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39 - 창파에 저녁바람 급해지리니, 백호 임제

향토학인 2026. 4. 1. 02:11

인지의 즐거움439

 

창파에 저녁바람 급해지리니, 백호 임제

-영산강 유역의 누정문화와 세거사족의 풍류3-

 

김희태

 

백호 임제(白湖 林悌, 1549~1587)조선 명종 때의 문인으로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 벽산(碧山), 소치(嘯痴), 풍강(楓江), 겸재(謙齋), 본관은 나주이다. 훈련원판관을 지낸 임진(林晉)의 장남이며 병마절도사를 지낸 임붕(林鵬)의 손자로, 어렸을 때부터 문장을 배웠다. 대곡(大谷) 성운(成運)으로부터 문장과 시를 배웠다. 1577(선조 10) 문과 급제한 뒤 북도병마사, 예조정랑, 홍문관 지제교를 지냈다.

 

당시 선비들이 부조리와 당쟁만 일삼는 것을 개탄하고,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비분강개 속에 풍류생활과 문학활동을 했다. 당대 최고의 풍류남아로 알려졌으며 여성과 관련된 시조, 자연에 대한 시 이외에도 우국충절을 노래한 시조와 한시(700여수), 그리고 수성지(愁成誌),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같은 한문소설 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나주 회진 일원에는 임백호문학관을 비롯하여 나주임씨 일가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영모정(永慕亭, 임제 조부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 1486-1553) 소요처, 전라남도 기념물 112)

-나주임씨대종가(다시면 회진리 242),

 

-나주임씨 부조묘(不祧廟, 임붕 부친 참판공 임평(林枰, 1462-1522) 사당, 1565년 건립, 1654년 중수, 1986년 확장 중건),

-창계서원(滄溪書院, 창계 임영(林泳, 1649-1696) 배향, 1711년 창건, 2000년 중건, 다시면 가운리 141),

 

-매계영당(梅溪影堂, 임영 동생 매계 임정(林淨, 1654~1710) 영당),

-영성각(永成閣, 임봉(), 임석주(錫柱), 임귀연(貴椽), 임평(), 임붕(), 임안(), 임개(), 임서(), 임제() 선대 제실, 1907년 이건, 1963 중수),

 

-임백호임제선생기념비(白湖林悌先生紀念碑, 노상 이은상 글, 1979),

-백호임선생 임종계자 물곡사비(白湖林先生 臨終誡子 勿哭辭 碑, 1992, “사해제국(四海諸國)이 다 황제라 일컫는데 유독 조선만이 중국을 섬기고 있으니 내가 살아 있다고 어찌할 것이면 내가 죽는다고 어찌 하겠느냐 곡을 하지 말라”),

 

-백호 임제선생 기념관(1992)

-백호 임제 묘소(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자락)

 

-백호공 묘갈(墓碣, 외손자 미수 허목(1595-1682) , 1989)

-백호 임공 묘비(禮曺正朗 知製敎白湖林公之墓 淑人慶州金氏祔/崇禎紀元后四辛丑[1841, 헌종 7]四月 日立 八代孫生員載洙書)

-백호 임제선생 시비(詩碑, 1987)

 

임제의 시 가운데 앙암의 배중에서 지은 시가 있다. 언구 김광운에게 준 시이다. 영산강 유역의 수상 공간을 배경으로, 강위에서 전개되는 호방한 풍류와 자유로운 정신을 역동적으로 펼쳐 보인 작품이다.

 

앙암 주중에서 취하여 김광운 언구에게 주다[仰巖舟中醉贈金光運彦久]

 

봄물은 푸르러 끝이 없는데

봄바람 불어 산꽃도 만발이라.

난주(蘭舟)에 향긋한 술 실었으니

장사(壯士) 얼굴 활짝 펴지네.

 

방주(芳洲) 연 캐는 노래 들리고

옛 나루엔 사양(斜陽)이 이울어가네.

밀물 따라 노 저어가며

취한 채 춤을 추니 천지가 넓다.

 

원앙새 놀라 푸드득

쌍쌍이 딴 여울로 날아가누나.

천길 우뚝 솟은 푸른 저 벼랑

만년토록 거친 물결 되돌렸거든.

 

창파에 저녁바람 급해지리니

어둔 빛을 타고 돌아가야지.

좋은 때라 밤조차 사랑스러워

촛불 켜고 주란(朱欄)에 기대 앉았네.

 

春水碧無際春風花滿山

蘭舟載美酒壯士開歡顔

芳洲采菱曲古渡斜陽殘

隨潮盪槳去醉舞天地寬

驚起䲶鴦鳥雙雙過別灘

蒼壁一千丈萬古廻狂瀾

滄波夕風急且可乘暝還

良辰可憐夜秉燭憑朱欄(林白湖集1 오언장편)

 

끝없이 펼쳐진 봄 물결과 꽃 핀 산은 영산강 유역의 생동하는 계절감을 보여주고, 배를 타고 술을 나누며 노를 젓는 장면은 강이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라 유람과 교유의 생활 공간이었음을 드러낸다. 또한 물가의 노래, 저무는 나루, 밀물과 바람 등은 영산강의 시간성과 흐름을 형상화한다. 나아가 절벽과 격류의 이미지까지 결합되면서, 이 강은 한가로운 풍류의 장소이자 장대한 자연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결국 영산강은 임백호에게 자유와 해방,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체험의 중심 무대로 기능한다.

 

김광운은 유생 양산숙(梁山璹)과 함께 당시의 재신(宰臣)들을 지척(指斥)한 소를 올렸다는 1589년 선조실록 기사가 있다.[선조 22년 기축(1589) 12 15(무자)]

 

'앙암(仰巖)' '앙암바위'라 부르는데, 영산강 옆에 선 바위로 백호 임제의 고향마을인 회진의 건너편에 있다. 그 위로 창랑정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5권 나주목 산천조에 앙암(仰巖)은 금강(錦江) 남안에 있다. 혹 노자암(鸕鶿巖)이라고도 한다. 그 밑에는 물이 깊어 헤아릴 수 없는데 속설에 용이 있다고 한다. 바위 밑에 구멍이 있는데 조수가 밀려 갔을 때는 보인다. 전설에 명() 나라 황엄(黃儼)이 제주(濟州)로 갈 때 압승(壓勝)한 곳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