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442
쌍봉사 존상의 미소와 사찰 폐단의 혁파 -전라도 능주 쌍봉사 교폐(矯弊) 절목-
김희태
"서원(書院) 춘추 제향 때에 제사에 쓰는
대장지(大壯紙) 네 장(張),
장지 여섯속(束) 여덟장,
백지(白紙) 열두 속,
피지(皮紙) 열두 속,
자리(草席), 열두 닙(立),
누룩(曲子) 여섯 동(同),
백미(白米) 두 섬(石) 여섯 말(斗),
참기름(眞油) 여섯 되(升),
밀가루(眞末) 두되,
건나물(乾菜) 이백 다발,
해조류(甘藿) 스물여덟 묶음,
김(海衣) 스물여덟 다발,
간장(淸漿) 열두 되,
담배(南草) 스물네 묶음,
마혜(麻鞋) 한단(竹) 네 켤레(部)
초혜(草鞋) 여덟 단,
도초백지(塗稍白紙) 일흔아홉묶음은
영구히 폐지 혁파한다(永爲革罷爲齊)."
모처럼 화순 쌍봉사를 들렀다.(2026.04.20.) 매장유산 시굴조사 현장을 보기 위함이었다. 쌍봉사 사적 관련 기록에 언급된 동암(동부도암), 불묘, 고려시대 혜조국사비와 관련된 곳이다. 오래전부터 논의 되다가 화순군 지원으로 마한문화연구원에서 시굴조사를 하게 되었다. 쌍봉사 동쪽 해발 213~235m지점이다. 추정 동암지에서는 5단의 축대와 초석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석조 연화비좌 석재편이 확인되었고 명문 석비 편, 분청자 등이 수습되는 성과가 있었다. 후속 조치가 진행될 것이다.
공양을 마친 뒤 대웅전에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 미소를 배람하였다. 문득 저 처럼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아 주는 걸작을 다듬은 장인의 손끝은 어떤 모습일까. 저 미소처럼 부드럽고 섬세할 것 같다. 아니지. 켜켜이 다듬다 보면 온갖 상처 투성이였을듯. 긁히고 찔리고 뭉툭하고 패이고 굳은 살.

저 미소와 관련하여 또 하나 되돌아 본다. 오래전 보다가 묵혀 둔 쌍봉사 문서이다. 문서의 내용은, 장인의 손에 남겨진 상처투성만큼이나 사찰의 고통이자 폐단이었다.
그 문서의 한 조목이 앞에 든 내용이다. 서원 제향을 올리는데 쌍봉사에서 마련해서 올려야 할 물품 목록이다. 그런데 폐단이 심하니 이런 것들을 영구히 폐지한다는 것으로 전라도관찰사의 1795년 문서이다.
폐지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동안 저 물품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많은 법력이 들었겠는가. 아마도 필설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폐단에 시름겨웠을 것이지만, 그래도 미소로써 맞이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무어라 형언하기 어렵다.
서원 제향만 보더라도 춘추로 네 종류의 종이, 초석, 누룩, 쌀, 참기름, 밀가루, 간장, 나물, 김, 담배, 짚신을 올려야 했다.
그런데 당시 절목문서는 무려 64개조항이다. 왕실이나 중앙부서, 도와 군현, 벽사역 등 지방의 기관, 향교와 서원 등.
이번에는 이 문서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문서는 규장각에 소장(奎 18605)되어 있는데, <전라도 능주 쌍봉사 교폐절목(全羅道綾州雙鳳寺矯弊節目)>이다.
雙鳳이라 표기했고, 문서의 첫줄에는 소칭 남주명승(素稱南州名勝)이라 했다. 그 명승(名勝) 쌍봉사! 저 문서의 행간에 나오는 여러 폐단들. 그래도 웃다 보면은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그 폐단들은 바로 잡힐거야.
그 승려 장인은, 저 문서 보다는 앞서 그 미소의 존상을 조상했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라 발원하면서 존상을 다듬했을 터. 명승(名勝) 쌍봉사의 명승(名僧) 장인의 미소! 오늘도 여전히 중생을 마주한다.

64개 조항중 서원 조항

첫면 - 능주 쌍봉사는 본디 남도의 명승(南州 名勝)이니...

전라도관찰사 수결

표지( <전라도 능주 쌍봉사 교폐절목(全羅道綾州雙鳳寺矯弊節目)>, 규장각 소장, 奎 18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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