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447
단종조 충신 송간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왕과 사는 남자」의 고장, 영월뿐이더냐-
김희태
2014년의 글을 들쳐 본다. ‘명량KTX 남도관광열차 운행’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제안 글이다. 부제는 ‘울둘목 - 명량의 회오리, 진도의 흥놀이’. 기억을 더듬어 그 사연을 따라가 본다.
두 사례의 관광콘켄츠 활용기회 사라져
당시 〈명량〉 영화가 한창 인기몰이를 할 때이다. 7월 20일 개봉하였는데, 저 얘기를 논의한 8월 하순즈음 1천5백만명을 넘었다. 명량대첩 축제도 앞두고 있었다. 서울에서 목포, 그리고 울물목, 명량과 해남 진도를 탐방하는 관광열차를 운행하자는 것이다. 당일 또는 1박 2일로 명량대첩축제, 진도와 해남 둥 남도의 문화관광지, 남도의 음식과 풍류, 전남도 추진 토요경매 등과 연계.
특히, 그무렵 사회적 상황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진도지역의 문화관광 활성화를 고려하여 연계함으로서, ‘민속의 고장, 신명의 땅, 진도’의 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일종의 ‘사회치유’와 병행하자는 것도 곁들였다.
이미 코레일 순천본부에서 출시한 ‘이순신 전라좌수사 체험 기차여행’은 S-train-남도해양열차로 운행하여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용산 출발, 여수 도착 후 여수역 광장 '이순신 출정식', '이순신 밥상' 점심식사, '이순신 유적탐방', '오동도 관광', '해양레일바이크 체험'을 하고 다시 여수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때 코레일 관광열차 개설 경험자와 협의도 했는데, 상품성도 있고 필요성도 충분하다고 하였다. 이런 내용을 글로 적어 관광부서로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더 이상의 지혜는 모아지지 않고 말았다.
역사 현장을 되새겨 보고자 한 또 하나의 사례. ‘백제도원수 이연년 백제부흥운동 13주갑(780년) 기념행사’ 제안, 2017년이다.
고려시대 1237년, 원율현의 이연년이 백제도원수를 칭하고 백제부흥운동을 일으킨다. 지금의 담양 금성면에 치소를 두었던 원율현에서 광주와 나주 등지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백성과 불교계 등 광범한 후원과 지지를 받는다. 무인 정권의 가혹한 통치에 맞서 새로운 사회 질서 구축을 도모한 농민봉기이다. 13주갑이 되는 해에 금성산성에서 고유제를 올리면서 도지사가 ‘남도부흥 천년비전 고천문’을 선포하고, 백제부흥군은 대나무를 주무기로 썼음직함으로 5월에 열리는 담양 대나무축제와 연계해 보자는 것이다. 이 또한 제안에 머물고 말았다.
두 사례를 들었는데, 역사현장이나 문화자원을 매개로 하여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자원화 하자는 논의를 하면서이다. 최근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와 관련하여 ‘단종임금’과 관련한 자료나 현장을 찾아서 지역발전과 꿰맞춰 보자는 제안들이 있던터라, 이번 글을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의 길’로 요청받았다. ‘우리곁의 미래유산’도 ‘우리곁의 문화유산’으로 좀더 확장하였다.
단종에 얽힌 장소가 강원도만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 흥행에 견줄만한 감흥이 있는 현장이나 자료를 찾기는 쉽지않다. 그래도 저 ‘명량 관광열차’나 ‘백제부흥 13주갑’처럼 문화유산과 연계된 제안을, 약간의 서사를 곁들이고 관점을 달리해 바라보자.
서재 송간(1405∼1480)은 단종의 강제 손위와 관련한 충절인물이다. 고흥과 보성에 문화유산이 있는데 역사문화자원의 활용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송간은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 영월까지 찾아가 통곡하며 충의를 표하고, 승하 이후에는 3년 복상과 함께 흥양, 지금의 고흥에 은거하며 끝까지 절개를 지킨다.
