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74 - 53명이 출발한 대동문화연구회 첫답사 회고, 1995.06.06.

향토학인 2024. 11. 22. 10:54

인지의 즐거움374

 
53명이 출발한 대동문화연구회 첫답사 회고, 1995.06.06.
-대동문화 30년 자료를 찾습니다. 사진 한 장, 기억 한 조각...-

 

김희태

30년의 시절 인연
 
1995년 2월인가. 전화 한통을 받았다. 조심스러운 말투. 한학하시는 어르신이 소개해서 연락했노라고. 몇마디 나누다가 만났다.
 
지금도 살고 있는 봉선동 아파트. 그 무렵 내 아파트는 향토사 사랑방이었다. 술도 먹던 때라 한잔하고 선후배 동지들과 어울리곤 했다. 사방 둘러 책인지라 앉을데도 제대로 없었지만, 문화재와 향토사 이야기로 하루가 멀다하고 밤을 지새고....
 
전화를 걸고 봉선동으로 온 이는 조상열회장. 소개를 했던 어르신은 장성의 한학자 산암 변시연선생님. 한국고문연구회 회장.
 
조상열은 한문을 공부하고 가르치던 터라 산암선생님을 자주 뵈었고, 김희태는 역사 공부를 했고 전남도청에서 문화재 일을 보고 있어서 문화재위원이셨던 산암선생님께 공부도 했었던 것.
 
“두 사람 알고 지내면 좋을 거여”
“좋은 일도 많이하면 더 좋고...”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소개하셨다는 것. 조회장은 사람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친해지는 데는 타고 난 터라, 불쑥 연락했던 것. 만나서 이야기 하다보니 동갑 친구.
 
그런데 의아한게 처음 전화할 때 너무 조심스러움을 느껴서 되물었더니, 산암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여러 얘기를 하시면서 칭찬도 곁들었기에, 그 어르신이 저리 말씀하시면 나이가 꽤 될 거라 여겼다는 것.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산암 어른신의 깊은 뜻이리라. 이런 인연으로 대동문화연구회 창립 현판식에 한복차림의 산암선생님이 오셨던 것.
 

대동문화연구회 현판식(1995.06.23.) 산암 변시연님(한국고문연구회회장) 김성기님(조선대교수) 안동주님(호남대교수)(향우) 조상열회장(좌) 김상로님(한문학원장) 김관균님(어문교육회 이사)
 
 
조회장이 오면서 매취순인가 선물을 들고 왔는데 그걸 홀짝이며 향토사 문화재 문화 역사 문학 고전 한문 등 여러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 여러 얘기 가운데 관심있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고 정례화 하자. 술잔도 좋고 밥 한끼도 좋지만, 현장을 돌아보자. 늘상 다니는 길이지만, 찾아보면 돌아보면 들어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보이고 그게 문화가 역사가 되고 문화재가 된다.
 
4월에 모임 창립에 관한 논의를 했고 5월에 창립을 했고 6월 6일에 첫 행사로 제1회 답사를 했다. 대동문화연구회 창립 기념 제1차 문화유적답사.
 
두려움과 설레임
 
어떤 일이 건 누구를 만나건 두 가지, 어쩌면 서로 이질적인 게 따라 다닌다. 두려움과 설레임이다. 먼저, 설레임. 누구를 만날 때, 새로운 현장 문화재를 볼 때, 기록이나 자료를 찾거나 볼 때, 어제 갔던 길을 오늘 또 가더라도 설레인다. 새로 만나는 거, 알아 간다는 거, 또 다시 느끼고 보인다는 거 등등.
 
다음, 두려움. 만남이 누가되지 않을까. 그 기록이나 자료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말 한마디 글 한줄이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그렇더라도 두려움을 염려하면서도 설레임을 안고 길을 나선다.
 
담양 송강정-면앙정-승주[순천] 선암사-낙안읍성-고인돌공원-주암호-화순 동복-담양 소쇄원-식영정-광주호-충장사. 첫번째 답사 때 찾아보려 계획했던 곳이다. 45인승 버스로 8시 30분 출발했는데 사전 연락한 분들과 함께 온 분들이 있어 통로에 걸터 앉았다. 모두 53명.
 
당시 첫답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메모를 했던 것 같은데, 찾아 봐야 겠다. 헌데 다행인지, 컴퓨터를 뒤적이다 보니 답사를 다녀와서 몇줄 정리한 자료가 있다. 호남대 안동주 교수님, 조선대 김성기교수님, 동신대 최한선교수님이 해설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특별찬조라 적어 놓았는데, 김관균님(“정의가 나래 핀 대동을 만드세” 휘호), 정수범 학습위원장님, 호남대 임미희님, 이도연(이성숙) 보람한문학원장님, 신미덕 운암 천은한문학원장님, 정찬용 쌍촌 해뜰한문학원장님이 보인다.
 
답사를 할 때면 나름대로 정해 놓은 바가 있었다. 그 하나는, 사전에 준비해 답사자료집을 만들어 나누어 본다. 무언간 손에 드는 것이 있어야 보아지고, 나중에 들쳐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그 당시의 기록물로 남는다. 다른 하나는, 답사 대상은 물론 오가는 길의 역사와 풍물도 함께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오롯하게 답사 자체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제1차 文化遺蹟踏査》로 제한 그 첫 자료집(55쪽)이 오늘날 143호까지 낸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의 태동이다. 나중 일이지만 그 첫 답사집을 《대동문화》 창간 제1호로 명명하였다.
 

