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65 - 무등, 安心, 淸心 ; 동복 안심사 청심각기

향토학인 2017. 1. 4. 11:18

  인지의 즐거움065

무등산 불교유산 자료

 

무등, 安心, 淸心

1746년, 동복 안심사 청심각기

 

무등산. 이름만 들어도 뭔가 차분해진다. 차이를 두지 않는다. 등급이 없다. 거기에 더하여 또 하나의 이름이 눈에 띤다.

 

안심(安心)과 청심(淸心).

 

마음이 편안하려면 마음이 맑아야 한다.

아니, 마음이 맑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安心이니 淸心하고

淸心하니 安心이라

無等하고 無等하라.

 

安心寺 淸心閣記

 

동복사람 하영청의 글이다. 1746년 병인년(영조 22)

병암 하영청(屛巖 河永淸, 1697~1771)의 문집 병암유고 권1(경인문화사, 1977)에 실린 글이다. 병암의 증손이 호남실학자 규남 하백원(圭南 河百源, 1781~1844)이다.

 

숸살의 병암. 동복과 인근의 선비들과 함께 안심사에 오른다. 지금은 '절골'이라 부르며 절집 흔적마저 없는 곳. 그때는 근동에서는 알려진 수행처. 이번에 또 한 채를 짓는다고 기문을 청한데 따른 나들이. 건물 이름까지 명명해 주십사 넌즈시 기별이 온 것. 일전에 만나 선(禪)과 이(理)를 밤새 토론했던 안심사 노상인. 이제 만나면 못다 한 것 다 풀어야지.

 

안심사에 절문 밖의 돌무더기 골짝위에 올라서 둘러 본다. 호남의 진산 무등산의 사오부 능선. 신령하고 기이한 산. 그 남쪽의 세번째 줄기 안양령(安養嶺)의 동쪽 골에 있는 큰 가람. 안심사.

 

새로 지을 건물의 기문이지만 공간과 절집의 내력을 안 쓰자니 좀 그렇다. 그런데 예전 기록이나 자료는 거의 없다. 전하는 이야기, 들었던 말을 이제라도 옮겨 두자. 예전 어른들로부터 서로 전해오는. 고로상전(古老相傳)

 

안심사는 건원(乾元) 연간에 복천(福川) 옛 현 압곡(鴨谷)사람 진수(眞殊) 국사가 창건했다. 건원은 중국 당나라 연호. 758~760년 사이. 통일신라 경덕왕 17~19년. 복천은 동복의 이명. 이어 오성인(烏城人) 보조(普照)국사가 중수했다.

 

지난 경오년(1690년, 숙종 16) 안심사의 경해(敬海)스님이 불전을 중수했는데 그 상량문을 살펴보니 영락(永樂) 연간이 삼중창이었다. 영락은 중국 명나라 연호로 1403~1424년 사이. 조선 태종 3년~세종 6년 연간.

 

또 세월이 흘러가면서 낭료(廊寮)나 암당(庵堂)이 이루어지고 고치고 헤지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머물 곳이 마땅찮아 거처하는 승려나 유람 온 길손들이 개탄한지 오래.

 

드디어 병인년(1746, 영조23) 봄에 주지 철진(徹眞)과 화주 수인(守仁)이 3월 4일에 시작하여 5월 15일에 상량하였다. 그 다음날 고유를 하였으니 도료장(都料匠)은 순천 선암사승려 해문(海文)이다.

 

마침 이날 지나는데 여러 비구들이 기를 청해 청심각(淸心閣)이라 했다. 청심(淸心)이란 두 글자는 절이름에 딸려 모아졌다 할 것이니 마음을 편안히 하려면 당연히 마음이 먼저 깨끗해져야 하는 까닭이다. 불자에게는 묘각성불(妙覺成佛)을, 유가에게는 극념작성(克念作聖)을.

 

하영청의 청심각기를 서사(敍事)로 풀어 보았다. 안심사와 관련 해 눈여겨 볼게 또 있다.

 

1770년(경인, 영조 46, 乾隆 35)의 화엄경변상도. 당대 최고 걸작으로 친다. 화엄경의 7처 9회의 설법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그린 변상도. 현재는 순천 송광사에 봉안되어 있다. 국보 제314호. 이 불화가 바로 안심사에서 조성되었다. 복천(동복) 무등산 안심사 대법당에서 조성함과 동시에 승평부(현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 대화엄전으로 이안되었다. 말하자면 당초 조성한 목적이 송광사 봉안이었고 조성이후 그대로 송광사에 모셔져 있다는 것.

