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46 - 살아 있는 유산으로 잇는 역사문화 공동체, 역사자원특별시

향토학인 2026. 5. 14. 11:17

인지의 즐거움446

 

살아 있는 유산으로 잇는 역사문화 공동체, 역사자원특별시

김희태

 

통합의 이름을 넘어, 역사문화 공동체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행정 효율이나 경제 규모의 확대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되려면 광주와 전남이 함께 쌓아 온 역사와 문화의 결을 어떻게 미래의 도시 비전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해 지혜가 모아져야 하고 실행이 되어야 한다.

 

전남과 광주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생활권이자 동일한 문화권이었다. 그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기억은 선사시대 고인돌과 옹관묘, 마한의 역사, 장보고와 청해진, 고려청자와 산사, 조선의 서원과 정자, 시가문학과 남도화, 판소리와 농악, 의병과 동학, 항일운동과 5·18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끊어진 적이 없이 이어져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유산을 단순히 지역별 목록으로 나열하는 일이 아니라, 광주와 전남을 아우르는 하나의 역사문화 공동체로 재인식하는 일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바로 이 점에서 역사자원의 특별시라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 산업과 교통, 행정의 통합 위에 문화의 통합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 정체성이 통합의 방향을 이끄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제된 유산에서 시민의 삶과 함께해야

 

시민단체의 눈으로 보면, 문화유산 활용 정책의 핵심은 유산을 얼마나 많이 지정하고 얼마나 잘 정비하느냐로 판단하면 안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민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느냐이다. 문화유산은 박물관 전시관 안에 화석화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생활의 자산이어야 한다.

 

마을 앞 당산나무, 오래된 골목과 돌담길, 서원과 정자, 장터와 포구, 갯벌과 들녘, 민요와 놀이, 제의와 음식문화까지 모두가 살아 있는 전통문화의 현장이다. 우리의 생활속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특별시의 문화정책은 대규모 시설 건립이나 보여주기식 관광 개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이 일상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접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생활권 중심의 활용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와 마을에서 향토문화를 배우고, 청년들은 지역의 역사 자원을 새로운 콘텐츠로 해석하며, 어르신들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지역문화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전통문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세대 간에 전승되는 삶의 방식이며, 통합특별시는 이를 도시 운영의 중요한 원리로 삼아야 한다.

 

시민의 힘과 지혜를 정책의 중심에 두자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행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 온 민간의 실천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대동문화를 비롯한 지역의 문화단체들은 문화유산 답사, 시민 강좌, 유산 지킴이 활동, 청소년 교육, 해설사 양성, 향토사 조사. 기록과 출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문화를 가꾸어 왔다.

 

이들 민간의 활동은 행정의 빈틈을 메우는 보조 역할이 아니라, 지역 문화정책의 토대를 형성한 축적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통합특별시가 지향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민간의 경험과 역량을 정책의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중심에 두는 일이다. 시민사회가 문화정책의 수혜자에 머무르지 않고 기획자이자 실천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이 주어가 되고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제도화하고, 조사·연구·교육 활동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소규모 문화단체와 생활문화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특히 문화 소외 지역 해소를 위해서는 농산어촌과 도서 지역, 원도심과 작은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적 풍요는 도시 중심지 몇 곳의 화려한 행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떨어져 있을지라도 소소한 현장들이 촘촘히 살아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유무형 자산의 문화벨트, 특별시의 미래를 열자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미래 비전은 결국 유무형의 자산을 서로 잇는 문화벨트의 구상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광주의 민주·인권·예향·의향·미향(味鄕) 자원과 전남의 고대유산, 세계유산, 불교유산, 유교문화, 갯벌과 섬, 농어촌 경관, 남도음식과 차문화, 판소리와 농악, 의병과 동학의 정신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내야 한다.

 

강줄기를 따라, 바닷길을 따라, 삶의 기억을 따라 이어지는 역사문화 연계망이 형성될 때 통합특별시는 단순한 행정단위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화순 고인돌과 장성 필암서원, 순천 선암사와 해남 대흥사, 신안과 보성·순천의 갯벌 같은 세계유산은 그 거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수많은 생활유산과 마을문화, 구술과 기억의 장소들이 함께 엮일 때 비로소 통합특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지도로 다시 읽힐 것이다.

 

통합의 성패는 거대한 개발 계획에만 달려 있지 않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고장의 이야기를 알고, 그것을 삶 속에서 다시 살려 낼 때 통합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그런 점에서 행정의 도시가 아니라 기억의 도시, 소비의 도시가 아니라 품격의 도시, 박제된 유산의 도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문화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광주와 전남, 전남과 광주가 함께 만들어 갈 가장 남도다운 미래일 것이다.

 

*김희태,살아 있는 유산으로 잇는 역사문화 공동체, 대동문화154-20265·6월호-(ISSUE3 역사자원특별시)(대동문화재단, 2026.05.05. 2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