이러한 삶의 자취는 단순한 개인의 행적을 넘어 단종 손위 서사의 지역적 확장과 기억의 쌓임이라는 점에서 활용 가치가 있다. 특히 고흥 마륜리 서재동 유허와 보성 벌교 척령리 미원 묘역은 충절의 공간으로서 서사 자원이 될만하다. 고흥 백이·숙제 고사와 연결된 ‘고사리’ 상징은 충의의 문화자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고흥 서재동에는 서동사(西洞祠, 제동서원)가 있다. 전라남도 문화유산인 서동사는, 송간을 주향으로 송대립·송희립·송심 등 여산 송씨 선현과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등 열다섯분을 모시는 사우이다. 송간의 충절 정신은 후손에게도 이어져 송대립, 송희립, 송심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공을 세운다. 송대립과 송심 부자의 쌍충 정려각은 1704년(숙종 30년) 명정되었는데, 2022년 국가지정 보물이 되었다.
보성 척령리에는 송간의 묘소와 신도비, 묘비, 재실인 영보재가 있다. 신도비는 연재 송병선이 지었고 면암 최익현의 글씨이다. 묘비는 홍주출신 의병장 김복한이 지었다. 이들 항일지사의 참여는 조선 전기 충신 기념을 넘어 근대 항일 의병정신과 연결되는 역사성이 있다. 이같은 절의정신을 이어 가고자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이 나주에 들어 섰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전국 각지를 유랑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1456년 성삼문이 극형에 처해졌을 때 한밤 중에 유해를 수습해 몰래 아차고개 남쪽에 묻고 장사지냈다고 한다. 김시습이 남긴 시문 가운데 〈유호남록(遊湖南錄)〉이 있다. 호남지방을 유람하면서 지은 87제의 시이다. 정읍에서 노현(盧峴, 노령)을 넘어 미륵원, 장성현, 단암역, 진원 인월정사, 나주목, 금성사(錦城祠), 영광군, 무등산, 규봉난야 등을 시제로 하였다. 그 길을 따라가 볼만 하다.
장흥의 사인정은, 김필이 계유정란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 장흥에 내려와 강학했던 자리에 후손이 세운 정자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순천의 옥천서원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관직을 버리고 유교경전을 연구한 정지년을 배향하고 있다.
화순 해망서원에 배향된 김종직(1431∼1492)은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빼앗으려는 세조를 중국의 고사를 이용하여 비난한 ‘조 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무오사화의 단서가 되었다. 함평 영파정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이안과 관련된다.
영광의 덕림사에 배향된 근녕군 이농은 단종이 선위당할 때 혼자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 14일간 절식하며 통곡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병자호란에 참여한 후손이 영광으로 입향하여 절의정신이 이어졌고, 사우를 건립하면서 근령군을 주향으로 하였다.
이같은 단종 충절 서사와 그 문화유산은, 임란 의병 등 절의정신, 후대의 추숭 정책, 근대 항일정신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김희태. 「왕과 사는 남자의 고장, 영월뿐이더냐」-단종조 충신 송간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대동문화』 154호-2026년 5·6월호-(우리곁의 문화유산)(대동문화재단, 2026.05.05. 74~77쪽)
*「우리 곁의 미래유산」 코너가 154호부터 「우리 곁의 문화유산」으로 대상을 확대하였다. 그동안 「우리 곁의 미래유산」에 지혜를 모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154호 편집회의(2026.03.25.) 때 「우리 곁의 문화유산」 첫 글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과 관련하여 ‘우리 지역 역사 자원의 활용’, ‘가급적이면 단종과 관련 된 유산’ 등에 대해서 정리해 달라는 논의가 있었다. 오랜 기억을 더듬이 자원 활용에 대한 소회를 더듬어 보고, 단종관련 자료를 찾아 보았다. ‘단종조 충신 송간의 문화유산’이라 제하고 몇자료를 엮어 보았는데, 편집과정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고장, 영월뿐이더냐」-단종조 충신 송간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며-로 하여 원고를 빛내 주었다. 편집진의 지혜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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