 

화엄경변상도의 화기(畵記)에 금어(金魚)는 화련(華蓮) 등 열세분. 안심사에 터를 잡은 불화 전문집단. 이들을 안심사 유파라 하면 어쩔까. 그리고 그들이 머문 곳은 변상도가 조성되기 25년전에 지은 청심각이 아니었을까.

 

안심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복현 불우조에 나온다. 1481년 간행, 1530년 신증본을 편찬한 당대 최고의  인문지리지. 그리고 달마대사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 1570년), 대방광원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修多羅了義經, 1575년) 등 16~17세기에 많은 목판본을 간행한다.

 

안심사터는 화순군 지원으로 동북아지석묘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2010.10.27~11.22. 현지조사는 7일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 578번지 절골 일원 2,000평방미터. 건물터 기단 3개소를 조사 했고 많은 도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시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주변 암자터 추정지도 5개소나 되었다. 2011년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안심사지와 암자 5개소를 조사한 바 있다.

 

앞으로 더 자세한 조사를 통하여 안심사 사적기로 집성해야 한다.


* 안심사 청심각기[1746년](安心寺清心閣記[丙寅])

호남에서 말하기를 “무등산은 구불구불 서려있고, 4~5고을을 웅거하고 있어 대개 신령스럽고 기이함이 많다”라고 한다. 무등산의 남쪽 세 번째 고개인 안양령(安養嶺) 동쪽 골짜기 일대에 절이 있는데 곧 안심사(安心寺)라고 한다. 옛날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당나라 건원(乾元) 연간에 복천(福川) 옛 현 압곡(鴨谷)사람 진수국(眞殊國師)가 처음 창건하였고, 오성(烏城) 사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지난 경오년(1690)에 안심사의 경혜(敬海) 스님이 불전을 중수하였고, 상량문을 고찰해보니 명나라 영락(永樂) 연간에 세 번째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낭료(廊寮)의 연혁과 암당(庵堂)이 이루어지고 무너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어 모두 다 기록하지 못하였다. 절 밖이나 시냇가 암석 위에 머물 곳이 있었으나 가시덤불로 가려져 보이지 않아 기거하는 스님과 유랑하는 객들이 개탄한지 오래되었다.

숭정 후 두 번째 벙인년(1746) 봄에 주지 철진(徹眞)과 화주(化主) 수인(守仁)이 경영하는데 3월 4일에 착수하고, 5월 15일에 상량하였으며 다음날 일을 마쳤으니 도료장(都料匠)은 순천 선암사(仙巖寺) 해문(海文) 스님이다.

나는 이날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스님들이 나에게 기문을 요청하였고, 그것의 이름을 '청 심각(淸心閣)'이라고 하였다. 대개 청심(淸心) 두 글자는 절 이름에 의해 붙여졌는데 그 마음을 편안히 하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그 마음이 맑아져야 하는 까닭인 것이다. 뒷날 이 안심사를 찾아 청심각에 오르는 사람은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며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해 봐야 한다. 마음을 맑고 편안하게 하여 충분히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한 터럭의 사욕을 끊어버리면 불교처럼 묘함을 깨달아 부처가 되고, 유교처럼 생각을 잘하여 성인이 될 테니 다른 것을 구하려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것은 서암사(瑞巖師)께서 날마다 성성옹(惺惺

翁)을 부른 까닭인데 스님들이 이러한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청심각 동쪽 10리쯤 되는 거리의 사촌(沙村) 졸헌(拙軒)에서 병든 자가 기록하였다.

* 출전 :  <병암유집>(국역), 2018, 옮긴이 이영숙·나상필, 규남박물관·전남대학교·호남문화사상연구원·화순군


안심사 청심각기




乾隆三十五年庚寅二月日敬畵/大華嚴會福川地無等山安心寺/大法堂彌陀會造成處同時/移安于昇平府曺溪山松廣寺/大華嚴殿卓上寶座□□/ 奉爲 / 主上殿下壽萬歲 / 王妃殿下壽齊年 / 世子邸下壽千秋* / 天下太平國民安 ..... / 緣化秩 ..... / 金魚 華蓮 朋察 安性 / 性平 性玉 德箴 / 六性 在禪 永宜 / 元慧 雪徽 寬如 / 峻閑 ... / 時住持比丘致玉 .... /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복천(동복) 무등산 안심사 조성 화엄경변상도 화기(부분)(현 순천 송광사, 국보 제3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