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00
흐르는 탐진강 세월을 보듬고-장흥 지원 지청 100년사- 편집후기, 2009.
김희태
일반적으로 한 권의 책을 엮고 나면 그 과정에 대해 〈편집후기〉로 정리한다. 이같은 사례로 《장흥 지원 지청 100년사-흐르는 탐진강 세월을 보듬고-》의 편집후기 초안을 정리 한 바 있다. ‘초안’이라 한 것은 뒤에 손보고 보태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하려는 그 ‘초안’은 날짜나 인명 등 극히 일부만 추가되었기에 그대로 소개한다. 이후 1쪽 분량의 감사 글이 보태졌다. ‘초안’은 그대로인 셈이다. 다만, 인명 일부는 ○○ 표기했다.
처음 논의 과정에서 세가지 고민을 서로 이야기했다. 첫째, ‘100년사’를 왜 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겠는가. 둘째, 오랜 세월이 지나 자료가 없을텐데 무엇으로 채울까. 셋째, ‘○○년사’ 등은 책으로 나오면 그만이고 읽히지 않기 십상인데 편집을 어찌해야 할까. 이런 문제였다.
첫째 문제는, 다음의 편집후기 첫 대목에 썼다. 요약하자면, 장흥 법원·검찰 100년사는 사법제도의 역사이자 지역민의 생활사로, 관과 민이 함께 기록·정리할 뜻깊은 유산이라는 것. 따라서 이 시대에 우리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정리하는 것은 당위이다.
둘째 문제에 대해서는, 수집하고 정리하다 보면 자료가 넘칠터이니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하였다. 김희태의 경험에 따른 의견이었다. 하지만 조사집필위원들은 반신 반의하였다. 그런데 몇 달뒤 편집을 마치고 보니 150쪽 가량이 넘쳤다. 상의 끝에 일제강점기 자료를 축약하였다.
다 못실은 자료 가운데 일부는 『장흥문화』 제34호(2012)에 「일제강점기[1910~1943] 장흥법원, 검찰 소속 명단과 직책」으로 소개하였다. 당시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통해 검색한 자료로 보면, 411인의 연인원이 확인되었다. 중복을 제하면 140인에 이른다. 기관명칭도 광주지방재판소 장흥구재판소(1910,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1912), 광주지방법원검사국 장흥지청검사분국(1938) 등으로 변화되었다.
셋째, 읽히는 100년사가 되려면 공간이나 기록자료도 중요하지만, 사람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를 하였다. 크게 역사편, 사람편, 자료편으로 나누되, 사람편에서는 일반적인 축간사나 의례적인 인사말 보다는 경험이나 사례, 풍경이나 소감 등을 싣기로 했다.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완도를 관할할 때 어업 면허 허가를 서류상의 장소 중심으로 해주었는데, 현지에 가보니 산속 번지라서 다시 해주었다는 등 여러 현장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9년 12월 14일에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책자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년사”라 하는 기념주년 책자로서는 드물게 2010년 6월에 재판본을 간행하였다. 〈편집후기〉 초안을 옮긴다.
장흥 법원·검찰 100년사를 엮고 나서
장흥 법원 검찰 100년사 발간을 시작하려 할 때 참여자 모두가 함께 한 고민이 있었다. 이러한 책을 왜 만들어야 하나?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풀어 갔다.
법이나 제도, 기구는 당시 사회를 운영하고 사람을 이끌어가는 큰 테두리이다. 장흥 법원 검찰이 100년이 되었는데, 그 공간은 장흥에 있었고, 장흥 인근 6개군이 관련되었고, 그곳 사람들은 이를 지켜보고 함께 생활해 왔기 때문에 법원 검찰 100년의 역사는 제도와 기구로서 사법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역사요, 선조들의 자취요, 우리들이 생활사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우리 손으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관과 민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보람되는 일이라는 것.
시작하면서 뜻은 좋았고 마음은 쉽게 합쳐졌다. 그러나 한세기 100년의 역사를 6개월만에 한권으로 책을 엮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래도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이나마 가능했다. 하여 그 전말을 간략히 적고자 한다.
