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356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 등재 관련 제언
-국제 학술대회(2024.06.21.) 토론문-
김희태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 등재 국제학술대회> 한마당을 마련해 주신 관련 기관단체와 참여해 주신 학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토론자로 참여하게 되어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전남도청 재직시 ‘운주사 석불석탑군’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관련 업무를 맡았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했던 일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야 될지 고민입니다.
화순 운주사 불교 유적군에 대한 세계유산 관련 논의는 1999년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청 제공자료와 필자가 보관한 자료 등에 따라 정리해 봅니다. 당시 화순 고인돌유적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중이었고, 전남에 소재한 문화재 가운데 세계유산(잠정목록)으로 추진할만한 대상을 선별하여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 자문심의(1999.10.26)를 거친 바 있습니다.
자연유산은 공룡화석지대(해남, 보성, 화순), 진도 바닷길, 문화유산은 화순 운주사,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복합유산은 지리산 화엄사,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대둔산 대흥사, 월출산 구림마을 등 8개소입니다.
세계유산 제도에 대한 이해가 초기 단계였고 국제 동향도 어두웠던 때이기는 하지만,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자원을 세계유산의 눈으로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후 공룡화석지, 낙인읍성, 운주사 석불석탑군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습니다. 선암사와 대흥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개소에 들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화순 운주사(운주사지)는 1999년 당시까지 조사되고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 양식에 따라 작성한 전라남도문화재위원회 회의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자료의 첫줄은 “운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절로 천불과 천탑, 그리고 쌍와불과 석조불감이 구성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불교문화 유적지이다.”로 시작하였고, 마지막 줄은 “불교문화와 불교사상(천불신앙, 미륵신앙, 약사신앙 등) 그리고 풍수지리사상과 천문학 등 종합적인 문화유산의 보고이다.”로 맺었습니다.
2005년에는 전남의 불교유적에 대하여 ‘지리산 고대사찰군’과 ‘남도산사 불교유산군’ 등 연속유산의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됩니다. 화순 운주사(석불석탑군)는 남도산사 불교유산군에 포함되어 세계유산잠정목록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하였습니다.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두륜산 대흥사, 월출산 무위사 도갑사, 백암산 백양사, 운주사 등 7개 사찰을 산사 개념의 연속유산으로 추진하였습니다. 2006년에 문화재청과 이코모스한국위원회에서 평가를 한바 있습니다. ‘인색’한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연속유산 개념의 추진은 또 다른 진전이라 하겠습니다.
2009년에는 운주사 학술조사를 꾸준하게 추진해 왔던 전남대 박물관에서 『운주사 자료집성』(연구책임 황호균, 전남대학교박물관·화순군, 2009)을 냈습니다. 2011년부터 몇차례 논의가 진행되다가 『화순 운주사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전문가 워크숍』(화순군, 2012.12.20.), 『운주사의 세계유산적 가치 세미나』(화순군·한국전통문화대학교, 2013.11.01.) 등과 함께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를 작성하여 2014년에 문화재청에 제출하였고 2015년 3월 문화재위원회(세계유산분과)에서 잠정목록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017년 3월에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유산명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찾기 힘든 특이한 공간 조성”이란 특징을 내세워 우리나라 16번째 잠정목록이 되었습니다. 잠정목록 신청서의 내용을 요약해 봅니다.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에는 10~16세기말까지 조성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석불상과 석탑 그리고 별자리나 칠성신앙과 관련되는 칠성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적 조성과 형태의 다양성, 조형성은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이다. 또한, 운주사는 다른 불교사찰과 달리 불교적 요소와 외에도 밀교, 도교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사찰 경내에 불상과 불탑의 석재를 채굴했던 채석장과 석재 운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도 매우 특이하다.”
다소 길게 추진과정을 정리해 본 것은, 기록자료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정리함으로써 앞으로의 추진 방향에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을듯해서입니다. 우선은 제도에 대한 이해와 지속성 있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운주사 조사는 1980년에 발굴조사가 시작되었고 여러 연구 성과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개가 그렇듯이 우리의 중근세 유적은 기록이나 자료, 사람들과 유적 현장의 연결성이 부족한 측면이 더 많습니다. 1999년과 2005년 사례는 기존의 조사 연구 성과를 기초로 하여 정리하는 정도로 추진하였습니다. 세계유산 제도에 대한 이해와 함께 ‘세계유산 관련 연구’가 지속되어야 하는데, 국내의 다양한 연구자료를 ‘어울어’ 놓은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2012년 이후에는 세계유산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잠정목록 등재 이후 매년 주제를 정하여 세계유관 관련된 조사 연구를 했더라면 더 좋은 논의들이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번의 논의 자리도 7년만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제도는 국가간 협약으로 체결된 법격을 지니고 있어 어느 유산이건 어느 나라이건 ‘평등’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지만, 서구인들이 만들고 그 기준에 의해서 운용되어 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제도에 대한 이해, 국제 동향에 대한 정보도 지속성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가지 검토해 볼 것은, 우선 유산 명칭에 대한 것입니다. 논의될 수 있는 유산명은, 운주사, 운주사지, 운주사 석불석탑군(잠정목록등재 유산명), 운주사 불교유산군 등입니다. 국가지정문화유산의 명칭 부여기준에 따르면 소재 행정 지명을 넣도록 되어 있어 ‘화순’이 이에 포함될 것 입니다. 그런데 운주사 조성의 주된 시기인 고려시대에는 운주사 소재 지역은 능성(능주)현에 속했던 지역입니다.