대동문화연구회 창립 기념 제1차 문화유적답사(1995.06.06.) 자료집 표지/ 첫 답사에 53명이 함께했고, 전국 유수의 문화잡지가 된 격월간 《대동문화》의 모태이다
 

제1호에 실린 대동문화연구회 창립취지, 목적, 고문, 자문, 운영 개요

 
 
그때는 새로 글로 정리하여 준비할 틈이 없었던터라 문화재도록이나 향토지, 논문, 학술지 등에서 관련 부분을 복사하여 사방을 칼질하여 편집안에 맞추어 이를 인쇄하는 재복제 방식이었다. 여러 자료를 이고 지고 출판사로 갔으니 보따리 장사라 할까. 밤새 했지만 신이 나서 흥거리며 했던 것 같다. 그게 젊음이었고, 새로운 사람과 또 다른 관점에서 현장으로 다시 나선다는 것, 그 설레임 때문이었으리라. 그 젊음은 우리의 30대이던 시절.
 
두번째 말한 해설. 무언가 느껴야 하고 기억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강박관념일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으로 한다. 사전답사를 하고, 자료를 고르고 자료집을 만들면서 훑어 보고, 전날은 혼자 되새겨 보고, 이동하는 차중에서 개략 설명을 하고, 도착해서 해설을 하고, 때로는 질문도 받기도 하고 돌아오는 차속에서 복기. 내 자신도 공부가 된다.
 
53명의 첫답사
 
첫답사 때는 면앙정 식영정 소쇄원은 사전 답사도 했다. 면앙정과 식영정은 올라가는 계단이 몇개인가도 헤아려 보기도 했다. 면앙정 계단은 169개이던가. 해당 정자의 연혁과는 무관할지라도, 누군가가 묻는다면? 사소한 것도 관심 가져 보자는 생각에서이다.
 
버스 안에서의 설명은 일종의 관행의 타파이다. 세칭 관광버스는 노래시키고 술잔 돌리는 게 예사였다. 그 관광버스는 좋은 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타자마자 저런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런데 그 버스 안에서 차분히 하나씩 설명을 하니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다. 어제도 지난 길, 몇번이고 바라 본 저 산인데, 이야기가 있다. 땅이름의 유래, 설화, 사람이 드러난다. 역사를 돌아보고 문화를 이해한다.
 
그래도 두려움은 떨칠 수 없었다. 제대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참여한 분들 가운데 저명한 한학자님, 교수님, 향토사가님들도 계시는데 그분들 앞에서 뭐라 말할수 있을까. 잘못 말하지 않았을까. 실수하지 않을까. 넘치거나 치우치면 안되는데...
 
그래도 이야기는 해주어야 한다. 엄마 손잡고 온 학생도 있고 대학 초년생도 있다. 책으로만 고전을 대하던 한문학원 선생님들과 출판 관계인. 예비군 중대장. 나이는 물론 직업이나 취미, 관심사 등 서로가 다르고 다양한 층위을 가진 모임. 답사가 끝나면 바로 흩어지겠지만, 답사 중에 느낀 흥미를 발판삼아 다음 답사 때 올 수 있도록 동기 부여. 말하자면 지속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 오는 버스. 이제 조상열 회장 차례이다. 타고난 솜씨로 휘어 잡는다. 답사 문화재를 포함하여 여러가지 역사문화 자료와 고전을 엮어 얘기를 풀어 나가면서 삼행시 풀이 내기도 유도한다. 언제 마련했는지 경품도 준다. 유명 서화가의 작품도 있다. 답사객들도 솔깃하면서 집중한다. 한사람 한사람 한마디씩 말하라 한다. 참여하신 분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곁들이다. 왼종일 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해 지칠만도 한데 말 그대로 초롱초롱하다. 와우! 답사의 흥미를 저런 방식으로 느끼게 하다니. 몇수를 배운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조회장을 비롯한 참여하신 분들이 가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는 즐거운 여행길이었다는 것. 거기에 내가 배운 거는, 조회장의 당일의 주제와 현장 고전을 섞어분위기를 잡아가면서 개인 개인 참여자를 배려하는 것. 서로의 장점이 문화유적 현장에서 만났다. 요즘말로 ‘윈윈’.
 
그 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다음 답사 때는 또 올 거 같았다. 두려움도 따랐지만 설레임 가득했던 첫 답사. 그 답사는 이어져 1천회가 넘은지 오래이고 국내외 어느 곳이던 발길이 닿고 있다. 저 답사자료집이 창간호가 된 《대동문화》는 최고 문화잡지로 공인된지 오래이다. 대동문화재단, 이제 30년. 전국 유수의 민간 문화단체로 우뚝 섰다. 많은 분들이 너나없이 소리없이 참여하고 후원해 준 덕이다.
 
이제 또 다른 설레임과 두려움을 안고 출발했다. 대동문화 30년사 발간. 한 세대 3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건 분명 설레임이다. 제대로 정리가 될 수 있을까. 당사자라 할 수 있는데 다른 이들은 이를 어찌 바라볼까. 티가 쌓여 흠으로만 남지 않을까. 두려움이다.
 
그래도 힘과 지혜가 모아질 수 있으리라 여긴다. 사진 한장, 기억 한 조각... 제보해 주시기를 기대한다.(2024.09.11.)
 
*누구에게든 어느 것이든 제보해 주시면 좋습니다. 특히 초창기는 필름 카메라 시절이라 현장 사진이 있으면 제공해 주시면 디지털 작업을 해드리겠습니다. 첫답사(1995.06.06)에 참여하신 53명의 명단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제보를 기대합니다.
 
*제보 접수인 : 조상열 김희태 백승현 허경화 이동호 유서영
 

제2차 문화답사(국토순례, 역사의 숨결따라-강진, 해남, 영암, 나주-.1995.10.03.) 자료집 표지
대동문화 145호
대동문화 답사(서울 궁궐 일원, 20120225)
대동문화 20주년 기념 전시(201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