 본다. 끝없이 이어진 산세는 자연의 영원함과 인간사의 덧없음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성 동쪽 억불대(億佛臺)에 한달음에 오르니
인간세상 만리가 모두 티끌인듯 아득하구나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온통 바위 투성이요
바위아래 만난 샘물에는 푸른 이끼 가득하네
시를 지으며 품은 시름 잔 낙엽처럼 흩어지고
주흥도 크게 일지 않아 큰 술잔하나 기울일 뿐
문득 옛유적 마주하니 어찌 지난일 생각않으랴
눈길 닿는 곳마다 오직 산만이 이어져 있을 뿐
一上城東億佛臺(일상성동억불대) 人間萬里㧾塵矣(인간만리홀진의)
峯頭出路全然磧(봉두출로전연적) 巖下逢泉半是苔(암하봉천반시태)
無恨詩愁餘短葉(무한시수여단엽) 不多酒興覓湥盃(부다주흥멱돌배)
仍來古跡那堪想(잉래고적나감상) 只有山来極目來(지유산래극목래)
2023년에 이성호선생의 《금화유고》를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장흥은 물론 동복 등 다른 지역의 자연경관과 풍물, 세시절기, 생활사 공간, 문화유산 등을 읊은 시가 많고 교류한 문인들과도 20여명 이상을 시제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서간문이나 기문 등을 통해서 근대기 장흥지역의 인문학적인 배경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림의향 장흥의 귀중한 자산이다. 《금화유고》의 자세한 해제, 영인본의 발간과 보급, 국역 주석서의 발간, 학술 자료조사와 공유화 등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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