장흥은 전통시대에 서남부의 중심고을이었다. 국가 기구인 벽사역이 있었고, 지방 군현 가운데에서는 위계가 높은 장흥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전라도 관찰사 밑에서 지방 군현을 통괄하는 계수관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장흥도호부는 장흥, 담양, 순천도호부, 무진, 보성, 낙안군, 능성, 창평, 화순, 동복, 옥과, 진원현 등 12개의 고을을 거느렸다. 이러한 역사성은 근대기에 이르러서도 각종의 국가 기구가 다른 지역보다 먼저 설치되는 전통이 되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법원과 검찰 등 사법기구이다. 1909년 11월 1일 장흥구 재판소가 설치되었으니 이제 100년이 된 셈이다.
2009년 4월에 이르러 100년사 자료집 발간 논의가 있었다.
o 제일심법원으로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장흥지원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o 민주와 법치제도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과 일선 사법기관의 역할을 고찰하여,
o 내일의 시대에 제일심법원이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해 보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소략하나마 「장흥지원·지청 창설 100주년」 기념집 발간 계획이 세워졌고, 몇 가지 원칙을 마련하였다.
o 민간인을 중심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한다.
o 조사 집필진은 역사연구 및 향토사가와 법조 관계인으로 구성한다.
o 장흥지원과 장흥지청의 역사적 의의와 자긍심을 살려 집필한다.
o 추진 사업비의 조달은 군비 및 협찬금으로 한다.
기간은 8개월로 하고 추진위원회는, 고문은 장흥지원장, 장흥지청장, 장흥군수, 강진군수, 위원은 조정위원과 범방위원 등 법원 검찰 관련 민간 위원을 중심으로 하기로 하였다. 위원장에 김희웅 전 장흥번영회장이 선임되었다. 부위원장 ○○○, 간사 위○○ …
조사 집필위원은 지원에서 임○○ 판사, 지청에서 정○○ 검사, 민간인으로 김석중(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 양기수(장흥향토사연구회장), 강영석(강진 향토사가), 김희태(전남도청 문화재전문위원)가 참여키로 하였다. 뒤에 백승현(대동문화 편집국장)이 동참하였다.
추진위원회 창립모임이 2009년 4월 13일 처음 열렸고, 위원장 등의 선임이 있었다. 그리고 장흥신문과 강진 신문 등을 통해 장흥법원검찰 100년사 자료집 편찬계획을 알리면서 관련 자료 수집 공고를 내기에 이른다.
이어 6월 23일에는 조사 집필위원의 첫 모임이 장흥지원 회의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집필 내용의 분담과 자료수집의 방법, 책자 발간의 방향 등에 대해 논의가 있었고, 수시로 모임을 갖으면서 정보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내용의 분담에 있어서 내용 편집 총괄, 관련 인물 면담과 자료 수집은 김석중, 전근대시기와 일본시기 자료는 김희태, 전체적인 편성과 초안 원고 작성은 양기수, 강진 지역 자료는 강영석이 맡기로 하였다. 면담은 김석중, 김희태, 백승현이 하였다. 지원과 지청, 대법원 문서관 등의 보존문서와 현행 자료는 임○○ 판사와 정○○ 검사를 통로로 하여 지원과 지청의 사무과와 협조하기로 하였다.
전체적인 내용은 역사편, 사람편, 자료편으로 크게 나누기로 하였다.
역사편에서는 장흥지원과 장흥지청의 100년 역사를 우리나라 사법제도와의 연계선상에고 기술하고 관련 자료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한제국 관보와 조선총독부 관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원의 인사, 호적, 등기, 공탁, 집달리, 법무사, 재판제도, 근무자에 대해서, 그리고 검찰의 연혁, 조직, 직무, 권한 , 근무자 등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지원편에서는 100년 기념으로 추진한 청소년 모의재판 관련 자료를 실었다. 지청편에서는 청소년 백일장 수상 작품 등을 골라 실었다.