기록상의 사찰 명이나 현재 운용되는 사찰명은 ‘운주사’입니다.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명칭은 ‘운주사지’입니다. 기록이나 현행 사찰과 연계하여 ‘운주사’로 해야 할지, 지정문화유산으로서의 법격을 지니고 유적 자체를 뜻하는 ‘운주사지’로 설정해야 할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국가지정문화유산도 사적은 ‘화순 운주사지’, 보물은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으로 ‘운주사지’, ‘운주사’ 두가지 고유명사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불석탑군’이 대표 유산이지만 칠성석의 설명도 들어가고 있어,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석불석탑군’과 다양성과 독특성 등을 내포하고 있는 ‘불교유산군’으로 할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구역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운주사지 국가지정문화유산 구역은 490,831㎡입니다. 세계유산 구역을 설정할 경우 일반적인 경우는 이 문화유산구역[지정구역]을 유산구역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완충구역은 해당 문화유산의 역사문화환경보호지역인 유산구역[지정구역] 경계선 외곽 500m까지의 구역 가운데 산 능선 안쪽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태산-화악산-해망산과 도암면, 도곡면, 춘양면 등 운주사와 연관되는 산세와 지세, 경관, 설화, 사상 등과 관련되는 지역임을 고려한다면 유산구역이나 완충구역이 그만큼 달라질[넓어질] 것입니다. 장시(場市)도 구역 설정의 한 지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고려할 것은, 앞에서 살핀 명칭과 관련해서입니다. 기록이나 자료상으로 나타나는 ‘운주사’로 한다면 유산구역과 완충구역은 그만큼 넓게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 관련 법규에 따른 구역을 추가로 지정해야 할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산지역 자체를 의미하는 ‘운주사지’로 할 경우에는 현행 법령의 적용을 받는 지정구역(유산구역)-역사문화환경보호지역(완충구역)으로 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유산 등재 요건인 완전성과도 연계되는 지점입니다.
또 하나는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세계유산 등재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의 설정과 인식이 중요할 것입니다, 문화유산은 여섯 개 조항인데, 어느 하나 이상의 조항에 해당하면 됩니다. ⅰ)(걸작), ⅱ)(교류), ⅲ)(증거), ⅳ)(유형), ⅴ)(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 ⅵ)(연계)입니다.
잠정목록 신청 추진을 논의할 때에는 여러 항목을 설정하여 제시하고, 정식 신청서를 작성할 때에는 해당 조항을 압축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당 국가에서 연구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신청하여도 실사 평가를 통하여 항목이 한정되거나 신청서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항목으로 권고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갯벌의 경우에도 국내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항목 설정과 국제적인 시각에서 차이가 있어 한 개의 조항으로만 한정 권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조사 연구의 지속성과 제도의 이해, 국제 동향의 분석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2017)에는 ⅰ)(걸작), ⅲ)(증거), ⅳ)(유형) 세항목을 설정하였습니다. 인류의 중요한 가치의 교류 측면에서 ⅱ)(교류), 사상, 신앙, 예술ㆍ문학 작품과 직접적으로 또는 형태적으로 연계되는 측면에서 ⅵ)(연계)도 검토해 볼만합니다.
보존관리에 대한 논의와 정리도 중요합니다. 세계유산 신청서의 보존관리 계획은 일반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방향과 제안을 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관리해 왔는가, 그 과정에서 사찰, 승려, 신도, 주민, 관청, 단체 등 운주사를 살피고 보고 지키고 가꾸어 온 각자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 사진에는 ‘석불 석탑군’만 남아 있는 ‘유적[유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서 현재의 ‘절집[사찰] 운주사’와 ‘유산 운주사지’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설명이나 의미상으로는 분리할 수 있지만, ‘시간-인간-공간’의 통시적 공간적 개념에서 본다면 ‘땔래야 땔 수 없는’ 연결성이 있습니다.
