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449
우리 지역 유물 이야기, 2026.05.27., 목포 홍일중
김희태
*목포 홍일중학교(변수남선생님) 강의 요청이 있었다. 목포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라 해서, 일단은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우선 변수남선생님과의 인연. 얼마전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펴낸 <국역 정강일기>(장흥, 김주현)를 보았으면 한다는 연락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간간히 글을 올리는 향토학블로그(티스토리)를 통해 <정강일기>를 알았는데, 마침 책이 나왔다 하니 구하고 싶다는 것. 집에 있는 책을 보냈는데, 이게 인연이 되어 얼마 뒤 강의 요청이 왔다. 중학생 강의를 몇 번 한 적은 있지만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도 승낙을 했던터라 날짜를 잡았다. 몇 명이나 되고 몇학년인지 궁금하던 차. 1,2,3학년이 들어 있고 동아리모임이라 했다. 자체적으로 만든 현수막도 보내 왔다.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과 함께 하는 우리지역 유물 이야기”. 과분하다. 전직이 문화재전문위인지라, 지금은 국가유산(문화유산)으로 쓰지만, 그대로 표기한 것 같다. 강의자료를 간략히 정리하였는데, 용어는 문화재(국가유산)로 표기했다.
일시 : 2026.05.27. (수) 14:40~15:30
장소 : 목포 홍일중학교

유물과 유적 – 문화재→국가유산
유물은 “앞선 세대의 인류가 후세에 남긴 물건”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팔만대장경이나 고려청자, 훈민정음 등이다. 비숫한 말로 유적이 있다. 남아 있는 자취를 말하는 것으로 화순 고인돌유적이나 무령왕릉, 불국사 또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을 말한다. 이들을 합하여 문화재라 한다. 문화재라는 말은 오래도록 써 왔는데 2024년부터는 국가유산이라는 말로 바꿔서 쓰고 있다. 따라서 오늘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목포를 중심으로 유물-유적-문화재-국가유산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재(국가유산)라고 하면 아주 오래된 것, 대단히 아름답고 뛰어난 기술이 보이는 것, 유명한 사람이 그린 그림 등을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2026년이란 시기도 30년, 50년, 200년 뒤가 되면 오래된 옛날이 된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거나 쓰고 있는 물건, 우리가 날마다 마주치는 현장도 200년 후면 문화재(국가유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공이다.
일기와 백범일지, 유형문화유산(보물)
예를 들어 보자. 김구선생의 백범일지는 독립운동가의 일기이자 당시 역사를 직접 기록한 기록물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백범일지는 한 개인의 일기이지만. 나라를 잃은 시대의 고민과 독립 의지를 담은 대표적인 근현대 기록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백범일지 원본이 문화재(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은 국가에서 지정하는 문화재(국가유산)의 종류이다.
이러한 일기나 도자기, 그림 같은 유물은 유형문화유산이라 한다. 백범일지와 함께 추사 김정희선생의 세한도, 세계적 명품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책) 등이 유형문화유산이다. 국가지정문화유산이 되면 국보나 보물로 부른다.
여러분이 일기를 쓰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기록이지만, 가정과 동네, 학교, 목포의 이야기도 내용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100년쯤 뒤에는 우리 지역의 역사 현장을 알 수 있는 기록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썼던 일기 속의 한줄이 지역의 역사가 될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그 역사 현장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셈이다.
5월 26일 방탄소년단[BTS]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대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다양한 “굿즈”가 있다. 아마도 갖고 싶어 할 것이다, 아니면 남몰래 사 두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흔한 듯 하지만, 200년쯤 뒤에 그 일부만 남아 있고, 나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문화재(국가유산)이 될 수 도 있다.
줄다리기와 올림픽, 무형유산
얼마전 5월 15일 체육대회를 했다. 꿈과 열정이 함께하는 교내 체육대회. 설레는 날이다.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여러 대항 가운데 하나로 줄다리기를 했을 것이다. 으쌰! 으쌰! 있는 힘을 다 짜낸다. 어떻게든 뒤로, 한걸걸음이라도 물러나야 이긴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모든 스포츠 종목은 앞으로, 높게, 빠르게인데. 뒤로 가야 이기는 것. 한번쯤 돌아 볼 일이다.
또 하나, 이 줄다리기가 올림픽 종목인 적이 있다면 이해가 되는가. 올림픽 초창기 1회부터 5회까지는 줄다리기가 정식 종목이었다. 8명이 한팀이 되어 인원별 몸무게를 합산하여 600kg급 등 급수를 정하여 대회를 한다. 이처럼 줄다리기는 스포츠줄다리기가 있고, 반면에 농촌에서 옛날부터 해오던 민속줄다리기가 있다.
매년 초 정월 대보름 전후에 볏짚을 꼬아 줄을 만들고 두팀으로 나누어 줄다리를 하고, 마치면 동네 잔치를 벌인다. 그 줄은 마을 수호신 나무에 감아 거름이 되게 한다. 이 줄다리기가 무형유산(무형문화재)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도 올라 있다. 줄이 있고 이를 다루는 사람이 있지만, 그 줄 싸움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라 해서 무형유산이라 한다. 우리는 지난 5월 체육대회에서 했던 줄다리기를 통해서,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올림픽과 무형유산 줄다리기를 이미 체험했다.