사람편에서는 역대 지원장, 지청장, 거쳐간 판검사들 가운데 몇 분을 선정하여 방문 면담하여 재임기간 중 일화나, 사건, 사람, 사회 분위기, 장흥과 강진의 역사문화나 사람, 100년의 사회적 의미 등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정리하였다. 군수나 경찰서장 등 기관장급도 면담하여 지역사회와 사법기관의 역할 등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의례적인 미사여구를 나열하는 축사 형식의 글을 지양하고자 함이다. 직접 법을 다루거나 집행하는 법조인 외에도 법무사 등 장흥 법원, 검찰과 100년을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면담하였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당초에 계획했던 법원통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을 다루지 못한 점이다. 검찰청에 근무하고 퇴직하여 법무사를 오래 하신 분으로 생존해 계신 원로 김○○옹(1916년생, 장흥읍 동동리), 법원길목에서 사진업을 하시고 여관을 경영하시면서 수많은 법원 검찰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함께 살아온 강수의옹(1917년생, 장흥읍 기양리), 법원통 사람들의 제일급 모임 공간이었던 정원다방의 서○○여사(1948년생) 등은 면담을 했지만 기억의 한계와 사실 관계의 확인 등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자료편에서는 판결문, 사진, 관보, 문서 등을 실었다. 사진은 일본시기의 것은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강수의, 장흥문화원, 1995)에서 선별하였다. 그리고 순천지원에서 제공한 자료도 있다. 특히 1950년대의 사진은 장흥지청장을 지냈던 이○○의 아들로 현직 법조인인 이○○부장판사(지원장)가 제공해 주었다.
또한 판결문은 장흥구재판소 최초의 판결문을 종별로 입수하여 원문과 함께 해설과 국역문을 실었다. 형사재판 3건, 민사재판 1건, 화해조서 1건 등이었다. 국역은 문승이 전 구례문화원장께서 해 주셨다. 100년 가까이 된 일본시기 법조문이 지금의 판결문과 유사하다는 것에 놀라움도 느꼈다. 보수 전통을 따른다는 것도 중요 하지만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누구나 보기 쉬운 내용으로 할 필요성을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100년사 자료 수집과정에서 1909년 장흥구재판소 설치와 운영, 판사 등의 인사 발령사항, 공시최고 등 공고사항 등에 대하여 대한제국관보와 조선총독부관보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리고 1910년부터 1943년까지 장흥법원과 검찰청의 판사, 검사, 서기, 통역 등 근무자 명단 411인(연인원)을 확인한 바 있다. 이들 내용은 본문 가운데 해제하는 식으로 간략히 소개했는데, 별도의 자료집으로 간행할 만하다.
의례적일지 몰라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장흥지원장과 장흥지청장을 비롯한 관계관의 노고를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켠으로 보면 주인공이면서도 민이 주체가 되니 객이 되는, 그리고 정해진 일 말고 따로 일이 생겼으니 바쁜 와중에 자료 챙기느라 힘들었을 터이고, 대법원이나 다른 지역까지 다녀 온 분들, 상사의 눈치도 있었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추진위원과 집필위원이다. 김희웅 위원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일의 추진을 원활하게 하였다. 특히 조사 집필위원의 신념과 향토애가 없었다면 무엇보다도 어려웠으리라. 다음으로는 장흥군수와 강진군수, 그리고 관계관 들이다. 취지를 이해하고 적극 동참, 지원해 준데 감사드린다. 또 각종 자료의 제공과 면담을 통한 경륜을 전해 주신 법조인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책의 준비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료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 한편으로 여러 곳에서 기대가 컸다. 하여 짧은 시간에 마쳐야 하는 부담은 모두에게 짐이 되었다. 이 100년사는 이제 한권의 책으로 마침표를 찍지만, 이것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고한다. 미진한 점은 두고 두고 힘과 지혜를 모아 가고자 한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 이 초안에 일부 내용이 추가되어 "집필위원·강영석·김석중·양기수·김희태" 명의로 실렸다.

《흐르는 탐진강 세월을 보듬고-장흥 지원 지청 100년사-》표지(題字 : 화산 윤수옥)



본문은 크게 역사편, 사람편, 자료편으로 구분했고, 사람편에서는 장흥 지원 지청을 거쳐갔거나 관련있는 법조인들의 경험과 사례, 장흥의 인심과 경관을 모았다. 때로는 찾아가 몇시간동안 인터뷰도 했고 어떤 분은 오래된 사진과 함께 기억을 되살린 글을 보내 왔다. 자료편에서는 사진과 함께 최초의 형사재판문서, 민사재퍈문서, 화해조서, 등기 자료 등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료를 다 채울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정리된 자료와 원고를 편집해 보니 분량이 너무 넘쳤다. 결국 일제강점기의 직원 명단은 싣지 못하고 <장흥문화>에 따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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