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91
우뚝솟은 봉우리 오르니풍진세상 멀어지려 하네, 강진 합장암[合掌庵址]
김희태
합장암(合掌庵)은 강진군 도암면 석문산 중턱에 합장하고 있는 모습의 바위에서 유래된다. 멀리 강진만을 바라볼 수 있고 도암뜰, 덕룡산 소석문이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처럼 경관이 뛰어나 ‘다산12경’, '도암10경'에 든다. 백련사 소속 암자라고 전해진다.
합장암은 백광훈(1537~1582), 김수항(1629~1689)과 김창협(1651~1708)·김창흡(1653~1722) 부자, 윤이후(1636~1699), 정약용(1762~1836), 이시헌(1803~1860), 오한규, 윤정기(1814~1879) 등 문인들이 찾았던 명승지이다. 다산 정약용은 제자들과 들러 「합장암에서 노닐며[游合掌巖]」 라는 시를 남긴다.
합장암의 창건시기에 대한 기록은 아직 찾아지지 않는다. 1668년과 1698년 중창되었던 것은 자료가 있다. 아마도 1900년대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윤이후(尹爾厚, 1636~1699) 『지암일기(支庵日記)』에 두 번에 걸쳐 일행과 함께 합장암을 들른 기록이 있다. 1698년 9월 3일에는 아들인 윤흥서, 윤정미, 1699년 윤7월 19일에는 안형상, 최시필과 함께였다. 윤이후는 고산 윤선도(1587~1671) 손자, 공재 윤두서(1668~1715) 생부이다. 『지암일기』는 윤이후가 1692년(숙종 18) 1월 1일부터 1699년(숙조 25) 9월 9일까지 기록한 일기이다.
윤이후는 합장암에 이르는 지형 지세와 감흥을 세세히 기록하며 관찰사 유득일(兪得一, 1650~1712)이 합장암을 방문하고자 하였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유득일은 1698년 4월~1699년 6월 사이 전라도관찰사로 재임한다.
유득일 관찰사는 강진 합장암의 명성에 대해 들었던지 강진현감에게 '내가 순시할 때 합장암을 한번 구경해야겠으니 깨끗이 손보고 기다리라'라고 했다. 강진현감은 그 말을 듣고 수리하겠다고 보고하면서 송첩과 일꾼들의 식량을 청하고는 '무익한 일을 벌여 유익함을 해친다'라는 뜻으로 말했다. 당시 강진현감은 송만으로 1698년 2월~11월 사이 재임한다.
유관찰사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책망을 했는데 당초 했던 말의 본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 화를 낸 것이다. 관찰사의 처음 의도는 단지 조금 손보고 청소하라는 것일 뿐이었는데, 현감이 겁을 집어먹고 많은 재물과 인력을 들여 건물을 중창한 것이다.
강진의 관리들은 관찰사의 얘기를 듣고 많은 인력과 재물을 들여 합장암을 보수하게 된다. 이로 인한 여러 번거로움과 원망이 있었던지 유득일은 합장암의 주변만 수리하라는 자신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과하게 준비한 관리들을 책망한다.
윤이후 역시 이를 기록하면서 번거롭고 과한 역사를 벌인 유득일을 책망하고 있는데 관찰사의 지시를 따르고자 했던 당시 관리들의 모습과 이 같은 역사로 인해 민폐가 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이후는 『지암일기』에서 합장암이 새롭게 중창되었지만 관찰사는 한 번도 와서 보지 않았고 단지 한가한 사람들의 유람처가 되었을 뿐이니 이 역시 가소롭다고 말한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다산초당 주변의 계절에 따른 경치를 꼽고 놀이의 방식까지 기록한 「다산12경서」의 제11경에 ‘합장암상설’(合掌菴賞雪)이 있다. 합장암에서 눈을 구경하는 것을 꼽은 것이다.
합장암은 다산초당과 가까워 진달래가 피면 제자들과 덕룡산 용혈암으로 유산을 가곤했는데, 대석문에서 제자 윤서유 일행을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합장암에도 들렀다.
다산초당은 국가지정 문화유산 사적이고 지정 명칭은 ‘강진 정약용유적’이다. 정다산의 「합장암에서 노닐며[游合掌巖]」 라는 시는 시 『여유당전서 보유』(桐園手鈔)에 실려 있다.[엄찬영 국역]
합장암에서 노닐다 <游合掌巖>
우뚝 솟은 봉우리 모여 연이어진 산은
비단 바위 찢어진 듯 딱 벌어져 있네
옥승은 난간 아래를 그물질하고
해타는 푸른 하늘을 업신여기네
구름사다리 연약해 끊어지려 하니
아득한 풍진 세상과 멀어지려 하네
무슨 이유로 숨어 살며
아름다운 종적을 감출까
連峰攅岧嶤(연봉찬초요) 呀開裂錦石(하개열금석)
玉繩羅檻底(옥승라함저) 咳唾凌空碧(해타능공벽)
雲梯裊欲斷(운제뇨욕단) 夐與坌埃隔(형여분애격)
何由託冥棲(하유탁명서) 窈窕晦縱跡(요조회종적)
3연의 옥승(玉繩)은 새벽이 오면 빨리 끊어져 버리는 별 이름이다. 두보의 시에 나온다. 합장암의 저 우뚝한 산봉우리에서 바다와 들판을 조망하며 세상사를 그물질하듯 소회를 말한듯하다.
4연의 해타(咳唾)는 《장자》 〈추수(秋水)〉의 “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오는 침방울〔咳唾〕들을 보면 큰 것은 옥구슬 같고 작은 것은 안개 같다.〔噴則大者如珠, 小者如霧.〕”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타인의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뜻하는 말로 쓰게 되었다 한다. 이백(李白)의 시에도 그런 시어가 있다. 합장암을 찾은 뭇 선배들의 시문을 보고나 듣고서 한 표현인 듯 싶다.
이어 구름사다리 끊어지려 한다고 하였다. 시어 ‘운제(雲梯, 구름사다리)’는 신선이 승천할 때에 타고 오르는 구름사다리를 뜻한다고 한다. 이 시에서는 아마도 벼슬길에 오르다가 막힌 자신의 처지를 말한 것 같다. ‘연약해 끊어지려 한다’ 했는데, 아직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 인연은 ‘해배’를 뜻하는게 아닐까.
그같은 세상사에 대한 소회는 얼키 설키지만, 합장암에 올라서니 먼지 자욱한 세상과는 멀어지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숨어 살 필요도 종적을 감출 필요도 없지 않을까. 우뚝솟은 봉우리에 오르니 구름사다리에 타고 오른 듯 달관의 눈으로 저 아래를 굽어 보게 하는 것, 그것이 ‘합장’일 듯 싶다.


참고
강진문화원, <강진의 사찰이야기>, 2024
정윤섭, 기이한 자연암이 만든 수도처 합장암, 오마이뉴스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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