보통 세계유산 등재 요건에서 진정성을 말 할 때 우리의 문화유산 관련 법규에 선언적으로 규정된 ‘원형보존’을 들곤 합니다. 그런데 ‘유산 운주사지’의 원형 보존-세계유산 진정성은 ‘사찰-운주사’와 관련시켜 보면, 기록이나 자료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찰-운주사’의 현재의 전각과 구조·시설물이 ‘유산-운주사지’의 보존관리를 위에 어떻게 구상되고 실행되었는가에 대한 자료의 수집 정리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토지의 변동이나 소유주나 관리자의 변동 등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찰-운주사’에 들어선 기록도 하나씩 살펴보는 것도 관리와 관련하여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운주사 종무소 입구 기둥에 “千佛來會雲中住 千塔涌出徧滿山[천불이 내회하여 구름중에 머물고 천탑이 용출하여 온산에 가득하네]”이라는 주련이 있습니다. 이 주련의 의미와 언제 누가 관련되어 제작하고 걸었가를 살피려는 논의[향토사학자 학고 김정호선생님 교시]를 최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주련에 ‘천불(千佛)’과 ‘천탑(千塔)’이 나오는데 ‘사찰-운주사’건, ‘유산-운주사지’이건 서로 연관성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유산 제도의 최근 동향과 관련하여 한가지 검토할 필요도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서 공모하는 「등재신청 사전자문(Upstream Process)」제도입니다.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 제71항, 제122항에 따라 하는데, 2015년에 공식적인 절차로 추가한 것입니다.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은 잠정목록 개발 등 등재 추진 단계에서 세계유산센터와 자문기구에 사전자문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자문은 세계유산 등재신청과 관련하여 신청서 제출 전에 진행하는 자문·협의·분석 등 자문 기구(ICOMOS, IUCN)의 자문 일체를 말합니다. 사전 대비 없이 세계유산 평가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는 것을 예방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등재신청 과정에서 가장 이른 단계, 즉 당사국이 잠정목록을 준비하거나 수정하는 시점에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등재 잠재력이 있는 미래의 유산(잠정목록 기 등록 유산)도 대상으로 합니다.
세계유산협약 가입국을 대상으로 매년 2회(3.31/10.31) 접수하며, 등재신청 우선순위 규정에 따라 대상 유산을 선정하여 진행합니다. 이는 후발 국가를 위해 마련된 제도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019~2021년 사이 <충남 내포 권역의 천주교 유적군>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 등재 국제 학술대회(2024.06.20.~21.) 토론문. 당시 발표토론 문집에는 요약본이 실렸다.
*화순 운주사의 옛 사진 가운데 날짜로 보면 오늘(7월 21일) 찍은 사진이 있다. 1914년 7월 21일이니 110년 전이다. 사진에 촬영일시와 장소를 기록해 두었는데 「三 七 卄一 全南綾州 多塔峰」이다. 三은 대정(大正) 3년, 七은 7월, 卄一은 21일을 뜻한다. 「三 七 卄一 全南綾州 多宝塔全景」 , 「三 七 卄一 全南綾州 多宝塔佛像」이라 기록한 곳도 있다. 이 사진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사진으로 웹사이트에 공개되고 있다. 128점의 사진 목록은 『운주사 자료집성』(2009), 『화순 운주사-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옛사진 모음-』(2016)에 이미 소개되었다. 오래전부터 옛사진과 지금의 현장을 비교해 보려 했다. 최근 2회의 학술대회를 하면서 7월 21일까지는 비교사진을 정리하려니 했는데 마무리를 못했다. 근간 운주사 나들이를 또 해야겠다.
*참고자료
전라남도, 1999.10.26.,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 회의 자료』(유인물)
전남대학교박물관·화순군, 2009., 『운주사 자료집성』(책임연구원 황호균)
국립김해박물관, 2016., 『석기시대』-鳥居龍藏 조사 유리건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8집,
화순군, 2016., 『화순 운주사-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옛사진 모음-』(기획·자료조사·편집 심홍섭)
문화재청, 2019.,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2020.07.30., 『2020년도 문화재위원회 제4차 세계유산분과 위원회 회의록』
전라남도·화순군, 2024.05.31.,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적 가치규명을 위한 학술대회』.
오호석, 2024.05.31., 「운주사 석탑의 특징과 가치」,『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적 가치규명을 위한 학술대회』, 전라남도·화순군.
(재)한국문화유산 보존연구원(주최), 전라남도·화순군·대한불교조계종운주사, 2024.06.20.~06.21.,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 등재 국제학술대회』.
1914.07.21.(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 유리건판 2944) - 오른쪽 난외에 촬영일자, 장소(「三 七 卄一 全南綾州 多塔峰」)가 기록되어 있다. 이때 촬영은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사업 사료조사 제4차였다. 당시 조사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고적조사과에서 주관하였다. 조사자는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1870~1953)이고 촬영기사 사와 슌이치(澤俊一)가 함께 했다. 1914년 4월 14일 경성을 출발하여 대구, 경주, 포항, 광주(5.12), 진도(5.16), 제주(5.18), 해남(6.12), 진도(6.15), 완도(6.20), 여수(7.2), 순천(7.4), 구례(7.4), 보성(7.9), 장흥(7.12), 강진(7.13), 해남(7.16), 나주(7.20), 화순(7.20)의 일정이었다.
2013.08.29.
*화순 운주사의 옛 사진 가운데 날짜로 보면 오늘(7월 21일) 찍은 사진이 있다. 1914년 7월 21일이니 110년 전이다. 사진에 촬영일시와 장소를 기록해 두었는데 「三 七 卄一 全南綾州 多塔峰」이다. 三은 대정(大正) 3년, 七은 7월, 卄一은 21일을 뜻한다.
1914.07.21.(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 유리건판 2984)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 등재 국제 학술대회 종합토론(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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