홍일중 줄다리기(2026년 5월 15일)

올림픽 줄다리기(스포츠줄다리기)

민속줄다리기(장흥) - 무형유산
목포진과 고하도 이충무공유적 – 기념물(사적)
목포진은 조선시대 서남해를 지키던 수군 진영 본부이다. 목포는 영산강 하구와 바닷길이 만나는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군, 즉 해군 본부가 설치되었다. 목포진의 책임자는 만호였다. 그레서 지금도 동 이름이 만호동이다. 수군진이 설치되면 성곽을 쌓고 관청 건물이 들어 선다. 지금은 성곽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만호동 일대에는 옛 진영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관청 건물도 복원하였다. 목포진 터는 목포가 개항 이전부터 중요한 해양 방어 도시였음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목포 앞바다에 있는 고하도는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107일 동안 머물며 수군을 정비한 역사 현장이다. 이곳에서 군량을 모으고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고하도는 영산강과 서남해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였다. 고하도 유적은 목포 앞바다가 나라를 지키는 군사 거점이었음을 알려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고하도 주둔 기록. 군사 주둔지 유적은 기념물로 분류하고, <난중일기> 유물은 유형문화유산이라 한다. 기념물이 국가지정유산이 되면 사적, 유형문화유산이 국가지정 유산이 되면 보물이 된다. 보물 중에서 가장 가치가 뛰어난 유산이 국보가된다. 고하도 기록이 나오는 <난중일기>는 국보이다.
이같은 사적지 현장 유산은 기념물이라 한다. 국가지정 유산이 되면 사적이라 한다. 건조물이 기념물-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한다. 건축적인 기법이나 특성 보다는 장소성의 역사적 의미를 더 평가하는 경우이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 같은 경우이다. 1900년에 세워진 붉은 벽돌의 서양식 근대 건물이다. 처음에는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목포부청사로 활용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이다.
전라남도, 수려한 자연과 찬란한 문화유산
전라남도는 산과 바다, 섬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오래된 역사와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이다. 전남에는 다도해와 갯벌 같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으며, 순천만과 신안 갯벌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높다. 또한 화순 고인돌처럼 선사시대 유적이 많아 ‘고인돌 왕국’이라 불린다. 고대에는 마한과 백제 문화가 발달했고, 장보고의 청해진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교류도 활발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강진 고려청자가 유명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소쇄원과 서원 문화, 선비들의 학문과 예술이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의병활동과 동학농민운동, 5·18 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지는 나라 사랑과 민주 정신도 전남의 중요한 역사이다. 판소리, 강강술래, 농악 같은 전통문화 역시 전남 사람들의 삶과 흥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목포, 강과 바다의 길목 해양도시
목포는 바다와 섬, 항구가 어우러진 전라남도의 대표 해양도시이다. 조선시대에는 목포진이 설치되어 서남해를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고, 1897년 개항 이후에는 항구·철도·상업이 발달하며 근대도시로 성장하였다. 현재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구 일본영사관 등 일제강점기의 건물이 남아 있어 근대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유달산은 목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산으로, 정상에서는 다도해와 항구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삼학도와 「목포의 눈물」은 목포 사람들의 추억과 감성을 담고 있으며, 고하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던 역사 현장이다. 또한 목포항은 신안·흑산도·홍도 등을 연결하는 서남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갓바위와 해양박물관, 신안 해저유물은 목포가 해양문화와 해상교역 연구의 중심지임을 보여준다. 남농 허건의 남종화와 옥장 장주원의 전통공예처럼 예술과 무형유산도 발달하여 목포는 역사·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도시로 평가된다.
홍일중학교, 79년의 역사, '홍일' 명명 50년- 1만 9천여명의 인재 배출
1945년 12월 6일 목포 동광중학교 설립에서 연원한다. 1976년 9월 30일 목포홍일중학교로 개명하였다. 설립한지 79년, ‘홍일중’ 이름을 쓴지 50년이다. 올해 79회 졸업생 173명이 나와서 졸업생은 모두 18,751명에 이른다. 재학생은 17개 학급 470명, 교직원은 40명이다.
우리는 몰랐지만, 문화재(국가유산), 그중 무형유산과 관계가 있는 줄다리기를 10일전에 했다. 그만큼 관심만 가지면 문화재(국가유산)는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국가유산)은 “오늘”의 “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고,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것, 일기장, 노트, 교과서, 학생증 등이 100년 뒤 200년 뒤에는 문화재(국가유산)가 된다. 100년전 2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조들의 생활사 속에서 쓰던 도구나 물건, 용품, 시설 들이 오늘날 문화재(국가유산)가 된 것이다. 결국 “오늘”의 “나”는 문화재(국가유산)를 향유하는 주체이며 먼 미래의 문화재(국가유산)를 생산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https://mokpohongil.ms.jne.kr/mokpohongil_ms/na/ntt/selectNttInfo.do?mi=109333&bbsId=109333&nttSn=180108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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